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48과)

 사사기(3): 사사들의 이야기(2) (6-8장)


                       
 "사사들의 이야기" (참고 지도) 

  사사시대는 징계의 시기만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사사들을 일으켜서 대적 자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사사들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했다. 이러한 사사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6개의 반복되는 순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1) 범 죄 - 2) 진 노 - 3) 압 제 - 4) 부 르 짖 음 - 5) 구 원 - 6) 재 범 죄

  각 사사들의 이야기는 주인공만 다를 뿐 그 이야기의 구조는 모두 위와 같다. 사사 이야기에서 옷니엘을 사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서론으로 본다면, 나머지 6명의 사사는
A - B - C - C'- B'- A'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 에훗과 삼손(A-A'): 에훗과 삼손은 둘 다 홀로 싸워야만 했던 외로운 영웅이었다. 에훗은 베냐민 지파의 외로운 영웅이었고, 삼손은 단 지파의 외로운 영웅이었다. 다른 싸움은 이스라엘 군사들이 힘을 합쳐서 대적들을 쳤지만, 이 두 사사는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 대적들과 싸워야 했다. 베냐민 지파와 단 지파는 사사 시대에 가장 곤경을 겪은 지파였다. 단 지파는 적의 공격을 받고 자기 기업을 떠나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사건으로 인해 지파 전체가 전멸할 위기에 놓였다(삿 19-21장). 또 이 두 지파는 모두 다 강력한 유다와 에브라임 지파의 사이에 기업을 얻은 지파였다. 에훗은 동쪽에 있는 대적인 모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했고, 삼손은 서쪽이 있던 대적인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했다.     

 * 드보라와 입다(B-B'): 드보라와 입다는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사람들이 사사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드보라는 그 당시 매우 천대받던 여성이었고, 입다는 창녀인 첩의 아들로서 변방으로 쫓겨났던 사람이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 기드온과 아비멜렉(C-C'):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사사기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누가 이스라엘의 왕인지를 보여준다. 기드온은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수많은 미디안 군사들을 물리침으로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이 되심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백성들이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에 이를 거절했다. 이는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고 스스로 세겜 사람의 힘을 빌려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 후에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간의 불화로 인해 세겜은 아비멜렉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러한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여호와임을 분명히 증거해주고 있다.    

서론

사사들의 이야기(반역과 구원)

타락

실패

배도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아비
멜렉

돌라야일

입다

삼손

종교적
타락

도덕적
타락

1

2    3:6

3:7-11

3:12-31


  5:16

6  
     8

9

10:5

10:6
    12

13     16

17     18

19     21

실패원인

1

2

3

4

5

6

7

이스라엘부패상

 


                                    < 사사 기드온 >(6-8장)


1. 기드온의 소명(6:1-32)



 1-1. 이스라엘의 범죄, 징계, 부르짖음(6:1-6)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5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 떼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드보라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은 또 다시 여호와 앞에서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들이 살아 있을 동안은 하나님을 섬겼으나 그들이 죽으면 다시 우상 숭배에 빠졌다. 이처럼 사사시대는 타락, 하나님의 징계, 이스라엘의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이 순환적으로 반복되던 시대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그들을 다시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으며, 이로 이해 미디안이 이스라엘과 싸워 이기게 되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후처인 그두라에게 난 후손들이다(창 25:1-4). 그들은 유목민이었으며 외국과도 무역을 했다.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해 도망친 곳도 미디안이었다. 모세는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다(출 2:15-22). 미디안 땅의 경계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개 엘란(Elan) 만 동부 지역인 아카바 만 일대로 추정된다.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시에 모압 족속과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크게 패배하고 말았다(민 31:1-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 이 족속을 다시 일으켜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피하기 위해 산에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었다. 팔레스타인 땅은 대체로 석회석으로 되어있어서 천연동굴이 많았으며, 굴을 파기도 쉬웠다. 이떠한 굴은 창고나  무덤(마 27:60)뿐 아니라, 일시적인 거처나 피신처로도 사용되었다(삼상 22:1).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핍박을 피해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서 유리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히 11:38). 신약의 성도들도 핍박을 피해 동굴 생활을 했으며 유대 종파 중 어떤 사람들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쿰란 동굴에서 생활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산 속의 구멍이나 굴에서 생활했던 이유는 인적을 피할 수 있고 타인의 공격을 쉽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침략을 받아 패배하자 이 곳으로 도망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적을 대항할 힘이 없었으므로 적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설령 적이 온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쉽게 방어할 수 있는 높은 산의 동굴로 피신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탈하게 되면 사면에서 에워싸는 원수들에게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우리 나라와는 달리 팔레스틴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여름철(5-9월경)에 비가 없는 건조기가 계속된다. 그러다가 10월에 들어서서 '이른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때에 그곳 사람들은 파종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파종된 씨앗은 겨울 우기(12-2월경) 동안 자라나 결실을 맺고 대개 3,4월경에  추수하게  된다. 본문은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들이 파종한 겨울철에서 추수기에 걸쳐 이스라엘을 약탈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유목민인 미디안 사람들은 곡식이 싹을 내어 한창 자랄 때에 가축을 몰고 와서 그 곡식을 뜯게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 자라 이삭이 여물은 곡식마저 빼앗아 갔으니 이스라엘에 양식이 남아 있을 날이 없었다(4절). 아말렉 사람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와 그의 첩 딥나 사이에서 난 '아말렉'의 후손이다(창 36:12). 그들은 과거 출애굽 하던 이스라엘을 르비딤에서 공격하다가 크게 패배하었다(출 17:8-16). 이때 하나님께서는 장차 아말렉을 세상에서 완전히 없어지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히스기야 왕 때에 이르러 시므온 자손에 의해 멸절당했다(대상 4:42,43). 이들은 계속 존속하는 동안 이스라엘을 매우 괴롭힌 것으로 악명 높다(3:13; 삼상 15:7,8; 27:8,9). 동방 사람은 (창 29:1)에서 처음 언급된 족속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족속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단지 야곱이 갔던 곳이 밧단아람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창 29:1)에서 가리키는 '동방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지역 사람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본문에 언급된 '동방 사람'은 이스라엘 남부와 남동부에 자리를 잡고 있던 아말렉 및 미디안과 동맹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여기서 가리키는 '동방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족속들은 아닌 듯하다. 추측컨데 아마도 이는 미디안과 인접해 있는 시리아 사막 지역의 이말렉 족속 중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Wycliffe).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들이 어느 곳으로 올라 와서 어디에 진을 쳤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뒤에 기드온과 싸우려 할 때에는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골짜기에 진친 것으로 나와 있다(33절). 그래서 혹자는 그들이 가사에 이르도륵 이스라엘 지경(地境)을 황폐화시킨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번에도 요단을 건너와서 점점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Keil). 왜냐하면 '가사'는 이스르엘 골짜기보다 훨씬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사는 유다 지경에 속한 블레셋 인들의 5대 성읍 중 하나이다(1:18). 미디안 연합군이 이스라엘 백성을 쳤을 뿐 아니라 생계 수단이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초토화시켰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계 문제로 극심한 고통을 받았으며, 이는 조공을 드리는 일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한 일을 징계하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백성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기드온처럼(11절) 노략꾼들에게 들키지 않게 감추어 둔 곡식이나마 조금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디안 족속은 유목민들이었으므로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초지를 찾아 떠돌아 다녔다. 특히 그들은 약대가 있었으므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나안의 곡식이 자랄 때쯤이면 나타나서 곡식 밭에 자기들이 몰고 온 짐승들을 방목하고 장막을 지어 장기간 체류였다. 한편 여기서 '올라와서'라는 말은 반드시 남쪽에서 북쪽으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이동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방인의 땅에서 이스라엘로 나아오는 것을 의미한다(왕하 17:3; 24:1; 사 36:1). 성경에서 메뚜기 떼는 종종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출 10:4; 신 28:42; 시 105:34; 욜 2:25). 여기서도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특히 대적들의 수효가 엄청났다는 점과 그들로 말미암은 피해가 막심하였음을 강조해 준다. 미디안 족은 떠돌아다니며 유목과 무역을 했기 때문에 약대가 필요했다. 고대 근동에서는 짐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이 약대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왕상 10:2;사 30:6). '미약하다'는 말('와이달')은 '쇠하게되다'는 뜻 외에도 '가난하게 되다'는 의미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침입자들로 인해 모든 곡식과 짐승을 빼앗겼으므로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4절). 이러한 상태가 7년 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은 매우 심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렇게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되자 또 다시 여호와께 부르짖기 시작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주위의 열국들을 이용하여 타락한 자기 백성을 회개하게 만드신다. .


