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2과)

역대기(3): 분열왕국 (대하 10-36장)


1 회개와 하나님의 자비

  역대하 7:14의 원리가 역사 가운데 어떻게 적용되는 지는 분열 왕국의 첫 왕인 르호보암 기사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르호보암의 통치 기사를 담고 있는 역대기 본문은 역대하 10-12장인데, 10장은 열왕기의 병행 본문과 거의 유사하나, 11-12장은 열왕기와 상당히 큰 차이를 드러낸다. 첫째, 르호보암의 통치 기사를 담고 있는 역대기 본문(총 58절)은 열왕기 본문(왕상 12:1-24, 14:21-31, 총 35절)보가 훨씬 길다. 둘째, 열왕기는 르호보암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왕상 14:22), 역대기는 전반적으로 겸비하여 회개한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대하 14:22). 겉으로 보면 역대기 기자가 역사보다는 신학에 더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왜곡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역대기 기자의 독특한 접근을 오해하는 것이다.

  우선 르호보암의 역대기 기사가 긴 것은 르호보암이 역대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열왕기에서 르호보암은 여로보암 스토리의 보충 정도로 다루어진 반면에, 역대기에서 르호보암은 그 자체로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역대기에서의 르호보암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전 왕조를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샘플로 제시되고 있다. 역대기의 주요 주제들이 르호보암 기사(대하 11-12장) 가운데 등장하는 데, 열왕기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르호보암 스토리에 나오는 역대기의 주요 주제들은 "예언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11:1-4), "건축 사업을 통한 왕국의 강화"(11:5-12), "하나님을 구하는 것의 중요성"(11:13-17), 그리고 "회개의 중요성"(12:5-12) 등이다.

  역대기 기자가 르호보암 기사에서 이렇게 역대기의 주제를 드러내는 많은 자료들을 첨가한 것은, 심지어 악한 자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역대기 기자도 열왕기 기자처럼 르호보암을 "여호와의 율법을 버린 자"로 비난하지만(대하 12:1-2,14) 르호보암 스토리의 주요 목적은 (대하 7:14)에 제시된 용서와 회복의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보여주는 데 있었다. 실제로 하나님은 르호보암의 회개에 직접적으로 반응을 보이시고, 진노를 거두시고, 유다를 모두 멸하지 않으셨다.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였고, 유다에 선한 일도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노를 돌이키사 다 멸하지 아니하셨더라(대하 12:12)."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르호보암의 회개는 지속적이라기 보다는 일시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성경 나래이터는 르호보암이 "마음을 오로지하여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함으로 악을 행하였더라"고 결론을 짓고 있다(대하 12:14). 이렇게 보면 (대하 11-12장)은 역대기의 복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유다의 궁극적 몰락을 가져오게 한 전형적인 죄(일시적 회개)를 범한 르호보암과 같은 인물에게 호의를 보이셨다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비케 하는 이들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르호보암 스토리가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종노롯을 하고 있는 포로 후 공동체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르호보암의 스토리가 주는 메시지는 "자유로 가는 유일한 길이 하나님을 찾고 그 앞에서 겸비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으라!

 2-1. 핵심 단어의 반복
  역대기 기자는 이 르호보암 스토리의 메시지를 더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자료들을 특정한 패턴으로 묶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아비야 왕과 아사 왕을 다루는 (대하 13-16장)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특정한 핵심 단어나 어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한 주제를 일관성있게 나타내고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대하 13-16장)에는 "의지하라"는 단어가 5번(13:18, 14:11, 16:7-8), 그리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단어가 9번(14:4,7, 15:2,4,12,15, 16:12) 반복되고 있다. 이는 역대기의 다른 곳에서는 집중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대기 기자가 단락 별로 특정 주제를 드러내려고 하는 의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단락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2-2. 아비야(13:1-14:1)
  아비야를 다룬 역대기 본문(13:1-14:1)은 열왕기의 병행본문(왕상 15:1-8)보다 3배나 길뿐 아니라, 열왕기의 평가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왕상 15:3)에서는 "아비얌이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라고 평가를 한 반면, 역대기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승리를 경험한 신실한 왕으로 나온다. 도대체 이런 차이는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가? 역대기 기자는 아비야 왕 자신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역대기 기자는 아비야 왕을 선지자 왕(a prophet king)으로 제시하고 있다. 역대기 기자는 아비야 왕의 말을 통해 다윗 왕조와 아론계 제사장을 여로보암 왕국과 금송아지 우상 숭배와 대조시키고 있다. 여로보암의 죄는 다윗 왕국을 거부하고 성전을 거부한 것이었다. 아비야는 심지어 다윗 왕국을 여호와의 나라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제 너희가 또 다윗의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도다(대하 13:8)."

