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7과)

에스더(1); 서론과 구조



1. 유별난 책

 1-1. 인기 최고

  에스더서는 성경 해석사에서 찬반 양론이 가장 드센 책,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유별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해석자들에게는 특별히 유다주의 서클에서 에스더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만하다. 그들은 에스더서를 토라와 맞먹는 권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에스더서가 유다인들의 역사 가운데 박해자를 이기고 승리한 몇 안되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마카비 시대에 스스로를 이방인들과 구별햇으며, 이는 박해를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마카비 시대에 에스더서는 인기를 얻었을 것이며, 그 후 연속되는 유다인들의 비극적인 역사로 인해 정경적으로 인정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후에도 에스더서는 계속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엇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하만은 반셈족주의 정책을 수행한 이방 지도자의 상징이 되었다.

  이미 주후 300년 경의 랍비인 시므온 벤 라키스(simeon ben Lakish)는 에스더서를 예언서나 성문서보다 한 수 위인 토라와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높이기 시작했으며, 중세 철학자인 마이모니데스(Maimonides)는 메시아가 오시는 날에 예언서와 성문서는 사라질지 몰라도, 토라와 에스더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에스더서가 모르드개 시대에 문서로 기록되긴 했지만, 원래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계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다섯 두루마기 책" 가운데서 에스더서를 가리켜 "그 두루마기"(the Megilllah; the scoll)라고 불렀는데, 이런 명칭은 다른 어떤 구약성경에도 붙여진 적이 없다. 중세에 기록된 에스더서의 두루마리의 수가 매우 많은 것을 보던 중세 유다인들에게는 매우 인기 있는 책 가운데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1-2. 평가 절하

  그러나 대부분의 성경 해석사에 있어서 에스더서는 평가 절하되었다. 에스더서는 기독교(혹은 유대교)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함량 미달의 문서요, 매우 세속적인 글이라는 것이 오랫 동안 에스더서에 대한 일반적 평가였다. 이렇게 에스더서를 평가 절하하는 현상은 심지어 쿰란 공동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큼란 공동체의 유명한 사해 사본에는 구약성경에서는 오직 에스더서의 사본만 발견되지 않고 있다.게다가 쿰란 공동체가 지킨 제의 절기 가운데 부림절은 빠져있다. 부림절이 오경에 언급되지 않은 절기, 즉비모세 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이 쿰란 절기 가운데 부림절이 바져 있는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쿰란 공동체가 신학적인 이유에서 에스더서를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약 기자들은 에스더서를 인용한 적이 없으며, 교부들도 에스더서를 암시한 적이 별로 없다. 에스더서에 관한 주석이 주후 831년에 처음 나타났다는 사실은 에스더서가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에서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1-3. 문제성

  에스더서가 일부 유다주의 서클에서는 존경의 대상인 반면에, 대부분 평가절하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여호와"라는 이스라엘 신의 고유명사는 커녕 일반적인 신을 가리키는 총칭명사인 "하나님"에 대한 언급도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사랑 문학인 아가서도 냉소적으로 들리는 전도서도 하나님의 이름은 언급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조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반면에, 이방 페르시아 왕은 167절 안에 무려 190번이나 하나님을 언급하였다. 둘째, 에스더서에는 종교적 요소가 적어보인다. 예를 들어, 율법, 언약, 성전과 같은 주제는 물론, 심지어는 위기 가운데에서 기도로 위험을 극복했다는 언급도 없다. 게다가 다른 포로 후기 성경문서들에 나타나 있는 안식일 준수 규례, 음식 금지 규정, 이방인과 통혼 금지에 관한 이야기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주인공인 에스더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이방 왕과 결혼하는 모습을 보인다(레 19:11을 어긴 것임). 셋째,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등장 인물들의 윤리적인 모호성이다. 에스더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인데다가 이혼까지 한 왕의 부인이 되기 위해서 결혼 전에 성관계를 맺는 점은 도덕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참조 출 34:16, 신7:3). 만일 왕후로 간택되지 않는다면 에스도는 왕의 하렘에서 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르드개의 행동도 도덕적으로 의혹의 대상이다. 상급자에게 절하는 것은 고대 근동 아시아, 특별히 페르시아에서는 일반적인 왕궁 예절이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느부갓네살이 우상 앞에 절할 것을 요구했을 때에야 비로소 절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왕의 고위 신하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함으로 자신 뿐 아니라, 동료 유대인 전체를 위기에 빠지게 만들었다(3:4). 과연 이런 태도가 바람직한 것인가? 어리석이 짝이 없는 오만한 태도가 아닌가? 어떻게 보면 에스더서의 등장 인물은 철저하게 세속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어떤 학자는 에스더서에는 고귀한 인물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고 혹평한다. 그는 잔치 석상에 나와서 미모를 자랑해 달라는 아하수에로 왕의 요구를 거절한 와스디만이 에스더서에서 유일하게 본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고대 유다인 해석자들은 "왕후의 면류관은 정제하고 나오라"는 왕의 명령을 "단지 왕후의 면류관만 쓰고" 나오라는 뜻으로(나체로) 해석하기도 한다. 에스더서에서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우성 9장의 대량 학살은 의로운 보복인가? 아니면 지나친 살육인가? 아니면 이 둘의 복합인가? 최소한 유다인들은 승리의 순간에 적들과 같은 수준의 행동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에스더서는 매우 유다주의적인 특성을 보인다. 에스더서는 유다인의 구원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생긴 정기도 유다 절기인 부림절이다. 따라서 에스더서는 "유다인 중심적'이다. 그에 반해 기독교인은 부림절을 지키지않고 있다.


