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45과)

 여호수아(6):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22-24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얻는 일에 필요한 모든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은 세 번 명령("요단 강을 건너라! 가나안을 점령하라! 기업을 분배하라!")을 하신 후에, 그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셨다. 이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모든 일을 신실하게 이루셨다. 이제 남은 것은 이스라엘이 신실하게 여호와를 섬기는 일만 남았다. 여호수아의 넷째 단락은 여호수아가 이 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는 백성들에게 여호와만 섬길 것을 지시함(22:25,27).
2) 이스라엘 장로들과 두령들에게 여호와만 사랑할 것을 부탁함(23:2-6).
3)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으로 불러서 여호와만 섬기도록 언약을 맺게함(24:).         

요단강을 건너라!

가나안을 정복하라!

땅을 분배하라!

여호와만 섬기라!

도하준비

정탐
파견

요단
도하

중부
정복

남부
정복

북부
정복

정복요약

요단동편
분배

유다요셉기업

기타지파 기업

도피성
레위성

동편지파

1차

2차

모세죽음

길갈/군대장관

심판과 구원

12지파

레위인

제단

언약갱신

임종

1     2

3     4

5:1
   -12

5:13
   8

9
   10

11장

12장

13 

14 
  17

18
 19

20
    21

 22

  

23

  24



1. 요단 동편 지파들에 대한 기사(22장)

 1-1. 요단 동편 지파들의 귀환(22:1-9)

  가. 여호수아가 요단 동편 지파의 귀환을 허락함(1-4)
  "1 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2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일에 내 말을 너희가 청종하여 3 오늘날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 하니님 여호와의 명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4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요단 도하 후 약 7년이 지난 지금(14:20),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 분배 작업은 완전히 끝이 나게 되었다. 일찍이 요단 동편에서 먼저 기업을 받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다른 지파들이 요단 서편의 기업을 차지할 때까지 앞장서서 가나안 정복 싸움에 참여할 것을 약속했다(민 32:16-19, 25-27,31,32). 이 지파들은 그 약속대로 나머지 지파가 기업을 얻을 때까지 7년 동안 가나안 정복 사역에 참여했다. 여호수아는 이 모든 일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 그들을 자기들의 기업이 있는 요단 동편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여호수아는 먼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군사들이 모세와 자신의 명령을 잘 순종하였음을 칭찬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한 것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종임을 믿었기 때문이다(1:16-18).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서 뽑힌 용사 40,000명은 요단 강을 건넌 후부터 약 7년 동안이나 자기 기업의 땅과 가족을 떠나 다른 지파의 정복 사역에 참여했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모세와 맺은 약속을 지켰고, 하나님의 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했다. 여호수아는 이제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에게 기업과 안식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더 이상 요단 서편에 머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제 그들은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그들에게 준 기업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던 것이다.


 
 나. 여호수아가 여호와만 섬길 것을 부탁함(5-7(상))
  "5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6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7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나머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편 서편에서 그 형제 중에서 기업을 주었더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보내면서 땅 개간이나 영토 확장 등의 권고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섬기라고 간곡히 권하였다(Matthew henry). 특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한 것은 신명기의 핵심으로(신 10:12,13; 13:3,4), 모세가 거듭하여 권면한 사항이었다(신 6:5; 11:13).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는 두 지파 반은 더 근신하여 생명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했다. '친근히 한다'는 말('다바크')은 '착 달라붙다' '굳게 매달리다', '바싹 뒤따르다'란 뜻으로 이 말은 하나님과 전인격적 연합이나 친밀한 교제를 가리킨다. 다른 곳에서는 이 말이 '부종(附從)하다'로 번역되었다(신11;22; 13:4). 여호수아는 신앙의 권면을 한 후에 측복을 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다. 여호수아가 공평한 전리품 분배를 부탁함(7(상)-9)
  "7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8 일러 가로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 금, 동, 철과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 형제와 나눌지니라 하매, 9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대로 얻은 땅 곧 그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들을 공평하게 나누라고 권했다. 전리품을 형제와 나누는 일은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원칙이었다(민 31;25-47; 삼상 30:21). 전쟁의 공은 일선 군인뿐 아니라 후방에서 전쟁을 뒷받침한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졌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잘 보여준다. 이런 미덕과 원리는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가나안 땅 실로는 당시 성막이 세워진 곳으로(18:1) 이스라엘 사회의 중심지였다. 가나안 정복을 무사히 마친 두 지파 반은 이렇게 모든 일을 마치고 자기의 기업(길르앗)으로 귀환했다.


 1-2. 제단 사건(22:10-34)


  요단 동편으로 돌아간 지파들은 강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 이를 지켜 본 요단 서편의 지파들은 그 단이 우상 숭배를 위한 것인 줄로 오해를 하였다. 그리하여 제사장 비느하스와 열 지파 대표들이 요단 서편의 지파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요단 서편 지파 사람들은 이 제단이 우상 숭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요단 동편과 서편의 사람들이 모두 한 이스라엘 족속임을 입증하기 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들은 세월이 지난 후에 강 건너편 지파의 후손들이 요단 동편에 살고 있는 자기 후손들과 상관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제단을 세워서 그들이 서로 한 형제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이 단을 쌓았다고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오해가 풀린 대표들은 기뻐하며 돌아갔다.     

  가. 요단 동편에 제 2의 제단을 쌓음(10)
  "10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단을 쌓았는데 볼 만한 큰 단이었더라."

  (10-20절)에는 요단동편 땅으로 귀환하던 두 지파 반이 요단  강가에 세운 큰 단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분쟁사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강을 건넌 후에 큰 단을 쌓았다. 개역 성경에는 요단 동편에 속한 지파 중에 갓 지파가 생략되었으나 히브리 원문(M.T.)과 70인역(LXX)에는 갓 지파가 나타나 있다. 모세와 맺은 약속을 무사히 완수하고, 그리운 기업의 땅으로 돌아가던 두 지파  반은 요단 강의 언덕에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 그들은 처자를 뒤로 한 채 이스라엘 군대의 선봉에 서서 7년이나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그 동안 동고동락했던 요단강 서편의 형제들과 이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일을 기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며 마침내 큰 단을 요단 강가에 쌓아올렸다.여기서 '단'('미즈베아흐')는 일반적인 단을 의미한다(창 8:20; 출 17:15; 레 1:9; 신 27:6). 여호수아 저자는 그 단이 '볼 만한 큰 단'이었다고 언급함으로써 이 단이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암시하고 있다. "볼 만한 큰 단'('가돌 레마르에')은 '보기에 큰 단'이란 말이다. 이것은 이 단이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만큼 큰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제단은 실로의 성막에 있는 번제단과 비슷한 모양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가 더욱 컸기 때문에 다른 지파의 의혹을 사게 만들었다.