  우리는 아비야의 선언 가운데 역대기의 두 핵심 주제인 다윗 언약과 성전 예배를 살펴볼 수 있다. 비록 아비야가 실수가 있는 인물이라 하여도, 다윗 언약과 성전 예배를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 역대기 기자의 메시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신뢰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가 이기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대하 13:18)." 결국 역대기 기자는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지면, 의밍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포로 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는 꼭 필요한 권면이었을 것이다(참조 스 8:22-23,31, 느 1:11, 2:20, 6:15-16).

 2-3. 아사(14-16장)
  아비야가 죽고 아사와 왕위에 올랐다. 아사의 통치에 관한 역대기 본문이 무려 48절인데 반해, 열왕기는 불과 15절(왕상 15:9-24)에 불과하다. 이를 보면 역대기의 아사 스토리에 많은 자료가 삽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대하 14:4-15:15, 16:7-11). 전체적인 틀은 열왕기의 병행본문을 따르고 있으나, 연대를 언급하면서 시대 구분을 한 것(14:1,9, 15:10,19, 16:1,12,13)과 자료를 동심 구조로 배열한 것이 차이가 난다. 더욱이 이 동심구조는 아사 통치의 전후반부를 강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A 하나님을 찾고 의지함으로 번영하고 승리함(14:1-15)
     B 예언의 말씀에 대한 순종(15:1-8)
        C 하나님과의 언약(15:9-19)
        C' 인간(아람 왕 벤하닷)과 언약(16:1-6)
     B' 예언의 말씀을 거부(16:7-10)
  A 하나님을 찾지 아니함으로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함(16:11-14)

  위의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아사 통치 기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A-B-C 단락(대하 14-l5장)은 아사가 여호와를 찾고 의지함으로 번영과 승리, 평안과 태평시대를 누리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각 단락은 "여호와를 찾음"이라는 모티브를 2번씩 반복하여 6번이나 사용하고 있다(14:4,7, 15:2,4,12,15). 반면에 C'-B'-A' 단락(대하 16장)은 아사가 하나님 대신 아람 왕 벤하닷을 의지하고, 그와 언약을 맺는다. 이로 인해 아사 왕은 일시적으로는 북방 이스라엘 왕 바아사에게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하나니를 투옥했으며, 마침내 발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다가"(16:12) 죽고 말았다. 결국 이 단락에서는 "찾는다"는 모티브가 부정적으로 한 번만 사용이 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대칭적인 구성이 노리고 있는 신학적 의도는 무엇인가? 이러한 구저는 하나님과 선지자의 말씀을 의지하고 찾으면 평화와 축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인간적인 것을 의지하고 선지자의 말씀에 대항하면 실패와 고난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이 아비야와 아사를 다루고 있는 (대하 13-16장)은 "여호와를 찾음"과, "여호와를 신뢰함"의 두 모티브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역대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대하 7:14)의 말씀에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아합 가문과의 동맹-재난의 근원

 3-1. 여호사밧과 아합 가문(17-20장)
  아사는 후에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발병으로 죽게 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여호사밧이 왕 위에 올랐다. 역대기 기자의 여호사밧 기사는 무려 4장이나 되어 1장에 불과한 열왕기 기사보다는 훨씬 길다. 게다가 열왕기에서는 여호사밧이 주로 북방 왕국의 아합 왕을 돕는 조연으로 등장하지만(왕상 22:1-38, 왕하 3:4-27, 참조 왕상 22:41-50), 역대기에서는 역대기의 많은 핵심 주제들을 드러내는 주연으로 무대의 중앙에 나타난다. 사실상 역대기에서 여호사밧 스토리(총 101절)는 히스기야 왕(총 117절)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지면이 할애된 이야기이다. 그만큼 역대기에서 여호사밧의 이야기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호사밧 기사는 아래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서곡(17장): 여호사밧의 신앙과 하나님이 나라를 견고하게 하심
  A 여호사밧의 아합과의 동맹(18:1-19:3)
     B 여호사밧의 갱신과 개혁(19:4-11)
     B' 여호사밧의 신앙(20:1-30)
  A' 여호사밧의 아하시야와의 동맹(20:31-21:1)

