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45과)

요나서(1): 불순종과 징계(1-2장)


요나서(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1. 선지자 요나

  요나서와 (왕하 14:25)의 역사적 진술 외에는 선지자 요나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요나의 이름은 "비둘기"를 의미하며,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진실함"을 의미한다. (왕하 14장)에는 여로보암 2세가 요나의 예언에 따라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이 기록은 그의 예언이 행해진 시기나 그가 활동한 때에 대해서 정확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지 않다. 요나서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요나의 활동 시기를 일반적으로 주전 8세기로 추측하고 있다. 그는 갈릴리 나사렛 북방에 있는 스불론 땅의 갓-헤벨에서 태어났다. 요나서는 논란도 많고, 비난도 많이 받은 선지자의 성격과 생애에 관한 충분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공해 줄 것이다.
 

2. 조롱받은 책

  요나서는 성경의 다른 어떤 책들보다 더 많은 불신을 받아왔다. 이 책은 무분별한 조롱이나 합당치 않은 놀림의 표적이 되어왔다. 그러나 요나서는 구약 성경 중에서 위대한 선교적 문헌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속죄의 날, 엄숙한 시간에 유대인들이 이 예언서를 읽으면서 이 책을 얼마나 귀중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주후 3세기의 기독교 변증가 키프리안은 이 예언서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하나님께서 그를 회심시키기 위해 요나서를 사용하셨던 것이다.

  요나서에는 실제적인 예언이나 예고가 없이 다만 역사적인 사실과 설화만을 다루고 있어 그 가치성에 대해 논란이 있어왔다. 다른 예언서에 있는 예언적 담화가 요나서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이 요나서를 예언서로 보는 것은 요나서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예언서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후에 생각해 보겠지만, 이 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 역사에 대한 놀라운 예언임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예고가 담겨져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은 요나가 물고기에게 삼키워 그 뱃속에 있었다는 점이 다. 초자연적인 일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일을 빼버린다면 남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요나서에서 초자연적인 일을 제거함으로 난해한 점을 풀려고 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불신앙적 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예언에는 초자연적인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초자연적인 사실들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폭풍, 요나가 제비뽑힌 일, 바다가 갑자기 잔잔해짐, 큰 물고기가 때 맞추어 나타남, 물고기 뱃속에 갇힘, 물고기가 그를 해안에 안전하고도 건강하게 토해 냄, 박, 벌레, 동풍, 도저히 믿기 어려운 니느웨 성 전체의 회개.

  요나서에는 이러한 수많은 초자연적인 일들이 결합되어 조직체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육체 중에서 어느 낳 녹을 자르면 피가 나듯이, 요나서의 모든 부분이 다 소중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분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요나가 물고기에게 삼키웠다는 사건이 끊임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어도,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요나서는 여전히 중요한 책으로 수용되어졌다.



1. 불순종한 선지자(1장)
 

 1-1. 요나를 부르심과 불순종(1:1-3)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1),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2).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3)."

  하나님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셨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교도성인 니느웨로 가서 극심한 죄악에 대한 설교를 하도록 지시하셨다. 이 명령은 선지자를 이방에 보낸 유일한 경우였다. (창10:11)에 처음으로 언급된 니느웨는 티그리스강 동편에 있는 앗수르 제국의 옛 수도였다. 니느웨는 산헤립에 의해 앗수르의 수도가 되었고, 주전 612년에 메대와 바사에 의해 멸망되었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사다리꼴 모양의 이 도시는 그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요나는 이 도시의 큰 죄와 부패에 대해 그 도시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명을 받았다. 당시 니느웨에는 교만함(사 10:13)과 잔인함(나 3:1,10,19), 그리고 극도의 이기주의(습 2:15)가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다시스로 도망을 쳤다. 선지자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린 선지자는 요나 한 사람 뿐이었다. 니느웨는 팔레스틴의 동쪽에 있었고, 다시스는 서쪽에 있었다. 헬라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다시시는 스페인 남쪽에 있는 따르트슈(Tartessus)였다고 한다. 최근의 성경 지도는 다시스를 스페인이나 사르디니아에 있는 페니키아인들의 제련소가 있었던 도시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다시스가 영국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러면 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정반대편으로 도망을 쳤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학자드른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해 왔다. 어떤 학자는 요나가 니느웨의 회개를 예감했으며, 따라서 니느웨가 소생되면 자기 민족이 그들에 의해 멸망을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햇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방인의 회개로 인해 이스라엘이 가진 특권이 감소될 것을 두려워해서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요나의 자만과 고집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했다고도 말한다. 사실 요나는 여호와께서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을 기뻐할 수 없었다. 요나는 과거의 예언들을 통해서(호 9:3)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욘 4:2)을 보면 요나는 자신이 다시스로 도망친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용서받을 것을 싫어해서 그 곳으로 가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어떻게 피하려고 했는가? 그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무소부재하심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기 위해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려고 욥바항구로 갔다. 욥바는 지중해의 항구 도시로서 솔로문 시대부터 항구로 사용되었다. 후에 베드로는 바로 이 곳에서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성령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이방인 선교의 사명을 피하려고 욥바를 찾은 요나를 생각할 때에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2. 폭풍(1:4-10)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4).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5).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6).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7).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8)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9),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10)."

