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2과)

 사사기(7): 부록(2) 도덕적 타락(19-21장)


     
  3. 부록-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종교, 사회적 타락상(17-21장)

  사사들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이제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그 내용과 주제에 있어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사사들의 이야기에서는 반역-심판-부르짖음-구원이 중심 구조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나오는 미가의 이야기(17-18장)와 레위인의 첩 이야기(19-21장)는 "그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공식이 등장한다(17:6, 1:1, 19:1, 21:25). 다음에 나오는 두 가지 이야기는 서로 공통점이 많다.

 1) 두 이야기는 모두 이스라엘의 암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가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상을 보여주며, 레위인 첩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윤리적인 타락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미가 이야기는 단 지파가 자기에게 분배된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고 북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고, 레위인 첩 사건은 베냐민 지파가 거의 몰살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2) 두 이야기가 모두 레위인과 관련이 있다. 미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레위인은 "유다 베들레헴"(17:7-8)과 연관이 있으며, 첩 이야기에 등장하는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19:1)와 연관이 있다. 전자는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자로서 에브라임 산지로 여행을 했고, 후자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자로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했다.

 3) 두 이야기 모두 레위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미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레위인은 미가의 집에 있다가 단 지파를 따름으로 미가와 단 지파의 분쟁을 초래했으며, 첩 이야기에 나오는 레위인은 온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가 전쟁을 치르게 하는 중간 역할을 했다.

 4) 두 이야기 모두 실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미가 이야기는 실로에 있는 성전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으며(18:31), 첩 이야기는 실로의 여인을 납치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21:19-23).


서론

사사들의 이야기(반역과 구원)

타락

실패

배도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아비
멜렉

돌라야일

입다

삼손

종교적
타락

도덕적
타락

1

2    3:6

3:7-11

3:12-31


  5:16

6  
     8

9

10:5

10:6
    12

13     16

17     18

19     21

실패원인

1

2

3

4

5

6

7

이스라엘 부패상

 


2. 도덕적 타락(19-21장)

2-1. 기브아 추행 사건(19장)

 가. 레위인과 음행한 첩(19:1-2)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 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의 날을 보내매..."

  사사기 저자는 이 사건이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일어난 사건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그 때에'라고 표현한 것은 본문의 배경이 17, 18장과 동일한 시대라는 것을 말해준다. 본서 저자가 왕정 제도를 알고 있는 점으로 보아 본문의 사건을 기록한 시기는 사사 시대가 상당히 지난 때였음을 알 수 있다(Goslinga). 18장에 이어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도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살던 레위인이었다. 이러한 점은 당시 극도로 타락한 이스라엘의 사회상을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다. '에브라임 산지 구석'은 에브라임 산지의 북쪽 끝 실로 근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Keil). 레위인이 이곳에 '우거'한 것으로 보아 이 레위인도 18장에 나오는 게르손의 아들인 요나단(18:30)처럼, 에브라임 산지를 떠도는 나그네였음이 틀림없다(Pulpit). 그리고 (17:7)에 나오는 레위 소년도 유다 베들레헴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그곳에는 레위인들의 거주지가 따로 있었던 것  으로 보인다.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했는데, 고대 사회에서 첩을 취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 첩 때문에 기드온의 가정이 파멸된 것처럼(8:31) 본문에서도 레위인이 첩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첨은 음행을 한 후에 자기 남편을 떠나 친정으로 가버렸다. 여기서  '행음하다'는 말('자나')는 주로 창기와 같은 직업적인 음란 행위나, 그러한 성향의 행음을 가리킨다. 히브리 원문에는 '자나'뒤에 '그에게 대항하여'라는 뜻의 전치사인 '알라이우'가 있는데, 이는 이 여인의 음행이 남편에 대한 불만에서 행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레위인이 먼저 행음을 했기 때문에 첩도 이에 반발하여 행음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Moore). 다음으로 여기서 '남편을 떠났다'는 말은 음행으로 인해 양자간에 불화가 생겨 서로 헤어진 것을 말한다(Cassel). (레 21:7)에 의하면 여호와의 집에서 봉사하는 모든 레위인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레위인이 이 같은 여인을 첩으로 맞은 것은 당시의 성직자들이 윤리적으로 얼마나 타락 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레위인의 첩은 레위인과 헤어진 후에 유다 베들레헴에 있는 친정 집에 가서 4달을 보냈다.


 나. 첩장인 집을 찾은 레위인(3-9)

  "3 그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하나와 나귀 두 필을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비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비가 그를 보고 환영하니라. 4 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를 머물리매 그가 삼 일을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5 나흘만에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어 그대의 기력을 도운 후에 그대의 길을 행하라. 6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7 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첩장인의 간청으로 다시 유숙하더니, 8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돕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9 그 사람이 첩과 하인으로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해가 저물어가니 청컨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찌기 그대의 길을 행하여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그녀가 떠난 지 4달이 지났을 때에 그 레위인은 도망간 자기 첩을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그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맡한다는 말은 원래 `그녀의 마음에 말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레위인이 진정으로 그녀와 다시 화해하기를 원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편 율법상으로 살인죄(민 35:31), 간음죄(레 20:10) 부모를 치는 죄(출 21:15) 등은 어떠한 제믈로도 속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 나오는 레위인은 자기 첩이 넉 달 동안(2절)이나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오히려 그녀를 연모하게 되어 다시 그녀를 데려오려고 했다. 이로 볼 때 당시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거의 무시되고 있어서 사회의 기강이 많이 흐트러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Matthew Henry). 레위인은 자기 첩을 데려오기 위해서 하인 하나와 나귀 두 필을 끌고 첩장인의 집으로 갔다. 그는 한 필은 자기가 타고 한 필은 자기 첩을 태우기 위해서 나귀 둘을 끌고 갔다. 따라서 그 여자가 다시금 남편을 따라 나서게 된 것도 이러한 남편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Hervey). 그 여자는 자기를 찾아온 레위인을 보고 그를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여자의 아비는 도망온 자기 딸을 찾으러 온 레위인을 보고 크게 환영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아비가 그녀를 데리고 바로 떠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레위인은 첩자인의 집에서 삼 일 동안 함께 거하면서 같이 먹고 마시며 유숙했다. 여기서 '머물리다'는 말('하자크')은 붙잡다', 제지하다'는 뜻으로 강하게 요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레위인의 장인은 금방 그를 돌려보내지 않고 강권하여 몇 일 동안 처가댁에 머물도록 요청했다. 이러한 장인의 태도는 친절의 표시였다(창 18:5). 아마도 장인은 레위인이 자기 딸을 사랑해 주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사위에게 더 잘해 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레위인은 나흘이 지낫을 때에 일찍 일어나서 길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비가 사위에게 떡을 조금 먹고 힘을 얻은 후에 길을 떠나라고 하였다. 레위인은 그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장인과 같이 앉아서 먹고 마셨다. 그 때에 그녀의 아비는 사위에게 그 날 밥을 그 곳에서 보내라고 다시 요청했다. 사위는 길을 떠나기를 원했으나 강곡한 장인의 요청으로 인해 결국 가날 밥도 장인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그대의 기력을 도운 후"라는 말은 `당신의 마음을 쾌활케 한 후에'란 말이다(창 18:5). `쾌활하게 한다'는 말(`세아드')은 `(마음을) 신선하게 한다'는 뜻의 동사인 `사아드'의 명령형으로 강한 권고의 뜻이 담겨 있다. 한편 고대 근동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부를 데려올 때 일정 기간 동안 처가 댁에서 머문 후에 데려오는 풍습이 있었다(창 24:55). 따라서 장인은 이러한 풍습을 따라 어떻게든 레위인을 그의 집에서 하루라도 더 유숙케 하려고 했다. 이처럼 장인이 그를 떠나지 못하게 하고 연일 잔치를 베푸는 이면에는 사위에게 자기 딸을 부탁하는 당부의 마음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과년한 딸이 아비의 집에 계속 머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근심거리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레위인의 첩은 행음하고서 남편과 헤어진 상태였으니(2절) 그 아비의  심정이 어떠했겠는 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장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위가 자기 딸을 버리지 아니하고 잘 살아주기만을 원했을 것이다. 장인의 과민한 노파심과 레위인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해 레위인은 계속 그 집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장인은 아직도 자신이 사위의 환심을 살 정도로 충분히 대접치 못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사위를 집에 머물게 하려했을 것이다. 반면 레위인은 장인의 호의틀 떨쳐 버릴 정도로 심지가 굳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장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레위인은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장인은 레위인에게 음식을 먹고 그 날 저녁에 떠나라고 했다. 사위는 할 수 없이 그 청을 받아들여 장인과 함께 음식을 먹은 후에 저녁에 첩과 하인을 데리고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징인은 날이 저물었다는 것을 핑계로 해서 다음 날 아침에 떠나라고 다시 요청했다. `해가 기울도록'이란 말은 원래 `한낮이 지나도록'이라는 뜻이다(Keil, Delitzsch). 팔레스타인에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대부분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다. 그러나 장인은 낮 동안 층분히 휴식한 후 오후에 길을 떠나라고 권고했다. 추측컨대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베들레헴에서 래위인이 거주하는 에브라임 산지까지는 반나절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늦게 출발해도 괜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후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던 레위인은 그의 장인과 먹고 마시는 동안 그만 너무 시간이 지체되어 밤이 되고 말았다.