  이 구조의 중앙에는 여호사밧의 개혁과 여호사밧의 신앙을 강조하는 단락(B/B')이 놓여있다. 단락 B(19:4-11)에서 여호사밧은 백성들 가운데 두로 다니며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가 추진했던 아합과의 정략 결혼을 통한 통일 운동은 길르앗 라못 전쟁의 패배와 아합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나서 여호사밧은 선지자 예후의 비난을 받고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 후에 그는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순행하면서(19:4), 율법을 조직적으로 가르치고, 재판관을 유다 온 성에 세워 율법을 삶의 원리로 만드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거하더니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순행하며 저희를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대하 19:4). 여기에서 "에브라임 산지"에 대한 언급은 정치적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서만 북방 이스라엘 왕국과의 진정한 연합과 통일이 가능함을 여호사밧이 인식하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단락 B'(20:1-30)에는 기도와 신앙의 사람으로서 여호사밧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이 쳐들어오게 되자,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한 후에 백성들을 소집하고 함께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다(20:3-13). 이에 여호와의 신이 회중 가운데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여 예언하기 시작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하리라 하셨느니라(대하 20:15,17). 이에 힘을 얻은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20:18-19). 이와 같은 예언에 힘을 입은 여호사밧은 전쟁터에서 놀라운 신앙을 드러내 보인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이스라엘을 향해 던진 여호사밧의 말은 역대기 기자의 관점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다. 역대기 기자의 관점에서는 왕들의 통치보다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선지자에 대한 반응이 그들의 운명에 더욱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따라서 왕의 존재 유무보다는, 성전과 함께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이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관계에 더욱 중요한 것이다. 어쨌든 이와 같은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에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은 적들이 서로 자기들끼리 살륙하게 하여 유다에게 승리를 안겨주셨다. 이로 인해 여호사밧은 주변 나라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태평을 누리게 된다(20:29-30). 따라서 (대하 20장)의 스토리는 역대기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도 이스라엘 신앙과 하나님의 구원의 관계를 보여주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여호사밧의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여호사밧은 한 가지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북왕국의 아합과 아하시야와 동맹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점이었다. 사실상 역사가들은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번영과 안전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열왕기 기자는 여호사밧에 대해서 매우 간략하고 모호하게만 이를 언급하고 있다(왕상 22:41-51). 그리고 역대기 기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호사밧의 동맹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동맹은 정치적으로는 일시적 번영과 안정을 가져다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분노를 촉발시켜 재앙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여호사밧과 아합은 동맹하여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그만 아합이 전사함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A-대하 18:1-19:3). 이 때에도 여호와께서 "저(여호사밧)를 도우셨기에"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한 번의 실수로 끝내지 않고, 다시 아합 가문과 동맹을 맺기 원했다(A'-20:31-21:1).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고 배를 지어 함께 교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배는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피하시리라"는 엘리에셀 선지자의 예고대로 파상하여 다시스로 가지 못했다(20:35-37). 결국 역대기 기자는 이런 관점에서 여호사밧이 북방 이스라엘 왕과 동맹을 맺은 것을 처음과 끝에 배치함으로(A-A'), 여호사밧이 같은 잘못을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점에 대해서 선지자가 두 번씩이나 드러내 놓고 여호사밧을 비판하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19:1-3, 20:37).

  여호사밧은 이러한 약점에도 지니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보호해 주셨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일이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을 역대기 기자는 여호사밧 스토리의 서론에서부터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대하 17:5).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은혜로 유다를 견고하게 하고, 많은 군대와 부와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사밧 스토리는 아합 가문과의 동맹이 유다 왕국에 해가 될 뿐이며,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하는 길만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3-2. 여호람과 아하시야와 아합 가문(21-22장)

  여호사밧이 죽은 후 유다 왕국은 갑자기 어두운 암흑기로 접어든다. 여호람과 아하시야 통치 시기(21-22장)에, 아달랴로 이어지면서 유다 왕국은 내부 붕괴의 위험에 직면한다.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후에 다윗 가문의 아우들을 살해하면서 시작된 다윗 집안의 살해가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21:4, 22:1,8,10). 더욱이 아하시야 왕이 죽은 후에는 다윗 가문이 아닌 아달랴가 섭정을 하기 위해서 다윗의 집의 씨를 진멸하기에 이르렀다(22:10). 그러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재난이 온 것은 아합의 집의 악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대하 21:6 참조, 22:3,4,7,8)...." 사실상 이 기간 동안에 유다는 아합 가문이 통치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당시에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의 통일은 당시 왕들의 이름에 의해 웅변적으로 상징되고 있다.

북방 이스라엘 왕(B.C.)

남방 유다 왕(B.C.)