  비록 요나가 도망을 쳤지만, 하나님은 자연이나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바다에 거센 바람과 폭풍을 보내셨다(문자대로는 "세게 던지셨다"). 하나님은 바람을 자신의 사자로 삼으셨던 것이다. 순종하지 않는 종을 찾아내어 그가 죄 중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중해의 폭풍에 익숙해 있던 선원들은 이것이 평소의 폭풍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tsdnjs들은 여러 지방에서 모여든 페니키아인들로서 각기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각기 자기가 믿는 신을 부르면서,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에 실은 짐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배 안에서 공포와 놀람, 그리고 부르짖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요나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 배의 구석진 곳으로 내려가서 잠이 들어 있었다. 죄악은 사람들을 불안하고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선장은 배 밑에서 잠자는 요나를 발견하고 그에게 기도하라고 요구했다. 이교도가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기도하라고 한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회교도들이 매일 5번씩 기도하는 것을 볼 때에 기도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믿는 신에게 기도하고, 선원들은 배를 안전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사나워진 폭풍은 잠잠해질 줄을 몰랐다. 지중해의 항해철에는 거의 폭풍이 없었고(행 27:9), 선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폭풍이 그치지 않게 되자 산원들은 이 일이 예사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누군가 배 안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그 죄인이 누구인지 제비를 뽑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과 요나가 죄인으로 뽑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요나에게 이러한 재난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나는 더 이상 사람들을 속일 수가 없었다.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인이며,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자라고 말했다.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당시에 페니키아인들이 '하늘의 바알'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도전적인 선포였다. 요나가 여호와 하나님을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창조주로 소개한 것은, 폭풍이 일어난 상황 속에서 설득력 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무리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면서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했느냐?"고 말했다. 이 말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놀라움에서 터져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다.


 
1-3. 바다 속의 요나(1:11-16)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11)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12).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13).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14),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15).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16)."

  그 동안에도 바다의 폭풍은 점점 더 거칠어져 갔다. 선원들은 요나에게 바다는 잔잔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선원들은 요나만이 그 해결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질문을 했을 것이다. 요나는 자기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대답했다. 요나는 이 폭풍이 자신의 거역으로 인해 왔기 때문에, 자신이 바다에 던져지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선원들은 요나를 희생시키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열심히 노를 저어서 육지에 닿으려고 치선을 다했다. 그러나 바다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할 수 없이 선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진 일에 대한 죄를 묻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그들은 일종의 도박을 해야 했다. 그들 중에 아무도 요나를 바다에 던져서 폭풍이 잔잔해질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폭풍이 점점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다른 것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면서 그를 죽이는 피 값을 자신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요나의 말대로 선원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되자, 즉시 폭풍은 잠잠해지게 되었다. 그들은 바다가 잔잔해지는 것을 보고 요나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그 사건을 통해서 요나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바다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인해 배에 싣고 있던 것 중에서 골라 여호와께 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그들은 해안에 도착하게 되면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겟다고 서원을 했다. 유대인의 미드라쉬는 이 배의 선원들이 욥바로 귀환한후에 개종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절만 가지고는 그들이 정말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1-4. 적용: 요나서 1장의 의미: 이스라엘의 전형인 요나

  요나서 1장에는 예언적인 말은 한 마디도 없지만,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으로 가득차 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상징이었다. 요나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요나처럼 이스라엘도 이방인 구원의 사명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요나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그 사명에 순종치 않았다. 요나가 이방인 중에 누워있던 것 같이, 이스라엘도 불순종을 인해 흩어지게 되었다. 요나가 이교도들 중에 있을 때에 이교도들이 여호와를 알게 되었듯이, 이스라엘에 열국 중에 흩어져 살고 있을 때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들어간 것같이 이스라엘도 이방 민족에게 포로가 되어 징계를 받았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이스라엘도 이방에 살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수 있었다.


2. 징벌을 받은 선지자(1:17-2장)
 

 2-1. 물고기를 예비하신 하나님(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17)."

  내용상 (1:17)은 새롭게 전환되는 부분으로 히브리어 원문에는 2:1로 되어 있다. 즉, 앞에서는 요나가 자신의 허물을 알고 자의에 의해 바다에 뛰어들었던 사실을  다루었고, 본절 이후, 즉 2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요나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계획을 진행하시는 일과 그로 인해 요나가 여호와께 기도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 "예비했다"고 번역된 말은 원래 "지명하다, 명령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하나님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질 때에 물고기가 그 곳에 있도록 섭리하셨다. '큰 물고기'(다그 가돌)가 고래라고 주장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물고기를 말하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물고기는 요나가 3일 동안이나 뱃속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큰 물고기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삼일 삼야'는 대략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날수로 3일을 가리키는 히브리적 표현이다. 요나가 3일간이나 뱃속에 있으면서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할 정도로(마 12:40)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있었던 사건이었다.


