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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서 개론 (5) :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


제 5장 거짓 선지지와 참 선지자

  구약 예언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논쟁점은 거짓예언자에 관한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참 예언자 뿐 아니라,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다. 성경에서는 이에 대해서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신 18:20)"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사 28:7)...."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렘 23:11-12)."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렘 23:25-30)."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찐저,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 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겔 13:3-6)."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겔 13:9-10)."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이스라엘이 알찌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에브라임은 내 하나님의 파숫군이어늘 선지자는 그 모든 행위에 새 잡는 자의 그물 같고 또 그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었도다. 저희는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호 9:7-9)."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미 3:5,11)."

  이와 같이 선지서 곳곳에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 참 예언자들이 거짓 선지자라고 부른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거짓 선지자라고 불리웠으며, 거짓 선지자의 표시는 무엇인가?


1. 거짓 예언자의 정체

 * 두 가지 분류

  거짓 예언자들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예언자라고 불리우지도 않았고, 자기 스스로도 선지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며, 둘째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첫 번째 집단에 대해서는 (신 13:1-3)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신 13:1-3)."

  예레미야 역시 이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렘 23:13)...."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러한 예언자들에게 대항하였으며(왕하 18장),예후는 이러한 바알의 선지자들을 그들의 산당에서 죽여버렸다(왕하 10장).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사람은 첫 번째 무리가 아니다.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주장했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참 선지자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들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참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크게 비판했다. 거짓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이러한 거짓 예언자들의 특성과 표시는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이제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 기본적인 대답

  이에 대한 기본적인 대답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 첫 번째 대답은 참 예언자들은 그 메시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인 반면에, 거짓 예언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여호와께서 말하지 않았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겔 22:28)"고 말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신들 위에 계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서, 성경 시대에 인간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 참 예언자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거짓 예언자들은 자기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겔 13:3)"에 지나지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로 참 예언자들은 특별히 하나님에 의해서 그들의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거짓 예언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참 예언자의 부르심에 대한 주제는 이미 1장에서 다루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그들에게 부과된 도전적인 임무로 말미암아 특별한 용기를 가진 자들이어야 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업에 의해서 이어지는 제사장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렘 1:5).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지도 않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명령도 받지 않았다(렘 14:14, 29:8-9).

 * 구분점들

  위의 두 사실들은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백성들이 시험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들은 모두 자신이 하나님의 대표자요,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 중에 누가 정말로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사람인지를 백성들이 판단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는 객관적인 표시가 필요했다. 이러한 표시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가. 복술을 행하지 않음
  한 가지 분명한 표시는 예언자가 복술을 행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만일 그가 그것을 행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는 참 예언자일 가능성이 높다. (신 18:9-14)에서는 이방인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다양한 복술의 형태에 대하여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것들을 행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명백한 경고를 볼 때에 예언자들은 아무도 복술을 행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그러한 예언자들에 대하여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였도다(렘 14:14)."라고 말하였으며, 미가도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미 3:7,11, 겔 12:24)"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복술을 행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것을 행한 자들은 그로써 직접적인 계시를 통하여 그들의 메시지를 받았다.

 나. 메시지의 성격
  모든 예언자들에게 적용되는 두 번째 표시는 그들이 선포한 메시지의 성격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백성들이 기뻐하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이것은 라못-길르앗 전쟁에 관하여 아합에게 메시지를 전한 400명의 예언자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들은 오직 그가 듣기를 원했던 것을 말하였다. 반면에 미가야는 그가 듣기를 원치 않았던 것을 전하였다. 이것은 곧 미가야가 참 예언자임을 보여준다.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이 전한 메시지에 대하여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말했다(렘 8:11, 겔 13:10). 그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때에 만사는 잘될 것이며, 백성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예레미야는 또한 거짓 예언자들에게 약간 다른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렘 28:8)." 예레미야의 의도는 그 당시의 거짓 예언자들은 평강의 시대에 대하여 말한 반면에, 이전 예언자들-곧 참 예언자들은 전쟁과 재앙과 염병에 대하여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 예언자의 표시는 그가 결코 심판에 대해 말하지 않고, 오직 평강과 평화에 대하여만 말하였다는 점이다.

 다. 예언자의 성품
  메시지의 형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언자 자신의 성품도 그러했다. 이것도 역시 모든 예언자에게 적용되는 객관적인 표시였다. 우리는 이 장의 첫 부분에서 참 예언자들이 거짓 예언자들에 대하여 비난하는 몇 가지 사실들을 살펴보았는데, 이것들은 바로 이 부분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거짓말하고, 속이고, 취하며, 그들이 참 예언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처럼 가장하며, 하나님께서 보내시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말했다. 미가는 돈을 위해 복술을 행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부도덕성에 대해 경고했다(미 3:1). 또한 그는 거짓 예언자들이 음식을 제공하는 자들에게만 화평을 예언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재앙을 예언한다고 비난했다(미 3:5). 거짓 예언자들은 돈을 지불하는 자들에게는 평강을 외쳤고,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저주를 외쳤다. 거짓예언자들은 자신의 진정한 성품을 숨기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정체는 백성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라. 자기 부정을 감수함
  네 번째 표시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관계가 깊은 관계가 있다. 참된 예언자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위해서 기꺼이 자기 부정을 감수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의 진실성과 헌신성을 증명하였다. 거짓 예언자들은 왕을 기쁘게 함으로 안락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참예언자들은 극심한 손해와 고난을 기꺼이 견디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는 아합 시대의 미가야이다. 그는 400여명의 거짓 예언자들의 큰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저하지 않고 왕의 패배를 예고했다. 이로 인해 아합은 군사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 이때에 미가야는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기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왕상 22:27-28)."