 1-2. 선지자의 책망(6:7-11)

  "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 고로,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9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주셨다. '부르짖다'('자아크')는 말은 위험이나 고민거리에 직면했을 때 소리 외쳐 구원자를 청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압제 하에 심히 곤궁하게 되자 구원자 '하나님'을 애타게 찾았다. 모세 시대까지가 신 현의 시대라면 사무엘 이후부터 말라기 까지는 선지자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간의  사사 시대는 신현 시대와 선지자 시대의 과도기적 상황에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통로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본문처럼 선지자를 보내시기도 하고, 사사를 통해 말씀하시는가 하면 직접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기도 하셨다(11절;2:1;13:3).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쫓아내고 그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신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어기고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역사를 다시 상기시켜 주신 까닭은 가나안 땅에 그들이 거주할 수 있게 된 것이 온전히 당신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일깨워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배은 망덕한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을 지적해 주시길 원하셨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시 모두들 들고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내쫓아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배역하고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을 이용하여 타락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2:19-2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당신의 계명에 순종하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을  삼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출6:7; 19:5,6)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틈만 있으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다.  '아모리 사람'은 종종 '가나안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창 15:16;수 24:15). 가나안 땅에는 국가의 신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신들이 있었다. 가나안의 바알과 시돈의 아스다롯, 그리고 모압의 그모스(11:24; 민 21:29; 왕상 11:7,33; 렘 48:7)와 암몬의 몰록(왕상 11:7), 그리고 블레셋의 다곤(16:23; 삼상 5:2-7)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신의 우두머리인 '엘', 전쟁신 '아낫' 그리고 죽음의 신 '못'등도 가나안 인들이 섬기던 대표적인 신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신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섬기게 되었다.


 1-3. 기드온이여 바알을 대적하라!(12-32)

  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11-12)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영토에 이르러 그 곳에 있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아비에셀'은 므낫세 지파 중 한 가족의 조상이었다. 따라서 '아비에셀 사람'이란 므낫세 지파 중 '아비아셀'의 가계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킨다(수 17:2). 한편 '요아스'는 이스라엘의 사사 기드온의 아비인바 본절은 기드온의 출신을 밝혀 주고 있다. 오브라의 위치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학자는 샤론 평야 부근의 오늘날의  엘파이(Erfai)가 오브라였다고 추측하고 있다(Keil & Delitzsch). '상수리나무'는 우상 숭배와 관계가 있다(사 44:14,15). 기드온이 자기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 중 목신(木神)인 아세라를 찍어 불태운 것으로 보아(25,26절) 기드온의 아비 요아스 역시 이 나무를 숭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 기드온이 미디안인에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다. 고대 근동에서는 대개 땅에 큰 구덩이를 파서 포도주 틀을 만들었다(사 5:2). 이스라엘의 위대한 구원자로 부름을 받을 기드온이 몰래 숨어서 밀 타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준다. 1)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압제의 정도가 매우 심했다. 원래 밀 타작은 마당이나 넓은 들판에서  타작용 마차나 황소의 발굽을 이용하여 하였으나, 기드온은 미디안 족의 눈을 피해 좁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던 중이었다. 2) 기드온의 타작 행위는 그가 장차 이루게 될 큰 일을 암시하고 있다. 고기 잡는 어부를 불러서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마 4:19), 밀 타작하고 있던 기드온을 택하사 미디안 대적을 타작하게 하신 것이다(사 41:15). 오늘날 성도들도 기드온처럼, 생계에 연연해하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자각하는 상태로 변모하도록 요청 받고 있다. 왜냐하면 시대는 달라도 수행되어져야 할 하나님의 일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날 그리스도 인들이 일하지 않고 버려 두어도 좋을 곳은 세상에 한 치도 없다.

  바로 이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고 하였다. "큰 용사"('깁보르 헤하일')는 '능력 있는 용사'를 의미한다. 이 말은 (룻 2:1)에서는 '유력한 자', 곧 '재산과 덕망 그리고 세력을 가진 사람'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기드온이 원래 는 연약하며 작은 자엿지만(15절), 여호와께서 함께 하기 때문에 '큰 용사'가 될 것을 예고하는 말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면 이스라엘이 이렇게 미디안에게 압제를 당할 수 가 없기 때문이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에게 고통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다면 미디안 사람의 손에서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심지어 그들이 쳐들어 와도 출애굽 시에 행하셨던 놀라온 이적으로 그 대적들을 물리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드온은 고통의 원인이 이스라엘의 죄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14-16)

  "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그의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셨다. '네 힘'은 기드온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 계심으로 얻는 힘을 의미한다(Keil, Goslinga).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기가 무낫세 지파 중에 가장 연약한 집에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자라고 대답핬다. 기드온은 인간적인 힘이 있어야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삼상 17:47)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여리고 성과 같이 견고한 성도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치 않고 쉽게 무너뜨려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망각했다(수 6:1-21). 기드온이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사람과 대적하기에는 자신이 역부족임을 고백했다. 그의 고백처럼 기드온의 가정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지도적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가정의 기드온을  들어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다. 이러한 일은 1)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일에 대해 누구도 교만할 수 없으며, 2)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와 함께 하실 것이며 이로 인해 그가 미디안 족속을 한 사람을 치는 것처럼 무찌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역사 하셨던 것처럼 기드온과도 함께 하사 그를 통해 큰 승리를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다. 미디안 사람은 메뚜기 떼처럼 많지만 한 사람을 치듯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매우 쉽게 멸망시키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었다.


  다. 표적을 구하는 기드온(17-24)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그러나 기드온은 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씀하신 분이 정말 하나님이시라면 자기가 드리는 제물을 준비할 수 있도록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주어진 소명이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 여부를 확실히 알고 싶어했다. "예물"('미느하')은 '선물', '조공', '제물'을 의미한다. 특히 이 단어가 '제물'의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주로 '소제"를 의미한다(사 66:20; 말 1:11). 아마도 기드온이 땅에 구덩이를 파 만든 포도주 틀이 집에서는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 같다(11,12절). 그러므로 그가 집에 가서 음식을 준비해 올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기다릴 테니까 갔다오라고 대답하였다. 기드온이 드린 예물(염소 새끼, 무교전병, 고기, 국)은 미디안 족속의 압제로 인해 매우 곤궁한 살림을 하던 기드온(4,11절)에게는 매우 귀중하고 값진 것이었다. 가루 한 에바는 약 23리터(12되)정도 되는 부피를 말한다. 이러한 양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위해 가져왔던 가루 세 스아와 같은 부피이다(창 18:6).  (한 에바는 세 스아에 해당함). 무교 전병은은 효소의 역할을 하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이나 떡을 가리킨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도온에게 그 고기와 무교전병을 반석 위에 놓고 국을 그 위에 부으라고 지시하였다. 기드온이 그 말대로 하였을 때에 여호와의 사자는 지팡이 끝을 그 제물에 대었다. 그러자 불이 반석에서 나와서 그 제물을 모두 태워버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이 드린 예물을 열납 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훗날 삼손의 부모가 염소 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반석 위에 두었을 때도 하나님의 사자는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하셨다(13:19,20). 그리고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시기 위해 불로써 제물을 태우셨다(왕상 18:38). 이처럼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불로써 제물을 태우신 것은 한편으로는 기도온의 헌신을 열납하신 증거이며(레 9:24), 동시에 표징을 구한 기드온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Pulpit).