 
2-2. 물고기 뱃 속의 요나(2:1-3)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1),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2). 주께서 나를 깊음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3)."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섭리로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요나가 살아있을 수 있도록 보호해 주셨다. 요나는 자기의 처지를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 이 하나님의 선지자는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지만, 고난 중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 본능적으로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 지를 깨달았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소리쳐 기도하기 시작했다. 요나가 기도를 드린 시기와 그것을 기록한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2:1)은 요나가 아직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혀 있을 때에 기도했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분명히 요나를 그리스도의 부활의 상징, 또는 전형으로 여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요나는 분명히 살아있었다. 그러나 물고기 뱃속에서의 그의 처참한 상황은 주님께서 죽으시고 음부에 계셨던 3일 동안의 상징으로 보기에는 충분하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한 자기의 기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는 스올, 즉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며,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주님은 요나를 깊은 바다 속에 던지셨다. 그러므로 그의 주변에는 큰 물이 둘러싸고 있었고, 주님께서 보내신 파도와 큰 물결이 그의 위에 덮쳤다. 요나는 자기에게 역경을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


 
2-3. 요나의 기도(2:4-7)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4).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5).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6).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7)."

  (2:4-7)은 요나가 한 기도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특별한 관심과 돌보심에서 쫒겨났다고 느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겨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는 비록 쫓겨났지만, 신앙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했다. 그는 장래에 다시 구원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즐거움을 누릴 것을 기대했다. 바다는 그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듯이 격노했다. 바다 밑바닥에 널려 있는 바다풀은 그를 휘감는 듯 했다. 요나는 바다 밑바닥에 내려간 것을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고 표현하고 있다. 땅은 문 빗장이 되어 그가 살아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그는 이제 마지막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그를 죽음의 웅덩이에서 건져주셨다. 그는 영혼이 심히 피곤해 있을 때에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었다. '피곤할  때'라는 말(베히트아테프')은 문자적으로 '덮쳤을 때', 또는 '압도되었을 때'라는 의미로서, 이는 육체적으로 영적으로도 탈진된 상태를 나타낸다. 그는 이미 폭풍과 제비뽑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손을 느꼈지만, 죽음의 위기에서 건짐을 받은 후에는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영혼의 청을 쉽게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요나는 마침내 자기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역경 중에서 회개하며 부르짖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다.


 
2-4. 요나의 감사와 구원(2:8-10)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8),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9).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10)."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드렸다. 그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저버렸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우상 숭배자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신 후에 감사를 드리는 찬송을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자기가 서원한 것을 이행하겠다고 서원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섬기는 자였기에 반드시 이 약속을 이행할 것이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서 구원이 여호와께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참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이와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법이다.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려주시면, 다 이상 불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고백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그 물고기에게 요나를 토하도록 명하셨다. 그리고 그 물고기는 그 명령을 따라 요나를 육지에 토해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살아 있었던 일이나, 물고기가 그를 육지에 토해낸 사건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이성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점에서 주님은 이 사건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예표로 보셨다.


 
2-5. 적용: 요나서 2장의 의미

 가. 요나와 이스라엘

  요나서 1장의 사건들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묘사했다면, 2장은 요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의 특징을 더욱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물고기 뱃속의 요나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동시에 또한 하나님의 징계의 손 아래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열국 중에 흩어져 사는 동안 이방 민족들의 박해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신 28장)은 온 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의 상태를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압박을 받고, 육체나 영혼이 평안함과 쉴 곳을 얻지 못하며, 생명은 항상 위험과 두려움에 빠질 것이다.

  요나가 육신의 생명이 끝나게 되었을 때에 거듭해서 두려워했듯이, 이스라엘도 거듭해서 국가의 존립에 대해 낙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징계를 하는 도중에도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셨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열국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루신 후에는 이스라엘을 압박했던 나라들을 다시 공의대로 심판하셨다. 하나님의 이러한 무서운 징계를 알기 때문에, 요나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열국 중에 흩어질 것을 예언하면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신 4:29)." 이스라엘은 장차 고난을 받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이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나. 하나님의 구원

  오늘날 이스라엘은 무엇보다도 선지자 요나의 위대한 고백, 즉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마암는다"는 고백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위험한 때를 맞이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은 에워싸고 있는 대적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구원이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사실만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 나라들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수단을 통해서 구원을 얻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우상과 군사력으로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오직 여호와를 통해서만 구원과 안전과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요나의 고백처럼 그리스도를 통해서 친히 인류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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