 다. 기브아에 유슉하게 된 레위인(10-21)

  "10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나아가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 모두 앞으로 행하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이켜 들어가서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더라. 16 이미 저물매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이더라. 17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거리에 행객이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뇨?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보리가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 우리들과 함께 한 소년의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20 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그러나 레위인은 그 곳에서 밤을 지내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인의 청을 거절하고 길을 떠났다. 그들은 길을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가 가는 길에는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다. 이처럼 레위인이 밤중에라도 집으로 가려고 한 것은 그 다음날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종교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였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성소에서 봉사하여야만 했다(Lange). 여기서`여부스 맞은편'은 예루살렘의 서쪽을 가리킨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 반 거리이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세겜 쪽의 에브라임 산지로 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의 서쪽에 있는 도로를 반드시 지나야 한다. 여부스라는 이름은 여부스 족이 다욋 시대까지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삼하5:6).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레위인의 종은 주인에게 여부스 사람 성읍에 가서 밥을 지내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에서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브아나 라마 중에 한 곳에서 유숙하자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가나안을 정복하기는 했지만, 아직 미 정복지가 남아 있었둣이(1:19-21,27-36)  예루살렘 역시 다윗 시대까지 가나안 후기 원주민인 여부스족의 성읍으로 남아 있었다(1:21). 기브아(Gibeah)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4km 떨어진 곳에 있었던 베냐민 지파의 땅이다(수 18:28). 이곳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고향이기도 하다(삼상 10:26). 그리고 라마는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약 3.2km 가량 떨어진 곳이다(수 18:25). 이 곳은 현재의 엘람이며 과거 여사사 드보라의 고향이었고(4:5) 또한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였다(삼상 7:17).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라마로 가지 못하고 기브아에서 유숙하기 위해 다시 기브아로 돌아갔다. 그는 기브아로 들어가서 그곳의 성읍 거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라. 레위인 일행이 앉아 있던 거리는 성문 안쪽에 있는 넓은 광장으로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공회(公會)를 열거나 재판을 행하거나 장사하는 곳이었다. 레위인 일행이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기브아 사람들이 얼마나 악했는가를 보여준다. 즉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라는 것이 율법의 가르침이었지만(신10:19), 그들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 일로 인해 레위인의 일행은 이방인의 성읍인 여부스에서 머물기를 마다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성읍까지 오면서 가졌던 기대를 한꺼번에 잊어버리고 낙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Wycliffe).

  이미 날이 저물었을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 노인은 원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기브아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기브아에 살던 기민들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다. 본서 기자는 레위인 일행에게 친절을 베푼 에브라임 출신의 노인 한사람을 소개하면서, 기브아 성읍에는 타지에서 온 이 한 사람 외에는 정직한 사람이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우거하는 자란 말(`게르')은 '나그네(손님)로서 체류(거주)하다'는 뜻의 '구르에서 온 말로, 타지에서 온 사람을 가리킨다. 노인은 어둠 속에서 성읍 거리에 여행객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가서 본지라. 여행지의 출방지와 목적지짐이 어디냐고 물었다. 레위인은 그 노인에게 자기는 유다 베들레헴의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는 도중이라고 말했다. 레위인은 자기가 그 곳 사람이며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아무도 자기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노인이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레위인은 이처럼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대답을 했다. 당시 `여호와의 집` 즉`회막'은 실로에 있었다(수 18:1; 삼상 4:3,4). 그런데 실로는 레위인의 집이 있던 에브라임 산지(1절)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본문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학자간에 서로 견해가 다르다. 먼저 혹자는 본절을`여호와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Keil).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 레위인이 그의 첩과 화해하였기 때문에 화목제를 드리러 실제로 `여호와의 집'으로 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Cundall).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이 레위인이 단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고 말함으로써 그 노인에게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Cassel). 그런데 70인역(LXX)은 이 말을 `나의 집으로'로 번역하고  있어서 카일(Keil)의 주장이 옳음을 반증해 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위인이 `여호와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간다고 말함으로써 그 노인에게 좋은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의도를 가졌었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레위인 일행은 그 노인으로부터 크게 환대를 받았었기 매문이다(19, 20절). 여기서 `영접한다'는 말(`아사프')은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가벼운 선심을 쓰거나 계산에 의거하여 일정한 혜택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뜨거운 마음으로 열렬히 환영하는 것'을 가리키는 `카라'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이로 보아 레위인 일행은  기브아에서  숙박비를 제공하려 해도 유숙할 장소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15절).

  레위인은 자기에게 나귀에게 먹일 짚과 보리도 있고 자기들이 먹을 양식과 포도주도 있기 때문에 잠잘 장소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노인은 자기가 레위인이 쓸 물건을 담당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노인은 레위인에게 거리에서 자지 말고 자기 집으로 가서 유숙하라고 요청했다. 그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인도하고 나귀에게 양식을 먹여주었다. 그러므로 레위인 일행은 그 노인의 집에 들어가서 발을 씻고 먹고 마실 수 있었다. 레위인은 노인이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도륵 하기 위하여 나귀 두 마리와 자신과 자기 첩과 종이 먹을 양식과 짚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말속에는 기브아 사람들에게 단지 하룻밤 묵고 갈 숙소만을 요구했는데도 그들이 받아주지 않았다는 탄식이 내포되어 있다(Pulpit). 그 노인은 레위인의 염려를 이해하고 안심시켰다. 여기서 `안심하라'는 말(`솰롬')은 평안을 기원하는 히브리인의 인사이다. 이러한 히브리 인사에서  우리는 지난날 애굽의 종살이나 광야의 방황생활 중에서 히브리인이 얼마나 평안을 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옛부터 거리에 앉아 있는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후히 대접하는 것이 히브리인의 관습이었다(창 18:1-8; 19:1-3).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공회 앞에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신 10:19; 욥 31:32). 따라서 그 노인은 전통적 관습대로 나그네가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 상관없이 자기 양식으로 그들을 대접하려고 했다. 그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귀도 잘 먹였다. 이는 곧 그가 진정한 마음으로 나그네들을 사랑하고 대접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고대 근동에서는 여행자들이 주로 샌달을 신고 흙먼지 길을 다녔다. 그러므로 손님을 영접하는 주인은 반드시 발씻을 물을 내어놓는 것이 예의였다(창 18:4; 24:32; 43:24; 요 13:5-14).


 라. 비류들의 악행(22-26)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대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23 집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하나,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매 그들이 그에게 음행 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그 주인의 우거한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누웠더라."

  레위인과 노인의 만남(16:21절)을 다룬 본문의 이야기는 룻이 소돔 성에서 천사를 만난 이야기(창 19장)와 유사하다. 그래서 혹자는 본서 기자가 창 9장의 기사를 인용하여 본문 속에 삽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Wellhausen). 그러나 전후 문맥이 엄연히 다를 뿐 아니라 또한 시대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으므로 본문의 사건을 결코 삽입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Cassel). 그 성읍의 비류들이란 말(`베네 벨리알')은 `벨리알의 자손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벨리알'은 `무익한', `무가치한'이라는 뜻의 형용사로서 주로 사람과 결합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삼상  1:16)에서는 `악한 여자'로, (삼상 25:25)에서는 `불량한 사람'으로, (삼하 16:7)에서는`비루한 자'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유대 묵시 문학에서 벨리알을 사단이나 거짓 예언자로 언급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레위인이 머물고 있는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겨댔다. 여기서 `두들긴다'는 말(`미테두페킴')은 강조형 동사로 `스스로 흥분하여 매우 세게 문을 두드리는' 모습를 묘사한 말이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이렇게도 번역했다. "그 비류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갈 모양으로 문에 달려들어 두들기고 있었다"(G. R. Driver). 이와 같이 기브아 비류들이 온건한 태도로서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레위인을 끌어내리려 했기 때문에 집주인은 문을 열고 그들을 설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23-24). 그런데도 그들은 이를 듣지 않았는데(25절), 이런 일이 후에 기브아와 통치자들에 의해 어떠한 정죄나 처벌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기브아 성읍 백성들 전체가 암묵적으로 이 일에 동참했음이 분명하다. `상관한다'는 말(`야다')는 분명 `성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브아 비류들은 레위인을 끌어내어 동성 연애를하려고 했다. 이는 소돔 사건의 재현인 둣한 인상을 준다. 과거 소돔 인들의 음란한 행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멸망을 초래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사해가 형성되고 말았다(창 19:4-26). 한편 이 사해는 기브아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였다. 그래서 기브아 사람들은 자주 그곳을 지나다녔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아무런 경고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소돔보다 더 악하게 행하려 하였다(Matthew Henry). 그 노인은 그들에게 나아가서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그들을 설득하려 했다. `망령된 일'(`하네발라') 역시 남색(sodomy)과 같이 수치스러운 일(창 19:5,7)이나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어리석은 행위(창 34:7;신 22:21)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주로 성적 범죄를 지칭한다(삼하 13:12). 그 노인은 자기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놓고 레위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하였다. 노인은 기브아의 비류들이 워낙 완악하여 말로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레위인을 보호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자기 딸과 그 레위인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겠다고 말했다.