  그때에서야 기드온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분이 여호와의 사자이며 자기가 받은 소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는 엠마오를 향해 가던 두 제자가 그들 바로 곁에 동행하셨던 예수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눈이 밝아진' 후에야 깨달은 것과(눅  24:13-32) 비슷하다. 이처럼 우리도 항상 곁에 계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신이 살아서 여호와를 보았기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드온은 사람이 여호와를 볼 수 없고, 보면 죽게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출 20:19; 33:20; 신 5:25).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며 그를 안심시켜 주셨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보고서도 죽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본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출 33:20,23).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형상을 입고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셨다. 이에 기드온이 그 곳에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 그 곳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하였다. 그 곳은 '상수리나무 아래'를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자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있는 반석에서 기드온의 예물을 태웠으며(19-21절), 그곳에서 기드온과  대화했기 때문이다(22,23절). 아브라함이 과거에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한 후 헤브론에서 단을  쌓았고(창 13:18), 야곱이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단을 쌓은 것처럼 기드온도 단을 쌓았다. 구약 시대에는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헌신을 의미했다. 여호와 살롬은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또는 '평강의 여호와'란 의미이다. 여호와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기드온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셨다. 기드온이 쌓은 단은 하나님과의 화해의 제단이요 구원의 제단이었다. 불안과 혼란이 팽배해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눅 8:48)  가정과(고전 7:15), 전 세계가(왕상 4:24)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화목된 관계를 회복해야만 한다(시 29:11; 갈 1:3).


 
 라.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으라!(25-27)

  "25 이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26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27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아비에게 있는 7년 된 수소를 잡고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은 후에 그 곳에 7년 된 수소를 제물로 드리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바알의 제단을 헐고 그 제단 곁에 잇는 아세라 상을 찍고 그 아세라 상을 찍은 나무로 제물을 태우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굳이 번제물로 7년 된 수소를 취하라고 하신 까닭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7년간의 미디안의 압제(1절)로부터 벗어나게 하려 하신 당신의 의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은 본래 오브라에 모여 살던 아비에셀 사람들(11절)의 공동 소유였지만 기드온의 아비가 관리 책임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세라 상은 가나안의 최고 신인 엘의 아내이자 바알의 어미였다. 하나님께서 재단을 쌓으라고 하신 "건고한 성 위"는 성읍 사람들이 모두 다 볼 수 있는 성읍의 '가장 높은 곳'이었을 것이다. 아세라 여신상은 통나무로 만들어 세운 목상(木像)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제물을 태울 수 있었다(왕하 21:7). 번제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과 정상적인 관계 유지를 원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자발적인 제사이다. 기드온은 종을 열 명 데리고 가서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대로 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비와 마을 사람들을 두려우ㅕ햇기 때문에 이 일을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은밀하게 했다.


 
 마. 여룹바알(28-32)

  "28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29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31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성읍 사람들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바알의 단이 무너지고 아세라 상이 찍혔으며 새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둘째 수소를 드린 것을 보게되었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은 이 일을 한 범인을 찾다가 그가 바로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기드온이 데리고 함께 간 열 명의 종 중에 누군가가 기드온이 범인이라는 것을 폭로했을 것이다. 그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여 요아스에게 가서 그의 아들을 내어놓으라고 하였다.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찍은 일로 인해 기드온이 죽어 마땅하다고 소리쳤다. 성읍 백성들이 그를 죽이려 한 점은 기드온의 부친이 소유한 바알과 아세라가 그의 가족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읍 주민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우상을 숭배하여 십계명을 범했으면서도 무너진 우상의 제단과 신상을 보고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못했다. 도리어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 상을 훼파한 기드온을 죽이려 하였다. 즉 하나님 앞에서 정작 죽임을 당할 자들은 자신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처 이를 깨닫지 못했다. 요아스는 성읍 사람들에게 그들이 바알을 위해 싸우려고 하느냐? 고 책망했다. 그는 바알을 위해 싸우려고 하는 자는 아침에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요아스는 만일 바알이 정말로 신이라면 그가 스스로 바알의 제단을 무너뜨린 자를 징계할 것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우상을 파괴한 기드온에게 분노를 품고 그 아버지에게 사형을 요구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아버지 요아스는 그 아들의 행위를 꾸짖기는커녕 도리어 그를 위해 변호하였다. 기드온의 심령을   비추었던 하나님의 영이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감화시켰던 것 같다. 적과 동조하리라 예상했던 아버지가 지금 자기 편이되어 주니, 기드온의 감사한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이렇듯 하나님의 편에 서서 진리를 위해 싸우는 자는 언제나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된다. 불의와 악한 세력은 생각보다 약하고, 정의와 진리는 무쇠처럼 강하다. 요아스는 참 신과 거짓 우상, 진리와 오류를 구별하는 길을 마을 사람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즉 참 신은 징계하나 거짓 우상은 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진리는 그 자신을  증명한다. 그 날에 마을 사람들은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고 불렀다.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은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이다. 이 이름에는 기드온이 바알을 쳐부쉈으되 바알은 기드온에게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못한 사실을 조롱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로써 바알은 허구의 산물이며 헛된 우상임이 밝혀진 셈이다.


2. 미디안과의 전쟁(6:33-8:21)

 2-1. 여호와의 신이 강림하심(33-35)

  "33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34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35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이때에 이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이 다 모여서 요단 강을 건너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요단 강에서 길보아 산(삼상 28:4)부근을 거쳐 갈멜 산(사 33:9) 부근을 지나며 지중해에까지 뻗쳐 있는 비교적 큰 계곡이다. 따라서 이 골짜기는 므낫세 반 지파와 잇사갈, 스불론, 아셀지파의 땅에 걸쳐 있으며, 기손 강이 흐르고 있다(4:7).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기 위함이라기 보다 이스라엘을 약탈하기 위한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먼저 기습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그에 대한 방어나 어떠한 군사 행동(34,35절)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에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했다. 기드온은 징집을 나타내는 나팔을 불었으며 이 소리를 듣고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기드온을 좆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극히 심하게 우상을 숭배했던 자들이었지만 성령이 기드온에게 임하게 되자 그들은 기드온을 따르게 되었다. '강림한다'는 말('라바쉬')은 '옷을 입히다'라는 뜻을 지닌다. 하나님의 영은 기드온에게 옷을 입히시듯이 강한 능력을 주셨다(11:29; 13:25; 14:6; 사 11:2; 요 20:22; 행 13:2; 고전 12:4). 구약에서 여호와의 신이 특별히 임하였을 때에는 명철과 지혜(창 41:38,39), 예언(민 11:25,26), 비상한 체력(14:6,19)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 보혜사로서 함께 하신다(요 15:26). 따라서 우리는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해서는 아니 되며, 육신의 정욕을 누그러뜨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보다 충만히 받기  위해  힘써야  한다(엡 5:18). 본절에서는 바야흐로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므로서 그가 때마침  침략한 대적들로부터(33절) 이스라엘을 구원할 위대한 지도자로 세움 받는 장면이 나온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셀 족속 출신이다(11). 따라서  자기가 속한 므낫세 지파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취해 그들의 힘을 규합했다. 그러자 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와 접경 지대를 기업으로 받은 므낫세 지파는 기드온 의 부름에 쉽게 응했다. 기드온은 또 다시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도 사람을 보내어 군사를 모집했다. 이 족속들은 이스르엘 골짜기와 인접해 있고 적들의 약탈과 위협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기드온의 부름에 쉽게 응했다(33). '아셀'은 드보라 시대에 출전치 않아 드보라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5:17)..
 

