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에베소서)

Ⅱ. 찬송하리로다! (엡 1:3)

 

2. 영적인 축복 (1:3-14)

  에베소서의 첫 단원(1:3-23)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1:3-14)과 감사하는 내용(1:15-23)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울의 다른 서신들은일반적으로 인사말이 나온 후에 감사("내가(우리가) 감사하노라!")가 나오고 그 뒤에 감사하는 이유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에베소서에서는 이 순서가 뒤바뀌어 찬송과 감사의 이유(1:3-14)가 먼저 나오고, 그 뒤에 감사가 나오고 있다. 고린도후서도 에베소서와 비슷하게 인사말 뒤에 바로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나온다(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  이것은 흔히 유대 회당 예배에서 사용되는 '베라카'('찬송'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취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단일 문장으로 된 베라카 형태는 구약 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1) 개인이 하나님의 구원과 공급, 인도하심을 찬송할 때(창 14;20, 24:27 등)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창 24:27)..."

2) 제사 때에(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는 베라카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왕상 8:15)."

3) 시편의 각 책들을 마무리 할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시 41:13)"

  이러한 찬송은 유대교 예배에서 지배적인 것으로 남아 있으며, 또 쿰란 문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사가랴의 기도, 그리고 랍비 유대교의 기도문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베라카들을 보면 먼저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나오고 그 뒤에 찬송에 대한 이유가 서술된다.

  "여호와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왕상 8:56)."

  에베소서의 첫 부분에 나오는 찬송(1:3-14)도 이러한 베라카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다음을 읽어 보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1:3)..."


  바울은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친 후에 찬송의 대상기독교식으로 변경해서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주시되).

  헬라어 원문에는 (1:3-14)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바울이 이 부분을 구술할 때에 마치 끝없이 흘러내리는 폭포수처럼 말이 흘러 나왔다. 그는 숨을 쉬기 위해서 멈추지 않았고, 또 문장을 끝맺기 위해서 하던 말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그는 깊은 묵상 속에서 성령님께 사로 잡힌 채 단숨에 12절이나 되는 찬양을 쏟아냈다. 주석가들은 이러한 바울의 폭발적인 찬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묘사했다.

 - 우리는
웅장한 대문을 통과하여 본 서신에 들어간다! - (핀들레이).
 - 본문은 '많은 고리를 가진
황금줄'이다! - (데일)
 - 본문은 '빛이 환하게 비취면 색상이 변하는
만화경 같고, 또 무한한 자유 속에서 자기    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 잠시 동안 높이 솟아 둥글에 원을 그리는 독수리    의 예비 비행과 같다! - (A. 로빈슨)
 - 본문은 '언덕에서 굴려 내려오면서 점점 더 뭉쳐치는
눈덩이와 같다! - (핸드릭슨)

  전체 문단은
찬양인 동시에 송영이며, 또한 바울이 사용한 단어 그대로 율로기(찬양)이다. 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축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에베소서의 서문을 시작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1:3)..."


  바울은 이 부분에서 축복을 언급할 때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언급하고 있다. 첫째로 그는 축복의 근원성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2). 모든 축복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 성부 하나님은 모든 축복이 흘러 나오는 근원이며 샘이며 원찬이 되신다. 둘째로 그는 축복의 영역성자 예수님(그리스도 안에서)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그분 안에서만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셋째로 그가 말하는 복은 영적인(신령한) 이다. 신령한 복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축복이며,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다. 챨스 핫지의 말처럼 이 축복은 성령님으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신령한 복이다.

  이러한 삼위일체에 대한 언급들로 인해서 몇몇 주석가들은 이 부분이
예배적(liturgical)이라고 지적했다. M. 바르트는 이 부분이 '거룩한 축복',즉 '유대 회당과 가정에서 행해지는 찬양과 기도'이며, 예배의식에 대한 기독교 전승이 구전되어 바울에게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부분에서 사도신경니케아 신경삼위일체적 구조-성부의 선택(4-6), 성자의 구속(7-12), 성령의 인치심(13-14), 각 연의 마지막에 영광을 찬송하는 후렴(6,12,14)-와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면 바울이 3-14절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신령한 축복들을 어떻게 3위1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지 살펴보자.