  이는 이스라엘 사회의 가부장적 권위를 잘 반영해 주는 실례이다. 당시에는 남성의 권위로 말미암아 여성이 학대받거나 능욕을 당한다 해도 여성은 말없이 순종하여야 했다(11:39,40). 그러나 노인이 취한 방책은 최선의 것이 아니었다. 즉 하나의 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악을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진정하나님의 공의에 충실한 사람이었다면. 상황논리에 급급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끝까지 비류 들을 대항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딸을 내어놓겠다는 노인의 제안은 비류들에 의해 거절되었다. 아마도 그들은 같은 경내(境內)에 살고 있는 노인에게는 해를 끼치려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그들은 남녀간의 성행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비정상적인 남색(男色) 행위에만 관심을 둔 듯하다. 일이 어렵게 돌아가는 것을 본 레위인은 자기의 첩을 비류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학자들이 여기서 `그 사람'이 노인을 가리킨다고 말한다(Keil, Goslinga). 그러나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여기서 `그 사람'은  분명히 `그 레위인'을 가리킨다. 그 레위인은 노인의 제안이 거절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자신과 자기의 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단은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었다. 즉 비록 사랑을 고백하며 설득하여 장인에게 데려온 아내였지만 (3-10절) 이 레위인은 자기의 안전을 위하여 아내를 비류 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들의 극한적인 이기주의 성향을 보게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반대로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사랑은 없을 것이라고 교훈 하셨다(요15:13). 기브아 비류들이 요구 한것은 레위인의 첩이아니라 레위인 이었다(22절).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그의 첩에게만 행음하고 만족하였는지 의문시된다. 아마 그 비류들은 그의가 첩의 뛰어난 미모에 만족하였을 지도 모른다(Cassel). 욕보엿다는 말(`알랄')은 `지나치게 하다' `철저히 실행하다'는 뜻이다. Living Bible은 이를 `교대로 겁탈했다'(taking turns raping her)로 번역하고 있다. 밤새도록 비류 들에게 욕을 당한 그 첩은 거의 초 죽음이 된 자신의 육신을 끌고 가까스로 자신의 남편이 있는 집 문 앞에까지 기어와서는 쓰러지고 말았다. 비록 이 여인이 남편에 대한 분노 때문에 행음하였으나(2), 여기서 볼 때 그녀가 그 레위인보다 더 진실한 사랑을 소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비록 자신을 내어버린 남편이지만 그 여인은 자기 주인에게로 돌아오기 위해 이같이 사력을 다했던 것이다(Hervey)


 마. 여인이 죽은 것을 발견함(27-30)

  "27 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자신의 아내를 죽음으로 내어 몰았던 이 비정한 레위인은 간밤에 당한 공포스런 일을 생각하며 일찌기 그 성읍을 떠나 위험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아내의 행방이나 생사여부를 확인해 보려는 최소한의 관심조차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로 볼 때 이 레위인에게는 그의 첩에 대한 육적인 사랑은 있었을지 모르나 진정한 사랑은 전혀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앞서 그의 장인이 계속해서 떠나려는 이 레위인 사위로 하여금 자기 집에 하루라도 더 묵도륵 한  것도 아마 자기 딸에 대한 이 레위인 사위의 사랑을 의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5-8절). 새벽 미명에 홀로 도주하려고 허겁지겁 하던 레위인은 그의 아내가 엎드러져 그 두 손을 문지방에 올려  놓은 것을 보게되었다. 여기서 문지방에 손을 올려놓는 행위는 당시 고대 근동의 미신적 풍습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가나안 인들은 문지방 밑에 그 집안 사람들을 보호하는 여러 종류의 귀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었다. 따라서 이런 미신을 잘 알고 있던 레위인의 첩은 거의 초죽음이 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두 손을 문지방 위에 올려놓으면서 자신이 소생하기를 바랬을 것이다(삼상 5:4). 레위인은 눈으로 보아 그의 아내가 죽은 것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아내와 동일한 미신적 사고 방식에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녀를 계속해서 깨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내가 비참한 모습으로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레위인은 기브아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에 블타 자기 아내의 시신을 나귀에 싣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도착한 레위인은 즉시 아내의 시신을 각을 뜨듯이 열 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보냈다. 이같이 시체를 절단하여 지파 들에게 보내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 행위로서.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를 온 이스라엘 앞에 공개하며 응당한 징벌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Keil and delizsch). 사울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하게 소 한 겨리를 각을 떠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성을 촉구한 적이 있다(삼상 11:7). 이와같이 이것은 당시 중앙 통제 기구가 없었던 시절에 본문과 같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다. 즉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고대 그리이스에서 볼 수 있었던 인보 동맹(隣保同盟)과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지파 간의 결속이 해이해지고 중앙 통제 기구가 결여된 상태였기 때문에 본문의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고소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따라서 그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12등분하여 각 지파에게 보내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비류들의  죄상을 강력히 고발하고 전 민족적 차원의 징계를 호소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레위인의 이같은 끔찍스러운 행동은 자가당착에 불과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을 저버리는 죄악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상대방의 허물에 대한 적개심에만 불타 있었기 때문이다(마7:3-5). 레위인이 전한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는 전 이스라엘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아마도 이런 엄청난 죄악은 소돔 성에서 일어난 사건(창 19장)과 유사 하였기에 더욱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일에 보다 신중하고 강력하게 대처하기 위해 온 이스라엘의 총회(總會)를 소집하기에 이른다. 혹자는 이 구절을 레위인이 이스라엘 각 지파에 사자들을 보낼 때 그 사자들이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같은 해석은 본문과 잘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본절은 어디까지나 레위인의 사자들에게서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말로 보아야 한다.  한편  여기서  '말하자'는 말('다베루')은 복수 명령형으로서 권고의 뜻이 있다. 그리고 이것의 원형 동사 '다바르'의 기본 의미는 '말하다'이지만 파생적인 의미로 종종 '파괴하다','인도하다'라는, '심판'의 뜻도 가진다. 따라서 여기서의 '말하자'는 베냐민 사람에 대한 거국적 차원의 대처 방안을 강구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무튼 기브아 사람들의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적 차원에서의 회개 운동을 일키지 않으면 안되었다(20장). 훗날 선지자 호세아가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를  타락의  극치로  까지  들고 있는 것을 볼 때(호9:9;10:9) 기브아 사람들의 행악의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 내 용  요 약 *

1.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한 레위인의 축첩과 첩의 음행(1-2)-친정으로 돌아감.
2. 레위인이 그녀를 찾아 그녀의 아비 집을 감.-장인은 술만 마시게 함-5일째에 떠남(8-)
3. 기브아의 손님 박대(5-)-배교의 증거(욥31:32)
4. 기브아에 임시로 살던 노인이 그를 맞아 줌.
5. "벨리알의 아들들-비류들"의 동성 연애(22)
6. 처녀 딸과 첩을 주겠다는 노인, 첩을 넘겨준 레위인
7. 밤새도록 집단 강간을 하여 그녀가 죽음-(27-28)
8. 사상 최악의 사건(30)-그 시체를 12개로 나누어 각 지파로 보내고 그 사실을 알림-


2-2. 동족 상잔(20장)

 가. 이스라엘이 모여 레위인으로부터 일의 상황을 보고 받음(20:1-6)

  "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2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 만이었으며, 3 이스라엘 자손의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내 첩으로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레위인이 보낸 첩의 시체를 본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은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호와 앞에 모이게 되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미스바에 모인 것은 지도자들의 통솔 하에 모인 것이지만, 본서 기자는 그등이 '여호와 앞에 모였다'고 언급함으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단은 가나안 최북단의 성읍이고(18:29) 브엘세바는 최남단의 성읍이다(창21:31). 따라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 전역을 가리키는 말이다(삼상 3:20; 삼하 3:10; 24:2; 대상 21:2; 대하30:5). '단'(Dan)의 본명은 '라이스'였으나 단 지파가  정복한 후에 자기 조상의 이름을 따라 '단'으로 개칭하였다((18:29). 길르앗 땅은 요단 동편의 모든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스바('망대')는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길르앗 땅의 미스바이고(10:17; 11:11,29,34), 다른 한 곳은 베냐민 지파 변방에 있는 미스바이다(수 18:26). 본문의 미스바는 후자를 말하며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7.5km떨어진 곳에 있었다. 일부 학4자는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인 것은 그 곳에 예배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Goslinga). 그러나 당시에 성막은 실로에 있었으며(수 18:1; 삼상 4:3,4), 결코 미스바에 있지 않았다. 이후부터 미스바는 종종 국가적 총회 장소로 자주 나타난다(삼상 7:5-12,16, 왕하 25:23).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모인 이유는 아마도 그 곳이 기브아에서 가까왔기 때문에 베냐민 사람들에게 위협을 주기에 적당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재판하고 응징하기 위해 모였다. 여기서 '어른들'('피노트')은 '모퉁이 돌'이란 뜻이다. 이는 비유적으로 '지도자들', 또는 군사적인 의미에서의 '장'(chief)을 가리킨다(삼상 14:38;사19:13). 여기서 어른들은 각 지파의 지도자들로 군사들을 지휘하는 지도자들이었을 것이다.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를 응징하기 위하여 모인 군사의 수가 40만이었다는 것은 출애굽시 장정의 수가 60만이었던 것과 비교해 볼 때(민 26:51) 실로 엄청난 것이다. 또한, 훗날 사울이 암몬과 싸우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였을 때 그 수가 33만이었던 것만 보더라도(삼상11:8) 여기에 모인 수는 이스라엘 장정이 거의 다 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총회가 베냐민 지파의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은 곧 베냐민 지파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레위인이 베냐민 지파에도 시신을 보냈기 때문에 그들은 이 문제를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Keil, Lange). 그러나 각 지파들이 총회를 가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베냐민 지파들이 총회를 가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베냐민 지파에게는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그때에서야 그 소식을 듣고 그에 대한 방안을 준비하게 되었을 것이다. 총회는 기브아 비류들의 사건을 신중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사건을 당한 레위인을 불러서 사건의 내용을 다시 한번 듣기로 했다. (4-7절)에 레위인의 보고에서 레위인은 기브아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노렸다고 고발하고 자기가 첩을 그들에게 내어 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레위인은 자기의 수치를 가리우고 베냐민 지파의 죄만을 강조하여 고발했다. 레위인의 이야기의 초점은  기브아 사람들이 '그의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하였다'는 사실에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청중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도록 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여기서 '욕보인다'는 말(인누)은 강조형 능동태 동사로서 '여성을 무지막지하게 능욕한다'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말 역시 청중들의 분노를 끊어 오르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레위인은 자신이 첩의 시체를 쪼개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내게 된 이유를 강조함으로써, 사람의 시체를 각뜬 자시의 잔인한 행위에 대하여서는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부 기브아 비류들의 행위를  기브아  사람들 전체의 악행인 양 과장하여, 이것이 전 이스라엘에 대한 범죄임을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국가적 대처 방안을 강구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레위인의 보고 속에는 자신의 죄를 감추고 개인적인 분노를 민족적인 분노로 미화시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나. 이스라엘이 베냐민을 치기로 결의함(20:7-11)