  나. 진상 조사단이 파견됨(11-14)
  "11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편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편에 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14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방백씩 열 방백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이스라엘 천만인 중 족속의 두령이라."

  그들이 단을 쌓은 소식은 금방 요단 서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려지게 되었다. 여기서 '맨 앞편'이라고 번역된 말('엘 물')은 '앞편'(front)이라는 뜻도 있지만, 본문에서는 '맞은편'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속한 편'이라고 번역된 말('엘 에베르')도 역시 '맞은편'이란 의미로서, 보통 '한 장소의 건너편'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따라서 11절을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가나안 땅의 맞은 편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이 있는 곳의 건너편에" 단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두 지파 반이 쌓은 단이 요단 동편 지역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단 서편의 아홉지파 반은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이 다른 단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단일성을 깨뜨리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요단 서편의 지파들이 분노하며 싸움까지 하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제단은 오직 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신 12:4-14)의 규례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  규례를 어긴 자를 가차없이 멸하라고 지시하셨다(신 13:12-16). 하나님은 제단이 순결하게 보존되고, 우상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제단을 여러 곳에 세우는 것을 금하시고 오직 한 곳에만 세우도록 지시하셨다. 따라서 아홉 지파 반은 두 지파 반의 행위를 신성 모독적인 행위로 판단하고 의분(義憤)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의 분노는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두 지파 반이 단(壇)을 세운 것은 의도는 좋았지만 좀 경솔한  행위였다.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 등 1년에 세 번씩 중앙 성소에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단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두 지파 반이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과 아무 상의도 없이 단을 쌓은 것은 분명히 경솔한 행위였다. 사실 그들이 좋은 의도가 있었다면 먼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대표들과 상의했어야 했다(Keil).

  비느하스(Phinehas)는 엘 아르아살의 아들이며 아론의 손자(출 6:25; 대상 6:4,50; 9:20)로서 신앙이 깊은 제사장이었다. 그는 '바알브올 사건' 때에 거룩한 의분에 불타서 창으로 이방 제사에 참여하고 간음하고 있던 시므리와 고스비를 찔러 죽여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재앙을 받지 않게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 일 인해서 대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받게 되었다(민 25:7-13). 그러므로 그 이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비느하스의 자손이 대제사장 직을 계승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요단 강가에 세워진 단에 대한 의혹 사건에 비느하스가 대표로 선택된 은 적절한 일이었다. 후에 그는 기브아 사람들의 패역한 문제를 혜결 하기 위해 다시 대표자로 등장한다(삿 20:28). 여기서 '열방백'은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에서 뽑힌 9명의 방백들을 말다. '방백'(나시)은 '높이 들린다'란 뜻인 '나사'에서 파생된 말로써, 각 지파의 군대지휘관을 말한다. 이 말은 '족장'(민 1:16)으로도 번역되는 것을 보아 이들은 각 지파의 대표자들이었다. 여기서 '천만인'이란 말('알레프')은 '1000'을 의미하는 '앨레프'의 복수형으로써 '굉장히 많은 숫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두령'에 해당하는 말('로쉬')은 '족장'으로 번역되는데(14:1; 19:51; 21:1). 이들은  각 지파 장로들의 모임을 대표하는 자를 말한다.

  다. 대표들이 제단을 쌓은 일을 추궁함(15-20)
  "15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날 여호와를 좇는 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느냐? 17 브올의 죄악으로 인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얻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18 오늘날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않고자 하느냐? 너희가 오늘날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19 그런데 너희 소유지가 만일 깨끗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를 취할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패역하지 말라. 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었느냐 그 죄악으로 망한 자가 그 사람뿐이 아니었느니라."

  이스라엘 아홉 지파 반이 선출한 대표들은 즉시 요단 강을 건너 길르앗 땅으로 갔다. 이 곳은 요단강의 지류인 얍복 강에 있는 지역으로, 일반적으로 요단 동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민 32:1, 26). 이곳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3:24-31). 비느하스를 비롯한 진상 조사단은 두 지파 반이 요단 강가에 단을 쌓은 일은 하나님을 거역한 행위라고 책망했다. 여기서 '거역하다'는 말('마라드')은 '반대하다', '반역하다', '항거하다'는 뜻으로서,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적극적인 반역 행위임을 의미한다. 비느하스는 이 일을 바알 브올 사건과 비교하고 있다. '브올'(Peor)은 '바알브올'('브올 지방의 바알')의 단축형으로서(민 25:3,5; 신 3:29; 4:3; 34:6; 시 106:28), '바알'이 숭배되던 성읍 이름이다. '브올의 죄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 있을 때에 모압과 미디안 여인의 유혹에 빠져서 모압의 신인 바알을 숭배하게 된 범죄를 말한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24,000명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민 25:1-9)). 비느하스는 다른 단 쌓은 두 지파 반에게 이 사건을 상기시켜주었다. 요단 강가에 쌓은 단 사건을 놓고 진상 조사단이 한 말에는 다음과 같은 2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그때 입은 오욕(汚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2)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의 죄악에서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우상 숭배에 대한 경향이 남아있다(Keil, Fay).

