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48-3과)

제 1부  역사 이야기 (3) (3장)


A. 역사 이야기 (1-6장)

  다니엘서 전반부(1-6장)에는 6개의 역사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1-2장에 나오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역사적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제 3장에 나오는 세 번째 역사적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역사적 이야기(1-6장)

다니엘과
세 친구

느부갓네살의 꿈 해석

우상숭배를
거부한 청년들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3. 세 번째 이야기: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세 청년 (3장)

3-1. 느부갓네살이 우상에게 절할 것을 명함 (1-7)

 
가. 왕이 우상을 세움(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1)."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거대한 신상을 만들었다. 그가 금 신상을 만든 때가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70인경(LXX, 데오도숀역) 느부갓네 살 즉위 제 18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는 느부갓네살이 인도에서 이디오피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해였다. 열왕기하는 이때를 느부갓네살 제 19년으로 기술하고 있는데(왕하 25:8), 이는 바벨론에서 왕의 통치 1년을 원년으로 계산한데서 생긴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느부갓네 살이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금신상을 세웠다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느부갓네살이 그가 정복한 수많은 도시 중에서 유독히 예루살렘을 중요시 여기고, 그 도시를 점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거대한 신상을 세웠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레온 우드 같은)은 느부갓네살이 신상을 세운 때를 다니엘이 훈련을 마치고 약 2-3년이 지난 때(느부갓네살 4-5년)로 보고 있다. 이때는 다니엘이 약 20세 정도 된 때였다. 그들은 느부갓네살이 모든 바벨론 관리들과 정복한 나라에서 데리고 온 훈련생들에게 바벨론 종교에 복종하기를 요구하기 위해서 이 금신상을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어쩌면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꿈의 해석에서 금 머리로 비유된(2:38) 바벨론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꿈에 본 거대한 신상을 만들고, 그 신상 상 전체를 금으로 도금을 했는지도 모른다.

 금신상의 크기는 매우 거대했다. 그 우상의 높이는 육십 규빗이고 넓이는 여섯 규빗이었다. 규빗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만일 한 규빗을 45cm로 계산하면 높이가 27m이고 넓이가 2.7m 정도 된다. 이는 약 6층 이상의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거대한 것이었다. 느부갓네 살은 이러한 거대한 신상을 통해서 바벨론 제국과 바벨론 종교의 탁월함을 과시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가 우상을 만들어서 세운 곳은 두라 평지였다. 그러면 본문에 언급된 두라 평지는 어디인가? 고대 학자들은 이 '두라 평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1) 유브라데쪽을 향한 카보라스 입구. 갈그미스 근처로서 바벨론 성밖에 있었다. 2) 아포니아 근처로 티그리스 맞은 편의 바벨론 성 내에 있었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위의 두 곳이 바벨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두라 평지'를 3) 수도 근처 남동쪽에 있는 두라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언덕으로 보고 있다(Delitzsch).


 나. 왕이 우상에게 절하라고 명함(2-6)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2), 이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3)."

  본문에는 당시 바벨론의 모든 관리들의 직책이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금 신상의 낙성 예식에 바벨론의 전관리를 동원한 것은,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모든 관리들과 포로에서 잡아온 훈련생들이 바벨론 종교에 복종하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방백'(아하쉐다르페나아)은 각 도시의 지사로서 바벨론 각 성의 주요 책임자를, '수령'(시그나야)은 각 성의 군대 장관을, '도백'(파하와티)은 각 성의 민간 행정관을, '재판관'(아다르가제라야)은 중요한 재판의 결정권자인 감독관을, '재무관'(게다베라야)은 국가에 속한 공공 재산의 관리자를 '모사'(데타베라야)는 법률에 정통한 법률 전문가를, '법률사'(티프타예)는 '우두머리'란 뜻으로 말로 재판을 관리하는 자를, '각 지방 관원'(쉴르토네)은 각 도에서 일하는 일반적인 정부 관료들을 의미한다. 한편 본문의 '낙성 예식'(하누카트)은 신전(왕상 8:63;대하 7:5;스 6:16)은 물론 일반적인 집의 봉헌에도 사용되는 말로서(신 20:5), 본문의 낙성 예식은 명백하게 종교 예식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Delitzsch).

  "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4),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5).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6)." 