  "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8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가로되, 우리가 하나라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라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9 우리가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뽑아서 그들을 치되, 10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에 열, 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예비하고 그들로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의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11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레위인을 통해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회중들은 모든 이스라엘이 모인 자리에서 그 대책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장 일치로 베냐민 지파의 범죄를 처벌하기로 가결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결정은 한 지파의 범죄를 징벌하기 위한 심판자적인 행위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심판의 직무를 모두 수행할 때까지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베냐민 지파를 칠 군사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기브아를 치는 일에 보병 40만(2절)이 다 동원 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회중은 그 중에 1/10 을 제비 뽑아 기브아를 치게 하고, 나머지는 그들을 위해 군량미를 준비하거나 사상자가 생길 때 병력을 보충하도록 했다(Hervey, Cassel, Wycliffe, Mattdw, Henry). 온 이스라엘은 기브아 비류들을 응징하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당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아 사람들의 문제를 대처함에 있어 혼연일치 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이스라엘 내에서 죄악을 제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고자한 열 한 지파의 궐기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신 13:5; 17:7; 19:19). 그러나 그들은 형제 지파를 매몰차게 정죄하기에 앞서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껴야 했으며, 그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민족 현실을 놓고 먼저 회개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날도,  교회와 사회에 내재해 있는 여러 문제들을 보고 의분을 느끼고 비판하는 자는 많으나, 그러한 문제들을 곧 자기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부터 개혁시키고자'하는 진정한 개혁자는 그리 많지 않다(마7:3-5).

  온 이스라엘은 이렇게 해서 기브아 사람들의 망령된 일을 징계하기를 결정했다. 여기에서 '망령된 일'('네발라')은 '무분별하다', '어리석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마틴노드(Martin Noth)는 이 단어를 하나님의 법을 범한 것을 표현할 때 쓰는 전문적 용어로 보았다(삼상 25:25).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아 비류들이 저지른 윤간 행위(19:25)를 하나님의 법을 어긴 심각한 범죄 행위로 보고, 기브아 비류들을 징계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 각종 성범죄는 인간의 영혼과 기본 인격을 파괴하시는 죄악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는 중 차대한 범죄 행위임에 분명하다. 사사기의 기자는 이 사건을 다루면서 사사 시대에 볼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체감과 협동심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래로 이와 같은 일체감을 보여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지파 간에 반목이나 비 협동적인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5:17;12:1). 따라서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어느 집단을 막론하고 그 집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단합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단합은 대항해야 할 공동의 적이나 추구해야 할 공동의 목표가 뚜렷할수록 더욱 강하게 요청되는 법이다.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 중의 하나는 교파간의 분열을 들 수 있다.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이간시켜 서로 소원해지도록 만드는 일은 사단의 주임무이다(창 3:1-5; 갈5:20). 그러므로 "교회의  '하나됨'은 무엇보다 필료한 일이다(엡4:4-6). 물론 이러한 일치 운동이 자칫하면 맹목적 획일주의로 흐르거나 변질된 복음을 낳게 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진정한 교회의 일치를 위한 탐구와 노력은 다각적인 안목에서 부단히 전개되어야 한다.


 다. 이스라엘의 제의를 거절한 베냐민 지파(20:12-16)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15 그 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 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칠 백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의 온 가족들에게 이같이 공식적인 전갈을 보낸 것은 베냐민 지파 중에서 한 가족이라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Cundall). 이로 볼 때 이스라엘의 열 한 지파는 처음부터 베냐민 모든 지파를 완전히 멸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기브아의 비류 들을 징벌하여 이스라엘이 도덕적 순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요청은 (신 13:12-16)에 기록된 율법에 근거한 것으로, 그 율법에는 가증한 일을 행한 성읍 만을 징벌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자기 지파 내에 가증한 일을 행한 성읍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정치 않았다. 아마도 이는 그들이 미스바에 모인 40만 대군을 보고서 분개하였거나(2절), 아니면 지파적 자존심과 배타심에 깊이 젖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아 거민을 벌함으로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할 수 있게 하라고 요청했다. 여기서 '제한다'는 말('바아르')은 '불로 소멸시키다','없애다'는 뜻이다. 이는 곧 불로 태워 없애듯 이스라엘 가운데서 죄악을 철저히 근절시켜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기브아 비류들의 범죄는 6,7,10 계명을 범한 것으로서 사형을 받아 마땅했다(출  29:13,14,17; 레 20:13; 신 22:22). 만일 그 죄인들의 행위가 묵과되면 율법의 권위가 실추되어 백성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내부의 죄악을 스스로 제거하지 않을 시에는 공동체 전체에 대해 하나님의 질책이 불가피하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레 18:26-28).

  그러나 베냐민 자손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다.  완악 해진 인간의 마음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악들을 용납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부추기기까지 한다(롬 1:32). 베냐민 지파는 오히려 이스라엘 총회와 맞서 싸우려고 군사를 모았다. 베냐민 지파의 성읍은 모두 26개였으며, 각 성읍은 한 가족이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기브아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4km 떨어진 곳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다(19:12). 기브아 외의 다른 성읍에서 모인 병력은 26,000명이었고, 기브아 성읍의 병력은 700명이었다. 그러므로 베냐민 지파의 군사는 모두 26,700명이었다. 이 수효는 광야에서의 1차 계수 때 35,400명(민 1:36,37), 2차 계수 때 45,600명(26:41)이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줄어든 수이다. 여기서 따로 700명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기브아 성읍의 군대가 가장 막강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700명은 모두 왼손잡이로서 물매를 사용하는데 명수였다. 이는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이라는 지파 명을 고려해 볼 때 매우 아이러니컬(ironical)하다. (대상 12:2)에 따르면 이들은 왼손뿐 아니라 오른 손도 잘 쓰는 양손잡이들이었으며 싸움에 있어 매우 용맹했다. 사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약 15배에 가까운 이스라엘 연맹 군에 대항하여 과감히 전쟁을 일으킨 것은 타고난 그들의 용맹성에 기인한 것으로, 이미 야곱의 예언에도 나타나 있다(창 49:27). 물매는 조그만 가죽이나 천 따위로 만들어 그 속에 돌이나 자갈을 끼운 후에 휘둘려 던질 수 있도록 고안된 무기의 일종이다. 일개 목동에 불과하였던 다윗이 이 물매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쳐죽인 일은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삼상 17:49).


 라. 1-2차 전쟁: 이스라엘의 패배(20:17-25)

  "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지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4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 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칼을 빼는 자의 수효가 40만 명이라고 했으나, 이 숫자에는 길르앗 야베스의 군대가 포함되지 않았다(21:9). 이 숫자는 1차 인구조사 때의 601,730명(민 26:51)에 비교해 볼 때 거의 모든 이스라엘 배경이 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내전(內戰)의 심각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하기 전에 누가 먼저 베냐민 지파와 싸울 것인지를 하나님께 묻기 위해 벧엘로 올라갔다. 이는 비록 형식적이나마 아직도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여호와 신앙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압제 하에 시달릴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던 것(3:8,9; 4:1-3; 6:7)도  이처럼 여호와 신앙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벧엘'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다.  따라서 라틴 벌겟(Vulgate)역과 KJV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벧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갔다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집'을 표현할 때는 '벧하엘로힘'으로 기록하며 '벧엘'은 항상 지명을 나타낸다(Pulpit).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라간 곳은 실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벧엘이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Keil).  아마 이들이 벧엘로 간 것은 실로보다 벧엘이 기브아에서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벧엘에는 산당이 있었다. 사실 거리 상으로 벧엘은 실로와 기브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벧엘에서 기브아까지는 약 15km 정도이다. 아무튼 이스라엘 역사상 벧엘이 종교적 구심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도 아마 이때부터일 것이다(25-26절; 삼상 10:3; 왕상 12:28-13:5; 왕하 2:3). 물론 과거에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처음 제단을 쌓았고(창 12:8)  야곱이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를 보기도 했지만(창 28:10-22),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의를 지닌 사건이었을 뿐이다. 전쟁 전에 하나님께 묻는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관례적인 것이다(1:1). 즉 그들은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시는 방법대로 수행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것이다(수 5:13-15).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 지파를 가나안 족속과 동일한 대적으로 취급하였을 뿐 한 형제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한 형제의 범죄에 대해 진정한 회개를 기대하기보다는 마치 이방인과 싸우는 것처럼 승리만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베냐민과의 첫 번째 전쟁에서 크게 패하게 된 것(19-23절)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먼저 가서 싸우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질문에 대하여 이같이 답변하신 것은 분명 이스라엘 내에서 차지하고 있던 유다 지파의 지도자적 위치(창 49:8) 때문이었을 것이다.

