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5과)

에스라-느헤미야(2): 에스라 (1-10장)


4.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스 1장)

 4-1. 한 권의 책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칙령으로 시작한다. 이 칙령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기본 주제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전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하였더라(스 1:1-4)."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바벨론 포로를 포함해서 유대인들은 누구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이것은 새롭고 놀라운 일이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이방 왕들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방 왕들을 사용하신 경우는 대부분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것이었다(사 5:26-30, 7:18-19, 10:5, 호 10:10, 암 6:14 등).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방의 왕을 사용하셨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고레스는 피정복민에 게 종교적-문화적으로 관용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므로 그는 바벨론에 거하는 모든 포로민들의 귀환을 허용했다. 당시 고대 근동 아시아의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유대인의 귀환사건은 고레스의 정치적 결단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이때에 유대인들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킨 분이 하나님이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서의 기자는 이러한 전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포로 후 공동체를 섭리적으로 돌보신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숙련된 솜씨로 강조하고 있다.


 
4-2. 암시된 주제

  고레스의 칙령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중심 주제 중에 세 가지를 암시하고 있다. 딱딱해 보이는 황제칙령은 에스라-느헤미야의 발단으로서의 기능을 잘 감당하고 있다.

  첫째, 황제의 칙령은 특별히 임명된 유명한 사람들에게만 임무를 준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초청하고 있다. 황제의 칙령은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 백성된 자"인가? 고레스의 칙령은 이에 대해서 대답하고 있지 않다. 이 질문은 처음부터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에스라-느헤미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메아리치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책을 읽으면서 계속 던져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둘째, 황제의 칙령은 이 백성들의 임무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집을 건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 건물만을 가리키는가? 언뜻 보면 여호와의 집은 성전 건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에스라-느헤미야서가 전개되면서 여호와의 집은 성전 건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여호와의 집은 성전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과 그 안에 있는 공동체(하나님의 백성)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임을 말해주고 있다.

  
셋째, 황제의 칙령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집을 건축하는 일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조서에 의해 보장되고 추진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권위 있는 글에 대한 관심, 다시 말해서 율법에 대한 관심은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인데, 처음부터 이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이 고레스의 칙령은 하나님의 백성의 중심성, 예루살렘 성까지도 포함하는 하나님의 집의포괄적 개념, 권위 있는 문서에 대한 충성이라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기본 주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발단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


 
4-3. 제 2출애굽의 첫 물결

  여호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 구속사역을 시작하시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조서를 선포하게 하셨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동시에 유다 포로민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들이 예루살렘 귀향길에 오를 수 있게 해주셨다(스 1:5).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셨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께서는 다시 포로지에서 자기 백성을 재창조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의심과 낙망의 무덤에서 남은 자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그들을 다시 자기 백성으로 부르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신실한 남은 자들은 세스바살의 인도 아래 최초로 예루살렘으로 귀향했다. 세스바살은 여호여긴 왕의 아들이요(세낫살, 대상 3;18), 스룹바벨의 숙부이며, 회복된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이들이 귀환하는 장면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두 번째 출애굽"에 비교되고 있다.

  첫째로 주변 사람들이 돌아가는 유다 포로들에게 많은 보물들을 주었다.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스 1:6)." 이것은 과거에 애굽인들이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것과 아주 유사하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출 12:35-36)."