 2-2. 양털 뭉치 시험(36-40)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찌기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40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은 출전하기 전에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또 다른 표징을 구하였다. 그는 먼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고 이슬이 양털에만 있게 하고 그 주변은 마른 땅이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기도를 그대로 이루어주셨다. 이미 기드온은 하나님의 신이 충만히 임해 있었으나(34절), 그는 자신의 연약한 힘으로써 메뚜기 떼 같은 대적들과(5절) 싸워 이긴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에 좀더 확실한 하나님의 표적을 필요로 했다. 근동지방은 강우량이 적은 대신 밤에 이슬이 많이 내려 식물을 자라게 한다. 따라서 기드온 자신이 준비한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고 사면 땅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으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기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기드온이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한 그릇 가득하게 고였다. 밤새 이슬이 사면 땅에 내리는 대신에 기드온이 준비한 양털에만 비가 와서 젖은 것처럼 많이 내리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서는 마치 어린애 장난과 같은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개념치 않으시고 기드온의 요구를 들어주셨는데 이로써 기드온은 어느 정도 자신을 부르신 소명과 능력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다시 한 번 표징을 구했다. 그는 이번에는 지난번과 정반대로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에는 이슬이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번에도 기드온의 요구대로 이루어주셨다. 기드온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양털은 말라있는데 주변 땅에는 이슬이 가득하게 있었다.
 

 2-3. 두려운 자는 돌아가라!(7:1-3)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 샘 곁에 진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아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 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는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여룹바알('바알과 논쟁하다',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은 기드온이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얻은 이름이다(6:32). 기드온과 그를 좆은 모든 백성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롯 샘 곁에 진을 치게 되었다. 하롯샘은 오늘날의 '얄룻' 샘으로 알려져 있으며(Cundall, Hervey), '이스르엘 골짜기'의 바로 북쪽 길보아 산기슭에 있다. '하롯'이란 지명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 '삼훗'과 '엘리가'의 출신지로(삼하 23:25) 언급된 것 외에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블레셋 군대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진 친 곳이 '이스르엘에 있는 샘'곁이었는데(삼상 29:1), 이것이 하롯샘과 동일한 샘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스르엘 골짜기 주변에는 이 곳 외에는 샘을 끼고 있으면서 군대가 진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인 모레 산 앞에 있는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었다.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모레'(Moreh)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있는 '세겜'에 속한 지역이다(창 12:6;신 11:30). 그런데 이 지역은 전투 장소로 묘사된 '이스르엘 골짜기' 남쪽에 있으므로 본문에 나오는 '모레 산'은 아니다. 본문에 언급된 '모레 산'은 '하롯 샘' 북쪽의 어느 한 지점에 있는 곳으로 보인다. 이때에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그를 좆는 백성이 너무 많아서 미디안 족속을 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사실상 기드온을 좇은 이스라엘 백성은 32,000명으로(3절) 메뚜기 떼 같은 적들과 비교할 때(12절;6:5)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군사들의 수를 줄이라고 명령하셨다. 그 이유는 1) 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고, 2) 믿음의 정예용사를 뽑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이유는 이방의 압제를 그치게 하려는 것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서 그들로 하여금 우상을 보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투 인원을 소수로 제한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1)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였으며, 2)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삼상 14:6).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들은 지금 돌아가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 대적과 싸움에서 '두려워서 떤다'는 것은 믿음의 부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들이 전쟁에 나간다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여 대적을 치는 일에 방해가 될 것이며, 승리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힘으로 승리했다고 자만할 것이다. '길르앗 산'은 요단 동편의 갓, 르우벤, 므낫세 반 지파의 지경에 걸쳐 넓게 퍼져 있는 길르앗 산지를 가리킨다(5:17).  때문에 혹자는 본문에 나오는 길르앗은 '길보아'를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는 곳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산지가 아니라 길보아 산기슭의 하롯 샘 곁(1)이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그러나 본 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길르앗' 이라 하면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일컫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서'란 말은 '-으로'라고 번역하여, 본절을 '길르앗 산으로 떠나 돌아가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경우 기드온을 따른 사람들 중에는 그와 같은 지파인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점에 의거할 때(6:35) '길르앗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자연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역 성경 RSV도 이를 '집으로 돌아가라'(let-return home)는 의미로 의역하였다. 기드온의 지시로 인해 22000명의 군사가 돌아가고 10000명의 군사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이 숫자는 수많은 대적들을 치기에는 매우 부족한 숫자였다.


 2-4.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4-8)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 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먹은 삼 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남은 백성 중에는 남의 비난이 두려워서 남아 있는 자들이나 명예를 바라고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남아 있는 1만 명도 많다고 하신 후에 또 다시 군사를 돌려보내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여 전쟁에 나갈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을 데리고 전쟁에 나가라고 지시하셨다. 기드온은 군사들을 물가로 데려가서 물을 마시게 하였다. 그 때에 300명의 군사들은 손으로 물을 퍼서 개처럼 혀로 물을 핥아먹었고, 나머지 군사들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따로 세우고 물을 손으로 퍼서 혀로 핥아먹는 군사들만 데리고 전쟁에 나가라고 지시하셨다. 이들은 서서 물을 움켜 조금씩 핥았던  자들이다. 이들은 서서 혀로 물을 핥았던 점으로 보아 방심하지 않고 주위를 경계하면서 물을 마신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매우 조심성이 요구되는 횃불 작전(15-23절)에 적합했을 것이다(Wycliffe). 그러나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은 전쟁에 임한 사람으로는 너무나 태평스러운 자세를 취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조심스러운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최종적으로 선발된 삼 백 명의 용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장차 맞게 될 전투에 대해 두려워 떨지 않았다(3절). 즉 비록 숫자로는 열세에 있었지만,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민족에 대한 소명으로 굳게 무장되어 있었다. 둘째, 그들은 철저한 임전 태세를 갖춘 자들이었다(6,7절). 비록 소수일망정 확고한 목표 아래 한 마음 한 뜻으로 강력하게 결집될 때 위대한 성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300명의 군사들만 남겨두고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 중에서 불 신앙적인 요소를 제거하시고 믿음으로 무장된 사람들을 선발하신 후에 비로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본격적으로 역사 하셨다(9-25절). 그러므로 나머지 군사들은 전쟁에 사용되는 나팔과 양식을 300명의 군사들의 손에 넘겨주고 자기 집을 돌아갔다. 그때에 미디안 군사들은 아래쪽 골짜기 중간에 진을 치고 있었다.


 2-5. 용기를 주시는 여호와: 승리의 징조(9-14)

  "9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가에 내려간즉, 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14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일어나 골짜기로 내려가서 적진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즉시 명령을 내리신 것은 아마 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군대의 수효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군사들을 기드온의 손에 붙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300명을 남겼으나 수많은 적들을 생각할 때 아직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서 부하인 부라를 데리고 미디안의 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은 후에 기드온이 힘을 얻어서 미디안을 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믿음 약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적과 싸울 수 있는 담력을 주려고 하셨다. 적들이 순수한 병사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유목민들이므로 여인들과 아이들도 데리고 있었음을 암시 해 준다. 아마 그들은 무장한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진과 마주 대하여 배치했을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짐승과 더불어 안전 한 곳에 배치시켰을 것이다(Goslinga). 기드온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부관인 부라를 데리고 적들이 진을 친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들이 내려가서 보니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와 같이 많았고, 그들이 타는 약대는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이 있었다. 기드온이 부하 부라와 함께 적의 진지로 정탐하러 간 때가 밤이었으므로(9절) 적군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누워 있다'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골짜기'는 '모레산 앞 꼴짜기'(1절)를 의미한다.