  '항오를 벌였다'는 말('와야아르쿠')은 '병력을 배치한다'는 뜻인 '아라크'에서 유래됨 말로, 일반적으로 가장자리를 향해 선 전투대형을 가리킨다(Cassel). 그런데 이와 같이 적을 포위하여 섬멸하는 전투대형을 취할 때에는 반드시 병력의 수효나 전투력에 있어서 상대편보다 막강히 우세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연맹군은 베냐민 지파의 병력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나 분명한 작전도 없이 무턱대고 베냐민 군을 포위하여 공격하려 하였다. 그것은 아마 전체 지파를 통솔할 뚜렷한 지도자가 없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교만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주의하고 오만했던 이스라엘 연맹군은 기브아 용사들이 매복해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기브아 성읍을 포위하려다가, 베냐민 군대의 공격에 참패를 당하고 병력 22,000명을 잃고 말았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연맹군이 패하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1) 이스라엘의 연맹 세력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되었기는 하지만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죄악을 자체 내에 지니고 있었다(19:1-21:25). 즉 그들은 동족 상잔의 엄청난 비극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통감하고 회개했어야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에 대해 일방적으로 심판관으로서의 자세만을 취하는 교만과 우를 범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게 되었다. 2) 베냐민 군사들은 그 전쟁에 패하는 것이 곧 멸망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강한 위기 의식 속에서 결사적으로 전투에 임했을 것이다. 반면에 연맹군은 수효만 믿고 방심하였거나, 막상 싸움에 임해서는 서로 다른 지파의 눈치만 보며 꽁무니를 빼는 소극적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23절과 22절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Hervey). 그러나 고대 히브리어 사본들은 모두 본문과 같은 순서로 두 절을 배열하고 있다. 22절의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였다'는 기록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묻기 이전에(23절) 싸움부터 먼저 벌인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실제로 처음 전쟁이 끝난 후(19-21절) 다음날에도 연거푸 전쟁을 수행했다고 해석하는 주석가도  있다(Cassel). 그러나 22절은 이스라엘이 재차 전쟁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전투 형태만 다시 갖춘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은 실제적인 싸움을 하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울며 다시 베냐민과 싸워야 하는지를 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첫날의 패배를 만회해 보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굳게 다져 먹었다. 그러나 저들은 아직까지 근본적인 패배의 원인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이후 전투에서도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24, 25절). 두 번째 전투에서도 이스라엘 연합군은 패배하고 말았다. 이로 볼 때 2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서 날이 저물도록 흘린 눈물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자신들의 패배로 인하여 여호와를 원망하는 눈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한번의 패배를 통해서도 바른 자각을 얻지 못하고 동일한 실수와 범죄를 반복한 것이다(21)


 마. 3차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20:26-28)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거듭 패배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자손들은 보다 근원적으로 패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아 교만하고 완악 했던 모습을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전까지는 병력의 수효만을 믿고 하나의 요식 행위로 하나님을 찾았으나, 이번에는 '모든 해결책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겸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즉 그들은 '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죄악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시 119:71; 히 5:8). 진정으로 회개하고 마음을 비운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과 지혜와 위로로 채워 주실 것을 약속하였다(시 107:9; 약 2:5). 이스라엘 연합군은 첫 번째 전투에서 패했을 때에 여호와 앞에 나아가기에 앞서 먼저 진을 배치했다(22). 그러나 그들은 이번에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아마 그들이 힘으로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려고 했다면 힘을 쇠잔케 하는 금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회개를 위해 금식한 경우가 많이 있으며(삼상 7:6;욜 2:13; 행 9:9),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 금식한 예도 여러 번 있었다(출 34:28; 욜 1:14).  '번제'(Burnt Offerings)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를 기원하며 드리는 제사이다. 그리고 '화목제'(Peace Offerings)는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의 화목과 친교를 도모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한편 이 두 제사는 모두 예배자가 자원하여 드리는 자원제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때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었다"는 말을 근거로 하여 사사 시대에 실로의 성막이 벧엘로 옮겨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 18:1; 삼상 1:3; 2:14; 3:21; 4:3)에 의하면 하나님의 언약궤는 엘리 제사장 당시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길 때까지 실로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실로에서 벧엘로 옮긴 것이 분명하다(Keil, Delitzsch, Lange). 한편 그들이 언제 하나님의 법궤을 그곳에 옮겼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두 번의 전쟁 패배 이후에 실로에서 벧엘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본문 등장하는 비느하스(Phinehas)는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부디엘의 딸을 통하여 얻은 아들이다(출 6:25).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에 모세와 함께 광야에서 이미 활동하기 시작했다(민 25:7). 때문에 그가 제사장으로 지낼 때는 사사 시대 초기임이 분명하다. 이로 볼 때 본 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발생 연대 역시 사사 시대 초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 번째 전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증하는 약속을 주신 것은 26절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화목제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화평을 누리기 위한 목적으로 회개하고 서원 함으로 드려졌다.


 바. 매복 작전의 성공(29-37)

  "29 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30 이스라엘 자손이 제 삼 일에 베냐민 자손에게로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매, 31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편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편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32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길로 꾀어내자 하고, 33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 항오를 벌였고, 그 복병은 그 처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34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일 만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심히 맹렬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 일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36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깐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37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에 돌입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이스라엘 연합군은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시켰다. 그리고 이스라엘 주력 부대는 제 삼 일에 베냐민 자손을 치기 위해 올라가서 기브아를 향해 진을 쳤다. 연합군은 더 이상 베냐민 지파를 앝보는 것과 같은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 이는 마치 과거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공략할 때 사전 준비를 갖춘 것과  흡사하다(수 8:4). 그들은 베냐민 군을 기만하기 위하여 지난번과 다름없는 전투대형을 갖추었다(19,20). 베냐민 자손은 이스라엘 연합군을 공격하다가 유인 작전에 말려들어 기브아 성읍을 멀리 떠나고 말았다. 베냐민 지파는 의기양양해서 벧엘로 올라가는 길과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이스라엘 연합군을 추격하여 30명 가량을 죽였다. 이러한 전투의 장면은 (수 8:3-28)에 기록된 여호수아의 아이 성 전투의 양상과 매우 유사하다. 베냐민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유인되는 것인 줄도 모르고 기세 등등하게 기브아 성읍을 떠나서 이스라엘 연합군을 추격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연합군이 또 자기들에게 패한 줄로 생각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고의로 패한 척하면서 후퇴하여 베냐민 지파를 성읍에서 유인하여 큰길로 나오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모두 자기가 있던 곳에서 나와서 바알다말에 진을 쳤고, 복병들은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 '초장'('마아레')은 나무나 풀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가리킨다. 이러한 곳에는 웅덩이가 많기 때문에 복병들이 숨기에 적합했다.

  이스라엘 연합군 중에서 택한 사람 10,000명이 기브아에서 베냐민 지파와 더불어 맹렬한 전투를 벌였다. "기브아에 이르렀다"는 말은 '기브아(베냐민)의 군대에 대항하였다'는 말이다. 이 때까지도 베냐민 사람은 자기들이 연합군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호와께서 이 날 베냐민 사람들을 이스라엘 연합군에게 붙여셨다. 베냐민 군대 앞에서 거짓으로 후퇴하던 연합군은 성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신호로 하여 급히 돌아서서 복병과 함께 베냐민 군에게 협공을 가하기 시작했다. 바알 다말에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베냐민 사람들은 기브아에 매복해 있던 복병들(29, 33절)이 자기들의 후미를 공격하는 줄을 알지 못했다. 베냐민 지파의 전체 군대 수효는 26,700명이었는데(15), 그 날에 25,100명이 전사했으며, 도망한친 사람은 600명에 불과했다. 그때에서야 베냐민 사람들은 자기들이 패배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 연합군의 매복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연합군의 주력 부대는 베냐민 군사들을 성에서 유인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복병들은 기브아 성읍을 점령하였으며, 다시 성에서 나와 연합군의 주력 부대와 함께 베냐민 군대에 협공을 가했다. '깨닫다'는 말('라아')은 '보다'는 뜻으로,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거나 몸소 체험한 후 비로소 사태를 직시하게 된것을 의미한다. 매복한 곳으로부터 급하게 쏟아져 나온 복병들은 작전상 후퇴하는 아군들의 피해를 최소로 줄이기 위하여 신속하게 기브아 성읍을 공격했다.


 사. 베냐민 지파의 패배(20:38-48)