  비느하스는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지체없이' 이스라엘 회중에게 임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두 지파 반이 제단을 따로 세워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면, 브올의 죄악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진노'라는 말('케체프')은 '부수다','파열하다', '갈라지다', '분노하다'란 뜻인 '카차프'에서 파생된 말로써,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는 무서운 격노"를 의미한다. 비느하스는 '요단 동편의 땅에 성막이 없어서 하나님을 섬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이라도 요단 서편으로 기업을 옮기라고 권면했다. 요단 강을 경계로 요단 동편 땅을 분배받은 두 지파 반은 성막 문제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소외된 지파라는 열등감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그러므로 진상조사단은 두 지파 반에게 단을 쌓지 말고 성막이 있는 요단 서편으로 와서 그곳에서 함께 살자고 권하였던 것이다. 모세 율법은 제사의 우상화 및 세속화를 방지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며, 제단을 거룩히 보존키 위해 오직 유일 중앙 성소만을 인정하고 있었다(신 12:5). 따라서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는 그 유일 성소를 제외한 모든 제단은 우상 숭배 행위로 간주되어 엄격히 배제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여기서 '패역'이란 말('메레드')은' 반역하다', '항거하다'란 뜻에서 유래한 말로서 "적극적인 적대 행위"를 뜻한다.

  비느하스는 제단을 세운 것은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요단 서편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반역적인 행동이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공동체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과의 분열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아울러 이 말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의 행동 결과로  인해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에게까지 하나님 진가가  미칠  것이니,  그것이  곧 자신들에게 패역 행위가 된다는 뜻이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아간의 범죄  사건'(7장)이다.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여리고 성의 전리품을 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만들었다. 비느하스는 아간이 혼자 범죄 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임했다면, 두 지파 반이 모두 우상숭배에 참여하게 되면 하나님의 크신 진노 내릴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 고 책망했다. 바알 브올 사건과 아간의 사건은 둘 다 일부 사람의 범죄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미쳤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라. 제단을 쌓은 이유를 설명함(21-19)
  "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23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24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25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느니라 하여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단 쌓기를 예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7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 번제와 우리 다른 제사와 우리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으로 후일에 우리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다 못하게 하려 함이로라. 28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열조가 지은 여호와의 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29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외에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고 오늘날 여호와를 좇음에서 떠나려 함은 결단코 아니니라 하리라."

  이에 대한 두 지파 반의 답변은 매우 논리 정연하고 유순했으며 차분했다. 그들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아홉 지파 반의 충고 및 경고에 대하여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입장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Matthew Henry). 22절에는 하나님을 일컫는 세 다른 명칭, 즉 '엘'(전능하신 자), '엘로힘'(하나님), '여호와'가 사용되고 있다. 흔히 '엘'은 능력이 많고 강하신 하나님을  뜻하며, '엘로힘'은 하나님에 대한 이름으로 전능하시고 경외되어야 할 하나님을 뜻하며, '여호와'는 영원토록 자존하신 언약에 신실하신 구속주 하나님을 뜻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세 가지 이름을 반복한 것은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이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반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상을 섬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순수한  의도를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지금 알고 계신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를 증인으로 채택하고 자신들의 말에 대한 진실성을 보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에게 제물을 드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맹세했다. 두 지파 반이 요단 강가에 단을 세운 것은 요단 서편에 사는 이스라엘 후손들이 후일에 요단 동편에 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들에게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고 말할 것을 염려해서 세운 것이었다. 그들은 먼 훗날에 요단 동편에 사는 후손들이 요단 동편에 사는 후손들을 같은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실로에 와서 예배드리는 금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한 민족이라는 증거의 표시로 제단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여기서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의 순수하고 경건한 목적을 알 수 있다. 그들은 1) 여호와 신앙을 보존하고, 2) 지파 간의 연대 의식을 가졌으며, 3) 자녀에 대한 배려를 하였던 것이다. 요단 건너편 땅만이 이스라엘의 경계로 설정된 당시의 상황을 생각할 때에 그들이 이러한 염려를 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주의한다'는 말('데아가')은 '염려', '두려움', '슬픔'을 말하며, '분의'('헐레크')는 분배받은 '몫'을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차지할 기업이 없다는 말을 듣게될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제단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요단 서편의 민족과 그들이 하나라는 것을 증거하는 역할만을 할뿐이라고 설명했다. 만일 요단 서편의 후손들이 요단 동편의 후손들은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지 않는 일이 생겨나면, 그들은 자기들이 한 민족이라는 것을 이 제단을 가지고 그것을 반박할 것이다. 그들은 그 증거로 제사용으로 사용되지 않는 제단, 즉 요단 서편의 번제단과 같은 모양으로 세워진 제단을 제시하면 자신들도 요단 서편의 사람들과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햇던 것이다, 그러면 요단 서편의 사람들은 그 제단으로 인해 요단 동편의 사람들을 여호와와 상관없는 자들이라고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대표단에게 자신들이 만든 제단의 모형을 보라고 했다. 여기서 '모형'이란 말('타브니트')은 '형태', '복사'등을  의미하는 말로서, 곧 요단 동편의 제단을 본 따서 만든 것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출 25:9, 40). 사실 율법이 금지하는 것은 단이나 형상을 우상 숭배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목적(전쟁의 승전비나 기념비등)으로 사용되는 것을 금한 것은 아니었다(4;20; 창 12:7; 삼상 14:35). 따라서 증거용으로 쌓은 요단 강가의 단도 크게 문제시 될 것은 없었다. 다만 그들이 사전에 아무 협의 없이 제단이 쌓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켰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제단을 세운 것이 하나님을 떠나고 반역하기 위해 세운 것이 결단코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패역하다"는 말은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반역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떠난다"는 말('슈브') '돌이키다', '개종한다'는 뜻으로서, 한 곳을 떠너 다른 곳으로 가는 상태를 말한다. 이 말은 두 지파 반이 제단을 세운 목적이 하나님께로 떠나 다른 우상을 섬기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로 더 나아가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마. 오해가 풀림(30-34)
  "30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한 회중의 방백 곧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31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날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치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32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방백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에 돌아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러 회보하매, 33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의 거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 하지 아니하였더라. 34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단을 엣이라 칭하였으니 우리 사이에 이 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비느하스와 이스라엘 9지파의 두령들, 곧 요단  서편의 진상 조사단은 제단을 세운 사건에 대한 두 지파 반의 설명을 듣고 매우 흡족해 했다. 그들은 두 지파 반의 해명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오히려 그들은 여호와를 향한 두 지파 반의 열정을 확인했기 때문에 기뻐하였다. 만일 양쪽 모두가 신중한 자제와 성실한 해명이 없이 무조건 열심만을 내세워 상대방을 공격했다면 끔찍한 동족 상잔의 비극이 초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믿음의 바탕 위에서 서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물론 서로간의 공동체 의식을 다시 확인하고 더 깊은 형제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좋게  여긴지라'는 말은 직역하면 '눈에 좋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진상 조사단이 두 지파 반의 해명을 아주 만족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요단 동, 서편 사이의 갈등이 만족스럽게 해소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다고 말하였다. 위기 일발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다면 이렇게 원만하게 해결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만일 두 지파 반이 실로의 제단을 무시하고 제사를 목적으로 제단을 세웠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 전체에게 내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제 이스라엘 전체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비록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만이 범죄했더라도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도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함께 받았을 것이다. 진상 조사단은 곧 돌아가서 이 모든 일을 각 지파에게 전달하였다.  여기서 '회보했다'는 말('슈브 다바르')는 '말을 되돌리다'는 말로서, '보고한다'는 것을 말한다.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은 진상 조사단을 통해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이 요단 강가에 제단을 세운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은 진상 조사단의 보고를 듣고 매우 만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이 하나님을 거역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 못지 않게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음을 알고, 그들과의 공동체 의식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보다 깊은 동족애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 그 단을 옛이라고 불렀다. 히브리원문(M.T.)과 70인역(LXX)에는  '엣'이란 말이 없다. 그러므로 이 말은 후기 필사자들이 보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엣'이란 뜻은 '중언' 또는 '증거'란 의미이다. 이와 같이 두 지파 반에 의해 요단 강가에 세워진 그 제단의 이름을 '증거'라는 뜻의 '엣'이라고 부른 것은 그 제단이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세워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제단은 요단 동편의 사람들에게는 후손 대대로 올바른 여호와 신앙을 증거하고, 요단 서편 사람들에게는 공동체 사상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2. 고별 설교: 지도자들을 향한 권면(23장)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시고 시간이 흘러 여호수아도 늙게 되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땅을 정복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있다. 1) 율법을 준수할 것(6-), 2) 가나안 거민에게 동화되지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 것(7,12-13), 3)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만 사랑할 것(8, 1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일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않으실 것이며, 이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1. 가나안 정복 성취에 대한 예고(1-5)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 많아 늙었도다. 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4 보라 내가 요단으로부터 해지는 편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뽑아 너희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5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23-24장)은 최종 결론 부분에 해당한다. 여호수아서 저자는 결론 부분을 이스라엘이 모든 가나안 족속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음을 강조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가나안 정복 전쟁 후에 이스라엘은 주변 가나안 족속들로부터 위협 당하지 않고 오랫동안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21:44 ; 22:4). 이제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도 늙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 (수 24:29)를 통해 볼 때에 이 때는 그가 110세가 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더 이상 살 수 없을 만큼 노쇠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여호와 신앙에 굳게 설 것을 부탁하는 고별사를 남기려고 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들, 곧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소집했다. '장로'(쟈켄)는 각 지파 유지들로서 백성들을 대표하는 자를 일컫는 일반적인 직함이며(신 21:2), '두령'(로쉬)은 각 지파나 족속, 또는 가문에서 우두머리 위치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고, '재판장'(,솨파트)과 '유사'(쇼테르)는 여러 두령 중에서 어떤 일에 적합한 자로 뽑힌 자를 일컫는 직함인 것으로 추정된다(keil & Delitzsch).