  선포하는 자가 앞에 나와서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왕의 명령을 전달했다. 여기에서 '선포하는 자'로 번역된 말(카로자)은 왕의 명령을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전령'이나 '사자'를 말한다. 왕의 사자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4). 여기에서 '백성들'은 바벨론 본토에 사는 사람들을, '나라들'은 바벨론에 정복된 속국들을, 그리고 '각 방언하는 자들'은 속국을 포함하여 바벨론 영토에 사는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표현은 바벨론 제국에 속한 모든 자들을 일컫는 강조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왕의 사자는 그 자리에 모인 관리들에게 악기가 연주되면, 땅에 엎드려서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고 명했다(5). 여기에서 '악기 소리'는 모든 회중에게 정확한 예배 시간을 알리고, 또한 신상 낙성 예식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고대의 종교 예식에 있어서 악기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느 12:27; 시 30:1). 특히 우상 숭배 예식에 있어서 이러한 악기들은 사람들의 의식을 광적인 분위기로 이끌기 위한 의도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왕의 사자는 누구든지 엎드려서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엄히 경고했다(6). 이러한 처벌 규정은 이 예식이 매우 엄하고 강압적인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대에서 피정복자는 정복자의 신을 섬겨야 했다. 이는 피정복자의 신보다 정복자의 신이 더 강하다는 의식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때로 정복자의 신에게 경배하지 않는 태도는 정복국에 대한 반역 행위로 간주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풀무'(아툰)는 '용광로'를 의미하며, 이는 벽돌을 굽거나 금속을 녹일 때 사용되던 가마솥이었다. 고대 근동에서 이러한 화형은 자주 나타난다(창 38:24;레 21:9;렘 29:22).



 다. 모든 관리들이 우상에게 절함(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은 왕의 명령을 따라서 악기들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7). 느부갓네살은 이러한 종교 예식을 통해서 통치 권한을 확고하게 하고, 또 피정복민들의 충성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 저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자원해서 금신상에게 절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왕의 강요에 의해서 마지못해 절을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3-2.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한 세 청년(8-18)

 
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유대 청년을 고소함(8-12)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8).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9)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10).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11)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12)."

 왕의 명령이 그토록 준엄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에게 절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버리고 바벨론 우상에게 절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는 것을 본 갈대아 사람 몇 명이 왕에게 나아와서 그들을 고소했다(8). "갈대아 사람들"이란 말 중에서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구브린)는 '강하게 된다', '큰 힘을 가진다'는 뜻을 가진 '가바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 말을 보면 이 '갈대아 사람들'은 바벨론의 엘리트 계층인 갈대아 출신으로 왕 앞에 설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의 세력을 가진 귀족들로 보인다. 아마도 그들은 포로 출신인 유다의 세 젊은이가 자신들과 동등한 지위에 있는 것을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 우리말 성경에서 '참소했다'고 번역된 말(아칼)은 '먹다', '삼키다', '태워버리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들의 고소가 유대 청년들을 철저히 멸절시키기 위한 악의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대아 사람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나아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에(9), 유다 사람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의 명령을 어기고 금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이 유대인들이 왕의 은혜로 바벨론의 관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을 높이지 않고,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으며,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않는다고 고발했다(10-12). 그들은 시기심에 사로 잡혀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가장 큰 범죄 행위, 즉 왕에 대한 반역과 국가적인 이적 행위, 그리고 종교적인 불순종의 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고소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면 어찌해서 본문에서 참소의 대상에 다니엘이 제외되고 있는가? 다니엘은 우상에게 절을 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만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다니엘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친구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우상에게 절을 하는 일을 금했을 것이다. 그러면 왜 본문에 다니엘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가? 학자들은 아마도 다니엘이 이 시기에 먼 곳으로 공무상 출장을 갔거나, 아니면 심한 병(8:27)을 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Thomson).