  둘째, 원래의 성전 기명을 유다인들에게 돌려주어 조심스럽게 예루살렘에 돌아가도록 배려해 주었다.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스 1:7)."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여호와의전 기명들은 출애굽시 장막을 위해서 만들었던 기명들을 생각나게 해준다. 패배한 민족의 신전 기명들을 승리자의 신들의 신전에 갖다놓는 것은, 패배한 민족들에게 그들의 신이 구원할 능력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바벨론 신전에 놓인 여호와의 전 기명들은 바벨론인들에게는 여호와에 대한 바벨론 신들의 승리를 보여주는 가시적 상징이었을 것이다. 페르시아인들의 눈에는 이러한 일이 예루살렘을 다시 여호와의 도시로 만든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편 여호와의 성소의 기명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일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사건을 보고 여호와께서 옛날 출애굽 때에 보여주신 친밀한 관계로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셋째, 유다인들은 성전 건축을 위해 자원해서 금, 은, 제사장의 옷 등의 많은 예물을 드렸다(스 2;68-69). 이것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짓기 위해서 예물을 드리던 모습과 유사하다(출 35:20-29).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돌아온 포로 귀환을 제 2 출애굽의 첫 번째 물결로 보고 있다. 실제로 바벨론 포로민들의 귀환은 세스바살과 스룹바벨 때부터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까지 오랜 과정에 걸쳐 80년간 지루하게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느헤미야 기자는 포로 귀환 역사를 제2 출애굽으로 모형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역사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해주고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이런 모형론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처음 탄생할 때에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은혜가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에게도 베풀어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향을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 가나안에 들어간 것과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는 포로후의 하나님의 백성이 포로전의 하나님의 백성과 동질성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은 포로후 공동체가 출애굽 이전의 이스라엘과 같은 언약의 상속자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포로 후 공동체에게는 다음과 같은 주제가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하나님 약속이 아직도 유효한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미래가 있는가?" 그러므로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제2 출애굽의 모형론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5. 무명의 백성들의 기념탑(스 2장)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스 2장)에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바벨론에서 올라온 귀향민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이 곳에는 주전 538-520년 사이에 여러 번에 걸쳐서 돌아온 귀향민들의 이름들이 일반 백성(2:3-35), 제사장(2:36-39), 레위인(2:40), 노래하는 자(2:41), 문지기(2:42), 다른 성전 일꾼(2:43-58)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포괄적인 명단은 돌아온 사람들이 중요한 유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런 명단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초점이 하나님의 전을 지은 백성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요세푸스처럼 독자들이 주요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하려고 명단을 생략하는 일은 에스라-느헤미야서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는 이 백성들과 이들의 운명이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에스케나지는 이러한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해주고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백성들은 개인이나 그룹의 정체성이 섞이거나 제거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사건들을 결합시켜서 전체 피륙을 짜는 실이다....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매 발걸음마다 많은 개인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것은 귀환과 재건이 이들의 능동적 참여로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가 돌아와서 제단과 성ㅈ너을 건축해Tssm지를 알고 있다. 이들은 에스라 2장에 나오는 이들이다. 물론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그들 중에 있다. 그러나 이들이 임무를 시작하고 완성한 것이 아니다. 그 일은 바로 백성들이 한 것이다. 우리는 누가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를 찾아내고 이르 교정하려는 주도권을 잡았는지를 알고 있다. 공도체가 그러한 것이다. 에스라는 단지 그 도구였을 뿐이다. 우리는 누가 성벽을 쌓았는지를 알고 있다. 물론 느헤미야가 한 것이다. 그러나 이름이 보전된 이들이 여럿이 있다(느 3:1-). 실제로 돌 하나씩 비싼 대가와 희생을 치르면서 건축한 이들이 있다(느 5장). 이런 이름과 긴 이름 명단의 반복은 독자로 하여금 누구의 공인지를 계속 생각나게 한다.

  특별히 이 명단은 포로 후 공동체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백성들이 아니며, 과거 포로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후손임을 "종족과 보계"를 따라(참조, 스 2:59,62),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과 후손의 약속에서 단절된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 영광스러운 약속의 참여자들이 아닌가? 포로 후 공동체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기 원하였고, 여호와께서는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를 통해 이를 분명히 하신 것이다.


6. 성전 재건(스 3-6장)

  이제 귀향한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모여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한 1차 작업으로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지도자는 예루살렘 2대 총독으로 활동한 스룹바벨이었다. 결국 에스라 3-6장은 유대 백성들이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에서 어떻게 방해를 극복하고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6-1. 단, 상번제, 회복, 성전 지대(스 3장)

