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08-1과)

선지서 개론 (1) : 선지자의 신분


제 1장 선지자의 신분

  이스라엘의 예언자(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들은 구약 시대의 모든 근동 국가들 사이에서도 유일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그들이 남긴 기록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세계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그들은 위대한 자들이었고, 용감한 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에서 멀어져 가는 한 백성의 종교적인 믿음과 올바른 행위를 위한 안내자들이었다.  

 1-1. 특별한 부름

  예언자가 위대했던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특별히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예언가의 가족에게서 태어남을 통해서 예언자의 직분을 상속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말미암아 자동적으로 예언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각 예언자는 각기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에언자는 이스라엘의 제사장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제사장은 그들의 직책을 유업으로 물려받았다. 만일 한 사람이 야곱의 아들 레위의 후손이라면, 그는 레위족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만일 그가 아론의 자손이라면, 그는 저절로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레위족이 되거나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선택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 직책을 위해서 부름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출생에 의해서 레위족이나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예언자는 선택된 자였으며, 다른 사람들 중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였다. 예언자가 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이었다. 예언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한 부르심이 예언자를 임명했으며, 그 사역을 위한 권위를 그에게 부여하였다. 거짓 예언자들은 그들이 단순히  부르심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거짓 예언자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렘 14:14)". 또한 거짓 예언자 하나냐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이렇게 외쳤다.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렘 28:15)."

  예레미야는 그 자신의 부르심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 선지자 아모스는 그의 부르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암 7:14-15)."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기적적인 가시덤불의 불꽃을 통해서 부르심을 받았으며(출 3:4), 이사야는 성전 가운데에서 영광 중에 높이 들리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는 환상을 통해서 부르심을 받았다(사 6장). 그리고 에스겔은 바벨론 땅 그발 강 가에 거할 때에 부르심을 받았다(겔 1:1, 2:2-3).

  예언자의 부르심은 때때로 기적적인 경험을 통해 주어졌는데, 이것은 예언자로 하여금 그 권위를 깨닫는데 도움을 주었다. 모세는 가시덤불이 기적적으로 불타는 것을 보았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다. 아마도 그는 그 생생한 광경을 오랫동안 기억했을 것이며, 그것은 그의 부르심의 실제를 더욱 강화시켰을 것이다. 이사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성전 가운데에 높이 들리신 환상을 보았다. 역시 그도 이러한 놀라운 장면을 오랫 동안 기억하면서 그의 부르심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에스겔은 부르심을 밨았을 때에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명을 받았는데, 우리는 그가 그것을 먹었을 때에 그것이 그의 입 속에서 "달기가 꿀 같았다"는 기록을 보게 된다(겔 3:3). 이러한 모든 경우는 부르심의 실제에 대하여 확고한 증거를 주며, 예언 사역의 근거에 있어서 그것의 효력을 증거시킨다. 에언자의 부르심은 주로 그 사역에 대한 준비의 면을 포함하였다. 모세는 기적적인 위임장을 부여받았으며(출 4:1-9), 그의 형 아론은 그의 대변자로 임명을 받았다. 이사야의 입술은 성전 제단으로부터의 숯불로 깨끗게 함을 받았다. 또한 에스겔은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에 효과적인 선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상징적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1-2. 율법의 인정(그러나 규정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그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는데, 그것은 그 백성의 모든 종교적인 행위와 사회적 관계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사실상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의 헌법과도 같았다. 그 율법 속에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에 대한 긴 조항이 들어 있었는데, 그들의 신분과 관습, 의무, 의복, 그리고 그들이 지켜야 할 의식에 대한 많은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언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역할이나 의무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며, 사실상 그 존재조차도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예언자에 대한 인정은 (신 18:9-22)에서 발견되는데, 우리는 이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 18:1-8)은 레위인의 직책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9-22절)에서는 그 내용이 바뀌어서 예언자를 인정하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세는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이방의 의식을 따라서 어떠한 복술의 형태로 하나님과 교제하려는 시도를 금하고 있다. 모세는 이러한 시도를 하나님께서 이를 가증하게 여기신다고 말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선지자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라는 말은 단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메시아를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예언자를 언급하는 것으로도 받아들여 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예언자를 바라보아야 하고, 주변의 이방인들과 같이 복술을 행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에서 누가 예언자가 되어야 하고, 또 그 기능이 어떤 것인지는 묘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구절이 예언자의 확고한 위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1-3. 용기 있는 자들