  일부 학자들은 여호수아의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에브라임 산지의 '딤낫세라'(19:50)로 백성의 대표들을 불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보다는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실로'(18:1)로 소집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Keil, Matthew Henry). 왜냐하면 당시 '실로'(Shiloh)는 중대한 국가적 문제가 있을 때에, 이스라엘 대표자들이 모이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의 고별 연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고백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친히 지휘한 여호수아의 체험에서 나온 고백이었다. 하나님은 견고한 여리고 성읍을 이스라엘의 함성 소리에 무너지게 하시고(6:20), 기브온 전투 때에는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셨으며(10:11), 태양과 달을 머무르게 하기도 하셨다(10:12,13). 여호수아는 아직 정복하지 않은 나라들과 이미 정복한 모든 지역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믿음으로 분배해 주었다. 요단 강에서부터 해지는  편 대해('지중해')까지는 가나안 땅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의 전체를 의미한다. 여호수아는 아직 정복되지 않고 남아 있는 나라가 있었지만 그것을 정복할 것으로 믿고 미리 그 나라들을 분배해 주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약속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확신했다.


 2-2. 율법을 지켜 행하고 여호와를 사랑할 것을 부탁함(6-11)

  "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8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9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에게 신실하게 대해주셨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써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힘쓴다'는 말('하자크')은 '꽉 붙들고 매달리는 상태'를 말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율법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굳은 결심'과 '강한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들에게 말씀을 떠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부탁한다. 이 말은 여호수아에게 좌우명과 같은 말로서, 그는 이 원칙을 따라 가나안 정복 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에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 말을 전하기를 원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에게 가지도 말고, 그 신의 이름을 부르지도 말며, 맹세하거나 그 것에게 섬기지 말고 절하지도 말라고 명하였다. 이 말은 이떠한 이유나 방법으로라도 가나안의 우상 문화와 교류하지 말고 그것을 단호히 끊으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이방 족속들과 섞여 살지 말라는 명령이다. 여호수아는 우상을 멀리 하는 대신 지금과 같이 하나님 여호와를 가깝게 하라고 부탁했다. '친근히 한다'는 말('다바크')은 '바짝 밀착하다', '견고히 달라붙는다'는 의미로서, 하나님께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이 우상 문화에 빠지지 않는 최상의 길은 하나님을 가깝게 하는 것이다(신 10:20).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력한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정복할 수 있엇다. 여호수아는 과거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상기함으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실 것을 신뢰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대적들을 만났지만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군대의 조직력이 탁월했거나 이스라엘 군대가 우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는 그의 고별사에서 이스라엘 대표자들에게 이 사실을 거듭해서 주지시키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한 사람이 천 명의 대적을 쫓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여기서"쫓는다"는 말("이르다프')은 '추적하다, '사냥하다'는 뜻을 지닌 '라다프'에서 파생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전쟁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들에게 스스로 조심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부탁하였다. '조심한다'는 말('솨마르')은 '울타리를 치다', '지키다', '유의하다'란 말로,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울타리릍 치고 그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부탁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고별사에서 땅의 개간이나 성의 요새화, 적군의 동향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오직 '삼가 조심하며 크게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것' 을 강조하고 있다.
 