  이스라엘 자손들은 제 7월에 모여 단을 쌓고 모세 율법을 따라 상번제를 드리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7월이라 함은 티스리월(양력으로 9-10월에 해당)을 가리키는데, 7월에 모여 상번제를 드리기 시작한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는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마다 7월에 하는 모습을 본다(느 8:1, 8:2, 8:14-18, 참조 대하 5:3, 7:8-10). 이것은 후에 에스라가 수문에서 율법서를 낭독할 때에도 제 7월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일이다. 결국 이러한 역서적 중요성이 있는 7월에 단을 쌓고, 상번제를 드리고, 출애굽 구원을 상기시키는 초막절을 지킨 것은 바벨론 포로민들이 이제 막 체험한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인정하고, 여호와께 충성과 헌신을 다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귀향한 지 제 2년 2월에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스 3:8). 여기에 스룹바벨과 예수아 같은 지도자가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성전 건축을 한 장본인들은 귀향민 모두임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의 성전은 솔로몬 왕이 지은 성전이었지만, 제 2성전은 일반 백성들이 지은 성전이었다. 성전 지대가 놓여지게 되자, 다윗의 규례대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여호와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소로몬 성전과 이제 막 짓게 될 스룹바벨 성전을 암시작으로 비교하고 있다. 이전에 성전을 지을 때처럼(대상 22:4, 대하 2:8), 이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을 시켜서 레바논의 백향복을 수운하게 했다는 점을 밝힌다(스 3:7). 물론 성전 지대를 놓은 2월이 솔로몬이 성전 건축한 달(왕상 6:1)과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부 노인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 보고 그 초라함을 인해 대성통곡했다. 그러므로 그 날의 분위기는 기쁨과 함께 슬픔의 통곡이 어우러졌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집이 회복되는 마지막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집이 회복되는 절정은 미래에 있었다. 장차 예루살렘 성벽을 마저 완공이 된 후에 백성들은 금식을 하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드려진 예루살렘 성전 봉헌식(느 12:27-43)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크게 즐거워하게 하실 것이며", 이로 인해 "부녀와 어린 아이들도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리게"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현재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다.


 
6-2. 적들의 반대(스 4장)

  그러나 이런 홉합된 즐거움도 잠시였다. 그때에 사마리아인들을 중심으로 한 펠레스타인 주민들이 성전 건축에 동참할 것을 표시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이러한 그들의 요청을 거부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성전 건축을 반대하기 시작했다(스 4:1-4). 이에 그들이 "바사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방해함(스 4;5)으로 15년 동안이나 성전 건축이 중단되어야만 했다. 또한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이 시점에서 단순히 성전 건축 반대뿐 아니라, 고레스부터 다리오 왕까지의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반대 사건들을 요약하는 내용을 삽입하고 있다. 그는 아하수에로왕(주전 486-465년) 때 반대한 일은 물론, 아닥사스다 왕(주전 465-424년) 때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반대한 것까지 주제별로 묶어 기록하고 있으며(4:6-24(상)), 그 후에(4:24(하)) 다시 원래의 성전 건축 반대 기사로 돌아가고 있다. 이때에 이전기사로 돌아가기 위해 떠났던 시점의 일부 어구(여기에서는 "바사 왕 다리오"라는 말)를 다시 반복해서 언급하는 "재개의 반복"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의 도표를 참고하라.

 (스 4:5)-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

 (스 4:6-24(상))-바사 왕 고레스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 즉위 때까지, 귀환한 공동체에 대한 적들의 반대 일지

 (스 4:24(하))-"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집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2년까지 이르니라."

  이와 같이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하나님의 집 건축 반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먼 미래에 있을 예루살렘 성벽에 대한 반대 이야기까지 묶어서 기록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 성전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벽에 완공되고, 그 안에 사람들이 정착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을 맺은 후에야 완공된 것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에서 보다 상세하게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점을 주목하자. 우리는 적들의 반대 기사를 접하면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왜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의 스토리를 세심하게 전개하다 말고(스 1-3장), 그토록 건축 반대의 스토리를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을까? 어찌하여 건축 완공 계획은 물론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까지 이방 왕 아다사스다의 손에 놓여져야 했는가? 어찌하여 아닥사스다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성전 건축을 허락한 고레스와는 달리 적들의 거짓 정보에 흔들려 성전 건축을 중단시켰는가? 이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유다 민족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던 말인가? 이에 대해 트론트베이트(Throntveit)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는 에스라서의 주요 주제이다. 이것은 느헤미야서에서도 나타날 뿐 아니라, 방해와 관련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여러 목적으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한편으로 이제 막 절말에서 희망으로 돌아온 공동체를 격려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는 일에 간섭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으며,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앞에 놓인 힘든 과업을 해내려는 결의를 굳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제 막 성장하는 포로후 공동체는 하나님의 백성이 자율적인 정치 공동체로서가 아니라, 이방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다양한 정치적 관점이 경쟁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과거에 정치적으로 독립했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했다. 그러므로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전과 성벽 건축뿐 아니라, 내적인 영적 성숙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포로 후 공동체는 공동체에 다가오는 박해와 투쟁하면서 영적인 발전을 해나가야만 했다. 그들은 이방 세력을 지배 아래에서 하나님의 의존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율법에 따라 자신들의 삶을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점은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가 발전시키려고 하는 두 가지 주제였다." 또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일은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가 이스라엘의 진정한 후계자는 가나안 땅에 남아 있었던 자들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것을 방해했던 주된 세력이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6-3. 성전 재건과 봉헌(스 5-6장)