  예언자에게 있어서 유업 관계가 적합하지 않은 한 가지 이유는 각 예언자가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사장직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연약한 사람도 제사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직무가 반복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평범한 제사장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단지 제사장직을 유업으로 이어 받았기 때문에 그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예언자는 세습되지 않았다. 그는 때로 어떤 에언자와도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만 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사역과 그가 행할 길에 개해서 지시하셨을지라도, 그 길은 때때로 큰 도전에 직면해야만 했다. 예언자는 왕을 선정하기도 했고, 그 후 그 왕에게 혹독한 심판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기쁨을 가져오기도 했고, 슬픔의 근원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의 임무는 큰 위헙으로 인도되게도 했으며, 높은 명예로 인도되기도 했다. 그는 안식이나 갈채 뿐 아니라, 고통과 불공평을 위해 예비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용기와 신실함을 가진 자라야 했다. 그는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자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무엘의 첫 행위는 다름 아닌 대제사장 엘리에게 그의 집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밨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삼상 3:4-18). 이것은 당시 사무엘의 나이가 10살이 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볼 때에, 그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중에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서 사울을 지명해야만 했으며(삼상 9:15-21, 10:1-8), 후에는 다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선언해야 했다(삼상 13:11-14). 그 후에 그는 다시 두 번째 왕으로서 위대한 다윗을 지명하였다(삼상 16:1-3). 나단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는 죄를 범했을 때에, 그를 책망하는 역할을 맡았다(삼하 12:1-12). 당시 가장 위대한 왕에게 이와 같은 선포를 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지만 그는 그 일을 했다. 수 년 후에 하나님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후에 예언자 갓을 다윗에게 보내어 세 가지 징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셨다(삼하 24:10-1). 선지자 아히야는 처음에는 여로보암에게 새루운 이스라엘 왕국을 약속했다(왕상 11:29-39). 그러나 후에 그는다시  여로보암에게 그 왕국을 다시 빼았길 것이라고 말해야만 했다(왕상 14:6-16).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에게 벧엘에 거짓 제단을 세운 것에 대하여 책망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왕상 13:1-10). 엘리야는 아합의 죄로 인해 기근이 있을 것을 경고했으며, 갈멜산에서 거짓 예언자들과 놀라운 영적 전투를 벌였다(왕상 17:1, 18:25-38). 엘리사는 하사엘에게 그가 수리아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바로 그가 이스라엘에게 가져올 재난을 바라보며서 눈물을 흘렸다(왕하 8:7-13). 요나는 이방인에게 보내어졌으며, 니느웨에 대해 회개를 선포함으로 그 도시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다(욘 1;2, 3:1-2).

  이러한 모든 것들은 예언자가 되기 위해서 특별한 자격을 갖추어야 함을 보여준다.예언자는 뛰어난 성품과 용감한 마음을 가진 자라야만 했다. 그들은 출생 시부터 그러해야만 했으며, 하나님께 드려진 후에는 그들에게 부과된 임무와 특별한 섭리로 말미암아 더욱 용감한 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의 뛰어난 위인이 되었으며, 공중의 의견을 인도하는 자들이 되었고, 어두운 시대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당시의 주변 국가들에서도 특별히 구별되는 사람들이 되었다.


 
1-4. 명칭과 임무

  구약 성경에서 예언자를 지칭하는 말에는 네 가지 용어가 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말은 "나비"로서, 이 말은 주로 "선지자"로 번역되고 있다. 이 말은 구약에서 명사형으로만 거의 300번이나 사용되었다. 둘째 용어는 "라아"(본다)라는 동사에서 온 "로에"이고, 셋째 용어는 "하지"라는 알이다. 이 두 단어는 나비보다 구약 성경에서 훨씬 적게 사용되고 있는데, 이 말은 모두 "선견자"로 번역되고 있다. 넷째로 예언자를 지칭하는 말은 "하나님의 사람"(이쉬 엘로힘)이다. 이 말은 매우 적게 사용되었지만 그 말의 의미는 중요하다. 이 말은 예언자가 하나님에 의해 선택을 받고 벡성들에게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름들로 임명을 받은 자들의 사람들의 임무는 구약에서 기본적으로 두 부분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통해 메시지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모든 선지자들이 첫 번째 임무를 받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 어떤 예언자들은-비록 그 숫자가 많지는 앓았지만-다른 선지자들을 통해 배우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당시의 요구에 따라서 구성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 다른 예언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초자연적인 계시를 통해서 직접 듣기도 했다.

  제사장들 역시, 비록 그 성질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두 가지의 임무를 띠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들의 첫 번째 의무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두 번째 의무를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들의 방법은 예언자들과는 달랐다.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친 주제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이었다. 그들은 이 율법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반면에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이미 가르침을 받은 율법에 순종하라고 외쳤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지성을 향해 율법을 가르쳤지만, 선지자는 백성들의 감정과 의지에 호소하여 그들이 배운 것을 설천하도록 격려했다.

  계시의 면에 있어서도 제사장과 선지자는 유사점이 있다. 선지자들이 그들의 첫 의무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제사장들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일종의 말씀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제사장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대제사장에게만 적용되었다. 그에게는 우림과 둠밈이라고 불리우는 도구가 주어졌는데, 우림과 둠밈이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대제사장이 입었던 의복의 일부분인 에봇과 관계된 것으로, 대세자장은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반면에 선지자는 계시를 시박한느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순간을 기다리면 된다. 선지자에게 임한 계시는 대제사장의 우리과 둠밈을 통해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미래적이고 포괄적인 것이었다.

  선지자들이 초기 시대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사울이 사무엘을 방문한 직후부터 찾을 수 있다(삼상 9:1-10:16). 사울과 그의 한 종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나귀에 대해서 묻기 위해서 사무엘을 찾아갔다. 그 때에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잃어버린 나귀의 위치뿐 아니라, 그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울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숙부에게 자신이 사무엘을 만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물론 그는 그가 왕이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숙부는 그러한 내용을 듣자, 즉시 이렇게 말했다.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고하라!(삼상 10;15)" 사울은 아직 왕에 대한 내용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숙부는 사울의 말에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직 사울이 만났던 사람, 즉 사무엘에게 있었다. 그의 숙부가 사울에게 요구할 때에 사용한 표현 형태는 그의 급박함을 잘 보여준다. 그는 강조 명령형 동사인 "고하라"와, 강조 전접분사인 "청하노니"를 사용했다. 만일 사울의 숙부가 사무엘이 말한 내용에 관심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또한 사무엘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면, 다른 선지자들 역시 특별히 구별되는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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