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11과)

선지서 개론 (6) : 이스라엘과 유다의 선지자들(1)


제 6장 이스라엘과 유다의 선지자들(개관)

A. 일반적 사실들

1. 예언자의 수적인 증가

  이스라엘의 예언자의 숫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가하였다. 사사시대의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예언자의 숫자가 적었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이때에는 예언자들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옳은 주장이 아니다. 사무엘 시대와 성경을 기록한 예언자들의 시대 사이에는 더 많은 예언자들이 있었다. 예언자들의 숫자가 가장 많았고 그 영향력이 컸을 때는 성경을 기록한 예언자들이 활동할 때였다. 이러한 숫적 증가의 원인은 예언자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의 증가에서 찾을수 있다. 처은에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일을 하면서 백성들이 복술가를 찾지 않고 예언자를 찾게 만들었다(신 18:9-22). 이러한 일은 소수의 예언자들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예언자들의 임무는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개혁가로서의 임무를 감당해야 했다. 원래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은 제사장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백성들은 이러한 제사장들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에 순종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들이 가르치는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어 백성들을 개혁하는 일을 하게 하셨다. 백성들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죄 역시 깊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예언자들이 개혁가의 역할을 담당해야만 했다. 사실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성경에 기록된 숫자보다 훨씬 더 많았다. 성경은 모든 예언자들을 다 기록할 자리가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성경에는 중요한 사건이나 계시를 위해 필요한 예언자들만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중에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2. 예언자와 제사장의 관계

  그러면 예언자와 제사장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종교적인 기능의 관점에서 예언자를 살펴보려면, 예언자와 제사장의 관계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사장과 예언자는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했다. 그들은 모두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복종하도록 격려했지만, 서로 다른 면에서 사역을 했다.

  제사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했다. 첫 번째 기능은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서, 중앙 성소에서 백성들의 위해서 희생을 드리는 의식 행위를 주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역은 주로 중재적인 성격을 띠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희생을 근거로 해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있도록 구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역은 이와 동일하게 중요한 것으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었다(레 10:11, 신 33:10).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지만, 백성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면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가르칠 의무가 있었다. 레위인들은 각 지파들 중에 흩어진 48개의 성읍을  기업으로 받았다(수 21:41). 이로 인해 그들은 항상 백성들 가까운 곳에서 살 수 있었다. 당시 주변 국가들의 제사장들은 주로 중앙 성소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백성들 중에 살기를 원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한 시간을 많이 주셨다. 다윗은 그들을 24개의 집잔으로 나누어서 각 집단으로 하여금 한 주간씩 교대로 중앙 성소에서 섬기도록 했다. 이것은 곧 각 집단이 1년에 두 주간만을 성소에서 보내고, 나머지 50주간은 백성들을 가르치는 사역을 위해서 집에서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어느 지정된 성읍에 살지 않았다. 그들은 때로 그들이 출생한 성읍에 살기도 했고,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돌아더니기도 했다. 그들은 결코 어느 지역의 교육 기관에 속해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고, 백성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들에게 율법을 따라 살도록 촉구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곧 개혁가로서의 예언자의 사역은 교사로서의 제사장의 사역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마음 속에 율법의 요구를 가르쳤지만, 예언자들은 그러한 가르침에 복종하라고 촉구했다. 예언자들은 율법이 말하지 아니한 부분에 대해서도 말했다. 예언자들은 특히 심판에 대한 경고나, 먼 미래에 도래할 구원과 영광의 시대에 대한 예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이나 재림에 대해 말함으로써 메시아적인 예언을 하기도 했다. 제사장과 예언자는 그 숫자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다. 예언자의 숫자도 많았지만, 제사장의 숫자는 더욱 많았다. 제사장들은 모두 레위의 후손들이었다.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의 후손들은 모두 자동적으로 레위족이 되었으며, 특히 그 중에서 아론의 후손은 제사장이 되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한 지파 전체가 제사장이나 레위족이 되었기 때문에 그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제사장과 레위족속은 24개 집단으로 나누어서 1년에 두 주만을 성소에서 섬겼고, 그 나머지는 모두 집에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율법을 알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많은 제사장들을 두어 그들을 통해 율법을 가르칠 수 있게 해주셨다. 반면에 예언자들은 그 숫자가 제사장만큼 많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예언자들의 숫자는 상당수에 이르렀겠지만, 이러한 숫자는 제사장의 막대한 숫자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