  에스라 4장은 대적들의 반대로 인해 암울한 분위기가 압도적인 데 반해, 에스라 5장으로 들어서면 3장과 마찬가지로 낙관적 어조로 돌아선다. 그 이유는 5-6장에 이르러 마침내 성전이 재건되기 때문이다. "다리오 왕 6년 아달월 3일에 전을 필역하니라(스 6:5)." 물론 다른 간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서편" 총독 닷드내가 페르시아 황제에게 성전 건축에 대해 알아보라는 서신을 보냄으로 성전 건축은 또 다시 중단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의 활동과, 하나님의 "돌아보심", 그리고 이로 인한 다리오 왕의 도움으로 성전 재건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에스라 5-6장의 핵심적 주제는 구조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A 성전 건축을 독려하는 학개와 스기랴(5:1-2)
     B 닷드내 총독이 성전 건축 허락에 대해 알아 봄(5:3-5)
        C 닷드내가 다리오에게 보낸 서신(5:6-17)
        C' 다리오가 닷드내에게 보낸 답신(6:1-12)
     B' 닷드내 총독이 성전 rsj축 허락에 동의함(6:13)
  A'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으로 성전 완공(6:14-15)

  우선 에스라 4장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적 돌보심에 대해 의심을 가졌던 독자들은 5-6장에 들어가면 학개와 스가랴의 활동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히 느끼게 된다(5:1-2, 6:14). 두 선지자의 격려로 인해 이스라엘은 다시 낙망을 딛고 일어나서 성전을 환공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 단락의 안 틀과 바깥 틀에 해당하는 (5:1)과 (6:14)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스 5:1)....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스 6:14)...."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아무리 반대가 심하고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의 과감한 선언에 의해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이스라엘이 형통한 궁극적 비결은 아니다.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었다면 아무리 선지자들이라 해도 총독의 ㅂ나대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닷드내 총독은 4당의 르훔과는 달리 성전 건축에 대한 일을 다리오 왕에게 문의했으며, 그 답변이 올 때까지 성전 건축 공사를 중단시키지 않았다. 그가 이러한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그 원인이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5:5). 비록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대적들이 세력을 과시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포로 후 공동체는 정치적 자유와 독립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이방 열강의 신민 노릇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신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속 정치 구조 안에서도 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온 땅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단락에서 강 서편 총독 닷드내뿐 아니라, 페르시아 왕 다리오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닷드내와 다리오 사이에 왕래한 서신 교환을 통해서 비록 일부 적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반대한다 해도,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이방 왕의 도움도 의지할 수 있는 것임을  통해서 보게 된다. 닷드내가 다리오에게 보낸 서신과 다리오가 닷드내에게 보낸 답신은 세부적 내용이 서로 상응한다.

  A 닷드내가 다리오에게 보낸 서신(5:6-17)
     a 보고: "열심히 건축을 하고 있음"(5:7-8)
       b 허락 여부에 대한 조회(5:9-10)
         c 유다 장로들의 대답: 고레스 칙령(5:11-16)
           d 요청; 고레스 칙령 조사(5:17)
  A' 다리오가 닷드내에게 보낸 답신(6:1-12)
           d' 고레스 칙령 조사 완수(6:1-2)
         c' 고레스 칙령 본문(6:3-5)
       b' 다리오 왕의 허락(6:6-12(상))
     a' 칙령; "신속히 행할지어다"(6:12(하))