아하시야(853-852년)

여호람(요람)(853-841년)

여호람(요람)(852-841년)

아하시야(841년)

 

아달랴(841-835년)

  흥미롭게도 당시의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다스린 왕은 모두 이름이 같은 아하시야와 여호람이었다. 그만큼 당시 유다 왕국은 북방 이스라엘 왕국과 밀접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사실상 아합 가문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미 여호사밧의 통치를 언급할 때에 아합 가문과의 동맹이 위험하다는 점은 지적한 바가 있었다(19:1-3, 20:35-37). 그러나 여호사밧의 아들과 손자인 여호람과 아하시야는 여호사밧과 같이 여호와를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호사밧의 단점만을 본받아 아합 가문과 결혼을 하거나(21:6), 아합의 가문과 함께 전쟁에 나가기도 했다(22:5-6). 그들은 "아합의 길"로 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아합 가문과의 동맹과, 아합의 길로 행함을 인해 유다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고 말았다. 우선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은 적군에게 패배하고 왕궁의 재물을 빼앗기고 말았다. 더욱이 말째 아들만 빼고 모두 적에게 포로가 되고 말았으며(21:16-17), 자신도 창자에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말째 아들로서 왕위에 오른 아하시야 역시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부상당한 이스라엘 왕 요람을 방문하러 가다가 예후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함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모친인 아달랴가 유다  왕의 씨를 진멸하려고 했기 때문에, 말째 아들은 요아스만 겨우 남고 모두 죽고 말았다(22:10-11).

  그렇다면 이 흑암의 기간 동안에 유다 왕국이 존속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전에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신실하심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허락하셨음이더라(대하 21:7). 하나님은 다윗의 씨가 거의 진멸될 위기 속에서 끝내 다윗의 집을 완전히 멸하도록 두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기 때문이었다. 다윗 계열 왕의 절대적 순종은 사라지고, 이로 인해 그들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는 암흑기가 찾아와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역대기 기자는 바로 이러한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북방 이스라엘은 물론 남방 유다까지 실제로 다스렸던 아합 가문은 어찌되었는가? 그들은 한 동안은 온 천하를 다스릴 것같이 기새가 등등했지만, 결국 예후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역대기 기자는 (대하 22:7)에서 예후를 가리켜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신 자"라고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포로 후기 공동체를 향한 역대기 기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비록 다윗 가문이 사라져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희미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가지고 지금도 통제하시며, 언젠가 악을 물리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운 질곡의 기간을 지날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역대기 기자의 메시지는 페르시아의 종노릇이라는 고통의 기간을 당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언약의 신실하심을 믿고 인내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 왕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역대하 17-23장은 북방 아합 가문과의 동맹이 결국은 다윗 가문의 멸절의 위기만을 가져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역대기 기자는 포로 후기 공동체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다른 이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 신뢰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4. 트리오 패턴

  실제로 아합 가문과 아달랴의 암흑의 통치의 긴 그리마가 유다 왕국에 드리운 동안에도, 다윗과 그 자손에게 "등불"을 주시겠다는 약속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암흑의 시기는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반란으로 아달랴가 제거되고, 다윗 가문의 유일한 남은 자손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대하 23장). 이것은 단지 적법한 왕이 왕위에 올랐음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 원리들이 다시 유다 왕국의 국자적 삶의 원리로 회복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호야다와 백성들이 여호와의 약속을 믿고 보인 헌신과 용기로 인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제 유다는 가나안적 가치들이 팽배한 가운데서 약속의 땅에 거할 수 있는 존재 근거가 생긴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오래 가지 못햇으며, 요아스의 통치 기간 안에 이미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대하 24:17-27). 아합 가문이 보인 악행인 우상숭배와 배도가 점차 유다 안에서도 횡행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유다 왕국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될것이었다. 역대하 24-36장은 유다 왕국의 이런 몰락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역대기 기자는 단락별로 특정 주제를 드러내는 전력을 사용하는 그의 전형적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대하 24장 이훼는 세 왕씩 묶우서 특정한 주제를 드러내는 기법을 사용한다. 특정한 행동 방식에 따라 세 왕씩 묶음으로써, 각자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과, 회개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내고 있다(대하 24-35장).
 

 4-1. 트리오 1: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대하 24-26장) - 선에서 악으로 -

  역대기 기자는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의 세 왕을 "신앙을 보이다가 타락한 왕"의 유형으로 묶어서 제시하고 있다(대하 24-26장). 이 세 왕은 모두 처음에는 하나님의 인애를 개인적으로 체험하여 종교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후반기에 가서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끝내 배도한 왕들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모두 통치 전반기와 후반기가 상반되는 왕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패턴이 유다 왕의 역사 가운데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유형은 이미 르호보암(대하 11장-12장)이나 아사 왕(대하 14-16장)의 모습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각 왕의 통치를 평가하는 최종 판단에서, "악을 상쇄시키는 긍정적 평가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패턴이 새로운 강도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 요아스
  요아스의 스토리(대하 24장)는 역대기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요아스는 아달랴의 학살에서 살아났을 뿐 아니라,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백성의 도움을 입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체험하고 성전을 청결케 하고 보수하는 열심을 보였다(24:1-16). 그러나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의도적으로 여호와께 등을 돌려 급격히 배도하는 모습을 보인다(24:17-19). 여호와께서는 죄인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선지자들을 보내 그에게 경고하셨다. 그러나 요아스는 선지자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이는 악행을 서슴치 않았다.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는 아람 군대를 사용하여 요아스를 징계하셨으며, 요아스는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고 누웠다가 부하들의 모반으로 살해되고 말았다(24:23-25).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시간은 처음에 경건함과 신앙을 보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배교와 우상 숭배는 이전에 쌓은 어떤 공적으로도 용서될 수 없으며, 결국은 시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원리는 이미 에스겔 선지자가 밝힌 바 있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겔 18:24)."