  "38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상약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미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하고, 39 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물러가고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쳐죽이기를 시작하며 이르기를 이들이 정녕 처음 싸움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40 연기 구름이 기둥같이 성읍 가운데서 일어날 때에 베냐민 사람이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41 이스라엘 사람은 돌이키는지라. 베냐민 사람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42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이켜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서 진멸하니라. 43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쌌더니 기브아 앞 동편까지 쫓으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44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일만 팔 천이니 다 용사더라. 45 그들이 몸을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 천 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이천 명을 죽였으니, 46 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 천이니 다 용사더라. 47 베냐민 육 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 달을 지내었더라. 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처음에 이스라엘의 연합군은 복병들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공격 신호로 삼기로 약속을 했다. '군호를 삼자'는 말은 '크게 하다', '많게 하다'는 뜻의 동사인 '라바'의 명령형(헤레브)으로서 연기가 올라올 때에 베냐민 자손을 치는 것을 '크게 하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자기들이 패한 척 하고 후퇴할 때에 베냐민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 30명을 죽이면서 자기들이 또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읍에서 연기가 구름기둥 같이 피어오를 때에 베냐민 사람들은 돌아서서 그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이 보니 성읍에서 나는 연기가 하늘에까지 닿았으며, 이스라엘 사람들 후퇴하다가 돌아서서 공격하려고 했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힌네')은 슬픔과 탄식어린 눈으로 보는 것을 가리키는 감탄사이다. 이 단어는 36절의 '깨달았다'는 말에 해당하는 동사 '라아'와 마찬가지로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거나 체험한 후 비로소 사태를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베냐민 자손이 자기의 패한 것을 깨달은 시기는 기브아 성읍 전체에서 피어오르는 구름 기둥 같은 연기를 보았을 때였다(41). 베냐민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 연합군의 계략에 말려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심히 놀라 몸을 돌려서 광야 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연합군은 급히 그들을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죽여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화'(라아)는 사나운 짐승(레 26:6)이나 재앙을 가져오는 천사들(시 78:49), 기근(겔 5:16), 질병(신 7:15) 등의 재난을 통해 인간에게 고통이 찾아드는 악한 상황을 가리킨다. 그리고 '미쳤다'(나가)는 말은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다다른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타격을 가하다', '압도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다. 아마 이때에서야 비로소 베냐민 자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줄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은 몸을 돌이켜 광야 길로 도망쳤다. 여기서 말하는 광야 길은 (수 16:1)에 나오는 기브아에서 여리고로 향하는 길을 가리킨다. 당시 이스라엘의 주력 부대는 기브아 서편에 있었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는 동쪽 광야 길로 도망하는 것이 살아날 가망성이 컸다. 특히 요단 계곡에는 숨을 수 있는 굴이 많았기 때문에 안전했다(Goslinga). 이스라엘 연합군은 그들을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모두 죽였다. '각 성읍에서 나온 자'는 베냐민 각 성읍에서 모인 베냐민 사람들(14, 15절)을 말한다.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포위하고 기브아 앞 동편까지 추격하였으며, 쉬는 곳에서 짓밟으니,  베냐민 사람 중에서 죽은 용사들이 18,000명이었다. 그들이 몸을 돌려 광야로 도망하니 이스라엘 연합군은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길에서 또 다시 오 천 명을 죽였으며, 급히 따라가서  기돔에서 또다시 이천 명을 죽였다. 이로 인해 이 날에 베냐민 사람 중에 죽은 자가 모두 이만 오 천명이었다. 기브아 앞 동편은 분명하지는 않으나 기브아 북동쪽 약 6km 지점에 있는 게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본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 훗날 레위 지파에게 기업으로 양도되었다(수 21:17). 베냐민 사람들은 간신히 추적자들을 따돌리고 기브아 앞 동편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휴식을 취하던 그곳이 바로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으니, 이때에 죽은 베냐민 용사는 모두 18,000명이었다. 한편 '그  쉬는 곳'이란 말('누하')은 70인역에서 지명을 나타내는고유명사 '노바'(Nova)로 번역되었다. (대상 8:2)에 베냐민의 넷째 아들 '노하'(Nohah)가 나오는데, 이 지명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Cundall). 림몬은 기브아에서 북동쪽으로 약 11km 정도 떨어진, 벧엘과 요단 계곡 사이에 위치해 있는 바위가 많은 산지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곳을 오늘날의 '람문'과 동일시한다. 이곳은 18,000명의 베냐민 용사들이 죽은 곳으로 추정되는 게바(43, 44절)에서도 약 2.4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아니한 곳이다. 한편 림몬 바위에는 6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큰 동굴이 있었는데, 이곳으로 가던 도중에 7천명이 죽고 이 곳에 피한 사람은 겨우 6백 명에 지나지 않았다(47절). 그 동굴은 해발 757m의 언덕에 위치한 것으로, 오늘날 고고학적 탐사 결과 그곳에는 식수(食水)를 공급할 샘도 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기돔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림몬 바위 가까운 곳일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35절에는 이 날 죽은 사람을 25,10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이 35절과 100명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1) 이미 앞에서 정확한 수를 밝혔기 때문에 다시 정확히 언급한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2) 36-46절의 기록은 정확한 자료 소개보다는 베냐민 자손의 멸망에 초점을 맞춘 기록이기 때문이다.

  남은 베냐민 지파 육 백 명은 돌이켜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 달을 지냈다.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다. 무사히 림몬 바위로 피한 600명은 (21:13) 이하의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그곳에서 4개월간을 지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육백 명을 남겨 두신 것은 진노 중에라도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 대한 당신의 언약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에 기인한  것이었다(창 35:12; 49:28; 출 24:4; 민 1:5-15; 수 4:3, 4; 마 19:28; 약 1:1; 계 7:4). 만일 당시에 베냐민 지파가  전멸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 지파의 후손인 사도 바울(롬 11:1)의 이름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림몬 바위 동굴에 숨은 600명을 색출해 내는 대신에 베냐민 성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가축들도 모두 죽이고, 성읍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말았다. 이스라엘인들이 이같이 베냐민 거민들을 잔인하게 죽인 것은 14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베냐민 각 성읍이 기브아 사람들을 옹호하며 동일한 범죄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는 스스로 뿌린 씨앗의 열매를 그에 곱하여 몇 배로 거둔 셈이 되었다.

                                 * 내 용   요 약 *

1. 시체를 본 각 지파 사람들은 분노하여 이스라엘 40만 온 군대가 미스바에 모임.(1-2)
2. 범법자 처벌을 거부한 베냐민 지파
3. 이스라엘의 반응-전면전이 벌어짐.
 - 첫 번째 전투-연합군이 22,000명 전사
 - 두 번째 전투-다시 18,000명 전사
 - 세 번째 전투-매복 전략으로 베냐민 지파는 600명만 남기고 모두 전멸함.(46-47)


2-3. 베냐민 지파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들(21:1-15)

 가. 길르앗 야베스 사람이 형벌을 받음(1-12)

  "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3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4 이튿날에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5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7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8 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치 아니하였으니, 9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 회중이 큰 용사 일만 이천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11 너희의 행할 일은 모든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 하였더니, 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 백 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서 자기의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 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혈기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두 가지 맹세를 하였다. 첫째는 자기 딸을 베냐민 자손에게 아내로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모든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자들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5절)이었다. 결국 전쟁이 끝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맹세를 이행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또 다른 살상과 무모한 납치극이 벌어지게 되었다(Pulpit).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기해왔다(창 28:6-9, 신 20:16, 17).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 총회에서 본절과 같은 맹세를 하였다는 것은 곧 그들이 베냐민 지파를 가나안 이방인들과 동등히 취급함으로써(신 7:3) 이스라엘 사회에서 축출하려 한 것임을 알 수 있다(Matthew Henry). 이 맹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에 모여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 대성 통곡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한 지파가 거의 사라지게 된 일로 인해 슬퍼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벧엘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들이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마친 후(20:48) 다시 하나님의 언약궤와 대제사장 비느하스가 있는 벧엘(20:26-28)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승리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열 두 지파 중에 한 지파가 거의 멸종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문제를 긴급히 해결하여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행한 맹세로 인해 해결책이 없게 되자 대성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서 탄식의 기도를 드렸다. 언약 공동체 중 한 지파가 빠진다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성립 요건을 결여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의 멸절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한 지파의 몰락이 아니라 그 공동체 전체의 사활에 관계된 심각한 문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에 대하여 이렇게 거국적으로 노심 초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 일어나서 그 곳에 단 하나를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당시 벧엘에는 이미 제단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20:26) 본문에서 그들이 또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통상적인 이스라엘의 관습에 따르면 이에 대한 설명도 가능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함부로 아무 곳에서나 제단을 쌓지는 않으며 반드시 신의 현현이 있는 곳에서만 단을 쌓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민족적인 위기를 직면했거나 축제 등을 치룰 때에도 단을 쌓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특히 전쟁 전이나 후에 단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삼상 7:9; 13:9; 14:35). 따라서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쟁을 마친 후 재기된 민족적 과제를 놓고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새롭게 단을 쌓았을 것이다(Keil & Delitzsch).

  이스라엘 자손들은 베냐민 지파를 치기 위해 총회를 소집했을 때에 참석하지 않은 지파가 누구였는지를 조사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미스바에 와서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에 참ㅇ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맹세했기 때문이었다. 본문으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를 타개할 방도를 모색하던 중에 전에 그들이 맹세하였던 사항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기브아 거민을 응징하기 위해 모인 미스바 총회(20:1, 2)에 참석하지 않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이었다(1).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확인하여 불참자들의 성읍을 쳐서 처녀들을 사로잡아 베냐민 자손에게 줄 계획(12절)을 수립하였다. 여기서 '크게 맹세하였다'는 것은 불이행의 경우에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뜻한다(Keil & Delitzsch).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맹세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 긍정적인 면 :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을 온전케 하는 일에 발뺌한 자들을 응징하는 것은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발뺌 자들은 소극적이나마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19:22-26)을 묵인한 셈이니 어떤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범행에 동조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2) 부정적인 면 :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응징하지 않고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를 타개하는 타개책으로 그들을 응징하였다는 점이다.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은 형제 베냐민을 위해 뉘우쳐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지게 되었다고 한탄했다. 그들은 베냐민 자손 중에 살아남은 자들에게 아내를 얻어 줄 궁리를 생각했다. 여기에서 '뉘우친다'는 말('나함')은 '한숨 쉬다', 호의적으로 '동정심을 갖다', 소극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다'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는 적극적인 의미의 회개와는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가 멸절하게 된 그 현상 자체에 대해서만 안타까워하였을 뿐, 그에 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연대 의식(solidarty)을 느끼고 회개하는 자리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패퇴(敗退)하여 림몬 바위로 도망, 간신히 목숨을 보존한 베냐민 자손은 600명이었다(20:47). 이스라엘 자손들은 두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1) 남아 있는 600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딸들을 주어 한 지파의 사멸을 방지하는 것이다.

 2)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한 맹세(1절)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맹세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딸을 베냐민인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둘러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그 결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일전의 미스바 총회에도, 그같은 맹세에도 참여치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의도는 감추고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치기로 결의한다(8-11절).

  이스라엘 총회는 베냐민과의 전쟁 때에 야베스 길르앗에서 한 사람도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홍회는 강한 용사 12,000명을 그리로 보내어 그들에게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 총회는 군사들에게 언약대로 모든 남자와 유부녀들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야베스 길르앗은 요단 강 동쪽 길르앗 땅에 있는 갓 지파의 성읍이다. 이 성읍은 요단강의 지류 중 갈릴리 바다 남쪽 32km 지점의 동쪽으로부터 요단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와디 엘 야비스(Wadi el-Yabis) 근처에 위치하였다. 이 성읍을 진멸하기 위해 12.000 명의 군사만을 보낸 것(10절)으로 볼 때에 그리 큰 성읍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견해는 그 성읍에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4백 명밖에 되지 않았던 사실로도 뒷받침된다(12절). 이러한 야베스 길르앗은 훗날 사울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성읍이다(삼상 11장). 야베스 거민이 아모리 사람 나하스에게 포위 당했을 때 사울이 성읍을 도와 구출해 주었다. 그리고 야베스 사람들은 훗날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벧산 성벽에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다가 야베스에 묻어 주었다(삼상 31:11-13). 때문에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용감하고 경건한 이들 야베스 사람들의 행위에 대하여 특별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삼하 2:5). 앞서 이스라엘이 미디안 총회로 모여 베냐민과의 싸움을 결의했을 때(20:1-11) 그들은 분명 군사들의 수를 점호(點呼)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총회에 참석치 않은 것을 알았다.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는 명령은 야베스 길르앗 성읍에 대하여 철저한 심판을 가하라는 뜻이다. 한편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미스바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비록 그곳의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의 책임이 아닐  터인데 이처럼 그들까지 모두 함께 진멸시키도록 한 이유는 공동체적 책임  때문이다.  당시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 하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한 성읍의 일개인이 범죄하였을경우에도 그 성읍에 대하여 전체 책임을 묻곤 하였다(신 21:1-9). 그것은 곧 이웃이 범죄할 경우 그를 개도(開導)할 책임이 각자에게 있음을 교훈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 당시 남자를 알지 못하던 처녀 400명만은 멸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12절).