 1-4. 개혁주의 전통과 에스더서

  따라서 위와 유사한 이런 저런 이유로 종교 개혁자 루터는 에스더서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개신교 가운데에서도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장 강하게 지지하고 선호하는 개혁주의 전통에서도 에스더서는 흔쾌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우리가 아는 한, 칼빈은 에스더서를 본문으로 설교한 적이 없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얌니아에서 랍비들에 의해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초대 기독교회에서도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에스더서를 정경으로 인식하고 확증하였다. 그 이후 교회는 에스더서를 정경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은 타당한가? 만일 에스더서가 정경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에스더서가 정경으로 인정된 기준이 무엇이며, 에스더서가 전하는 신학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시대적 상황과 장르

 2-1. 시대적 상황

  에스더서를 보면 부림절이 한동안 지켜진 후(9;19)에 기록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에스더서의 기자는 페르시아인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유다나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생각해 보면, 에스더서는 주전 약 400년경에 미상의 저자에 의해서 페르시아에 있는 유대인 센터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에 1:1)을 보면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 왕(Ahasuerus; Xerxes)의 통치 시대(주전 484-464년)에 이스라엘이 경험한 위대한 구원-유다인들이 부림절이라는 절기로 이 구원을 노래하고 있는데-의 스토리를 적고 있다. 그렇다면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은 누구인가?

  유아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한 고레스 왕이 죽고 캄비세스(주전 530-522년)와 다리오 1세(주전 522-486년)가 왕위에 올랐다. 아하수에로는 다리오 1세의 아들로서 장남이 아니었지만, 다리오 1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리이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주전 484-424년)는 아하수에로 왕이 고대 근동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린 야망 있고 뛰어난 전사이며, 또한 무자비한 통치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은 헤로도투스가 그의 페르시아 전쟁사의 1/3(7-9장)을 아하수에로의 그리이스 침략 사건에 할애할 정도로 대단한 왕이었다. 아하수에로는 유럽정복에는 실패했지만, 한때는 마게도니아로 진격하여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군을 제업하고, 아테네를 점령하기도했다.

페르시아 연대기와 유대 역사

연대(B.C)

비고

고레스

550-530

고레스 칙령, 538년, 바벨론 포로 귀환

캄비세스

530-522

성전 건축 재개, 520년

다리오 1세

522-486

성전완공, 515년,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 490년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486-465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활약

아닥사스다 1세(롱기마누스)

465-424

에스라 귀환, 458년, 느헤미야, 445년

다리오 2세

424-404

 

아닥사스다 2세(므네몬)

404-358

 

아닥사스다 3세(오쿠스)

358-338

 

아르세스

338-336

 

다리오 3세(코노만누스)

336-331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알렉산더에게 멸망,331년

  결국 에스더서에 기록된 사건은 스룹바벨하에서 성전 건축을 완공한 사건과 에스라 중심의 포로 귀환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다. 이 시대의 유다인들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유다에 귀환한 제 2 성전 공동체는 장래가 불투명했고, 다윗 왕조의 부활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게 되자, 유다인들은 고국으로 귀환하기보다는 원해 그들이 살던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의 동쪽 지역에 그대로 눌러 사는데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니부르에서 나온 무라슈(Murashu)본문에 따르면 일부 유다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크게 번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름대로 번성하던 유다인들이 잔혹한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일련의 궁중 음모에 의해 전 민족이 멸절될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왕의 궁정에서 왕후와 고위 직책을 얻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에 의해 극복되었다. 그뿐 아니라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모의했던 대적들을 75,000명이나 살해하고, 전 제국이 떠들썩하도록 거대한 잔치를 베풀 수 있게 된다. 에스더서는 이런 위대한 유대인 구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2-2. 장르