 (2) 아마샤
  신앙을 보이다가 타락한 모습은 요아스뿐 아니라,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마샤아 웃시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마샤는 온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모습으로 통치를 시작했다(대하 25:2).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을 믿고 힘써 싸워서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했다(25:5-13).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에돔 자손의 우상을 가져다가 그 앞에 경배함으로 우상숭배를 시작했다. 이에 여호와께서 다시 선지자를 보내 그에게 경고하였으나, 아마샤는 선지자에게 입을 닥치라고 경고하였다. 이로 인해 아마샤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전쟁에 패하여 라기스로 피신했다가 모반에 휘말려 살해되고 말았다(대하 25:14-28).  

 (3) 웃시야
  뒤를 이어 왕이 된 웃시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웃시야는 통치 초반에는 하나님을 구하였고, 이로 인해 하나님이 웃시야의 왕국을 형통케 하셨다(대하 26:4-5). 그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며(26:6-8), 건축과 농사 분야에서 번영을 누렸으며(26:9-10), 강성한 군대를 거느릴 수 있었다(26:11-15). 그러나 그는 강성해지면서 마음이 교만해져서 악을 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만 할 수 있는 분향을 하려고 했다. 이를 보고 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 제사장 80명과 함께 이를 만류했지만, 웃시야는 오히려 제사장에게 노를 발했다.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 웃시야를 치심으로 그는 문둥병에 걸려 남은 생애를 별궁에서 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이 되었다.

  이와 같이 요아스, 아마샤, 그리고 웃시야는 모두 처음에는 신앙으로 행하다가, 후반에 배도했으며, 마침내 살해되거나 문둥병에 걸리는 비극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다윗 가문의 왕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고 말았는가? 이러한 상황은 유다 왕국이 점차 몰락의 확실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역대기 기자는 세 왕을 묶어서 배도의 어리석음을 엄중히 경고하는 방식으로 유다 역사의 한 단면을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역대기 기자는 "한 주제에 대해 일련의 설교를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중도에 신앙을 포기하면 안된다는 설교를 삼중으로 반복해서 한 셈이 되는 것이다.


 
4-2. 트리오 2: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대하 27-32장)

   개인적으로 비극의 삶을 살다 간 세 명의 왕을 언급한 역대기 기자는 이제 또 다른 세 명의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대하 27-32장)를 두 번째 트리오로 제시하고 있다. 이 세 명의 왕은 위에서 제시된 세 왕처럼 삶의 전후반부가 상반되는 모습을 보인 왕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평생 동안 한 가지 삶의 방식을 보이지만, 부친의 삶과는 다른 길을 간 왕들이다. 우선 요담(대하 27장)은 순종과 축복의 모델로 제시된다. 역대기 기자는 요담을 묘사하면서 한 왕의 통치를 선한 시기와 악한 시기로 나누는 통상적인 구분과는 달리 요담을 처음부터끝까지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일방적 관점의 묘사는 아하스와 히스기야까지 지속된다. 아하스(대하 28장)는 부친의 길을 버린 배도의 왕, 즉 처음부터 끝까지 사악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들 히스기야(대하 29-32장)는 그의 부친과는 반대로 잘못된 것을 개혁하는 개혁자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이 세 왕의 통치 기사는 역대기 기자에 의해 특별하게 취급되고 있으며, 어쩌면 일부러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 요담
  역대기는 요담의 등극(대하 27장)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요담은 부친인 웃시야가 여호와의 전에 함부로 들어가다가 문둥병에 걸린 것을 보고 큰 교훈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요담은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함으로, 그가 왕위에 있는 동안 유다는 강해졌다. 또한 요담은 살해당하거나 문둥병에 걸려 죽은 선왕과는 달리 평안히 죽어 다윗성에 장사되었다.