 나. 왕이 세 청년을 회유함(13-15)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13).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14)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15)" 


  느부갓네살 왕은 그 보고를 듣고 심히 진노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왕 앞으로 끌어오라고 명령했다. 여기에서 '노하고 분하여'라고 번역된 말(비르가즈 와하마)은 문자적으로 '분노하여 격렬하게 성을 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극도로 격앙된 느부갓네살의 내적, 외적인 심리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왕의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듣고 즉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왕의 앞으로 끌고왔다(13).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즉시 처형하지 않고, 그들을 회유하려고 했다. 느부갓네살이 자기 명령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즉시 불에 던지지 않고 최소한의 법적 절차를 밟은 것은, 그가 참소자들의 참소 동기(시기와 질투)를 알고,또 자신의 은혜로 인해 등용된 좋은 인재들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느부갓네살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그들이 정말로 왕의 신을 섬기지 않고,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14). 그리고 왕은 그들에게 형벌을 주었다. 왕은 그들에게 지금이라도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왕이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서 절을 하면 그들을 살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으면, 그들을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자기 손에서 능히 건져낼 신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15).느부갓네살은 여기에서 자기 권세를 배경으로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교만을 드러냈으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이 섬기는 바벨론의 신(므로닥)보다 열등한 신으로 격하시키고 있다. 그러나 세 친구들은 이러한 왕의 그릇된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담대하게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다.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는 세 청년(16-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16).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17).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의 말을 듣고,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더 이상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16). 그들은 왕의 회유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왕에게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만일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맹렬히 타는 풀무불과 왕의 손에서 건져낼 것이라고 대답했다(17).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전혀 마음을 바꾸어 우상에게 절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대답했다(18)."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여호와를 믿는 자신들은 우상에게 절을 하라는 왕의 조서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들은 여호와를 믿고 그 후에 발생할 모든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맡겼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여 생명을 유지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그들의 고백은 어떠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릴 수 없다는 전인격적인 결단인 동시에 참된 믿음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3-3. 하나님의 보호(19-27)

 
가. 세 청년을 풀부 불에 던짐(19-23)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19),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20).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21).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22),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23)." 

  왕이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세 청년들이 단호하게 거절을 하게 되자, 마침내 왕은 진노하게 되었다. 왕은 분노하여 그 분노가 얼굴을 통해서 나타났다. 그는 풀무 불을 평일보다 7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령했다(19). 여기에서 '칠 배'는 고대에 사용되던 '7'이란 숫자의 상징성(레 26:18-24; 신 28:7; 시 12:6; 마 18:22)에 비추어 보면, 단순한 7배가 아니라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을 가리킨다. 이러한 느부갓네살의 과격한 명령은 그의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왕은 왕의 시위대 중에서 가장 용맹한 몇 명의 군인을 선택하여 자기 명령을 거역하는 세 청년을 풀무불에 던지라고 지시했다(20). 그리고 이 지시를 따라 선택된 군인들이 세 청년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로 결박해서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다(21). '고의'(사르발)는 긴 겉옷을 말하지만, 70인역(LXX)은 이를 '신발'로 번역했다. '속옷'(파티쉬)은 '망토형의 가운'으로 겉옷 위에 걸치는 의복이지만, NIV는 이를 '바지'(trousers)로 번역하고 있다. 또 '겉옷'(카르벧리)은 원래 '소매없는 외투'나 두건을 의미하지만, 대부분 후자의 뜻을 취한다. '별다른 옷'(레부쉐혼)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발과 머리를 덮는 다른 의복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옷들은 불에 잘 타는 가연성 물질이기 때문에, 후에 벌어질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 능력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왕의 명령이 지엄하고 또 풀무불이 매우 뜨거웠기 때문에 불꽃이 세 청년을 붙든 군인들을 태워 죽이고 말았다(22). 세 친구를 붙든 군인들이 불에 타 죽은 것은 풀무불의 온도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세 친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부각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이 불은 후에 세 친구를 참소한 자들을 태우는 도구가 되었다. 항상 의인을 해치려고 하는 자들은 자신이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게 되는 법이다(6:24; 에 7:10).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다(23). 