  그들은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 백 인을 얻었는데, 이들은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이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진으로 끌어왔다.  곳은 가나안 땅이었다. 여기서 '남자와 잔 여자'란, 곧 '기혼녀'를 가리킨다. 고대 사회에서는 대개 전쟁이나 변란이 일어났을 때 기혼녀를 죽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민 31:17). 아마 이는 그들을 살려둘 경우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 획책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여기서  '진멸하다'는말('하람')은 '구분하다', '봉헌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듯 야베스 길르앗 거민들을 멸절시킨 것을 의미한다. 남은 베냐민 자손들(20:47)에게 주어 그들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하기 위해서 처녀 400명을 길르앗 야베슬부터 탈취했다. 여기에서 야베스 길르앗을 치게 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들은 겉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처럼 행했지만 실상은 교묘히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즉 이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이 서원한 것(1절)을  어김이 없이도 베냐민 자손들에게 아내를 구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2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 지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 번제를 드린 곳은 분명히 벧엘이었다. 그런데 본문에서 야베스 길르앗 처녀 400명을 이끌고 간 곳은 벧엘이 아니라 실로였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의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 혹자는 이제 베냐민의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벧엘로 옮겼던 언약궤를 다시 실로로 복귀시켰다고 한다(Hervey). 그리하여 백성들은 다시금 벧엘이 아닌 성소 실로로 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19절에 언급된 바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가 가까웠기 때문에 언약궤를 실로로 옮겼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Goslinga).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성소로 모인 것이었다. 이처럼 실로는 엘리 제사장 당시까지(삼상 4:3, 4) 희막이 있던 성소로 여호수아 시대에도 이 곳에서 자주 총회가 열렸었다(수 18:1;21:2;22:9). 야베스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성읍인 반면 실로는 요단 서편, 즉 가나안의 성읍이다. 따라서 이러한 실로를 야베스 길르앗과 대비시키기 위하여 '가나안 땅'이란 말을 사용한 듯하다(Hervey, Keil).


 나.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의 회복(13-25)

  "13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인 중에서 살려둔 여자를 그들에게 주었으나 오히려 부족하므로, 15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궐이 나게 하셨음이더라. 16 회중 장로들이 가로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 17 또 가로되 베냐민의 도망하여 면한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19 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니라. 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각각 그 지파,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되 곧 각각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마침내 이스라엘 온 회중은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서 평화를 선포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베냐민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베스 길르앗 여인 중에서 살려둔 처녀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부족하였다. 베냐민 사람 600명은 이때까지 약 넉 달 동안(20:47) 림몬 바위에 숨어 지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평화를 공포하고 나서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14, 23절). 아무튼 이스라엘 회중이 이처럼  남은 베냐민 자손들에게 평화를 공포한 것은 백 번 잘한 일이다. 성도는 비록 이웃과 다투었다 할지라도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이 옳다(마 5:21-26). 뿐만 아니라 원수와 죄인조차도 회개할 때에는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후 2:7).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들에게 원하시는 진정한 사랑의 정신이다(요 13:34, 35). 야베스 길르앗 성읍에서 데려온 처녀들은 400명이고(12절) 베냐민 사람들은 600명이었기 때문에(20:47) 약 200명의 처녀가 부족한 셈이다. 이를 위해 부득불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계책을 짜내었는데 곧 실로 여인 납치사건이었다(19-23절). 베냐민 지파에게 줄 처녀가 부족한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경솔한 맹세를 뉘우쳤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본서 기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궐이 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이 단지 지파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내전이었던 것만은 아니며 거기에는 죄악 중에 있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이 개입되어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궐'에 해당하는 '페레츠'는 '분열, '갈라진 틈' 등의 뜻으로서 3절의 '이지러지다', '빠지다'라는 뜻의 '파케드'와 동의어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한 틈이 나게 하셨다'는 말이 된다.

  회중 장로들이 베냐민의 여인들이 다 죽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기업을 줄 것인지에 대해 의논했다. 이스라엘 통회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들에게 기업을 줄 것이라고 하였다. 모자라는 200명의 처녀 때문에 다시 장로들의 회의가 열렸다. 한편 여기서의 문제 제기(16-18절)는 6, 7절에서의 문제 제기와  거의 유사하지만 다음과 같은 새로운 내용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1)  6,7절에서와는 달리 베냐민 지파의 실상(14절)을 분명히 목격한 뒤였다. 2) 여호와께서 한 지파를 궐이 나게 하셨기 때문에(15절) 그들이 길르앗 야베스를 쳐서 처녀를  데려온  것으로(12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라고 한 장로들의 탄식 및 의견 제시는  6,7절에서 제기했던 것보다 더욱 강한 어조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기업'에 해당하는 '예레솨'의 일반적 의미는 '산업', 또는 '소유'를 뜻한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 600명은 이미 자기 영토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이다(14절).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기업'은 아내를 얻어 이룬 '가정'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아내가 없으면 베냐민 지파의 후사를 얻을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베냐민 지파의 이즈러짐은 여전히 방지할 수 없다. 추측컨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모자라는 처녀 때문에 베냐민 지파 간에 일어날 불화를 염려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한 맹세 때문에 베냐민 지파에게 자기의 딸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냐민 지파에게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베냐민 자손에게 가서 포도원에 숨어 살펴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추러 나오면 포도원에서 나와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서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였다.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선 하나님과의  맹세이든, 사람과의 맹세이든 모두를 막론하고 '맹세'는 반드시 시행되어야만 하는 불변의 약속이었다. 따라서 대개 히브리인들은 무엇을 맹세할 때, 그것을 이행치 못할 경우 죽음이나 어떠한 저주라도 감수하겠다는 약속을  곧잘  첨언(添言)한다(수 6:26; 삼상 14:28; 왕상 2:42). 본문 역시 바로 그러한 한 예인데 '맹세의 엄정성'을 잘 드러내 준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실로'는 12절에 나오는 '실로'와 다른 곳이 아니다. 성경에 언급된  '실로'(Shiloh)란 지명은 언제나 한 곳을 가리키는데 본절의 설명에 의하면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32km 지점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호수아 때(수 18:1)부터 엘리 제사장 때(삼상 4:3, 4)까지 그곳에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성막이 있었는바 종교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성읍이었다. 현재 실로는 '길벳 세일룬'(Khirbet Seilun)으로 알려지고 있다. 르보나는 실로와 세겜 사이에 있는 큰길가의 마을이다. 이 마을은 실로에서 서북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루반'(Lubban)인 것으로 추정된다. 세겜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9.6km 정도 떨어진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성읍이다. 실로에서 매년 절기가 있었다는 언급은 삼상  1:3,7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무슨 절기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다만 여기서 '절기'에 해당되는 '하그'는 주로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 등 3대 절기에만 사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어떤 주석 가들은 이때가 유월절이었다고 주장한다(Keil, Delitzsch),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었다는 것은(21절), 그들이 과거 이스라엘의 홍해 도하(渡河)후 미리암의 지도하에 이스라엘의 딸들이 춤을 춘 것(출 15:20)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Lange). 그러나 다른 주석가들은 그것은 실로 고유의 축제로서 신 12:10-12에  언급된  축제와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 이 세 절기 가운데 올리브(olive)와 포도등의 수확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장막절이다(신 16:13). 따라서 본절의 축제도 포도원과 깊이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20, 21절) 장막절임이 분명한 것 같다(Patrick, Cundall). 장막절의 주요 행사는 주로 밤에 거행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베냐민 자손들이 춤추는 여자들을 쉽게 납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대낮에 여인을 납치했다면 실로에서 베냐민 땅까지 데려가기도 전에 발각되었을 것이며, 발각되었다면 율법에 따라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출 21:16;신 24:7).