  최근에 학자들은 에스더서의 장르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나, 아직은 어떤 일치된 견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특별히 최근에 상당수의 학자들은 에스더서를 외경인 유딧서와 토빗서처럼, 역사적 로망스(historical romance), 또는 소설(novella)로 보거나, 역사화된 지혜 민담(a historicized wisdom tale), 잔치 전설 등으로 보고 있다. 에스더서를 이런 장르로 보는 학자들은 대부분 에스더서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증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학자들은 에스더서의 일부 내용이 성경의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중요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불일치가 설명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 에스더서의 문제성을 근거로 에스더서의 역사성을 부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학자들은 에스더서의 문예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역사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러티브로서의 에스더서가 조심스럽게 짜여져 있는 사실이 세부적인 내용이 거짓이라든지, 또는 전체를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에스더서 안에 지혜의 요소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해서 역사적 토대가 약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성경 기자는 실제 사건들의 연대기인 궁중 일기(2:23)와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10;2-3)를 언급함으로써 에스더서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에스더서를 역사 소설, 또는 역사화된 지혜 이야기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3. 플롯

 3-1. 플롯의 중요성

  에스더서는 실제 일어난 역사 위에 기초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잘 짜여진 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다. 에스더서는 정연한 플롯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플롯은 다른 모든 요소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상황이나 등장인물이나 주제는 플롯에 의해 존재하게 되고, 다른 요소들과 적절한 관계를 지니게 된다. 플롯이 다른 모든 것을 연결하고 유지하게 한다. 플롯은 성격상 스토리의 특정 요소들을 부각시키고, 그로 인해 주요 주제들이 무엇인지 암시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플롯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에스더서의 플롯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표면에 드러나 있다. 에스더서의 플롯을 다음과 같이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단계

본문

1

발단(exposition)

1-2장

2

분규,절정,결말(main action)

3:1-9:19

3

부림절 부록(Purim appendix)

9:20-32

4

결언(epilogue)

10장


 3-2. 발단(에 1-2장)

  발단은 하나의 플롯의 맨 처음 양상이며 가장 암시적이며 상징적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발단이란 내러티브에 서술될 행동들의 서론으로서, 등장 인물들이 소개되며, 그들의 이름, 특징, 어ㅚ모, 삶의 상황에 나타나고, 그 배경이 설정되는 서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플롯의 발단을 스토리가 진전되어 나가는 막연한 시초라고 할 수 없다. 발단에는 성격의 갈등과 주제를 예시할 수 있는 암시성이 내포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에스더서의 발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에스더서의 발단을 구성하고 있는 1-2장에는 이어지는 내러티브의 주요 등장 인물, 배경, 갈등과 주제를 암시하는 요소들이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우선 발단에는 포로로 끌려온 유다인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어떻게 왕궁에 들어가서 유력한 지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묘사함으로써 앞으로 감당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에시하고 있다. 민족적 위기의 순간에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에스더는 사랑받는 왕후(2:17)가 되었고, 모르드개 역시 큰 일을 한 사람의 명부에 이름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2:21-23).

  동시에 발단은 페르시아 궁정의 에토스(ethos)와 삶의 상황을 독자들에게 잘 보여준다. 페르시아는 인도에서 구스까지 이르며, 127도나 되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아하수에로 왕은 127도의 모든 방백과 신복들은 물론, 수산 성의 백성들을 황제의 잔치에 초청하였으며, 왕후 와스디에게 잔치에 나와서 미모를 뽑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왕의 요청을 거절했다. 왕은 왕후가 자기의 요청을 거절한 일을 듣고 모든 부녀들이 남편을 멸시하는 일이 일어날 것을 염려했다. 그러므로 그는 왕후를 폐위하는 조서를 내리고 이를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할 수 없도록 했다(1:19). 그리고 나서 그는 각 도의 각 백성의 문자와 방언대로 조서를 내려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라!"(1:22)고 선포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페르시아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했으며, 왕이 변덕이 법이며, 한번 법으로 정해지면 변개할 수 없었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1:19). 이 모든 것은 플롯 전개에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요 행동의 많은 긴장들이 변개시킬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변개시켰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3-3. 분규, 절정, 결말(에 3:1-9:19)