3. 전기 예언자와 후기 예언자(성경을 기록한 예언자)의 관계

  성경을 기록한 후기 예언자들이 그들의 활동을 시작했을 때에 이스라엘의 예언 역사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보다는 과거에 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부 학자들은 전기 예언자들은 무아경주의자였지만, 후기 예언자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로서 도덕적 종교적 개념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부텐비셀은 1914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성경을 기록한 대예언자들의 영감은 전기 예언자들의 무아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옳지 않다. 이스라엘에서의 예언 운동은 전체 역사를 해서 기본적인 동질성이 유지된 단일 운동이었다. 이러한 동질성은 백성들을 개혁시켜서 제사장들이 가르쳐 준 모세의 율법에 복종하는 자리로 인도하려는 공통적인 열망 속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비록 근본적인 메시지와 목적은 변하지 않았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다양성이 나타났다. 그 다양성 중에 하나는 죄에 대해 언급하는 태도였다. 전기 예언자들은 주로 개인의 죄에 대해 언급했다. 예를 들어 나단은 다윗이 밧세바와 우리야에게 범한 죄에 대해 책망했고, 후에 갓도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일에 대해 추궁하였다(삼하 12:1-14, 24:10-25). 반면에 후기 예언자들은 일반적인 백성들의 죄에 대해 언급했다. 그들은 개인의 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국가의 죄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러한 구졀에 따라서 전기 예언자들은 주로 개인과 접촉을 했다. 예를 들어 나단은 다윗과 접촉을 했으며, 엘리야는 아합과 접촉을 했고(왕상 21:17-24), 하나니는 아사와 접촉했다(대하 16:7-10). 그러나 후기 예언자들은 수많은 백성들에게 말했다. 세 번째 구별은 전기 예언자들은 오직 말로 메시지를 전했지만, 많은 후기 예언자들은 예언서를 기록해서 오늘날까지 그것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인구의 증가와, 백성들의 죄의 증가, 그러한 죄에 대한 임박한 심판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예언자들이 백성들과 접촉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그 수가 증가했으며, 또한 한 번에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방법도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성을 위해서는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적합했다. 그 이유는 이러한 방법이 백성들로 하여금 입으로 전한 것을 후에 다시 읽음으로 강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후기 예언자들이 전기 예언자들보다 더 유능한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확인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보면 후기 예언자들이 전기 예언자들보다 더 유능한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을 비교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에를 들어 사무엘은 전기 예언자인데 그는 후기 예언자들 보다 더 탁월하게 평가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후기 예언자 중에서도 소선지자들은 대선지자들보다 덜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은 위대한 인물들로서 하나님에 의해서 크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선지자들이 그들보다 못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선지자와 소선지자의 차이는 오직 그들이 기록한 성경의 길이빡에 없다. 하나님은 어떠한 이유로 인해 대선지자들로 하여금 더 긴 예언서를 기록하도록 영감시키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선지자들이 대선지자들보다 덜 중요한 것을 기록했거나, 그들의 사역이 대선지자보다 덜 효과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B. 역사적 고찰

1. 전 왕국 시대의 예언자들

  첫 번째 시대는 사울에 의해서 왕국이 설립됨으로써 끝이 났다. 그때까지의 정치적인 상황은 각 지파에 따라서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특별한 형태의 예언적 메시지가 필요했다. 어떤 학자들은 첫 번째 예언자는 사무엘인 것으로 믿고 있다. 예를 들면, 린드블롬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미리암과 드보라와 같은 자들은 오직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예언자로 불리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한 확신은 이들을 예언자로 보는 개념이 그가 보는 바 이스라엘의 역사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을 "나비"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여 예언자로 부르고 있는데, 이 용어는 린드블롬이나 다른 학자들이 사무엘이나 다른 예언자들에 대하여 이 용어를 적용시키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창 20:7)에서 선지자로 불리우고 있는 아브라함의 경우에 대해서는 구별할 필요가 없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단느 의미에서는 예언자였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의 국가로 형성되기 이전의 일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이었지만, 그 나라는 모세 시대에 이르러서야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스라엘 국가의 예언자를 말할 때에 아브라함을 포함시킬 수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예언자로 불리우는 사람은 모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 18:15)에서 자기 자신을 예언자라고 부르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성경은 또한 모세가 죽은 후에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 34:10)...."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첫 예언자였으며, 다른 예언자들의 본보기였다.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은 여선지자(네비야)로 불리웠다. 그녀에게 그러한 자격이 주어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미리암은 모세의 경우처럼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했다. 그녀는 또한 비록 성경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때때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도 했을 것이다. 여호수아도 예언자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에게 나비라는 용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예언자의 기능을 수행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했다. 아마도 그에게 이 용어가 사용되지 않은 것은 그것을 요구하는 특별한 경우가 없엇기 때문일 것이다. 브올의 아들 발람은 (벧후 2:15-16)에서 선지자로 불리우고 있기 때문에, 때로 예언자에 속하기도 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으며, 오직 모압의 발락 왕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기 위해서 메소포타미아로부터 불려 온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의 예언자에 속하지 않는다.