 (2) 아하스
  이렇게 해서 원 상태로 돌아온 듯한 유다 왕국의 상황은 아하스 왕의 등장으로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아하스는 그의 부친과는 달리 일생 동안 사악한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아하스는 처음부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28:1), 타락한 북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했다. 이러한 비난은 유다 왕에게 가해질 수 있는 가장 통렬한 비판이다. 실제로 이러한 비난은 여호람의 경우밖에 없다(21:6). 유다는 이러한 아하스의 배도로 인해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에 의해 침공을 당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징계를 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유다의 포로됨은 장차 있을 바벨론 포로됨의 전조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형제 이스라엘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을 잊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이 유다 포로 20만명을 사로잡아 사마리아로 끌고 왔을 때에, 하나님은 오뎃 선지자를 통해서 형제인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아오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다(28:9-11). 이에 사마리아인들이 이스라엘 군사들을 설득하여 유다 포로민들을 풀어주게 하였다. 사마리아인은 군인에게 강포를 당한 유대 포로들에게 옷을 입히고, 신을 신기고, 먹이고 입히고, 기름을 바르고, 연약한 자는 나귀에 태워서 여리고를 통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28:12-15). 아하스의 악정으로 인해 포로가 되는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에서도 여기에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비록 포로로 잡혀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비는 그들에게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스펜서는 이 스토리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배경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쨌든 아하스는 아람 왕과 이스라엘에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아하스는 여호와 대신 앗수르 왕을 의지하려는 죄를 범했다(28:16-21). 그러나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그를 돕지 않고 오히려 그를 괴롭혔다. 그러자 아하스는 그에게 뇌물을 주어 달래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하스는 아람 신들이 아람을 이기게 했다고 생각하고 여호와 대신 아람의 신들을 섬겼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의 문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 구석에 제단을 쌓고 이방 신을 섬기는 무서운 죄를 반복했다.

  분열 왕국 시대의 마지막 유다 왕(주전 735-715년)인 아하스는 북방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난 후에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연합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이 회개하고 포로민들을 자유케 하고, 사마리아 거주민들이 호의를 보이는 등, 아하스에게는 남방과 북방을 연합시켜 한 이스라엘을 만들 수 있었다. 어쩌면 역대기 기자는 아하스에게 이러한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아하스를 가리켜 이스라엘 왕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른다(28:19). 그러나 아하스는 민족을 하나로 만들기는 커녕, 오히려 아람의 신들을 섬김으로 자신과 온 이스라엘을 멸망당하게 만들었다(28:23). 역대기 기자는 여기에서도 유다라는 말 대신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아하스는 이와 같이 민족을 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끝까지 악한 일만 일삼다가 죽고 말았다. 그는 그의 악행으로 인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왕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

 (3) 히스기야
  유다는 신실한 아버지 요담에게서 태어나 끝까지 사악한 모습을 버리지 못한 아하스로 인해  선에서 악으로 큰 진자 운동의 궤적으로 그리고 말았다. 히스기야는 바로 이렇게 사악한 부친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란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가 과연 올바른 왕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그러나 놀랍게도 히스기야는 자기 부친 아하스와는 전혀 다른 신실한 삶을 살았다. 역대기 기자는 히스기야를 매우 중요하게 취급해서 무려 4장이나 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대하 29-32장). 히스기야는 역대기에서 다윗과 솔로몬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받은 왕이었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역대기 기자에게 있어서 히스기야는 단지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제 2의 다윗"이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역대기는 열왕기와는 달리 히스기야를 주로 예배 개혁자로 묘사하고 있다(대하 29-31장). 그의 군사적 성공과 국제적 명성은(대하 32장), 유다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데 대한 결과로 나타난 부산물이었다. 역대기 기자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상 거처인 성전은 청결해야만 했다. 이에 히스기야는 성전을 청결ㅋ케 하고, 다시 재봉헌하게 되었다.

  그 후에 히스기야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편지를 보내서 여호와를 위해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이 명령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유월절을 지켰다(대하 30장).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시작을 축하하는 절기로서, 이제 히스기야의 통치 아래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적합한 절기였다. 한편 유월절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한 절기(출 12:13)였기에, 이제 유다가 지난 선조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도(대하 30:8) 적절한 절기였다. 이제 히스기야로 인해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가 되어 유월절을 지키며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대해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 왕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다(대하 30:26)."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축복 소리와 기도 소리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인 하늘에 상달되었다(30:27). 출애굽의 하나님, 다윗과 솔로몬의 하나님은 이스기야의 하나님이셨다. 유월절은 바로 이하나님이 신령과 진리로 에배하는 자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인했던 절기였다.