  이스라엘 총회는 베냐민 자손들에게 그들이 아내를 데려올 때에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반대하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가르쳐주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본문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처럼 철저한 계획 속에서 베냐민 사람들로 하여금 아내를 취하여 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장로들이 이와 같은 납치극을 꾸민 이유는 22절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편 베냐민 사람들 중에 아내가 없는 200명뿐만 아니라 아내가 있는 나머지 400명의 베냐민 사람들도 분명히 이 일을 돕기 위해 나섰을 것이다. 패트릭(Patrick) 주교에 따르면 장막 절에는 이스라엘 처녀들이 춤을 추도록 허용되었는데 이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허용된 절기는 오직 장막절 뿐이라고 한다. 여기서 '붙들다'는 말('하타프')은 마치 죄수를 체포하듯 '꽉 붙들어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베냐민 사람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는  말이다. 앞서 미스바 총회에서 자신들이 베냐민 자손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한 이스라엘 자손들(1절)은 아무도 그 같은 서원을 범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베냐민 자손들이 자기들의 딸을 납치해 가려는 일이 탄로 나면 싸움이 일어날 것임이 분명하다. 본절은 바로 그 같은 사태를 가리키는데 만일 그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이스라엘 장로들은 자신들이 친히 베냐민인들을 위해 변호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처럼 이스라엘 장로들이 자신들의 딸을 납치 당한 실로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의 무죄성을 납득시키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거가 있었을 것이다. 1) 길르앗 야베스와의 전쟁에서 베냐민 사람들의 아내를 다 마련해 주지 못한 데 대한 이스라엘의 공동 책임이  있기  때문에(10-14절). 실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딸을 납치 당한 것은 실로인들의 책임만일 수 는 없다는 점이다. 2) 실로인들이 고의로 자신들의 딸을 내준 것이 아니라 베냐민 사람들이 강제로 납치해 간 것이기 때문에 실로인들은 그들이 한 맹세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쟁 때에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달리 이방인들에게도 딸을 빼앗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장로들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베냐민 자손은 이스라엘 총회의 말대로 실행했다. 그들은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만큼 아내로 붙들어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살았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각각 그 지파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되, 곧 각각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베냐민 사람들은 장로들의 계획대로 실로에서 춤을 추던 여인 200명을 데리고 그들의 기업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베냐민 사람들이 아내를 얻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간 후 가장 시급했던 일은 거의 잿더미로 변한 성읍들을 수리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베냐민들에게 속한 성읍은 앞서 이스라엘 연맹군과의 싸움에서 대부분 완파(完破)되었기 때문이다(20:48). 본문은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모든 이스라엘 지파는 베냐민 지파의 문제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다리다가 이제서야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여기서 '그곳'이란 일차적으로 실로라고 생각할 수 있다(12절). 그러나 혹자는 16-23절의 상황에 의거해 대부분의 백성들은 미스바에서 베냐민 지파의 문제가 종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Goslinga). 마지막으로 본서 기자는 사사기의 역사를 마감하면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그러한 불법적인 일들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7-21장에 걸쳐 기록된 불법적인 일들에 대한 본서 기자의 이러한 결말은 사사기 시대의 예비적인 성격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 내용요약 및 적용 *

1. 남은 베냐민 자손을 위하여 처녀 400명만 남기고 모두 죽임(12)
2. 모자라는 처녀 200명은 실로 여자들 중에서 취함.(21-) 이 일로 인하여 베냐민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가장 적은 지파가 되었다.
3. 영적 건강은 도덕적 수준을 결정한다. 하나님을 떠난 사회는 혼란, 부패, 타락으로 가득차게 되어 있다.
4. 하나님의 평가-사사기의 결론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
 * 동성연애, 축첩, 성적 타락-민족적 분노를 일으키고 거국적인 징계로 악을 제거함.
5..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말씀대로 섬기는가 ?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섬기고 있는가 ?
6. 신문의 사회면에는 날마다 강간, 에이즈, 살인, 인신매매 사건이 계속 실리고 있다. 이 시 대를 위해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누어 보자.
7.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억하지 않으면 죄를 묵인하게 된다. 죄를 묵인하면 죄를 합리화하게 된다. 죄가 합리화되면 하나님을 반역하게 된다. 하나님을 반역하게 되면 사회가 질서와 혼란한 무정부 상태가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그러나 회개하고 간구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C. 결론 및 적용

1. 신실하신 하나님과 비신실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충실히 이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가나안으로 이끄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신실하게 대해주셨다. 하나님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는 축복을 받고,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신27-28장).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불순종하였다. 사사기는 범죄-심판-부르짖음-구원의 역사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실치 못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2. 죄를 징벌하시는 하나님(2:11, 3:7-8, 13:1-2)
 죄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 범하는 죄요, 또 하나는 사람에게 범하는 죄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이유는 인간끼리의 윤리적인 죄보다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지역의 농업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영적인 범죄였다. 그들의 근본적인 죄는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섬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에도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그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바알도 섬겼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보고 여호와를 버렸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왜냐하면 둘 중의 하나를 다른 것보다 더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는 정절을 버리고 약속을 배신한 이스라엘을 율법의 약속을 따라서 징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적들을 쫓아내지 못하게 하셨으며, 오히려 그들이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가시와 올무 노릇을 하게 만드셨다. 사사기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잘못할 때에 율법의 약속을 따라서 반드시 징계하시고, 그 백성이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3. 현대에도 위세를 떨치는 가나안 종교

 1) 지배 이데올로기 숭상
  가나안의 종교는 지배 구조를 지지하는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나안의 농경문화가 만들어 낸 신들, 가나안의 봉건제도를 합법화해 주는 신들, 토지의 사유화를 합법화해 주는 신들, 지배하는 자유인과 지배당하는 농노 사이의 신분 구분을 합법화 해주는 신들, 많이 버는 이는 언제나 많이 차지하고 적게 버는 이는 늘 모자라는 그러한 차별 경제를 합법화 해주는 신이 바로 가나안의 신들이다. 이러한 신들을 숭배한다는 것은 곧 그것이 옹호하고 있는 지배자 정신, 지배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예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2) 혼합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경의 풍요를 위해 신들의 비위를 맞추고 신들을 설득하여 번영을 얻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도 함께 섬겼다. 그러나 이 둘은 함께 섬길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가나안 종교는 윤리적인 타락과 부패의 온상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한 분이셨다. 가나안 종교는 이스라엘을 동성연애, 축첩, 윤간과 죽음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기든지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든지 양단간에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여호와 종교와 가나안 종교를 혼합하는 신앙은 여호와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일이었다, 오늘날의 세계도 신문의 사회면에 강간, 윤간, 에이즈, 살인, 인신매매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이 시대의 윤리적 산물이다. 성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세상의 물질과 쾌락의 종이 될 수 없다.

4. 안식의 땅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함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서 안식을 주시려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신을 받아들이게 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 하나님의 징게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외국의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가나안 주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안식의 땅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했다. 그들은 압제와 고난과 박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기를 약속된 땅을 완전히 차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타락과 징계, 기도와 구원의 역사를 반복했다.

5. 구원하시는 하나님(3;9-11, 28-31)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되면 왜 이 고통이 일어나는지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이 극심해지고, 이방 민족의 압제가 심해지게 되자, 그들은 그 이유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이러한 이이 일어났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반성을 통해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약속된 대로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는 사사들이었다. 이와 같이 사사기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신앙 법칙은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언약하신 대로 회개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6. 왕이 없는 사회
  사사 시대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했다. 이러한 사회는 긍정적으로 보면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 평등사회이며, 각자가 자기 일을 책임지는 책임 사회였다. 그러나 부정적으로는 일정한 규율이 없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무질서한 사회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해방된 여호와의 품꾼이었기 때문에(레 25:42), 그들에게는 왕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여호와를 섬기면서 율법을 따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자유를 남용했다. 그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자유인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들은 각 지파 들이 전쟁을 선포할 때에도 적극 참여하지 않았고, 지파 별로 독자적으로 행동함으로 서로 분열을 초래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만용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부득불 인간 통치자인 왕이 필요하게 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율법을 따라 자유롭게 살기를 포기하고 이방 나라들과 같이 왕정제도를 요구하게 된다.

7. 여호와만이 진정한 사사
  그러나 이러한 이스라엘에게도 한 가지 빛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고난에서 구원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인간 사사들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구하셨지만, 진정한 이스라엘의 사사는 여호와였다. 하나님이 사사로 들어 쓰신 사람들은 연약하고 좋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무력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은 용맹하게 일어서서 이스라엘을 대적으로 손에서 건져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사사(구원자, 통치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8.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시는 사람과 쓰는 사람.
 *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는사람은? (믿음 없는 자, 두려워하는 자, 경계심이 없는 자)
 *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사람은? (연약하나 정결하고 전적으로 헌신된 사람,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 신중한 사람).

9. 말씀을 떠나 주관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위험성
  사람들이 여호와를 섬기려 하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그 결과는 혼란과 우상 숭배와 하나님으로 부터의 분리로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패배의 원인은 그들이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부도덕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이 없는 이들에게는 민족적인 비전이 없었으며, 따라서 이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빠져 방자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10. 심판에 이르는 길(패배-타협, 불순종, 불 신앙)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억하지 않으면 죄를 묵인하게 되면, 죄를 묵인하게 되면 죄를 합리화하게 되고, 죄가 합리화되면 하나님께 반역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반역을 하는 사회는 질서와 기준이 없는 무정부 상태가 되며, 이런 사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회개-구원)


                                  < 참고  사항 >

1.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의 정치 체제
 - 주변국들을 모방한 체제, 중앙 성소 중심의 종교 중심 체제로 운영.

2. 거룩한 전쟁
  이스라엘의 싸움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거룩한 전쟁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인들은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다. 이 싸움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 민족이 섬기는 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신들을 정복하셨다.

3. 유목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입성 후에 점차적으로 유목 생활에서 정착 민에게 어울리는 농경 생활로 그 체제를 바꾸어 갔다. 따라서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농사에 대하여 배우면서 그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4. 순종이냐 불순종이냐?-축복이냐 징계냐?

5. 지파 간의 단결력 부족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강력한 동맹 체제가 없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을 때에도 다 모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하여 그 주변에 있는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압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에브라임 지파는 싸울 때에는 물러서 있다가 싸움이 다 끝나고 나면 나와서 시비를 걸곤 하였다. 이러한 시비에 대하여 입다는 강력하게 맞섰으나 기드온은 부드럽게 대하였다.

6. 왕을 세울 것인가? 세우지 말 것인가?
  사사 시대에는 왕이 없었다. 그들의 권위는 절대적이거나 영구적이지 않다. 그들은 개인적인 왕조나 행정 체제를 갖추지 못했으며 일정한 군대나 소 궁전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실상 사사들은 적들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왕을 세우자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아비멜렉과 요담의 이야기)

7. 지파 간의 결속 필요성과 왕정 제도의 필요성.

                                     - 사사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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