  첫째로 그는
성부 하나님은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의 근원, 또는 기원이 되신다고 말한다. 성부 하나님은 여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본동사의 주어가 되기 때문에, 그 분이 모든 축복을 주도하시는 것은 명백하다. 바울은 이 부분에서 성부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3), 2) 우리를 택하신 분(4), 3) 우리를 예정하시고...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분(5), 4) 그의 은혜를 우리에게 거저 주신 분(6)-문자적으로는 '그의 은혜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 5) 그의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하신 분(8), 6)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그 뜻과 목적을 우리에게 알리신 분(9-10). 또한 성부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의 마음의 뜻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11). 이 부분에서 바울은 동사를 명사로 바꾸어서 계속해서 빠른 템포로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그 분의 뜻과 목적과 계획을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부분에는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를 부어주시고, 또 자신의 영원하신 구원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는 성부 하나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둘째로 그는
신령한 복이 주어지는 영역성자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에베소서의 처음 14절에서 성자 하나님은(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주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는 자, 그, 그를) 15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또 이 부분에서 '그리스도 안에서(그 안에서)라는 말이 11회나 사용되고 있다. 1절에서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묘사한 바 있다. 이제 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전에 우리는 '아담 안'에서 타락한 옛 인류에 속했지만,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새로운 인류'가 되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를 따라 우리를 축복하시고 영원 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셨다(3-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일도 바로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6-7). 그뿐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유대인 신자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11-12), 다음에 이방인 신자들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인치심을 받게 되었다(13-14).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머리로 삼아 모든 것을 통일시키려고 하신 계획을 실행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9-10). 한 때 이방인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소망도 없고, 또 하나님도 없는 자였지만(2;12),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셋째로 이 축복은
성령님과 깉은 관계가 있다. 비록 이 부분에서 성령님은 13-14절에만 언급되고 있지만, 그 활동은 내용 전체에서 암시되고 있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것이라는 점이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들이 물질적인 경우가 많았다. (신 28:1-14)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에서 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축복들은 많은 자녀풍성한 수확가축양떼풍성함, 탁월함, 통치권 등과 같은 것이었다. 예수님 역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물질적 축복을 약속하셨던 것도 사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채워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바울이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새 언약의 축복의 특징은 물질적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축복은 창세 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모든 신령한 복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성령님에 의해 우리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 또는 선택, 죄용서, 에 대한 승리, 풍성한 삶 등이 이에 속한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
하늘에 속한', 또는 '신령한'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다른 서신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에베소서에서만 다섯 번 사용하고 있는데, 3절이 그 다섯 번 중에서 첫 번째 사용된 경우이다. '하늘'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고대 저자들은 '자연의 하늘'(땅 위 공간의 하늘)과 '은혜의 하늘'(지상의 하나님 백성이 이미 받고 누려온 영생), 그리고 '영광의 하늘'(구속 받은 자들의 최후에 누릴 상태)을 구별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하늘'은 이것들과는 다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공간적인 거처가 아니라, 영적 실재들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리킨다. 에베소서에서 5번 사용된 '하늘'를 살펴보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사용한 '하늘'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는 곳(1:3)이며, 또한 그곳은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고, 그 백성들이 그 분과 함께 다스리는 곳이다(1:20, 2:6). 마지막으로 에베소서에 사용된 '하늘'은 '정사와 권세', 즉 악한 영들이 활동하는 곳이다(3;10, 6:12). 바울이 말하는 신령한 축복은 바로 이러한 하늘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3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성부성자성령이신 한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심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증언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이 과거단 번에 이루어진 것으로 말하고 있다(율로게사스-부정과거, 단회적 동작). 우리가 성자 안에 거하게 되면 성부께서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신령한 축복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된다. 이 축복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 안에 거할 때 즉시 주어지는 복이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계속 성장해야 하며 하늘 기업의 풍성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신령한 축복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성령님께서도 우리 안에 계시면서 이 모든 축복이 이미 우리의 것이 되었으며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을 것을 보증해 주신다.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미 '그 안에서 풍성해졌다'(골 2;10).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축복들은 무엇인가? 그 축복은 과거(창세 전에, 4절), 현재(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진 것, 7절), 그리고 미래(때가 찬, 9절)와 관계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과거의 축복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께서 현재에 주시는 축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왕과 제사장으로 살아 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다. 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준비하신 미래의 축복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 그 분의 형상을 입게 되는 구원의 완성이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 바울이 말한 신령한 축복들에 대해서 한 절씩 생각해 보기로 하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1:3)..."


                               ◎  토론할 문제 

1.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을 누리며 또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말해보자.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은 자녀처럼 당당하고 풍성한 삶을 살고 또 이웃을 축복하며 살고 있는가?

2. 바울이 (3-14)에서 말한 축복에 대한 찬송에 '우리'(너희)라는 말 대신 '나'(또는 내 이름)를 넣어서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이 축복은 원래 아브라함(창 12:2-3, 22:16-18)과 이삭(창 26;24), 야곱(창 28:13-15), 요셉, 그리고 이스라엘(출 19:5-6)에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축복이 우리에게까지 이르게 되었다(벧전 2:9). 우리는 아브라함과 신앙의 조상들처럼 축복의 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3. 하나님께서 축복의 근원이 되시며 또 이 축복의 영역이 예수 그리스도(그리스도 안)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설명해보자.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그리고 이 축복들을 누리고 또 감사하고 있는가? 이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력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불함리한 일인지 말해보자.

4. 성령님께서 어떻게 우리가 현실 속에서 이 축복들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지 설명해보자. 바울이 성도들에게 주어진 축복을 하늘에 속한, 또는 신령한 복이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구하는 축복과 바울이 구하는 축복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바울처럼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송해보자.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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