  히스기야는 성전을 청결케 하고 유월절을 성공적으로 지킨 후에, 비로소 정규 예배를 재확립할 수 있었다(대하 31장). 이에 히스기야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재조직하고(31:2), 성전에서 봉사하는 이들과, 제사 제도를 위한 재정보조 시스템을 다시 확립했다(31:4-19). 히스기야가 이렇게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을 행함으로 형통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왔다. 산헤립은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보내어 히스기야 왕과 유대인들에게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대하 32:14)"고 도전하였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질문은 여호와께서 앗수르의 막강한 군대 앞에서 과연 그의 백성을 건지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위기에서 전환점은 히스기야가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었다. 이에 여호와께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군대 안에 있는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셨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산헤립은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살해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며,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은 여호와라는 사실을 온 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4) 3세대 구조
  신실한 아버지 요담과 사악한 아들 아하스, 그리고 충성스런 손지 히스기야로 이어지는 3세대 구조는 환경에 관계 없이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3대가 이어져 내려 오면서 각 세대가 부친의 의로운 길이나 악한 길을 떠나는 패턴은 의로운 조부, 악한 아버지, 의로운 아들의 순서로 열결되면서 자기 삶에 대해 각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겔 18:1-20)의 말씀을 지지하고 있다. 다음 내용을 참고하라.

 1) 의로운 조부: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법과 의를 따라 행하며(5)....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9)."

 2) 악한 아들: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치 아니하고 이 악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10)....변을 위하여 꾸이거나 이식을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정녕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13)."

 3) 의로운 손자: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비의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14)....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찐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17)...."

  에스겔 선지자는 여기에서 의로운 조부는 자기 의를 인해 살 것이며, 악한 아버지는 자기의 악을 인해 죽을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에스겔 선지자는 의로운 아들은 아버지가 악하다고 해도 그 아비의 악을 인해 죽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의를 인해 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포로기 뿐 아니라 포로 귀환 후에도 유대인들 중에는 자신들이 받는 고난이 조상들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불평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인고?(겔 18:2)" 에스겔 선지자는 아버지가 먹은 신포도로 인해 아들의 이가 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3).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3-4)." 일부 역대기 원독자들에게 이 점은 매우 중요했다. 새 시대는 선대의 죄가 얼마나 많이 있었든지간에 얼마든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역대기 기자는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의 3대의 역사를 통해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4-3. 트리오 3: 므낫세, 아몬, 요시야(대하 33-35장)

 (1) 므낫세(대하 33:1-20)
  유다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통치 때에 기쁨과 희락을 회복하고,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침공으로부터 큰 구원을 체험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하 32:33). 그러면 그의 뒤를 이어 왕 위에 오른 므낫세는 어찌되었는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패턴을 따르면 악한 왕위에 오른 왕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무낫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기 시작했다. 므낫세의 악행은 그전 어떤 왕보다 심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로 시작해서(33:2),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다(33:9)로 끝이 난다. 결국 여호와께서는 므낫세를 앗수르 왕의 군대에 사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하였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반복되어 온 패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이 시점에서 역대기 기자는 우리의 기대를 벗어난 므낫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므낫세는 여호와께 간구하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대하 33:12) 기도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이를 들으심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므낫세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 알고, 이방 신상을 제하고, 여호와의 전을 중수하고 백성들을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였다(33:12-16). 역대기 기자의 므낫세 묘사에 다르면, 므낫세는 지금까지 살펴본 트리오의 어떤 패턴에도 맞지 않는다. 그는 신앙을 보이다가 타락한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의 트리오 패턴과도 다르다. 므낫세는 그과는 달리 타락하였다가 다시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패턴처럼 신실한 부친인 히스기야 다음에 사악한 아들로서 시작하여 이 패턴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아들이 회개함으로 이 패턴에서도 벗어났다.

