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08-2과)

선지서 개론 (2) : 예언의 의미


제 2장 "예언하다"의 의미

 2-1. 예언자를 의미하는 부수적 용어들

 가. 로에와 호제

  먼저 살펴보아야 할 용어는 "로에"와 "호제"이다. "로에"는 구약에서 12회 사용되었으며, "호제"는 18번 사용되었다. 이것은 예언자를 지칭하는 중요한 용어인 "나비"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숫자이다. 그러나 이 두 용어는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두 용어는 모두 분사형으로 실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릐 두 동사로부터 나온 말이다. "로에"와 "호제"는 모두 "본다"는 뜻을 가진 "라아"와 "하자"에서 왔다. "라아"와 "하자"(보다)의 분사형인 "로에"와 "호제"는 모두 "보는 자"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구약에서는 이 말을 "선견자"(seer)로 번역하고 있다(삼상 9;11).

  그러면 왜 같은 뜻을 가진 두 용어가 동시에 사용되었는가? 야스트로우(Morris Jastrow)는 이에 대해 "로에"는 "선견자를 의미하고, "호제"는 "보다 공식적으로 신정에서 섬기는 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용어의 사용 예를 살펴보면 보다 근본적인 차이점이 발견된다. 이 두 용어는 각기 시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었다. 로에는 12번 중에서 8번이 사무엘 시대에 사용되었으며, 호제는 다윗 시대에 등장하는 7인의 예언자 중에서 4일의 경우에 사용되었다. 이 명칭이 시대에 따라 변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삼상 9:9)에서도 발견된다.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지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이 구절은 "선견자", 즉 로에라는 용어가 변하여 "선지자", 즉 나비로 변했다고 증거하고 있다. 로에가 나비로 변했다면, 로에가 호제로 변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참고: 바벨론의 바루와 로에와 호제>

  이방인의 제사장과 이스라엘의 선견자의 관계는 어떠한가? 당시에 바벨론에는 "바루"라고 부르는 제사장(선견자)이 있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신의 뜻을 물었다. 야스트로우는 이스라엘의 로에와 호제는 바벨론의 바루의 기능과 근본적으로 같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는 구약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구약 성경은 바루와 로에와 호제의 기능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무엘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려고 자기를 찾아 온 사울과 그의 종을 위해서 어떤 계시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사울에 관한 계시를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삼상 9:15,17). 사무엘은 당시의 전형적인 이스라엘의 선견자였다. 그가 계시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다른 선견자들 역시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도구를 사용해서 신의뜻을 찾던 바벨론의 바루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선견자는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것을 백성에게 전하는 일을 했다.

<참고: 대제사장과 로에와 호제>

  그러면 대제사장과 로에-호제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은 대제사장에게 계시의 수단으로 우림과 둠밈을 주셨다(출 28:30, 민 27:21).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 있어서 이러한 수단을 사용한 대제사장은 역시 "선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자였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활동과 로에-호제의 활동 사이에는 적어도 세 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첫째로 우림과 둠밈은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가시적인 수단이었다. 이것은 대제사장 에봇의 "흉패" 안에 있었다(출 28:30). 그러나 로에와 호제에게는 이러한 가시적인 계시의 도구가 주어지지 않았다. 둘째로 대제사장은 계시 도구가 있었기 때문에, 계시를 받을 때에 먼저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때에 사울의 경우와 같이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삼상 28:6). 반면에 로에와 호제는 계시를 맏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계시 의식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는 오직 여호와께서 계시를 주실 때에만 받을 수 있었다. 셋째로 대제사장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는 항상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민 27:21, 수 7:16-18, 9:14, 삼상 14:18-19). 그러나 로에와 호제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예를 들면 사울의 잃어버린 가축 문제까지도- 문의할 수 있었다.


 
나. 하나님의 사람

  예언자를 지칭하는 세 번째 용어는 "이쉬 엘로힘"(하나님의 사람)이다. 예를 들면 이것은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해 심판을 외친 후에, 그곳에 있던 늙은 선지자에 의해 붙잡힌 사람에게 사용되었다(왕상 13장). 이 용어는 예언자가 특별한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용어는 잘 알려진 예언자들의 경우에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구역 성경에는 모세(신 33:1)와, 사무엘(삼상 9:6), 그리고 엘리사(왕하 4:9)와 같은 유명한 선지자들에게도 사용하고 있다.   


 
2-2. 나비

 가. 어원

  예언자를 가리키는 중요한 단어가 "나비"이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명사형으로 약 300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동사형인 "나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나바" 역시 구약 성경에서 300회 정도 사용이 되었다. "나바"의 어원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다. 게세니우스(Gesenius)는 이것이 "거품을 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예언자들이 감정이 거품과 같이 끓어오로는 무아지경의 상태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 미크(Theophile Meek)는 이 동사가 아카드어의 "나부"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능동형의 의미는 "말하다"이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말하는 자"를 의미하게 된다. 존슨(Aubrey Johnson)과 스코트(R. B. Y. SScott) 역시 나바의 어원이 아카드어임을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알리다"라는 의미를 가진 아람어 "나바"와 연결시키거나, 심지어는 "오다", 또는 "들어오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 어원인 "보"와도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어원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결론 지을 수없다.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구약에서 이 용어가 어떤 뜻으로 사용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나. 구약에서의 용법

  나비의 근본적인 의미를 아는 데 도움을 주는 구절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장 중요한 구절은 (출 7:1)인데, 우리는 이것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 먼저 (출 4:10-16)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반대하면서, 무엇보다도 그가 말에 서툴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먼저 모세에게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입을 지으셨기 때문에, 모세로 하여금 말에 능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다. 모세가 이를 다시 거절하게 되자. 하나님은 모세의 형인 아론으로 하여금 모세를 대신해서 말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 4:16)."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 사이에는 하나님과 그의 대변자 사이의 관계와 같은 것이 존재했는데, 이러한 대변자는 "입"으로써의 특징을 지닌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는 (출 7:1)에서 아론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가 모세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가 모세의 나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그러므로 나비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말하는 자가 된다. 고트왈트(Norman Gottuald)는 이 구절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짓고 있다. "히브리 예언의 핵심은 예견이나 사회적인 변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의 선포이다."