 2-3. 불순종에 대한 경고(12-16)

  "12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13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14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15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일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16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망하리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지 않으실 것이라고 경고했다. "친근히 한다"는 말은 매우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더불어 혼인하며'라는 말과 '피차 왕래한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의 가나안 족속들과 가깝게 교류하며 서로 결혼하는 일을 말한다(신 7:3;  삼상 18:22).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나안 족속과의 혼인을 강하게 금지하신 것은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게 하시려는 의도 때문이었다(신 7:4). "정녕히 알라"는 말(아 테데우)은 '알고 또 알라', 또는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는 뜻이다. 마 말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은 더 이상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고 안 쫓아내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 여부에 달려 있었다. 그들이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으면 가나안 족속이 그들에게 올무와 덪이 될 것이다. '올무'('모케쉬')와 '덫'('파흐')은 새나 짐승을 잡을 때 쓰는 올가미나 함정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과 교류하고 혼인하게 되면 결국 가나안 족속이 그들을 파멸시키는 올무가 될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옆구리를 때리는 채찍이 되고, 이스라엘의 눈에 가시와 같은 고통을 줄 것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에게 극심한 압제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예언대로 하나님을 떠나 그들과 혼인하다가 가나안 족속들로부터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여호수아는 고별사에서 가나안 족속을 '올무','덫', '채찍', '가시' 등에 비유하여 그 위험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결국에는 이 땅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멸절한다'는 말('아바드')은 '쫓겨나 방황한다', '상실한다, '점차 소멸한다'는 뜻으로서, 이스라엘이 처하게 될 처참한  상태를 예고하는 말이다.

  가나안 족속이든, 이스라엘 백성이든 언약의 땅에서 쫓겨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악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가나안 족속이 영원히 버린 바 되었다면, 이스라엘 족속은 쫓겨난 상태에서도 다시 회복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선택한 '하나님의 주권 적인 사랑이요 은혜로 인한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모든 사람이 가는 길(죽음)로 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말은 여호수아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여호수아는 임종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모두 성취하시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무사히 정착하게 되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친히 목격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 죄에 빠지면 말씀에 약속된 대로 징계를 내리는 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여기서 '불길한 일'(하다바르 하라)은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리기로 된 온갖 무서운 심판과 저주를 의미한다(신 28:15-6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두셨다(신 30:15). 즉 하나님의 언약에는 말씀 순종에 따른  축복과 말씀 거역에 따른 저주가 동시에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지켜 행할 경우 '모든 선한 일'(축복)이 언약대로 성취될 것이지만, 만일 말씀은 저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길 경우 '모든 불길한 일'(저주)이 임할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기게 되면 율법에 기록된 것같이 그들이 신속하게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하였다.  


3. 백성들에 대한 권면-세겜에서의 언약 갱신-(24장)

 3-1.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1-13)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보인지라.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으며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었노라. 6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즉 애굽 사람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 열조를 홍해까지 따르므로 7 너희 열조가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가 목도하였으며 또 너희가 여러 날을 광야에 거하였었느니라. 8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편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 9 때에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10 내가 발람을 듣기를 원치 아니한 고로 그가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11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붙였으며,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 내가 또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셨느니라."