  우리는 여기에서 역대기 기자가 므낫세를 기룻한 관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왕하 21장)에서는 므낫세를 유다 왕국의 가장 사악한 왕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역대기에서는 므낫세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 와서 (대하 33:11-16) 개혁을 한 왕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므닛세의 회개는 역대기의 중심적 주제 가운데 하나, 즉 하나님께서 회개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주제를 강렬하게 입증하고 있다. 열왕기에서는 므낫세가 지은 죄의 공적인 결과를 장기적 안목에서 보았다면, 역대기는 므낫세의 개인적 회개와 자기 당대의 개혁 노력을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므낫세에 대한 열왕기의 묘사와 역대기의 묘사를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이 결국 죄와 하나님의 은혜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신학적으로 이러한 상충된 묘사는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행한 최선의 행위들도 죄의 오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으며, 인간의 가장 사악한 행위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닌 것이다. 열왕기에서는 므낫세를 유다의 포로됨의 재앙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반면, 역대기에서는 므낫세의 개인 경험이 앞으로 겪을 유다의 체험과 선지자적 소망을 드러내는 "알레고리", 또는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므낫세는 죄를 지어 형벌을 받앗으며, 포로가 되었다가 회개한 후에 다시 회복되었다. 그렇다면 므낫세의 인생은 비록 유다가 페르시아의 종이 된 상태에 있다고 해도, 회개하면 언젠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2) 아몬(대하 33:21-25)
  므낫세의 뒤를 이어 아들 아몬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2년이란 짧은 기간(주전 642-640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그에 대한 기사도 불과 5절밖에 되지 않지만, 역대기에서 아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역대기 기자는 "그 부친 므낫세의 스스로 겸비함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33:23)..."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평가는 열왕기의 병행본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표현이다. 아몬의 문제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문제는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지 아니한 것"이었다. 이것은 유다 왕국이 포로로 잡혀 가게 된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역대기 기자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심각한 것이었다(대하 36:12). 역대기 기자도 "범죄치 않는 사람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대하 6:36).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이를 거부한 사람은 정죄하고 있다. 아몬 왕은 여호와 앞에서 회개하지 않고 더욱 더 번죄하였다. 아몬은 포로로 잡혀가는 형벌이 내릴 줄 모르고 여호와 앞에서 겸비하지 않다가 유다 왕국이 포로가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3) 요시야(대하 34:1-35:1)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요시야가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35:22), 이때는 유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요시야는 역대기 기자가 다윗, 솔로몬,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와 함께 칭찬을 아끼지 않은 왕이었다. 요시야 왕은 므낫세와 마찬가지로 겸비한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34:27). 그뿐 아니라 요시야는 역대기에서 중요하게 취급하는 여호와를 구하고 찾은 태도를 가진 왕으로 그려지고 있다(34:3,21,26). 역대기 기자는 요시야 왕은 겸비함의 주제와 여호와를 찾는 주제를 결합하여 묘사함으로, 그를 하나님 나라를 먼저 가한 왕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아몬 왕과는 다른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어 31년 동안(주전 640-609년) 통치했다. 그는 15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을 구하기 시작했으며, 19세가 되어서는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그가 25세가 되었을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요시야는 서기관 사반을 통해서 힐기야가 전해 준 율법책을 듣고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그 율법 책을 통해서 열조들이 율법을 행하지 않음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크게 촉발케 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요시야는 옷을 찢고, 신하들에게 그 일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여호와께 물으라고 지시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여 선지자 훌다에게 갔으며, 훌다는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전해 주었다. 역대기에 기록된 여 선지자 훌다의 메시지는 크게 둘로 나뉘어진다. 첫째 부분은 심판의 선언으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시킨 열조들의 죄악을 인해 유다가 포로될 것이 이미 결정이 되었다는 선언이었다(34:24-25). 백성들은 여호와를 버렸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그들을 징계하실 것이다. 둘째 부분은 재앙 가운데에서도 요시야에게 평안을 약속하는 내용이었다(34:26-28). 하나님은 요시야가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에 겸비하였기 때문에" 재앙을 보지 않고 "평안히" 그 묘실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이제 유다의 몰락은 기정 사실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대로 낙심하고 주저 앉지 않았다. 그는 백성들을 불러 모아 언약 갱신을 하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게 했으며(34:29-33), 율법의 규정대로 유월절을 지키게 했다(35:1-19). 그러나 유다의 파멸이 변경될 수 없는 기정 사실로 결정된 상황에서 언약 갱신과 유월절 준수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만을 섬기는 일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역대기 기자에게 있어서 요시야가 행한 가장 큰 위대한 일은 유얼절을 거국적으로 지키게 한 일이었다.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대하 35:18)." 우리는 이 말에서 요시야 왕이 여호와께 가졌던 경외감의 깊이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요시야의 스토리는 갑자기 어조가 바뀌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로 넘어간다. 주전 609년 바로 느고는 앗수르의 마지막 왕 앗수르-우발랏(Ashur-uballit)을 도와 바벨론의 진격을 막으려고 했다. 이때에 바로 느고는 갈그미스로 진격하는 길에 팔레스타인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때에 요시야 왕은 므깃도 골짜기에서 바로 느고를 막기 위해 출정하였다. 그러나 이때에 바로 느고는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므로"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요시야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않고 변장하고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35:22). 요시야의 죽음으로 다가오는 재앙을 막을 마지막 장애물이 제거되었으며, 이제 유다는 몰락을 향해 내리막길로 치닫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대하 33-35장)은 회개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인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므낫세, 아몬, 요시야 왕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므낫세와 요시야는 겸비하여 회개를 한(33:12,19, 34:27) 왕인데 반해, 아몬은 겸비하지 않은(33:23)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도 앞의 트리오와 마찬가지로 겸비한 왕-겸비하지 않은 왕-겸비한 왕으로 반전되면서 전개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세 명의 왕을 묶어서 특정한 주제를 드러내는 이러한 패턴은 역대기의 목적이 사무엘-열왕기의 대안 역사가 아니라, 특별한 영적이고 신학적인 원리들을 말하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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