  두 번째 예언자는 사사들 중에 하나인 드보라인데, 그녀는 (삿 4:4)에서 여 선지자(네비야)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녀는 사사가 되기 전에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사사로서의 그녀의 역할은 여선지자로서의 그녀의 초기 직분 때문에 주어졌을 것이다. 기드온 시대에는 익명의 한 예언자가 나타나서 바알을 숭배한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 경고했다(삿 6:8-10). 물론 이 시대에 가장 잘 알려진 예언자는 사무엘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아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삼상 3:20)" 온 이스라엘에게 알려졌다. 그는 또한 그의 본거지였던 라마 근처의 나욧에 머물면서 젊은 예언자들의 무리를 지도하기고 했다(삼상 10:5-10, 19:18-20). 아마도 그들은 사무엘이 설립한 예언자 훈련 학교의 일원으로 보인다.

  이들 모두는 이 시기의 예언자들로 명확하게 불리우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외에도 역시 예언자들이 잇었다는 근거도 있다. 첫째로, 자기와 같은 선지자 하나가 일어나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줄 것이라는 모세의 예언은 이들 소수의 예언자들에 의해서만 성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번째로 드보라가 여선지자로 언급되고 있는 사실은 또 다른 예언자들이 살고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드보라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도 여선지자로서의 기능이 요구되지 않고, 오직 사사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 번째로 기드온 시대 이후로는 예언자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 데, 이것은 당시에는 예언자들이 흔하였으며, 그들 중 하나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 예언자, 혹은 선지자가 일반인처럼 여겨졌음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엿으나,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삼상 9:9)"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 구절은 이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의 명칭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예언자들이 자주 언급되었고, 따라서 많은 수의 예언자들이 살았음을 의미한다. 다섯 번째로 예언자 모두가 언급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시기에 잇어서도 모든 예언자가 다 언급되지는 않았고, 오직 관련된 역사에 포함된 자들만 언급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를 기초로 해서 볼 때에, 사사 시대에는 아마도 상당수의 예언자들이 살았을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신 18장)에서 모세를 통하여 계획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서 봉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백성들은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복술가에게로 가지 않기 위해서 그러한 예언자가 필요햇다. 이들 예언자들에 의해서 선포된 메시지에는 한 가지 중요한 중심 주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두 사람의 대표적인 예언자들의 말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 필요성은 가나안의 영향, 특별히 가나안의 원주민들에 의해서 행하여졌던 바알 숭배에 저항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방금 광야에서부터 왔고, 반면에 가나안인들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엇기 때문에, 그들은 가나안 방식을 따라갈 유혹 앞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는데, 특별히 그들은 농사짓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는데, 가나안인들은 그것을 위하여 비와 폭풍의 신인 바알을 숭배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 빠질 가능성이 잇엇기 때문에, 예언자들은 제사장들과 더불어 그러한 영향력에 대항하여 싸워야만 했다. 이러한 메시지를 선포한 두 예언자는 사무엘과 기드온 시대의 익명의 예언자였는데, 그들의 메시지는 모두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삼상 7:3)." 기드온 시대의 익명의 예언자는 먼저 백성들에게 과거의 구원을 상기시키면서 아무리인들의 신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한 후에, 그들이 순종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했다. 그가 언급한 신들은 사무엘이 언급한 바알과 아스다롯을 의미한다.