  흔히 플롯의 두 번째 과정은 전개와 분규, 세 번째 과정은 절정, 그리고 마지막 과정은 결말로 나눈다. 플롯의 두 번째 단계인 전개와 분규는 내러티브의 액션(동작)이 본격적으로 제시되고, 등장 인물의 성격이 정착하여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변화하면서 분규가 발생하는 단계로, 양적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는 분규를 "긴장을 구축해 나갈 뿐 아니라, 또한 스토리에 주어진 독특한 상황에서 문제점을 발전시켜 나가는 사건과 등장 인물의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편 절정의 단계는 가장 극적인 성경을 띠는 플롯의 단계이다. 전개와 분규의 단계를 거쳐서 복잡하게 된 모든 사건 전개가 여기에 이르러서 최고조의 긴장과 대립을 겪으면서 대단원을 위한 분기점에 서기 된다. 절정이란 상승적 사건의 최종점이며, 갈등 속의 여러 힘이 최고로 강렬해지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결말은 갈등과 분규가 일단락을 짓고, 해결의 시점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최종적인 해결, 혹은 플롯의 풀림이라고 보아도 좋다.

  에스더서는 이런 세 가지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하나로 묶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3장에 들어서면서 위기가 생긴다. 이 위기는 하만과 모르드개 사이의 갈등에서 시작된다. 유다인 모르드개는 아각 사람 하만에게 무릎을 꿇거나 절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하만은 모르드개와 모든 유다인들을 죽일 계획을 하게 되며, 이로 인해 위기가 시작된다(3:1-6). 하만은 왕에게 가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 다른 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는다고 고소를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는 왕을 속여서 유다인을 살해하고 그 재선을 탈취해도 좋다는 동의를 받아 각 지방에 조서를 보냈다. 그러므로 유다인은 조직적인 민족 말살의 위기에 놓인다. 이제 에스더서의 중심 스토리는 아각 사람 하만의 유다인 말살 계획이 어떻게 유다 여인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 반전되는 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 위기는 유다인이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게"(9:5) 되어, 무려 75,000명이나 살육하고, 그 날을 기념하여 큰 잔치를 베푸는 대역전극을 통해서 완전히 해소된다. "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월 십 사일로 경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에 9:19)."

  그러나 이런 대단원에 이르기까지 중간 중간에 부분적 해소의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하만은 7장에서 무력화되고, 마침내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달려 죽음을 당한다(7:9-10). 그러나 하만이 왕을 설득해서 유대인들을 진멸하라고 내린 왕명은 아직 남아 있었다. 따라서 유다인의 위기도 여전했다. 이 이야기는 유다인들에게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한 왕의 두 번째 명령을 반포한 후에, 그리고 모르드개가 하만의 자리에 앉은(8:15) 후에야 비로소 해소된다. 이런 중요한 반전이 있은 후에 유다인들은 기쁜 잔치를 베푼다(8:17). 어찌 보면 유다인들이 잔치를 베푸는 장면을 언급하는 8장 결미가 이 이야기의 절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제 유다인들은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미래가 확보되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수산 궁의 페르시아인들이 유다인이 되기를 원했다면, 이제 위기는 거의 소멸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이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7)."

  그러나 플롯의 논리는 여기에서 스토리가 끝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제 계속해서 유다인들이 스스로 방어하고, 적들을 공격하며(8;11), 복수할 수 있도록(8:13) 허락하는 두 번째 왕명이 내려지고 있다.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 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이 조서 초본을 각 도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으로 예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에 8:11-13)." 이러한 날짜에 대한 언급은  운명의 날인 13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증을 갖게 한다. 비록 8장의 결론이 결정적인 위기 해소의 순간일 수는 있지만, 9:1-19은 흐트러진 결론들을 모아서, 마지막 해소의 순간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9:19에 가서야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고 볼 수 있다.