  또 다른 경우는 예레미야인데, 그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인들에게 의해서 포위되었을 때에 예언을 한 사람이다. 이 때에 유다의 다른 사람들은 백성들에게 용기를 내서 원수들에게 맞서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항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인기가 없었으며, 그는 반역자라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이러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는 여러 가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서 풀려 나오게 되자 또 다시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가 취할 것이라!"(렘 38:3)라고 선포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를 또 다시 감옥에 가두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를 투옥하라고 지시하게 되자, 그는 구덩이와 같은 감옥에 던져져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그 곳에 두기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에벳멜렉으로 하여금 그를 그 곳에서 꺼내도록 만드셨다(렘 38:4-13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가장 극단적인 자기 부인을 감수했다. 물론 이러한 표시는 모든 참 예언자들에게 예레미야처럼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사역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마. 메시지의 조화
  다섯 번째 표시는 참 예언자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율법이나 하나님의 참 예언자들이 전한 메시지와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율법은 모세 이후로 계속 존재해 왔으며, 제사장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신실하게 가르쳐져 왔다. 따라서 백성들은 적어도 그 일반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참 예언자들의 메시지로 말미암은 지식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지식은 그 메시지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다. 만일 그것이 이전에 가르쳐진 것과 일치하면 그것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을 예레미야의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렘 26장)에서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명백하게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의 이러한 말 때문에, 그는 죽어야 마땅하다고 왕에게 간청하고 있는 중에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때에 그 땅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 말하여 가로되,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시온은 밭 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유다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고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 생명을 스스로 크게 해하는 일이니라(렘 26:17-19)."

  이 구절은 그 땅의 백성들이 에레미야가 미가가 오래 전에 말햇던 내용과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과, 예레미야를 해쳐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에 예레미야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메시지는 이전에 선포된 예언의 내용과 일치했기 때문에, 그는 목숨을 보존한 것이다.

 바. 예언의 성취
  여섯 번째 표시는 오직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되었다. 이는 예언자가 예언할 미래의 사건들이 그 당시에 성취될 수 있었으며 또한 성취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표시라는 사실은 이미 다음과 같이 (신 18:21-22)에서 선포된바 있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신 18:21-22)"

  물론 예언자의 모든 말들 중에서 예언에 관한 것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만일 그럴 경우에는 예언자의 예언의 내용의 성취에 따라서 그 예언자의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주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미가야는 아합에게 그가 아람 사람들을 대항하기 위해서 전쟁에 나간다면, 이스라엘은 목자 잃은 양과 같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어거, 아합은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였고, 이스라엘은 새로운 왕이 설 때까지 왕을 잃고 지내야만 했다. 예레미야 시대에 거짓 예언자인 하나냐는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2년 이내에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렘 28:2-4). 이러한 예언은 포로기가 70년 동안 게속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경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렘 25:11-12).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하나냐를 비난하면서 그의 죽음을 예고했는데, 그 예언대로 하나냐는 그해 7월에 죽고 말았다(렘 28:15-17).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백성들 앞에서 참 예언자로 증명되었으며, 하나냐는 거짓 예언자로 드러나고 말았다.

 사. 기적에 의한 권위
  일곱 번째 표시는 기적인데, 이는 그 적용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참 예언자의 표시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성경의 기적들을 연구해보면, 그것들이 집단적으로 그리고 어느 특정한 경우에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은 주로 하나님께서 추가적으로 계시하실 때나,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때이다. 이스라엘이 한 나라로 형성되던 모세 시대가 바로 이러한 경우인데,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자요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위하여 많은 기적들이 모세에 의하여 행하여졌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앞에 그를 보내시기 위해서 두 가지 이적을 행하게 하셨다. 그 첫 번째 것은 지팡이르 뱀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지팡이로 만든 것이며, 두 번째 것은 그의 손에 문둥병이 들게 하였다가 다시 옷 속에 넣었다 뺌으로써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뒤 이어서 나오는 10가지 대재앙들과 홍해를 건넌 기적과 광야에서의 여러 기적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에서의 계시와, 여리고 성의 함락과 원수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낮이길어진 것과, 하늘로부터 큰 돌들이 원수들에게 퍼부은 기적들을 통하여 지도자와 예언자로서 권위를 인정받았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선포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건기 중에 천둥과 비가 몰려을 것을 위해 기도했다(삼상 12;16). 또한 엘리야와 엘리사에 의해서 행해진 기적들도 예언자로서의 그들의 진실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기적이 곧 예언자의 권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그 이유는 거짓 예언자들도 때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표적을 행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의 능력의 원천은 사탄이었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마지막 날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호케 하려 하리라(막 13:22)." 성경에는 또한 적그리스도와 그의 거짓 예언자가 "사단의 여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행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살전 2:9). 모세는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이미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신 13;1-3)."


  그러므로 백성들은 비록 그가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을지라도, 다른 신을 따르도록 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또한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로써만 행하여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 영적인 분별력
  마지막 표시는 영적인 분별력이다. 하나님을 알고 또 진리에 속한 자는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분별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자기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를 따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양들은 타인의 목소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뜨르지 않고 도망을 친다고 말씀하셨다(요 10:4-5). 사도 바울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전 2;14)."

  이러한 영적 원리는 신약 시대뿐 아니라, 구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분별력이 필요했다.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자이다.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는 어떤 사람의 가르침이 말씀과 다를 때에 즉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와 같이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를 구별할 수 있는 표시는 많이 있다. 특히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따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하는 일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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