  이처럼 적들은 이스라엘 군대를 가까이 두고도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기드온이 정탐하러 갔을 때는 아무리 늦어도 밤 10시에서 11시 이전이었다(19절). 이때에 그들이 모두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정신이 해이해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약대는 유목민들이 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운송 수단이다. 특히 미디안의 침략에는 이 약대가 병기로 사용되었다. 그것들은 전투 시에 상당한 기동력을 발휘했을 것이고 그 위용 면에서도 상대방을 크게  위압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약대를 사용한 예는 여기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적절한 무기였음에 틀림없다. 기드온은 그 곳에서 미디안 사람이 자기 동무에게 꿈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사람은 자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그 장막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때때로 꿈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민 12:6; 욥 7:14; 렘 23:28).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흔했던 음식으로 '비천함'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바 이 '보리떡'은 넓은 의미로 당시 가난에 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6:15) 기드온을 상징한다(14절). 그 꿈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동료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미디안 사람이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미디안 진영이 '기드온'에 대한 소문을 듣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6. 공격 준비(15-18)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16 삼 백 명을 세 부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따라하되 내가 그 진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기드온은 그들의 꿈과 해몽이 정확한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리라 약속했던 증표였기 때문이다(9-11절). 따라서 그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을 자기에게 붙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 사실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장비와 훈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 군대의  정신력이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전투력이 두려움으로 인해 매우 저하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즉시 이스라엘 진으로 돌아와서 군사들을 깨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디안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고 선언하였다. 기드온은 삼 백 명이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의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게 하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였다. 기드온이 수립한 횃불 작전(19-23절)은 비밀스럽게 적 진 가까이 가서 적들을 당황하게 만들어 그 사이에 적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기드온이 300명을 100명씩 세 부대로 나눈 것은 보다 비밀을 잘 유지하고 적들이 방어할 채비를 갖추기 전에 기습 공격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 기드온 군대의 주무기는 나팔과 항아리, 그리고 횃불이었다. 이는 전쟁 무기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꼭 필요한 무기였다. 1) 나팔은 마치 수많은 군사들이 공격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한 도구였고, 2) 항아리는 횃불을 감추는 데에 사용되었으며, 3) 횃불은 군대의 규모를 매우 많게 보이도록 위장하고 대적들의 장막을 불태우는 데 사용될 무기였다. 오늘날 성도들도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복음의 횃불을 밝히 들고 나가야 한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자기를 보고 있다가 자기가 하는 대로 따라하라고 지시했다. 기드온은 자신과 자기를 좆는 자가 모두 나팔을 불면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들도 함께 진 사면에서 나팔을 불면서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고 외치며 공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횃불 작전은 한 두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실패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드온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호에 따라서만 움직이도록 명령했다.


 2-7. 횃불 작전(19-23)

  "19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21 각기 당 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 삼 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기드온과 그를 좇은 일 백 명의 군사는 이경 초에 진이 있는 곳에 도착했으며 이때는 보초가 교대할 시간이었다. 구약 시대에 히브리인들의 밤 시간 계산은 해지는 시각과 해뜨는 시각을 중심으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즉 해질 때부터 밤 10시경이 초경(애 2:19)이며, 10시경부터 2시까지가 이경, 그리고 2시부터 해뜰 때까지가 삼경이다. 따라서 '이경 초'는 밤 10시에서 11시 사이를 가리킨다. 한편 신약시대에 와서 이러한 시간 구분법은 좀더 세분되어 일, 이, 삼, 사경으로 나뉜다(마 14:25; 막 6:48). 이는 곧 유대인들이 당시 로마인들의 시간 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보초들이 교대하는 시간을 기점으로 하여 기드온 군대는 공격을 개시했다. 그 시각은 근무 교대를 위해 인수 인계를 함으로 말미암아 아무래도 외부 경계에 소홀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때에 기드온은 나팔을 불면서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세 부대가 모두 기드온을 따라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 손에는 나팔을 불면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라고 소리쳤다. 기드온의 '횃불'과 '나팔 소리' 그리고 그들이 소리 치는 함성 소리는 미디안 사람 뿐 아니라 편히 잠자고있는 약대 떼까지 놀라게  하였다. 그곳은 골짜기였으므로(12절) 미디안 사람들에게는 평지보다 나팔 소리와 함성 소리가 더욱 크고 우렁차게 들렸을 것이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라는 소리는 이스라엘 군대의 대표가 누구인지를 보여 준다. 즉 이스라엘 군대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시는 군대이며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군대였다.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종으로서 하나님의 지시를 대변하고 있었다. 한편 기드온은 300명 용사들에게 이 함성을지르게 함으로써 이미 이 이름들로 인해 두려워 떨었던 미디안 군대를(14절) 더욱 놀라게 했다.

  기드온의 용사들은 포위망을 좁히지 않고, 단지 적진의 사면을 에워싸고서 계속하여 나팔을 불며 횃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서 있었다. 그러자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 백성의 나팔 소리와 함성에 의해 무너졌던 것처럼, 미디안 군인들의 마음은 무너져 버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혼비 백산하여 도주하기에 급급하였다. 요컨대, 이스라엘의 승리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계 19:21). 그리고 삼 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적군들이 자기편을 치게 하셨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하며 도망을 쳤다. 불의와 비리는 스스로 자멸하기 때문에 구태여 손을 써서 패망시킬 필요조차 없을 때가 많다. 이 때 성도의 할일은 다만 진리의 빛을 발하고 승리의 함성을 외치는 일 뿐이다. 그들은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렀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다. 스레라의 벧싯다는 아직까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지명이다. 일부 학자는 '스레라'를 (수 3:16, 왕상 7:46)에 언급된 '사르단'이라고 한다(Keil). '사르단'은 여리고 북방 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던 성읍이다. 이곳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여리고 가까운 요단 나루턱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그 부근에는 '아벨므홀라'가 있다. 이곳으로 도망하는 미디안 사람들을 추격하기 위해 므낫세 남쪽에 있는 에브라임  지파가  동원된 점으로 보아(24절) '스레라'가 '사르단'과 동일한 성읍일 가능성이 크다. 답밧은 요단 강 건너편, 즉 동쪽에 위치한 성읍이었다는 점 외에는 달리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일부 학자는 이 곳이 길르앗 산지의 '라스 아부 타밧'(Ras Abu Tabat)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벨므홀라도 역시 요단 동편의 답밧부근에 위치했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알려진 바가 없다. (왕상 19:16)에는 엘리사의 고향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동일 지명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은 벤산 남쪽 16km 지점의 요단강 서편의 한 유적지가 바로 이 '아벨므홀라'인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Wycliffe).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 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추격하였다.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 부터라는 말은 '이들 지파들의 지경(地境)에서부터'란 뜻이다(6:35).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기 자기 지파의 영토에 모여서 적군들을 추격했다.


 2-8. 에브라임의 협공(24-25)


  "24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행하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나루턱을 취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그 나루턱을 취하고, 25 또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 사람을 추격하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 기드온에게로 나아오니라."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의 지경 남쪽에 넓게 펼쳐진 산지를 중심으로 그들의 경계를 이루었다(수 16,17장). 이 지파는 처음에는 전쟁에 소집되지 않았으나(8:1) 도망치는 미디안 사람들을 추격하기 위해 후에 소집되었다. 이로 보아 미디안 사람들이 주로 도망해 간 곳은 가나안 남부 지역임이 분명하다. 벧 바라는 이곳의 위치는 확실치 않다. 다만 문맥상으로 보아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요단 나루턱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나루턱을 취했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그 물들을(the waters) 취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벧 바라에서 여리고 동편 요단 나루턱까지 이르는 모든 나루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이 나루턱들을 지키게 한 것은 적들이 요단을 건너 동편 땅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6:33).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은 이들은 미디안 연합군의 군사 지도자 중 일원이었지 미디안 족속의 최고 통치자들은 아니었다. 이것은 8:5에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언급된 점으로 보아서도 확증된다. 왜냐하면 한 족속에 두 왕이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렙과 스엡은 (사 10:26) 외에는 성경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오렙'은 '갈가마귀'를 '스엡'은 '늑대'를 뜻한다는 것 외에 어디에 위치하였던 바위이며 포도주 틀이었는지 알 수 없다(Lange).