2.왕국 시대의 예언자들

  사무엘 시대 다음에 온 왕국 시대에는 예언자들은 숫적으로도 증가했으며, 백성들 사이에서 그 영향력도 증가하였다.

 * 이름
  이러한 두 번째 시대의 예언자들의 활동 기간은 사사 시대의 활동기간 보다 길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예언자들을 살펴볼 때에 그들이 활동했던 때에 통치한 왕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다윗 시대: 나단(삼하 7:2, 12:25), 갓(삼하 24:11), 선견자 사독(삼하 15:27)과 레위인 헤만(대상 25:5)
 - 여로보암 시대;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왕상 13:1-10)과 그를 속인 벧엘의 한 노인 선지자(왕상 13:1-10)이 있었다.
 - 르호보암 시대: 스마야(대하 11:2-4, 12:5-15), 잇도(대하 9:29, 13:22)
 - 아사 시대: 아사랴(대하 15:1-8), 하나니(대하 16:7)
 - 바아사 시대: 하나니의 아들 예후(왕상 16:1-12)
 - 여호사밧 시대: 아하시엘(대하 20;14), 엘리에셀(대하 20:37).
 - 아합 시대: 엘리야(왕상 17-19장), 엘리사(왕상 19:19-21), 한 선지자(왕상 20:13-28), 미가야(왕상 22:8-28).
 - 유다의 요아스 시대: 스가랴(대하 24:20)
 - 유다의 아마샤 시대: 한 선지자(대하 25:15)

  위에서 우리는 왕정 시대에 활동한 20명의 예언자들을 열거했는데, 그들이 활동한 기간은 왕국이 성립된 때부터 여로보암 2세까의 약 250년에 걸친 시기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기간 중에 활동한 예언자들은 이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벧엘이나 여리고나 길갈에 살면서 훈련을 받았던 예언자의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지도와 통제를 받고 있었다. 또한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와 함께 요단 강을 건널 때에도 약 50명의 젊은 예고자들이 길갈에  있었으며(왕하 2:7). 약 100명의 예언자들이 길갈에 살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왕하 4:43). 이들 무리의 숫자는 계속해서 증가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새로운 막사가 필요하게 되었다(왕하 6:1-2). 성경에는 또한 다른 예언자들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의 단을 정죄했을 때에 그 곳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았다는 사실은 또 다른 성읍에도 선지자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왕상 13:11-32). 또 요아스가 다스리던 때에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게 되자, 여호와께서는 당시의 불성실한 방백들을 책망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셨다(대하 24:19). 그러나 이때에 이름이 거론된 예언자는 스가랴 한 사람밖에 없었다.

 * 메시지
  예언자들이 선포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 시기를 통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시기에 있어서의 재미 있는 사실은 그 메시지가 가나안의 영향에 대하여 관심을 보였던 사사 시대의 메시지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다윗에 의해서 주변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가나안의 영향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왕정 시대의 예언자들은 무슨 메시지를 전했는가? 그들이 전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주제가 포함되었다.

 가. 사회적 개혁
  첫 번째 메시지는 사회적 개혁에 관한 것이었는데, 후기 예언자들은 이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다윗 시대에 있어서 이에 관한 예언적 선포는 두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다윗 자신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 첫 번째 것은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한 후에 다시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살해하도록 명령한 것에 대해 나단이 질책한 것이었다(삼하 12:1-14). 두 번째 것은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것에 대하여 갓이 책망한 경우이다(삼하 24:10-14). 이러한 예언은 다윗 때 외에도 주어졌다. 엘리야는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서 불의를 행한 일에 대해서 책망했다(왕상 21:17-26). 또한 엘리에셀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더불어 배를 지어서 다시스로 보내고자 한 것에 대하여 책망하였다(대하 20:37).