 3-4. 부림절 부록(에 9:20-32)

  그러나 흥미롭게도 에스더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흔히 "부림절 부록"(9:20-32)이라고 부르는 단락으로 연결된다. "부림절 부록"은 부림절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역사적 기초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부림절의 날짜를 설정하고, 절기를 지키는 방식을 제시한다. 또한 부림절을 즐거운 잔치를 베풀고, 예물을 주며(9:19),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9;22) "길한 날"로 규정한다. 이렇게 함으로 에스더서 기자는 부림절이 단순한 세속적인 절기가 아니라 종교적인 절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부림절 부록이 후대에 첨가된 자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구조를 살펴볼 때에 부림절 부록은 후대에 첨가된 자료가 아니라 원래부터 에스더서에 포함되어 있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3-5. 결언(에필로그: 에 10장)

  더욱 재미 있는 것은 에스더서가 부림절 부록으로 끝나지 않고, 모르드개의 고위직과 선정에 대한 짧은 에필로그(10:1-3)로 끝난다는 점이다. 승귀한 모르드개가 모든 백성에게 "샬롬"을 말할 수 있었다는 언급은 에스더서의 적절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에 10:3)." 여기에서 "안위하였더라"는 말은 "샬롬을 말하였다"는 말이다. 이것은 에스더서의 주제인 구원이 단순한 위협의 제거가 아니라, "샬롬", 즉 완벽한 상태로의 회복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높아진 모르드개가 자기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모든 백성에게 "샬롬"을 선포하는 것보다 더 적절한 결론은 없을 것이다.


 
3-6. 플롯 연구 결과

  에스더서에 대한 간략한 플롯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강조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에스더서의 주요 주제는 "구원"임을 강조한다. 둘째, 부림절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에스더서의 목적 중에 하나임을 보여준다. 셋째, 에스더서의 시작과 끝 사이에 아이러니한 대조와 역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에스더서의 처음에는 아하수에로 왕이 127도의 모든 방백과 신복들을 황제의 잔치에 초청하고,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라!(1:22)."고 선포한다. 그러나 에스더서의 끝에 이르면 모르드개가 127도에 사람들을 보내고 있다. 그는 각 도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하만의 음모를 좆아 유다인들을 해치려는 자들의 손에서 스스로 보호할 조치를 취하라는 황제의 명을 전한다. 그리고 나서 모르드개와 에스더서는 127도의 유다인들에게 부림절을 지키라고 명하는 편지를 보낸다(9:29-30). 그렇다면 이제 127도에서 진정한 잔치를 베푸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제 누가 아하수에로 왕의 집을 주관하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선민인 유다인들과 모르드개, 그리고 에스더가 아닌가?


4. 구조

 4-1. 역전의 패턴

  앞의 플롯 분석에서 살펴본대로 에스더서의 구조는 역전의 패턴이 지배하고 있다. 언뜻 보다라도 역전의 주제는 에스더 전체의 기저에 깊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다인 모르드개는 처음에는 낮은 사회적 위치에 있었지만, 후에는 왕 다음 가는 높은 신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모르드개와 유다인을 죽이려고 했던 하만은 높은 신분에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자기 가족과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된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세운 교수대에는 모르드개 대신 하만이 매달리는 모습은 역전의 주제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래의 목록은 이러한 역전의 구조를강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성경 기자가 거의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 경우이다. 독자들이 성경 본문을 직접 읽고 대조해보면 거의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다음 페이지의 도표를 참조하라).

  그렇다면 이렇게 정교한 역전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우연한 사건이나 의미 없이 일어난 사건의 연속에 불과한 것인가?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인다. 실제로 에스더서에는 일련의 "동시발생적 사건들(우연)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모르드개가 왕을 살해하려는 모의를 우연히 들었다는 점(2:21)이나, 아하수에로가 불면증에 걸려 모르드개의 충성을 기록한 연대기를 읽게 된 점이나(6:1), 왕이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려고 생각할 순간에 하만이 궁정에 들어간 일(6:4), 그리고 하만이 걸상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는 순간에 왕이 다시 방에 들오온 점(7:8) 등은 모두 우연의 일치로 보인다.


 4-2. 페리페테이아(peripeteia)

 

이전

역전

이후

지위

하만의 지위: 왕 다음(3:1)

모르드개의 지위: 왕 다음(10:3)

제비

유다인을 진멸키 위해 제비뽑아 아달월을 택함(3:7)

제비를 뽑아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했음을 언급함(9:24)

이익

유다인 용납은 왕에게 무익(3:8)

유다인 진멸은 왕에게 손해(7:4)

반지

왕의 반지를 하만에게 줌(3:10)

하만에게 반지를 빼앗아 모르드개에게 주고 하만의 집을 주관케 함(8:2)

임의

하만이 임의대로 하도록 왕이 허락함(3:11)

모르드개의 임의대로 하도록 왕이 허락함(8:8)