 2-9. 에브라임 지파의 불평(8:1-3)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미디안과 싸우러 나갈 때에 자기들을 부르지 않은 일로 인해 불평을 했다. 이들은 12지파 중 가장 불평 불만이 많은 지파였다.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므낫세 지파와 더불어 자기들이 기업으로 받은 영토가 다른 지파에 비해 좁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다. 또한 훗날에도 그들은 본 절에서 기드온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사사 입다에게도 하면서 다투었던 적이 있다(12:1). 훗날 이스라엘 왕국을 분절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로보암 역시 이 에브라임 사람이다(왕상 11:26).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에 빠진 지파는 비단 에브라임 한지파 뿐만 아니라 여러 지파들이 었다(6:35). 더군다나 에브라임 지파는 전쟁 말기에서나마 참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러한 말로 비난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 지파 중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기드온이 에브라임 사람들을 높여 주면서 그들의 노를 풀었던 사실에서 분명히  나타난다(2,3절). 기드온은 겸손하고 온유하여 명예와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의 분별력은 뛰어나 에브라임 사람들의 불평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내부의 분열위험을  감지하고 지혜롭게 대처하였다(잠 15:1). 그는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자기의 맡물 포도보다 낫다고 하였다.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를 거둔 후에 남은 포도를 의미한다(사 24:13). 여기서 '포도찌꺼기'즉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보다 맛이 시고 질도 훨씬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에브라임 산지의 '끝물 포도'가 자기 고향에서 생산되는 '맏물 포도'보다 낫다고 한 것은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기드온 집안 사람들인 아비에셀(6:11)이 처음부터 끝까지 세운 공로보다 전쟁의 막바지에 참여한 에브라임 지파의 공로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물론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방백을 죽였을 뿐 아니라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등 큰 역할을 하였음에 틀림없다(7:24,25). 그러나 아무리 낮게 평가하여도 싸움의 전과정을 주도했던 기드온과 그의 소속 가문의 업적은 에브라임 지파의 것에 비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뒤떨어질리 없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이처럼 겸허한 태도를 취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심 때문이었다. 즉 그는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지파들간에 분열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반목(反目)보다는 화평을 추구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말로 화평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디안 연합군이 기드온의 군대에게 쫓겨 도망갈 때 요단 나루터에서 그 길목을 지키고 있던 에브라임 지파가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였다. 그러므로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명예로운 일을 하게 하셨다고 그들을 추켜세웠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미디안 두 방백을 죽이는 명예로운 전과(戰果)를 올리게 하신 이상, 자기가 행한 일은 그 일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블과하다고 그들을 위로했다. 이 말을 들은 에부라임 지파는 노를 풀게 되었다. 이 말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는 교훈이 꼭 들어맞은 경우이다. 만일 기드온이 자신의 지도자적 권위에 도전해 온 에브라임 지파를 용납치 아니하고 또한 저들의 시비를 공박하려고만 들었다면 이처럼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아는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빌 2:3).


 2-10. 숙곳과 부누엘 사람들이 기드온 돕기를 거절함(8:4-9)

  "4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 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종자가 피곤하여 하니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6 숙곳 방백들이 가로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7 기드온이 가로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 내가 들 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8 거기서 브누엘에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9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평안이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기드온과 그를 좇은 300명의 군사는 '모레 산 앞 골짜기'(7:1), 즉 이스르엘 골짜기에서부터 적과 싸우며 요단 나루턱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적군을 추격하여 매우 지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피곤하고 지쳤지만 끝까지 적을 추격했다. 이들이야말로 충실한 정병(精兵)이며, 최후까지 긴장하여 희생적 봉사에 참여한 순교적 투사들이었다. 승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잠시 출전하여 다행히 두 적장을 죽인 공로를 내세워 이익과 명예를 얻으려 한 에브라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충성이었다. 기드온은 숙곳 사람들을 찾아가서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쫓기에 지친 자기에게 음식을 달라고 요청했다. '숙곳'은 요단 동편의 갓 지파가 기업으로 차지한 성읍이다(수13:27). 이곳은 얍복 강에서 북쪽으로 약 16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본절에서 '숙곳 사람들'이란 그곳에 거하는 이스라엘 거민인지 가나안 원주민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기드온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스스럼없이 떡덩이를 요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거민은 갓 자손들일 것이다. 본문에는 '세바'와 '살문나' 두 사람이 모두 미디안 왕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은 각기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의 왕 중 어느 한 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미디안 두 왕'이라 칭한 까닭은 아마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이 연합하여 미디안 연합군을 이루었기 때문인 듯하다(6:3). 즉 세바와 살문나는 미디안 연합군의 두 왕이었다. 한편 이 두 왕은 '오렙'과 '스엡'이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우는 중에 (7:25) 요단 강을 건너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숙곳' 거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은 기드온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를 거절했다. 숙곳 방백들은 기드온의 300명 용사를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드온의 군대가 미디안에게 패할 경우 미디안으로부터 받게 될지 모를 보복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기드온에게 말한 것이다. 이것은 동족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한 이기주의적이며  기회주의적인  태도였다. 기드온은 분노하여 자신이 세바와 살문나를 치고 돌아올 때에 숙곳 사람들을 들 가시와 찔레로 그 성읍 사람들의 살을 찢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모래 산 앞 골짜기에 진쳤던 대적들을 기습한 이래(7:19이하) 계속된 추격전으로 인해 기드온의 용사들은 기진 맥진한 상태였다(4절). 거기다가 예상 밖의 푸대접을 받은 터였지만, 기드온은 전의(戰意)를 상실하지 않고 오혀려 승리의 확신을 더욱 굳게 다지고 있다. 오늘날 주의 일을 하는 데에도 이와 유사한 어려움이 많이 닥친다. 응당 협력해야 할 사람이 의외로 냉담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여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고후 4:8; 빌 3:14).

  '들 가시'는 광야에서 자라는 매우 딱딱한 가시이다. 원문에는 이것을 '광야의 가시'(코체 하미드바르)라고 표현하고 있다. '찢는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타작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혹자는 본문을 '기드온이 그들을 들 가시와 찔레 위에 눕혀 놓고 타작용 기구로 그들 위에 눌러 끌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한다(Cundall). 또한 어떤 학자들은 '타작하다'란 맡을 '가혹한 형벌을 가하다'란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고있다(Keil & Delitzsch, Pulpit). 기드온이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방백들의 살을 타작하듯이 징벌하겠다는  의미로 기드온의 극도로 분노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 까닭은 지금 기드온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이 하나님의 성전(聖戰)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관망만 하고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정죄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 적극 동참하는 까닭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승리가 불을 보듯 명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드온은 숙곳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한 후에 다시 부누엘 사람들을 찾아가서 음식을 오텅하였다. 그러나 그 곳 사람들을 역시 숙곳 사람들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 이에 기드온은 자기가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그 곳에 잇는 망대를 헐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부누엘은 '브니엘'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으로서 이 곳은 숙곳 동쪽 약 9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텔 에드 다합 에쉬 쉐르퀴예'(Tell edh-Dhahab esh-Sherqiyeh)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숙곳과 마찬가지로 얍복 강 바로 위에 있는 갓 지파의 성읍이었다. 이 '브니엘'이란 명칭은 야곱이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 그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하여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칭했던 데서 비롯되었다(창 32:30). '망대'는 성읍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파수꾼들은 이 곳에서 적의 침입을 관찰하고, 적의 침입이 있을 때 나팔을 불어 전 성읍에 위험을 알린다. 따라서 이러한 망대가 무너지면 그 성읍이 적에게 점령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기드온이 이 '망대'를 헐어 버리겠다고 브누엘 사람들에게 위협한 것은 그 성읍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의미였다.


 2-11. 기드온의 승리(8:10-12)

  "10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 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일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좇아 거기 있더라. 11 적군이 안연히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편 장막에 거한 자의 길로 올라가서 적군을 치니, 12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추격하여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군대를 파하니라."