  성전 건축 재개는 고레스 칙령에 의해 시동이 걸렸었다. 그러나 대적들이 서신을 올리는 등의 반대 공작으로 인해 15년간 중단되었던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닷드내의 요청에 의해 다시 한 번 고레스 칙령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성전 건축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린느 여기에서 또 다시 고레스의 칙령이 사건 전개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리오는 고레스 칙령을 근거로해서 새로운 조서를 내렸으며, 그것을 신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로인해 닷드내 총독과 신하들은 조서의 지시를 신속하게 이행했으며, 이로 인해 성전 건축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스 6:14)...." 에스케나지는 이 구절을 에스라-느헤미야서 전체 중에 핵심이 되는 "린치핀"(linchpin)으로 본다. 이 구절은 유대인들의 성전 건축이 형통하게 진행된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세 왕의 칙령을 좆은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은 성전뿐 아니라, 앞으로 아닥사스다 왕 때에 건축하게 될 성벽 건축까지 하나의 거대한 "하나님의 집" 건설 사역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구절은 에스라-느헤미야서 전체를 연결하는 구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성전을 재건한 후에 있었던 봉헌식 규모(6:15-17)를 간단히 처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과정 중에서 일부만이 완공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유월절 단락(6:19-22)은 성전 봉헌식보다 더 크게 언급이 되고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가 성전 봉헌식을 간단히 기록한 것은 아직 하나님의 집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되고, 그 안에 사람들이 정착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을 맺은 후에야 완공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따러서 성전만 완공된 후에 거대한 봉헌식을 갖는 것은 이기 상조였다. "그랜드 오프닝"이 이 모든 일이 끝난 후인 (느 12-13장)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성전 완공이 하나님의 집의 완공이 아니라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견해로, 에스라 6:3-5에 나오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특이한 언급을 설명할 수 있다. 고레스 칙령을 담고 있는 이 단락은 하나님의 집의 규모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 고는 60규빗으로, 광도 60규빗으로 하고...." 여기에서 흥미로운 일은 하나님의 집의 높이와 넓이만 언급하고 그 길이는 언급하고 있지 않는 점이다. 게다가 그 크기가 솔로몬 성전(넓이 20규빗, 높이 30규빗, 길이 60규빗)보다 6배나 더 큰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노인들이 성전 지대를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 보고, 초러한 것을 보고 대성통곡했다는 기록(스 3;12)과도 상충된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를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학자들은 이 경우 주로 본문 전승에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에스케나지는 본문이 언급한 것은 "고레스가 성전으로 세워진 것보다 훨씬 큰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허락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길이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성장과 팽창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성취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집은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이러한 포괄적인 하나님의 집이 완공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설명하게 될 나머지의 주 내용이 될 것이다.


7. 공동체 재건(스 7-10장)

 7-1. 제2 출애굽의 두 번째 물결

  "이 일 후"(7:1)란 표현과 등장 인물과 장소와 시간의 변경은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실제로 (스 7-10장)은 에스라의 인도 아래 바벨론으로부터의 두 번째 대규모 귀환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집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단락은 "무릇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고레스 칙령의 명령이 담고 있는 도전, 즉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에 대한 대답을 담고 있다. 성전을 건축했다고 해서 그 성전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가 자동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에스라의 인도 아래 귀환한 백성들, 이방인 아내들과 결별을 선언한 백성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다. 결국 (스 9:2)의 "거룩한 자손"의 건설이 두 번째 단락(스 7-10장)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일 후"란 표현은 매우 애매하여, 마치 에스라의 귀환이 성전 재건이 완공되고 난 바로 직후에 일어난 일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표현은 무려 60년이란 세월을 건너뛰는 어구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60년의 기간을 "이 일 후에"라는 한 단어를 가지고 건너 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에스라-느헤미야서가 페르시아 시대의 유다 공동체에 대한 중립적 역사 기록이 아니라, "회복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주해"로서의 성격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 2의 출애굽

귀환

재건

첫 번째 물결

스룹바벨 인도 하의 귀환(스 1-2장)

성전 재건(스 3-6장)

 

60년간의 공백

건너뜀: "이 일 후에...."

두 번째 물결

에스라 인도 하의 귀환(스 7-8장)

공동체 재건(스 9-10장)

  하나님의 집의 첫 번째 부분인 성전 재건이 완공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의 집의 두 번째 부분인 "인간의 구성 성분"이 누구이며(스 7-8장), 이들이 어떻게 거룩한 자손으로서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스 9-10장).


 7-2. 하나님의 집의 인간 성분(스 7-8장)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한 이들이 두 번째 출애굽의 첫 번째 물결이었다고 한다면, 에스라의 인도 아래 귀환하여 "거룩한 자손"을 형성한 이들이 두 번째 출애굽의 두 번째 물결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에스라 인도하의 귀환을 스룹바벨 인도하의 귀환의 연속으로 보고, 병행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두 번째 물결이 하나님의 집의 인간 성분을 형성한다고 본 에스라-느헤이야서 기자는 이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자료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A 예루살렘으로의 여행(7:1-10)
     B 에스라 임명(7:11-26)
        C 기도(7:27-28(상))
           D 여행을 위해 두목들을 모음(7:28(하))
              X 재통합된 이스라엘(8:1-14)
           D' 여행을 위해 두목들을 모음(8:15-20)
        C' 기도와 금식(8:21-23)
     B' 기명 나르는 자 임명(8:24-30)
  A' 예루살렘으로의 여행(8:31-36)  

  이 단락은 에스라와 함께한 일행의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이라는 틀(AA')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여행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단지 참여자와 최소한의 여행 경로만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결국 본문의 주요 관심은 여행 경로 보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라는 신학적 주제를 펼치기 위한 뼈대 제공에 있다. 에스라 임명 단락(B')은 에스라가 거룩한 기명들을 예루살렘으로 이동시킬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임명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한편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에스라의 송영 기도(C)는 안전한 여행을 위한 에스라와 그 일행의 금식과 기도(C')에 상응한다.