조서기록

유다인을 진멸하고 재산 탈취를 허락하는 조서를 기록(3:12-13)

유다인을 공격하는 자를 진멸하고 재산을 탈취하도록 조서를 씀(8:9-11)

반포

조서 초본을 각 도에 반포(3:14)

조서 초본을 각 도에 반포(8:13)

상황

반포 후에 수산성이 어지러움(3:15)

반포 후에 수산성이 기뻐함(8:15)

유다인

애통하며 금식함(4:3)

즐거워하며 잔치를 베품(8:17)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에스더서에 나타나는 일련의 놀라운 우연의 일치는 단순히 등장 인물의 기대와 다르게 움직이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에스더서에 나타나는 우연의 일치들은 특정한 방향, 곧 완전한 180도 반전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등장 인물이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방향으로 우연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이 "내가 존귀케 여기는 자를 어떻게 대접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에,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왕복과 입히고 왕관을 씌워서 왕의 말을 태우고, 가장 존귀한 자가 말을 끌고 성중에 돌아다니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6:6-9)." 그러자 왕은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행하되....내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없이 하라(6:10)!"고 지시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왕이 존귀케 하려는 사람은 하만이 아니라 그가 죽이려고 했던 모르드개였다(6:4). 하만이 생각한것과는 정반대로 사건이 진행되어 결국 그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

  이와 같은 현상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페리페테이아"(peripeteia-영어로는 peripety), 즉 "운명의 역전"이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따르면 "페리페테이아"는 "한 행동이나 상황이 예기된 결과와는 전혀 상반되는 결과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이스 연극에서 "페리페테이아"는 인간 기대의 좌절을 표현하며, 인생의 항로가 인간 통제밖에 있는 힘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물론 성경에서 "페리페테이아" 뒤에 있는 힘은 언제나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에스더서 안에 "페리페테이아"의 원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연의 일치로 보이는 사건 전개가 결국은 일정한 방향, 즉 "페리페테이아"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이 사건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에스더서 기자가 사건을 우연의 일치인 것으로 묘사하면서도 "페리페테이아"의 원리를 강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사건의 묘사에서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은 인간 역사가 무의미한 사건의 연속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인간의 삶이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으며, 인간 통제밖의 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에스더서에 있는 우연의 일치와 "페리페테이아"의 원리는 사건의 표면 아래에 숨어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행동을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함축적인 신학을 갖고 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손이 철저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손이 숨겨져 있다(신지어는 4:14에서도). 하나님의 손이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기에 오히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록 하나님의 통치가 모호한 사건들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혼둔의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통제 안에 들어있다. 따라서 세계 제국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호한 사건들 중에도 이스라엘의 숨겨진 하나님은 그의 숨겨진 백성을 말살의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다. 그러므로 모르드개의 신앙과 에스더의 용기는 정당화되며, 유다인들은 매년 부림절에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면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잔치의 신학

  이러한 놀라운 에스더서의 운명의 역전 구조는 잔치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히브리어로 잔치를 가리키는 "미쉬테"는 특별히 술이 많이 소비되는 잔치를 의미한다. 폭스(Fox)에 따르면 미쉬테는 전체 구약성경에서 모두 46번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에 절반에 가까운 20번이 에스더서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에스더서 안에서 잔치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에스더서에는 모두 10번의 잔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나누어 보면 크게 두 개씩 쌍을 이루면서 다섯 그룹의 잔치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번의 잔치를 베푸는 부림절 절기의 역사적 배경을 그리고 있는 에스더서에서 매우 적절한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의 도표를 참고하면 다섯 그룹의 잔치가 "권력 이동"을 보여주면서 에스더서의 플롯 배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분

번호

내용

본문

A. 왕의 잔치

1

왕이 127도의 방백을 위해 베푼 잔치

1:3

2

왕이 수산성의 모든 백성을 위해 베푼 잔치

1:5

B. 왕후의 잔치

3

왕후 와스디가 부녀들을 위해 베푼 잔치

1:9

4

에스더서의 왕후 등극 잔치

2:18

C. 하만과 
    모르드개의 잔치

5

하만과 왕의 잔치

3:15

6

모르드개의 승진을 축하하는 잔치

8:17

D. 에스더서 잔치

7

에스더서 첫 번째 잔치

5:4-8

8

에스더의 두 번째 잔치

7:1-9

E. 유대인의 잔치

9

첫 번째 부림절 잔치

9:17-19

10

두 번째 부림절 잔치

9:18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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