  여호수아는 다시 한번 고별 연설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세겜에 소집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세겜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1)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며(창 12:6, 7), 2) 야곱이 '디나 사건'(창 34장) 이후 크게 회개하고 우상을 묻어버린 개혁의 장소이며(창 35:4), 3)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약을 새롭게 갱신 한 맹세의 장소였다(8:30-35). 그러므로 세겜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하여 언약을 갱신하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있는 세겜은 족장 시대 이후부터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언약을 갱신하는 일을 하는 것은 큰 의의가 있었다"(Keil & Delitzsch,).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들은 모두 소집해서 하나님 앞에 모이게 되었다. 여기에서 '하나님 앞'이란 말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며, 하나님의 면전에서 거룩한 종교적 의식을 치루는 신전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창 11:26)에 따르면 데라(Terah)는 아브라함, 나홀, 하란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 하란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일찍이 죽었기 때문에(창 11:28) 본절에서는 아브라함과 나홀만이 언급되었다. 한편, 아브라함과  나홀의 부친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그의 가족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거주하였으며, 205세를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창  11:31, 32). 아브라함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 지역, 즉 '갈대아  우르'에서 살면서(창 11:31), 다른 신들을 섬겼다. 여기서 '다른 신(神)'은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섬겼던 우상으로, 당시 갈대아 우르 지방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섬겼던 월신을 가리킨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이러한 우상을 숭배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비록 우상 숭배에 빠지지는 않았다고 해서 우상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Keil). 이러한 사실은 아브라함이 부름받은 것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여호수아는 지금 이 사실을 회고하며 이 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3절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유프라테스 강을 건넌 것이 아브라함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은 자원한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랐을 뿐이다(창 15:7).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은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지(엡 1:6, 7) 결코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다(롬 3:23, 24). 아브라함이 나이 100세 때에 본처인 사라를 통해 얻은 이삭은 하나님의 깊은 경륜에 의해 태어난 '약속의 씨'였다(창  15:4; 17:19,21; 18:14). 이런 의미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마엘(창 16:15)은 언급되지 않고 이삭만을 언급하였다(갈 4:28-31). 여기서 '주었다'(에텐)는 말은 이삭의 출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창 21:1-7). 이삭은 나이 60세에 리브가를 통해서 쌍둥이인 야곱과 에서를 낳았다. 그러나 야곱과 에서의 출생도 간절한 이삭의 기도를 통해서 주어졌다(창 25:21,23). 후에 에서는 세일산에 거주하게 되었다. 세일(Seir)은 에돔의 산악 지대로서 아라바 저지대 동쪽에 위치해 있다. 세일 산 지대는 남쪽으로 아르논 저지대에서 지금의 아라바까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험준한 에돔의 산악 지대이다.  에서와 그의 후손들은 이곳에 거주하던 호리 족속을 쫓아내고 이 땅을 차지했다(창 32:3; 33:14, 16; 신 2:22). 야곱과 그의 후손들이 애굽으로 내려간 기사는 (창 46:1-7)에 잘 설명되어 있다. 당시 야곱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창 46:2-4), 마침내 애굽으로의 이주를 결행하게 되었다(창 46:5-7). 이는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창 15:13-17)가운데 그의 후손들이 이방의 객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었다. 아울러 야곱 일행의 '입(入)애굽 사건'은 역설적으로 '출(出)애굽 사건'의 전조가 되며, 결국 '가나안 입성'을 위한 준비 기간이 되었다. 결국 이는 야곱 일행의 '입(入)애굽 사건' 역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의 결과였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게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섯 번에 걸쳐 사양과 변명(출 3:11-13; 4:1,10,13)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해방하기를 거부하는 바로를 치기 위해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렸다(출 7:14-12:36). 바로는 결국 이러한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내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광야로 가서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군대가 다시 뒤 쫓아왔다.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다. 여기서 '부르짖다'는 말('차아크')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란 뜻으로, 위험한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출 14:15).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까지 추격해 왔을 때, 이스라엘 진(陳) 앞에 서있던 여호와의 사자가 뒤로 옮겨가자 구름기둥도 앞에서 뒤로 옮겨져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게 되었다. 그러자 구름과 흑암이 그들 사이에 임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진에는 광명이, 그리고 애굽 군대의 진에는 흑암이 내려 덮은 사실을 가리킨다(출 14:19, 20). 또한 하나님은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다물을 물러가게 하시고 홍해를 좌우로 갈라지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다. 그러나 애굽 군대가 건너갈 때에는 그 물을 도로 합쳐서 그들을 바다 속에 수장시켜버리셨다. 출애굽을 종결짓는 홍해 도하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신 초자연적인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광야에서 40년을 살다가 죽게 되었다(민  14:33, 3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요단 동편 지역'에 사는 땅을 점령하게 하여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셨다.  요단 동편 땅은 원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시혼과 옥의 땅이었는데, 이 땅은 결국 이스라엘에게 점령되고  말았다(민 21:21-35). 그리고 이 땅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어졌다(13:8). 이와같이 이스라엘이 강력한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진멸시키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신 2:24;3:2). 이때에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은 발람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다. '발락'('약탈자', '파괴 자'란 뜻)은 그 당시의 모압 왕이었다.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들에게 행한 일들을 보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 당시 이방의 유명한 술사얏던 '발람'(Balaam)을 고용했었다(민 22: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게 하시고 오히려 축복을 하게 만드셨다. '발람'(Balaam)은 원래부터 그 이름의 의미가 '탐닉하는 자', '멸망시키는 자'란 말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탐욕에 눈이 어두워(벧후 2:1-22; 계 2:14), 결국 발락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만다(민 23:1-24:9). 이와 갈이 발람이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하지 못하고 축복을  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스라에을 저주하려던 모압 왕 발락의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르는 사이 그 막후에서 일어난 이 발람의 사건에까지 하나님께서 적극 간섭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주위의 온갖 사악한 세력들의 손으로부터 건져내셨다.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서 강력한 가나안의 족속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칼이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벌을 통해 그들을 정복했다. 여기서 '왕벌'(치르아)은 사해 주변의 사막과 팔레스타인의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곤충으로서, 그 침은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독(毒)을 포함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침을 가진 왕벌이 사방에 있을 때 군인들이 이를 잘못 건드려 큰 어려움을 당하곤 했다. 이런 이유로 이 왕벌은 전쟁의 승패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따라서 여기 언급되어 있는 왕벌이 문자 그대로의 '왕벌'(hornet)을 가리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여기의 왕벌을 애굽 왕 바로를 가리키는 상징물로 간주하여, 이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도착하기 이전에 왕벌, 즉 애굽 왕이 가나안 족속을 먼저 침으로써 가나안 세력을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도왔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왕벌을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가나안 족속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재해 현상'으로 보기도 하며, 또는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속에 주입시킨 왕벌과 같은 '공포심'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왕벌'을 문자 그대로의 '왕벌'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영향을 미쳤던 '하나님의 모든 도움'을 또한 가리킨다고 봄이 가장 무난할 것 같다.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진멸하였던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 하신 기적적인 사건 중의 하나로 자주 등장한다.  가나안 정복은 결코 이스라엘 군대의 군사력에 의해서 성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비록 이스라엘이 칼이나 활 등의 군장 비를 사용해서 이긴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군장비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군 장비 면에선 철 병거까지 보유한 가나안 족속이 훨씬  우세하였다. 따라서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가나안 정복 전쟁결과 이스라엘은 자기가 짓지 않은 집에서 살고, 자기가 심지 않은 열매를 먹게 되었다. 이러한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축복에 의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과 성읍을 취하기만 하면 되었다. 비록 그들이 몸소 전쟁을 하긴 했지만,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얻은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3-2.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만 섬기라(14-28)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열거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그들에게 우상숭배를 포기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에 대한 신앙적인 결단을 내리라고 요구하였다. 이러한 여호수아의 요청은 백성들에게 맹목적인 종교적 굴레를 씌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요청은 지난 역사를 통해 생생히 나타난 하나님을 분명히 깨닫고 감사하며 올바른 신앙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단은 백성들 스스로가 지나온 역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과 우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어떤 분이 참 신인지를 분별하여 올바른 경배의 대상을 선택하는 중요한 결단이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때에 성실과 진정으로 섬길 것을 촉구했다. '성실'(타밈)은 '온전함', '순수함'을 의미하며, '진정'(에메트)은 '견고함', '확실함'을 의미한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길 때에 온전한 마음과 확산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족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 갈대아 우르에서 월(月)신을 섬겼으며(2절),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애굽에서 수염소를 비롯한 여러 음란한 우상을 섬겼었다(레 17:7;겔 20:7). 그리고 여호수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가나안 우상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들의 눈에 좋지 않게 보이면 우상을 섬겨도 좋다고 말한다.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이란 말('임 라 베에네켐)은 직역하면 '너희 눈에 악하게 보이거든"이란 의미로서, '내키지 않거든'. '바람직스럽게 보이지 않거든'등의 뜻으로 의역할 수 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억지로나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 성실과 진정으로 섬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섬기기 싫다면 그들이 섬길 다른 신을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언약을 갱신함에 있어서, 어중간한 태도를 배격하고 이방의 우상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서 섬길 신을 분명하게 선택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상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일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모든 우상을 배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고후 6:14-16).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의 종교는 유일신교(唯一神敎)이지, 결코 일신교(一神敎)가 아닌 것이다(신 6:4  주석 참조). 즉 다른 많은 신들 중에 '여호와'도 하나의 신이며, 그중 비교적 뛰어난 신이란 의미가 아닌 것이다. 오직 '여호와'(Jehovah) 그만이 홀로 참신이시고, 다른 나머지 모든 우상들은 한낱 돌이나 나무, 쇳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기독교적 유일신교인 것이다(사 45:20; 렘 10:5).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결단을 촉구한 뒤 지체없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그는 다른 모든 백성들이 다른 심을 선택한다고 해도 자기와 자기 집만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여호수아의 신앙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몸으로 체험한 살아 있는 신앙고백이었다.