 나. 하나님께 대한 불성실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불순종에 대하여 책망한 경우는 4가지가 있다. 스마야는 르호보암에게 경고하면서, 그가 여호와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왕 시삭의 손에 붙이셨다고 책망했다. 이에 대하여 르호보암과 그의 방백들이 회개하자, 여호와께서는 시삭이 가져올 파멸을 감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 12:1-8). 아사랴가 아사 왕을 책망하자, 아사 왕도 회개하고 "가증한 물건을....온 땅에서 제하고....여호와의 낭실 앞에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였다(대하 15:1-8). 그러나 하나니가 아사에게 책망했을 때에 아사는 하나니를 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가 책망한 것은 아사가 여호와의 구원의 손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의지한 점이다(대하 16:7-10). 스가랴는 요아스 시대에 이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했다. 그가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한 것에 대하여 책망을 하게 되자, 백성들은 그를 잡아서 왕의 명을 좆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서 죽여 버렸다(대하 24:17-21). 이들 네 경우에 예언자들이 원했던 것은 왕들이 여호와의 명을 좆아 행하는 것이었다. 이들 왕들은 모두 하나님의 율법이 효력을 발휘했던 유다의 왕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에 따라서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야만 하였다. 이들 예언자들은 바로 이 사실에 하나님의 축복이 좌우됨을 알았기 때문에, 왕들을 책망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둘은 그들의 그러한 노력을 인해 고난을 당하였다.

 다. 단과 벧엘의 거짓된 제
  세 번째 주제는 북 이스라엘의 다놔 벧엘에 있는 거짓된 제단에 관한 것이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단과 벧엘에 예루살렘을 대신할 제단을 세웠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행위에 대해 심판을 선언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소개된 한 무명의 예언자였다. 그 예언자는 미래에 요시아라는 왕이 일어나서 벧엘의 제단에서 분향을 드리는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대해 여로보암은 그를 체포하라고 명령했으나 그의 손이 말라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은 그 예언자에게 자기 손의 회복을 위해 요청해야 했다(왕상 13:1-6). 두 번째 책망도 역시 여로보암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전에 여로보암이 왕이 될 것을 예언했던(왕상 11:9-38) 아히야 선지자로부터 주어졌다. 아히야는 더 이상 여로보암의 집에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이유는 그가 거짓 제단을 세움으로 이전의 모든 왕보다 더 악을 행했기 때문이었다(왕상 14:5-16). 이 예언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죽음으로 성취되었다. 세 번째 책망은 나답을 암살하고 왕이 된 바아사에 관한 것으로, 이 예언은 예후에 의해 주어졌다. 예후는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행했기 때문에 그의 운명도 여로보암과 같이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왕상 16:1-12). 네 번째 책망은 아합에 대한 미가야의 유명한 예고이다. 아합은 거짓된 제사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400명의 거짓 예언자들을 세운으로 그 일을 대신했다(왕상 22:8-29).

 라. 거짓 신에 대한 숭배
  네 번째 주제는 하나님을 잊어버릴 뿐 아니라,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이 예언에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포함되었다. 첫 번째 책망은 솔로몬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예언은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10지파를 다스릴 것이라고 예고할 때에 주어졌다. 아히야는 그 이유가 솔로몬이 여호와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사람의 신 밀곰을 숭배했기 때문"이었다(왕상 11;29-38). 두 번째 책망은 이보다 150년 후에 한 선지자가 유다의 아마샤를 비난한 경우이다. 당시에 아마샤는 에돔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그들의 우상들을 가져와서 자기 신으로 세웠다. 이에 대하여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질문했다.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대하 25:15).

  이스라엘에 있어서 이러한 책망은 이세벨에 의해서 시작된 바울 숭배에 관한 것이었다. 갈멜산 위에서의 엘리야의 경우는 잘 알려진 일이다. 이때에 엘리야는 백성들을 인도하여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하나님임을 확인하게 했다. 바알 숭배에 대한 엘리사의 언급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경우만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첫 번째 경우는 남쪽 모압에서 세 명의 왕들이 절박한 물의 필요성 때문에 그에게 문의한 경우이다. 이때에 엘리사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에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도 가소서!"라고 응답하였다. 여호람이 전에 바알의 예언자들을 의지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그에게 왜 그들에게 가지 않느냐고 비난했다(왕하 3:9-14). 두 번째 경우는 여호람의 후계자로서 예후를 지명한 경우이다. 예후는 아합의 집에 대해 피의 숙청을 하고 바알 숭배자들을 죽였다. 엘리사는 예후를 지명하면서 아합의 집을 파멸시키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또한 바알 숭배자를 죽이라는 명령도 포함시켰을 것이다(왕하 9:10. 10: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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