  그때에 세바와 살문나는 갈골에 있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전사한 동방 사람의 군사들은 12만명에 달했다. 그리고지금 세바아 살문나와 함께 남은 구사들은 약 1만 5천명 정도였다. 갈골의 위치에 대해서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은 카르카리아(Carcaria) 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카르카리아' 성은 사해 동쪽의 '페트라'(Petra)에서 남쪽으로 하루 길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모압 사람의 지경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 곳은 갓 지파의 영역에 있는 '노바와 욕브하'(11절)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므로 '갈골'의 위치로는 적당하지 않다. 히브리 본문에는 '갈골'을 보통 '울타리로 쳐진 곳'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는 '양의 우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모세 당시 갓 자손은 '욕브하'와 그 근처 성읍을  점령하여 그곳에 양의 우리를 지은 적이 있다(민 32:35,36). 그러므로 본문의 '갈골'은 고유명사로 취급하기보다는 보통 명사로 취급하여 '노바'와 '욕브하' 근처에 있는 '양의 우리로 지어진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십 이만 명이 전사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전사 숫자였다. 그리고 패잔병에 해당하는 일만 오천 명 또한 기드온 삼 백 용사에 비하면 무려 50배에 달한다. 따라서 그들은 갈골에 이르러 진영을 가다 듬어 일전(一戰)을 준비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의 크신 권능을 체험한 바 있는 기드온 용사들의 사기는 의기 충천해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패잔병들은  위축되어 또 다시 도주하기에 급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군대의 호위 가운데서 안전하게 거하고 있었다. 세바와 살문나를 호위하고 있는 군사들은 자기들이 기드온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에서 기드온의 300명 용사가 그들을 치자 그들은 예기치 않은 공격에 놀라 전의를 상실했다. 이때에 기드온은 노바와 욕브하 동편 장막에 거한 자의 길로 올아가서 세바와 살문나의 군사들을 기습 공격했다. 노바와 욕브하 동편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에게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아마 이곳은 갓 지파와 동방 사람들이 사는 지경의 경계 지역일 것이다. 한편 '노바'와 '욕브하'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 성읍이었는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헤스본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곧 길르앗 산지의 어느 한 지점이었을 것이다. '파했다'('하라드')는 말은 '공포에 떨게 하다', '당황하게 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기드온에게 세바와 살문나가 사로잡혔다는소식을 접한 미디안 연합군이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기드온군과  미디안 연합군과의 싸움은 끝이 나게 되었다.


 2-12. 숙곳과 부느엘에 대한 기드온의 복수(8:13-17)

  "13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날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14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신문하매 숙곳 방백과 장로 칠십 칠 인을 그를 위하여 기록한지라. 15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가로되, 너희가 전에 나를 기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16 그 성읍 장로들을 잡고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17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기드온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숙곳에 사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헤레스 비탈'이란 말은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과 싸워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았던 곳인 '갈골'(10-12절)에 대한 보충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소년'('나아르')은 '사환'(삼하 9:10), '어린 아이'(출 2:6), '청년'(출 24:5; 33:11)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단어이다. 본문에 그가 숙곳 방백과 장로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청년'이었을 것이다. 기드온은 그 쳥년을 심문하여 그 성의 지도자들과 장로들의 명단을 모두 적게 하였다. 사로잡힌 소년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숙곳의 방백과 장로 칠십 칠 인의 명단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드온은 숙곳 성에 가서 숙곳 방백들에게 전쟁에서 사로잡은 미디안 두 왕(12절)을 보여주었다. 기드온은 그 왕들을 보이며 그들이 자기를 돕지 않고 조롱한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기드온은 자기가 맹세한대로 숙곳의 지도자들을 잡고 들 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찔렀으며, 브누엘에 가서 그 곳 망대를 헐고 그 곳 사람들을 죽였다. 이로써 기드온은 여호와의 전쟁에 협조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수행하였다.     


 2-13. 세바와 살문나를 죽임(8:18-21)

  "18 이에 세바와 살문나에게 묻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자였는가?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모두 왕자 같더라. 19 가로되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내가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0 그 장자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21 세바와 살문나가 가로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대저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기드온이 일어나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 약대 목에 꾸몄던 새 달 형상의 장식을 취하니라."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에게 그들이 다볼에서 죽인 자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다. '다볼'(Tabor)은 이스라엘 골짜기에 위치한 '다볼 산'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세바와 살문나는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탈할 때(7:1)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쳤다. 이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바로 기드온의 형제들이었다(19절). 세바와 살문나는 자기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기드온과 같았으며 왕자와도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대답했다. 이로 보아 기드온의 형제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기드온은 바로 그들이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었다고 말했다. 공동 번역은 이를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난 내 형제들이다'로 번역하였다. 이는 세바와 살문나에게 죽임 당한 자들이 단순히 기드온과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분명히 기드온의 친 형제였음을 말해준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에게 그들이  만일 자기 형제들을 살렸었다면 자기도 그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고대 근동에서는 누군가가 피살 당한 경우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족이 복수자가 되어 살인자의  생명을 요구할 의무와 권리가 있었다. 그것은 노아 시대 이후 '피를 흘리게 한 자는 그 자 역시 피를 흘려야 한다'는 율법 사상에 근거한 규례였다(창 9:6). 따라서 본절의 기드온의 보복 행위 역시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공의(公義)의 심판을 가하는 행위였다(신 19:6).

  기드온은 장자 여델에게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미디안 연합군을 지휘하던 세바와 살문나가 소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두려워서 그들을 죽이지 못했다. 기드온의 장자 여델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일 만큼 용기 있는 소년은 아니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한 것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였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은 어려서 300명 용사 안에 분명히 포함되지 못하고 집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7:2-8). 세바와 살문나는 기드온의 장자 여델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의 힘과 용기도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드온에게 직접 자기들을 죽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힘없는 어린아이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용사에게 죽는 것이 덜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이에 기드온이 그들을 쳐서 죽이고 그들에 가지고 있던 새 달 형상의 장식을 취하였다. 이 장식은 금이나 은으로 된(26절) 반달 형상의 장신구이다(사 3:18). 미디안 족속들은 월신(月神)을 숭배하던 관습에 따라서 반달 모양의 장식품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기드온은 이 장식물을 세바와 샅문나를 쳐서 승리한 기념으로 취했다. 한편 이외에 그와 함께 출전했던 이스라엘도 미디안 사람을 친 후 여러 가지 장식물을 노략물로 가져왔다(24절). 이와 같이 전쟁에 승리하여 적국의 물건들을 노략물로 취하는 것은 고대 전쟁에 있어서 보편적인 일이었다.


3. 승리 후의 기드온(8:22-35)


 3-1. 왕권을 거부하는 기드온(8:22-26)