 나. 하나님께서 신앙을 지킨 세 청년을 보호하심(24-27)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24).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25),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26).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27)."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하심을 인해 불 속에 던져진 세 청년들은 아무런 해도 받지 않았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 장면을 보고 크게 놀라서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러자 모사들은 "왕의 말이 맞다"고 대답했다(24). 눈 앞에 벌어진 기이한 자연을 목격한 왕은 두려움과 충격에 휩싸였다. 한편 여기에 나오는 '모사'(하다브린)는 왕의 곁에서 법이나 제반 규정에 관해 자문이나 의견을 개진하는 장관이나 참모 등의 고위 관리를 가리킨다(단 6:7). 왕은 자기 눈으로 보니 결박되지 않은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그들이 불에 상하지도 않았으며, 또 네 번째 사람의 모양은 신의 아들과 같다고 말했다(25). 여기에 나오는 신의 아들과 같은 네 번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이다. 2) 하나님께서 세 청년을 보호하기 위해 보낸 사자(28절), 곧 천사이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여기에서 느부갓네살은 '신들'(엘라힌)이란 복수형을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은 그가 다신론적인 개념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느부갓네살이 이 장면을 보고 충격에 휩싸여서 맹렬히 타는 풀무불 입구 근처로 가서 이렇게 외쳤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말을 듣고 불 가운데에서 나왔다(26). 이때에 느부갓네 살은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유일하고 참된 신임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모든 신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신으로 불렀다(단 2:47). 70인역(LXX)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이를 '지극히 높은 신들의 신'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때에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놀라서 그 청년들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사람들을 세 청년을 살펴보니 불이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았고, 머리털조차 그을리지 않았으며, 겉옷의 빛도 변하지 않고, 불에 탄 냄새도 없었다(27). 여기에서 '보았다'고 번역된 말(하자인)은 '주시하다', '응시하다', '숙고하다'란 뜻을 가진 말이다. 이 말을 보면 바벨론 관리들이 놀라서 불 가운데서 나온 세 친구들을 유심하게 살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왕과 바벨론 고위 관리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세 친구들의 신앙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셨다. 이로 인해 세 청년들을 참소했던 자들은 완전히 말문이 막히게 되었다. 2장에서 하나님은 지혜의 신, 즉 은밀한 모든 비밀을 알리시는 절대적 계시자로 나타나셨다. 그러나 이제 3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자기 백서을 불 가운데서 보호호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바벨론인들은 당시에 불을 가장 강력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 청년들을 통해서 자신이 불을 주관하는 불의 주인이심을 계시하셨다.



3-4. 세 청년이 바벨론에서 더 높아짐 (28-30)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28).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29),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30)."

  이제 기적적인 장면을 목격한 느부갓네살의 고백이 28절에서 30절까지 이어진다. 이 부분은 3장의 결론부로 교만한 세상 권력과 이방 우상에 대한 여호와 신앙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믿는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하나님을 의뢰하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않은 종들을 구원하셨다고 노래했다(28). 하나님은 이방의 왕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여기에서 '의뢰했다'고 번역된 말(레하츠)는 '봉사하다', '시중들다'란 의미와 함께 '믿는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세 청년들이 하나님을 의뢰했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온전한 주인으로 섬기고 전적으로 믿고 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왕의 명령도 거부한 데에서 잘 나타났다. 그들은 준엄한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죽음을 불사하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고 경배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불 가운데서 구원하심으로 그들의 신앙이 옳았으며, 또한 자신이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구원해 주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온 천하에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믿고 의뢰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는 법이 없다.

  이제 왕은 자기 땅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공적으로 허용하게 된다. 그는 조서를 써서 자기 땅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자기 지배를 받는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누구든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경솔하게 말하거든 그의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으라고 지시했다. 그가 이렇게 지시를 내린 것은 이와 같이 불 속에서 자기가 믿는 종들을 구원할만한 신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29). 그리고 나서 느부겟네살 왕은 왕의 명령을 어기고 여호와 신앙을 굳게 지킨 세 청년을 바벨론 지방에서 더 높은 자리로 영전시켜 주었다(30). 세 친구들은 신실한 신앙을 인해 이방인의 땅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을 높여 더욱 더 영화로운 위치에 앉게 해주셨다. 여기에서 '높였다'고 번역된 말(첼라흐)는 '돌진하다', '번영하다'란 뜻으로, 모든 방면에 있어서 세 친구들의 위상이 탁월하게 높아진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기사는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째로 이 기사는 바벨론인들에게 오직 여호와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참 신이라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다. 둘째로 이 기사는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바벨론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비록 이방인의 땅에서 포로로 살고 있지만 결코 여호와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만일 그들이 세 청년처럼 바벨론에서 여호와 신앙을 굳게 지키면,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여호와 신앙을 포기하고 바벨론인이 섬기는 신들을 섬긴다면, 그들에게는 비참한 미래만이 기다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종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그들과 함께 계신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방인의 땅에서 살아도 굳세고 영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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