 3-3. 백성들이 여호와만 섬길 것을 맹세함(16-18)

  "16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의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적 결단을 촉구하는 여호수아의 요구에 대해서 역시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결코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굳게 대답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호하게 신앙적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르는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생히 경험했으며, 여호수아의 신앙적 자세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술회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시 한번 간략히 언급하면서,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맹세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린 이러한 결단은 단순한 감정적인 결단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역사 하셨던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난 후에 내린 전인격적 결단이었다.


 3-4. 여호와만 섬길 것을 다시 확인함(19-24)

  "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23 여호수아가 가로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한지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인간적 연약성 때문에 쉽게 우상숭배에  빠져들 우려가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보다 강한 어조로 그들의 신앙을 철저히 무장시키고 있다. 하나님은 피조물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거룩하신 분이시며, 자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 질투의 하나님이시다(신 6:15).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심을 섬기는 일을 절대로 그대로 두지 않으실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허물과 죄'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지는 죄를 말한다. 이러한 죄는 결코 용서를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제 2계명에서 자신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상에게 절하거나 섬기지는 사람의 죄를 반드시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출 20:4-6).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게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강한 위협적인 말을 사용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결단이 결코 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 땅에는 이방의 우상 문화가 뿌리 깊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들이 올무와 덫이 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한번 자신들이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맹세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염려를 불식시키고 다시 한번 굳게 여호와를 섬길 것을 확고하게 다짐하였다. 이스라엘 전 역사를 놓고 볼 때 이때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열기가 뜨거웠던 때는 드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고백한 말에 대하여 자신들이 증인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지면 자신들 스스로가 그 유죄의  증인이 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라고 요구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우상은 나무, 돌, 철 등으로 만든 외면적인 우상보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내적인 우상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형상을 가진 것만이 우상이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우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고백은 어떤 가식적인 고백이 아니라 진실한 신앙적 고백이었다.     


 3-5. 여호수아가 백성들 앞에서 언약을 확인함(25-28)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베풀었더라. 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취하여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세우고, 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라. 그런즉 너희로 너희 하나님을 배반치 않게 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8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언약을 세우고 백성들을 위해서 율레와 법도를 강론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서약(16-18, 21, 24절)은 이 언약 체결로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언약을 세운다'는 말은 직역하면  '언약을 자른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언약'과 '자른다'는 말이 결합된 것은 언약 체결을 할 때에 양이나 송아지 같은 짐승을 죽여 쪼개어 놓었기 때문이었다(렘 34:18-20). 이와 같이 짐승을 쪼개놓은 이유는 만일 체결한 언약을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쪼개어진 짐승처럼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율례'는(호크')는 제정된 '법규'를, '법도'('미쉬파트')는 판단의 근거가 되는 '지시'나 '계명'을 말하는 데, 이 두 단어는 모두 모세의 율법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호수아는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했다. 여기서 '이 모든 말씀'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했던 고별사의 내용(1-13절)괴 그 날에 행해졌던 전반적인 의식 모두를 가리킨다. 여호수아는 큰돌을 취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 갱신(16-18, 21, 24절)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기념하기 위해 종종 기념비가 세워졌다(수 4:9; 삼상 7:12). 카일(Keil)은 여기 '여호와의 성소를 단지 '성스러운 장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성막은 당시 '실로'에 있었으며(18:1), 당시에는 성전도 없었기 때문에 이 성소는 성전이나 회막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말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장소(창 12:6, 7)였을 뿐만 아니라, 후일 야곱이 또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하였던 장소(창 35:2, 4)라는 의미에서 거룩한 곳이라고 했을 것이다.

  상수리나무는 약 10m 높이까지 자라는 나무로서 팔레스타인에 널리 퍼져 있으며 매우 강하고 단단하다. 그런데 여기서의 이 상수리나무(the oak)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사건과 연관 있는 유서 깊은 그 상수리나무로, 곧 그러한 역사를 일깨워 주는 기념 수일 가능성이 크다. 여호수아는 기념비를 세우고 이 돌이 증거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돌이 변치 않는 영원한 기념비가 되어,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깨뜨릴 경우 이 돌이 그들에게 증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이 기념비를 볼 때마다 조상들이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을 다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 돌이 오늘 날 백성들의 한 맹세의 소리를 들었다고 선언하였다. 여호수아는 마치 기념비가 증인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을 들은 것처럼 돌을 의인화하고 있다. 칼빈은 이러한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데 효력이 있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는 무생물인 돌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맹세의 말을 들었다면, 사람들이 그 증언을 듣지 못한 것처럼 하나님을 배반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여호수아는 이와 같이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치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배반한다'는 말('카하쉬')은 '거짓말하다', '부정하다', '부인하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서 하나님을 속이거나 부인하는 행위를 의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고별사를 마친 후에 언약 갱신을 기념하기 위해 큰돌로 기념비를 세워 증거를 삼음으로써 자신의 공적인 모든 임무를 끝마쳤다. 그는 이제 자기의 모든 임무를 마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각자  분배받은 기업의 땅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자신도 역시 자신의 기업의 땅인 담낫세라로 돌아가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그 곳에서 평안히 임종을 맞이했다(30절).   