  "22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24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청구하노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니, 그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귀고리가 있었음이라. 25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 던지니, 26 기드온의 청한 바 금귀고리 중수가 금 일 천 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새 달 형상의 장식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의 입었던 자색 의복과 그 약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이 전쟁이 끝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한 기드온과 그 집안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요구한 것은 당시 고대 근동에 왕위 세습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당시의 사사 제도는 아직 미분화된 이스라엘의 통치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과도기적 체제였다. 그리고 왕정(王政)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시하신 바 있다(신 17:14-20).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기드온의 인간적 용맹과 지도력에 의존하여 안전을 확보해 보려는 의도에서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때가 이르러 왕을 택하시고 세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위이다. 이스라엘이 진정 왕정이  도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다면, 백성들은 하나님께 간구했어야 마땅하였다. 따라서 임의로 왕을 세우고자 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왕되신 하나님(삼상 8:7; 12:12)을 경홀히 여기는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 요청을 거절했다,. 그는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기드온이 했던 이 말은 백성들로 하여금 인간 지도자를 의뢰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데신 기드온은 그들에게 그들이 탈취한 귀고리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요청대로 겉옷을 펴고 자기들이 탈취한 귀고리를 거두어 기드온에게 주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처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 낳은 아들이다(창 16:15). 그 후손인 이스마엘 족속은 시내 반도 북동쪽에 있는 바란 광야를 중심으로 유목 생활과 대상(隊商)을 하였으며,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인 미디안 족속(창 25:2)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본서의 저자는 이스마엘과 미디안을 같이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실상 별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이스마엘 사람'은 아라비아의 유목민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며 넓게는 미디안족도 이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들은 항상 이동하면서 생활했으므로 언제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물건과 바꾸어 사용할 수 있는 귀중품 특히 금을 많이 지니고 다녔다. 겉옷('시믈라')은 사막 지대 사람들이 낮에는 겉옷으로, 밤에는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던 긴 '외투'를 가리킨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에 나오는 '귀고리'가 사실은 '코걸이'였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당시 아라비아 일대의 유목민들은 많은 장식품들로 코를 단장하는 풍습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풍습은 오늘날에도 일부 근동 지방에서 볼 수 있다(A.C.Hervey). 그러나 '귀고리'('네젬')라는 말은 일반적인 '장식용 보석'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귀고리와 코걸이를 막론한 모든 종류의 장신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눈 것이 좋을 것이다(Lange).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두어 기드온에게 준 금귀고리는 모두 금 일 천 칠백 세겔이었다. 한 세겔(Shekel)은 약 11.4g이었기 때문에 이 무게는 21.38kg 정도 되었다. 이 외에도 기드온이 취한 물건에는 새 달 형상의 장식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의 입었던 자색 의복과 그 약대 목에 둘렀던 사슬이 포함되었다.

고대 애굽 및 팔레스틴 일대에서는 지중해의 조개에서 추출한 액으로 붉은 보라 빛 염료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 자색 염료로 염색한 천이나 의복은 매우 귀하여 대개 귀족이나 왕족들만 착용하였다.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체포한 후 그에게 붉은 홍포를 입힌 까닭도 곧 '자색'이 당시 '왕'을 상징하는 색깔이었기 때문이다(마 27:27,28).


 3-2. 후기(8:27-35)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 28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의 사는 날 동안 사십 년에 그 땅이 태평하였더라. 29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30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인이었고 31 세겜에 있는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32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비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하였더라. 33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34 사면 모든 대적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하며, 35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의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서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기드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받은 금을 가지고 에봇을 하나 만들어서 자기 성읍(오브라)에 두었다. '에봇'(Ephod)은 본래 대제사장의 의복으로서 앞으로는 가슴을, 뒤로는 등을 덮었던 조끼 모양의 상의(上衣)였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에 대제사장은 이 옷을 입고 우림과 둠밈으로 판결을 구했다(출 28:6-30). 그런데 기드온은 금으로 이 예봇 형상을 만들어 자기 성읍에 둠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소지를 마련하였다. 즉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로에 있는 성막의 제사에 집중하지 않고, 오브라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함으로써 무질서 속에서 점차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음란'이란 말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된 용어이다(겔 16:58; 23:27,29). 즉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이 만든 에봇을 우상을 섬기듯이 섬긴 것이다. 미디안 사람이 기드온으로부터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그 세력이 매우 약해져서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못했다. 미디안 사람들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살아 남았으며 유목생활도 계속 유지하였지만(사 60:6), 더 이상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7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미디안 세력이 철저히 진멸됨으로써, 이스라엘은 다시 평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평화 이면에는 타락의 움직임이 음틀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 생전에도 에봇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등 가증한 행실을 버리지 못하였으며(27절) 기드온의 사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알을 열렬히 숭배하기 시작하였다(33절). 요컨대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신앙 성숙의 기회로 삼지 않고 도리어 육신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갈 5:13). 우리는 이러한 기사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은 우상 숭배 욕망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굳이 새겨진 이방 신의 형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황금 만능주의, 출세 제일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등도 우상 숭배나 다름이 없다(사 60:6).

  기드온이 노년(老年)에는 사사로서의 공직을 사퇴하고 조용히 집에 머물면서 여생을 보내었다. . 기드온이 아내를 많이 얻어 70명이나 되는 아들을 둘 만큼 이스라엘 사회에서 큰 지위를 얻었다. 특히 이것은 기드온이 비록 왕위를 거절했으나 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짧은 구절은 기드온이 말년에 영적으로 매우 타락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드온은 많은 아내들뿐만 아니라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첩(妾)을 거느리고(31절) 마치 큰 방백과 같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일부 일처 제도를 세우셨으나(창 2:18-25) 이스라엘 백성은 당시 주변 여러 나라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 일부 다처 제도를 공공연하게 실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드온은 사사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방 악습을 따랐으며, 그로 인해 70명의 아들이 거의 몰살당하는 징벌을 받게되었다(9:5).

  기드온의 본래 거주지는 '오브라'였다(6:11). 그런데 그는 세겜에 첩을 두고 있었다. 이 사실은 기드온이 첩들을 여러 지역에 많이 두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한편 '세겜'(Shechem)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50Km 정도 떨어진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성읍이다(수 20:7). 아비멜렉은 '왕의 아비' 또는 '아버지는 왕이다'는 의미이다. 이 이름은 그의 아버지 기드온의 지위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기드온이 낳은 70명의 아들 중 유독 이 '아비멜렉'이 언급된 것은 훗날 그가 왕위 찬탈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9장). 아비에셀 사람은 므낫세 지파 중 아비에셀의 가계(家系)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수 17:2). 기드온과 그 아비 요아스도 이 아비에셀 사람이다(6:11). 사사의 죽음은 곧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과 직결되었다(2:19; 3:12; 4:1; 6:1).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은 주로 우상 숭배였으며, 이에 따라 여호와 종교는 그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또한 이스라엘 전체 역사 가운데 가장 심각한 우상 종교는 바알 종교로서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이후에도 계속될 정도로 그 뿌리가 깊었다(왕하 10:18,28; 21:3).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할 때도 이 종교는 이스라엘 가운데 잔존해 있었다(렘 2:8). 바알브릿은 구약시대 당시 세겜 지역에 존속했던 가나안인들의 바알 신을 말한다. 그 뜻은 '언약의 바알'로 곧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바알과 언약을 맺었음을 보여 준다. 즉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매우 열렬히 숭배했음을 가리킨다. 한편 '바알브릿'은 '엘브릿'(언약의 엘, 또는 언약의 하나님)으로도 알려졌는데(9:46),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그와 언약을 맺었음을 의미한다(34절). 이처럼 '바알브릿'이란 말은 이스라엘 사회에 우상 숭배가 극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의 사후에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는 곧 저들이 일전에 하나님 앞에서 패역하여 대적들의 손에 빠졌던 것(6:1-5)은 물론 그들이 부르짖자 기드온을 통해 구원해 주셨던 일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과거를 조금이라도 기억하였더라면 사사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타락의 역사'를 되풀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진 이후 이전에 바알 단을 파괴하였던 여룹바알(6:25-32), 곧 기드온의 가정을 선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 기드온에게 대대로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그의 집에 충성을 보인 것과는 너무 대조적인 자세이다(22). 바로 이러한 점은 훗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 거민들과 공모하여 반역을 도모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9장).

                                * 적용 및 교훈 *

1. 여호와께서는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인해 그들을 징계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짖을 때에 즉시 구원하지 않으시고, 선지자를 보내 그들을 책망하셨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거듭된 징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책망하신다.

2. 하나님은 가장 작은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연약한 기드온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셨다.  

3. 하나님은 싸우기 전에 먼저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상을 제거할 것을 명하셨다. 성도들이 사단에 대해 먼저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

4. 하나님은 300명의 군사로 미디안과 싸우게 함으로 승리가 여호와께 달려있음 보여주셨다.

5. 기드온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왕이 되기를 거절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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