  이야기의 중심부에는 개혁자인 에스라와 함께 가기로 선택한 가문의 명단이 나온다(X: 8:1-14). 귀환자의 명단은 포로됨이라는 시련기 가운데서 "남은 자"를 보존하신 하난미의 은혜의 가시적 상징이다. 80년 전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귀환한 바 있었던 12가문의 이름(스 2장)이 동일하게 다시 나타나는 것은 이 12 가문이 약속의 땅에서 이제 재연합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표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포로 후기 하나님의 집을 구성하는 자들은 바벨론에서 포로됨을 경험한 이들 가운데, 신앙의 결단을 통해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다시 예루살렘이 아니라, 바벨론이라는 포로 상황에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있을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있을 귀환도 모두 바벨론에서 일어날 것이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개인적으로 포로됨의 고통을 체험한 포로민이 회복된 공동체가 성장해 나가는 묘판이라는 것을 초지일관하게 주장하고 있다.
 

 7-3. 거룩한 자손(스 9-10장)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민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오자마자 놀라운 보고를 듣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9:1-2). 에스라는 이방인과 결혼한 자들에게 이혼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백성들이 이에 순종하였다(스 9-10장). 현대인들은 이러한 에스라의 조치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현대인들은 그들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과 부인들에 대해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처사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스 9-10장)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에스라가 봉착한 위기는 "거룩한 자손"으로서 포로 후기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관된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거룩한 자손이 이방 족속과 섞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거룩함"은 더 이상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공동체의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포로 후기 공동체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집의 건설은 가능해 진다. 따라서 에스라의 인도로 공동체가 실시한 결혼 개혁은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의 결별을 선언하려는 공동체의 정결 노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들의 의도는 이방인과 유다인 사이의 경계벽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집의 순결성을 보호하려는 데 있었다. 에스라는 결혼으로 인해 무너져 버린 이방인과 유다 사이의 경계벽을 건설함으로써 하나님의 집의 제 2단계 공사를 완성시킨 것이다.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당시 포로 후기 공동체가 계속해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종노릇하는 것은 이방인과의 결혼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본 것같다(스 9:7, 느 9:32-36). 에스라서의 끝과 느헤미야서의 끝에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를 위치시킨 것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관점에서 당시에 이 문제가 계속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하는 가장 큰 죄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스 9:1)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나안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여부스 사람"과 결혼하였다고 시대 착오적인 것 같은 언급을 한 것도 이 점에서 설펴보면 이해가 된다. 과거 포로 전 조상들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여 "열방 왕들"의 손에 넘어가 포로 생활을 했는데, 포로 후기 공동체가 동일한 죄를 범함으로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계속 남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이방 여인을 내보내라는 에스라의 명령은 너무 가혹해 보이나, 당시의 상황과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내적인 논리를 살펴보면 이 조치가 어쩔 수 없는 필연적 조치였음을 알 수 있다. 메릴(Merril)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언약 국가인 이스라엘은 배타성의 원칙을 버림으로 심판을 받았다. 이러한 점에서 왜 에스라-느헤미야서가 포로 후기의 남은 자들의 순결성에 대해 그토록 관심이 많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은 전 세계에 계시를 보내실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구속을 드러내실 것이다.

  이것은 유다 백성의 역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점이다. 제동이 걸리지 않은 동화는 공동체의 종말을 의미한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 당시의 유다 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지나친 율법주의"의 잘못을 에스라-느헤미야서 탓으로 돌린다. 마카비 시대에 헬레니즘과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인 후에 일부 강조점이 강조된 것은 사실이다. 일부 유다인들이 헬레니즘을 받아들이고, 유다 신앙을 거의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주의를 보존하고 기독교로 나아가는 길을 닦은 것은 하시딤 같은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그룹들"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 다음 주 계속 -

알림) 교재에 대한 문의나 제안 사항이 있으시면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