4. 총 결론(24:29-34)

 4-1.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29-31)

  "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 백 십 세에 죽으매, 30 무리가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이었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이 일이 마친 후에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가 100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하직했다.  여호수아의 죽음과 장사에 관한 기록은 신명기 기록된 모세의 죽음에 관한 기록과 유사성이 있다. 여호수아의 저자는 모세에게 주어졌던 "여호와의 종"이란 칭호(1:1)가 여호수아에게도 적용하였다. 이러한 칭호는 여호수아가 모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세움을 입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호수아가 죽은 나이는 요셉이 죽은 나이와 같았다(창 50:26).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모든 일을 완수하고 은혜롭게 자기의 생을 마감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그의 기업이 있는 딤낫 세라의 경내에 장사했다. 나그네로서 가나안 주민에게 산 무덤에 장사된 족장들과는 달리 여호수아는 자신이 정복한 기업에 장사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다. 이 말 속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와 여호수아 당시의 장로들이 모두 죽고 난 후에 결국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졋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여호수아의 경건한 신앙의 영향력으로 그가 살았을 때에는 여호와를 잘 섬겼지만, 그 다음  세대에 이르자 그들은 바로 우상 숭배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삿 3:5,6).


 4-2. 요셉의 뼈와 엘르아살의 죽음(24:32-34)

  "3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 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 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33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무리가 그를 그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셉의 유언에 따라 요셉의 뼈를 가나안 땅 세겜에 장사하였다(창 50:25).  요셉이 자신의 유해가 가나안 땅에 매장되기를 원했던 것은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애굽의 영화보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더 원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그의  믿음대로 그가 죽은 후 약 415년 후에 약속의 땅에 안치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의 유언을 좇아 출애굽 시에 요셉의 유해를 가지고 나왔다(출 13:1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약간의 땅을 산 후 그곳에 단(壇)을 쌓아서 정결케 한 적이 있었다(창 33:18-20), 그리고 결국 그 땅은 요셉의 매장지가 되었다. 여호수아의 기업 분배 시에 이 땅은 요셉의 자손에게 할당되었으며(21:20, 21), 요셉의 자손들은 바로 요셉의 유해를 이곳에 안치했다(Keil). 여호수아서는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엘르아살의 죽음으로 끝을 맺고 있다. 엘르아살은 여호수아보다 먼저 죽었는지 아니면 후에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같은 해에 죽었는 지도  모른다(Matthew Henry).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의 죽음은 모세 시대에 이어 여호수아 시대도 그 막이 내려졌음을 암시한다. 70인역(LXX)은 본절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 기사를 덧붙이고 있으나, 그것은 단지 사사기의 초기 기록(삿 2:6-15; 3:7,12)을 발췌하여 부가한  것에 불과하다(Keil). 옐르아살이 장사된 곳은 '비느하스의 언덕'이었다. 아마도 이 언덕은 비느하스가 이스라엘을 위해 봉사한 공로(민 25:7, 8)의 대가로 특별히 받은 세습적 기업일 것이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곳을 베냐민 지파 중에서 레위인에게 할당된 '게바'(18:24)로 추정한다(Keil & Delitzsch).


5. 여호수아서의 결론 및 적용

1. 선물로서의 땅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것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이 부패한 가나안 주민을 심판하시고 그들로부터 가나안 땅을 빼앗아서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주인은 여호와이며 이스라엘은 그것을 관리하는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제비를 뽑아서 자신의 뜻대로 그 땅을 나누어 주셨다. 이러한 분배에는 누구도 특권을 받을 수 없었으며 모두 다 여호와 앞에서 평등했다. 이런 점에서 여호수아도 다른 백성들처럼 한 편의 땅을 받았다. 이러한 제도는 왕, 귀족들이 많은 토지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소작농으로 부리는 이방 나라의 토지제도와는 전혀 다른 제도였다. 이러한 일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다(1:6, 5:6, 21:43-44). 또한 이 땅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기업을 상징하기도 한다.  
 

2. 이스라엘의 정체성
  하나님은 힘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그들을 구원하여 언약을 맺고 자기 백성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나타내는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기업을 주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들이 살 거주지를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임무는 언약을 따라 제사장 나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며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여 이방을 향해 제사장의 임무를 잘 감당하면 가나안에서 하나님이 선택받은 백성으로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약을 범함으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다른 민족들과 같이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3. 율법의 핵심 사상

 1) 우상 숭배를 금하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라.
  이스라엘은 바벨탑 사건 이후 온 세상을 흩어진 민족들에게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경배할 분이라는 것을 나타낼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호와만 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 안식일을 준수할 것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었다. 사람들은 이 날에 안식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뜻대로 살 것을 배워야했다. 이 날은 하나님이 자기의 안식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날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키면서 종들과 짐승들에게도 안식을 허락해 주어야 했다.      

 3) 이웃 사랑
  이스라엘은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는 이웃들을 사랑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특히 율법에는 가난하고 연약하며, 부모나 남편이 없는 고아와 과부를 돌볼 것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4. 언약과 기업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 나라로서 땅을 기업으로 받았고, 그들이 행해야 할 일을 율법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준수하며 제사장 역할을 잘 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명을 잃고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 가나안에서 추방되게 될 것이다. 아간이 불순종하였을 때에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이러한 진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5. 여호수아서는 오늘날 성도들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종으로서 이웃을 섬겨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을 섬기며, 겸손하게 이웃을 섬길 때에 땅을 차지할 수 있다. 이 땅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들이 복음을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수많은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성도들이 전하는 복음에 "yes"로 반응하는 사람은 라합과 기브온 거민들과 같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전하는 복음에 "no"라고 대답하며 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멸망당한 가나안 주민들과 같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 여호수아서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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