  우리는 또 다른 핵심 구절인 (신 18:15-22)에 대해서 이미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해서 자기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앞으로는 그 선지자에게 구해야만 했다. 18절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해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여기에서 예언자의 역할은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나타난다.

  세 번째 구절은 (암 7:12-16)인데, 여기에서 아모스는 벧엘에서 여로보암이 세운 거짓 성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벧엘의 제사장인 아마샤는 아모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에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라." 이에 대해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언하다"라는 동사의 용법에 있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벧엘에서 더 이상 예언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도록 하기 위해 그 곳으로 보내셨다고 응답했다. 그러므로 그가 벧엘에서 예언을 하게 된 것은 예언때문이었는데, 이것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네 번째 설명은 예언자들이 부름을 받았을 때에 받은 사명의 성격에 의해서 주어진다. 이사야는 "가서 내 백성에게 이르라!"(사 6:9)는 명령을 받았고, 예레미야는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렘 1:7)."는 명령을 받았다. 에스겔도 역시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노니....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겔 2:3-4)"라는 명령을 받았다. 예언자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이러한 명령을 계속해서 받았다.

  다섯 번째로는 예언자들이 사명을 받을 때에나, 혹은 그것을 수행함에 있어서 항상 그 중요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하나님의 대언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어의 어원은 그것이 능동적인 의미로 쓰여졌을 때에 아카드어의 "나부"(말하다)에서 왔을 수도 있다. 적어도 구약에서의 이 단어의 의미는 의문의 여지 없이 이러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일부 학자들은 나바가 황홀경에 빠지거나 감정이 고조되어서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 예언자들은 성령에 감동되어 감정적으로 고조된 상태에서 말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입장을 고려한다면 "예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열정적으로 말한다는 뜻을 볼 수있다.


 
2-3. 로에-호제와 나비와의 관계

  그러면 로에-호제와 나비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들은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 차이점이 존재한다. 로에와 호제는 모두 "보다"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통찰력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 용어는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분별했을 때에 그들의 사역의 계시적인 면을 언급한다. 반면에 나비는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실 때에 이미 주신 것을 예언자들이 말로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로에-호제는 메시지를 받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에, 나비는 그것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용어로 대표되는 직책에 대해서는 구별을 할 필요가 없다. 이들 용어들은 한 사람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람이 이들 세 용어 중에서 어느 하나로써 불려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직책의 차이점을 지적하려고 시도하였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로에-호제는 무아경에 빠지지 않은 예언자를 의미하는 반면에, 나비는 무아경 상태의 예언자를 의미한다. 둘째 전자는 홀로 사역하는 반면에, 후자는 집단적으로 사역한다. 셋째 전자의 경우는 사람들이 그에게 문의하려 올때까지 기다리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느 곳이든지 가서 전한다. 그러나 로울리(H. H. Rowley)는 몇 구절을 조사해보면, 로에-호제와 나비간에 이러한 차이점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에 대한 증거로서 갓, 잇도, 그리고 특별히 아모스를 포함하여 몇몇 예언자들은 실제로 나비와 호제의 두 용어로 모두 불리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이러한 구별은 불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구별에 대한 논쟁은 사무엘 시대의 예언자들의 집단과, 사울이 찾아갔을 때에 홀로 활동하던 사무엘과의 비교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들 예언자 집단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에(삼상 19:20), 자연이 그 집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사무엘 자신 역시 나비로 불리기도 하였다(삼상 3:20). 세 번째 구별은 사울이 문의를 하기 위해 사무엘을 찾았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사무엘 역시 그의 사역을 위해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예를 들어 그는 미스바의 부흥 운동을 주도했으며(삼상 7:1-4), 정기적으로 순회를 했고(삼상 7:16-17), 사울을 왕으로 지명했으며, 후에는 그를 책망하기도 했다(삼상 10:1-25, 13:10-). 그러므로 위와 같은 세 가지 구별은 이론적인 추측에 불과하며, 분명한 성경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삼상 9:9)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이것은 사무엘 시대에 선견자(로에)로 불렀던 사람들이 사무엘상이 기록될 당시에는 선지자(나비)로 불리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 두 용어가 사실상 같은 의미를 가진 말로서 시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우리는그 용어의 변화에 대하여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나비라는 이름은 사무엘 시대 이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데, 그 이유는 사무엘 자신이 나비로 불리었으며(삼상 3;20), 그도 사울에 대하여 이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삼상 10:5). 또한 모세도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이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신 18:15). 그러면 우리는 (삼상 9:9)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마도 (삼상 9:9)은 사무엘 시대에는 나비가 사용되기는 했지만, 로에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사무엘상이 기록될 당시에는 나비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에-호제와 나비의 직책 사이의 구분이 필요하지 않다는 또 다른 증거는 (사 30:9-10)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여기에서 유다의 죄악된 백성들은 선지자들에게 "정직한 것"을 말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과 "거짓된 것"을 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죄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즐겁게 하는 말을 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옳든 그르던간에, 선지자의 행위는 "말하는 것"이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나비로 불리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여기에서는 로에와 호제가 사용되었는데, 로에는 "선견자"로, 그리고 호제는 "선지자"로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로에-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는 자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말하는 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이 두 용어는 나비와 동일한 사역을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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