복 음 과   빛    제 2권  76호  (매주 월 - 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토기장이와 진흙 (롬 9:19-21)

도입

  바울은 (롬 9-11장)을 통해서 "이방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먼저 선택받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약속에서 제외되었고, 반대로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고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였기 때문에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편으로 자기 동족인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에 큰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유대인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9장에서 유대인의 구원 문제에 대한 네 개의 질문을 던진 후에 그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바울이 던진 네 개의 질문 중에서 두 개를  생각해보았습니다(질문 1: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었는가? 질문 2: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가 과연 정당한가?) 이제 우리는 오늘 바울이 던진 세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것입니다.

본문내용

 


1. 하나님이 왜 우리를 책망하시는가?
  "그런즉 여러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찾으십니까? 그의 생각(뜻)을 누가 제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문제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운명이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는가? 아니면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해 왔습니다. 학자들은 만일 인간의 모든 운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다면 사람들은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들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자들은 만일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예정)에 달려있다면 사람들은 믿지 않은 일로 인해서 심판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믿고 안 믿는 문제가 개인의 의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한 영화 감독이 영화를 찍기 위해서 두 명의 배우를 캐스팅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에게는 선한 역을 맡기고, 다른 배우에게는 악역을 맡겼습니다. 이 경우에 악역을 맡은 배우는 그가 영화 중에서 행한 악한 일에 대해서 추궁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감독의 지시를 따라 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 감독은 악역을 맡은 배우에게 "너 왜 악한 일을 했느냐?"고 책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던지고 있는 세 번째 질문은 이와 관계된 질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책망할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대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앞에서 이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누구를 지옥에 보내기로 작정하신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선악과를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의 예정 때문이 아니라 아담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뱀의 유혹에 빠져서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일에 대해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장차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단을 무너뜨리시고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들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지옥에 간 사람이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선택),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행위를 따라 공정하게 심판을 받게 하셨습니다(유기).
 

2. 토기장이와 진흙(20-21)
  "오 사람이여! 여러분이 누구길래 감히 하나님께 대들려고 하십니까? 지음받은 것은 지으신 분에게 "당신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고 따질수 없습니다(20). 토기장이가 똑같은 진흙 덩어리를 가지고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만들고, 다른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21)"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사람아! 네가 누군데 감히 하나님의 뜻에 항의한단 말인가?" 바울은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해서 항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자신이 할 일을 보고하고 허락을 맡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시려는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하시고 싶어도, 인간의 머리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욥기는 이런 진리를 우리들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사단은 욥을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욥을 쳐서 그의 신앙의 순수성을 시험해 보라고 허락하셨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한 순간에 욥의 가족과 재산, 그리고 건강을 모두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욥은 왜 자기에게 그런 재난이 닥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사단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이번에는 세 친구를 통해서 욥을 시험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욥이 심한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그를 동정했지만, 결국에는 그를 정죄하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욥의 친구들을 통해서 욥을 정죄하며 회개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변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욥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하는 항의를 모두 듣고 계시다가 마침내 욥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욥은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가 너무나 위대하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입을 막고 재에 앉아서 하나님께 자기의 무지함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왜 그가 고통을 받아야 했는지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또 설명을 한다해도 욥이 그것을 다 이해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람의 선택과 유기에 대한 문제도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왜 어떤 사람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시는지 우리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설명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은 선택과 유기의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두 가지 비유를 들었습니다. 바울은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에 그 작품이 예술가에게 "네가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항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20). 이와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하나는 귀한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그릇을 만들 때에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네가 왜 나를 천한 그릇으로 만들었느냐?"고 항의할 수 없습니다. 이 비유는 예레미야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렘 18:1-11, 사 29:16, 45:9, 64:8).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과 같이 생각할 수 있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게 '네가 나를 짓지 않았다' 고 할 수 있느냐?" "어찌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게 '너는 총명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사 29:16 참고) 또 이사야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그릇 조각 중에 하나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와 다투는구나!"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네가 무엇을 만드냐?'고 항의 할 수 있느냐?" "지음을 받은 것이 어찌 자기를 만든 자에게 '너는 손이 없다'고 할 수 있느냐?"(사 45:9)

  사람들은 선택과 유기에 대해서 하나님께 그 책임을 돌릴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선택하고 유기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이것은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을 가지고 하나는 귀한 그릇을, 다른 하나는 천한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해서 항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왜 자신이 어떤 사람은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유기 하시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는 창조자가 피조물에게 자기가 하는 일을 보고하여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설명하신다 해도 우리 지혜로는 그 비밀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비밀을 모두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다음의 말이 왜 옳지 않은지 설명해 보자. "인간의 모든 운명은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으며, 사람들은 단지 그 운명을 따라 살 뿐이다."

2. 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에 관한 비밀을 다 이해할 수 없는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 욥기의 예를 통해서 말해보자.

3.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항의하거나 불평한 적은 없는가? 왜 이러한 일이 옳지 않은지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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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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