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후서)

Ⅰ. 왜 바울은 직접 오지 않고 편지를 썼는가? (1:1-2:13)

 

사도권 논쟁서론(1-7장)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8-9장)

거짓교사를 대적함(10-13장)

고린도후서의 내용 요약


Ⅰ. 왜 바울은 직접 오지 않고 편지를 썼는가? (고후 1:1-2:13)

1. 인사 (1:1-2)(지난 시간 공부)
2. 하나님의 위로에 대한 감사 (1:3-11) (지난 시간 공부)

3.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비판에 대한 답변 (1:12-2:11)
 
1)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비판 (1:12-17)
 
2)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견고히 서라! (1:18-22)
 3) 바울이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을 변경한 이유 (1:23-2:4)
(지난 시간 공부)
 

 4) 바울이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을 변경한 이유 (2:5-2:13)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5)."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자신과 교회를 근심하게 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바울의 권위를 대적하고 근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근심하게 한 사람"은 누구이며, 구체적으로 그가 한 일은 무엇인가?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얻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바울의 서신에서 이 대답에 대해 말해주는 자료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먼저 5-7절과 7:12을 통해 볼 때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고린도 교인 중에 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외부에서 온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둘째로 그가 바울과 교회를 근심하게 한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어떤 학자는 그가 행한 일은 (고전 5:1 이하)에 언급되고 있는 '근친상간'이었다고 주장했다(Tertullian).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이 견해는 3-4절에 언급된 서신을 고린도전서로 보아야 하는데, 이 입장은 신빙성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학자들은 이 적대자가 한 행위는 바울의 두번째 고린도 방문 때에 바울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대적한 행위로 보고 있다(Barrett, Lowery, Harris).

  본문에서 바울은 이러한 행위를 자기 개인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교회 전체에 대한 도전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아마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성에 대한 도전이 자신들의 영적 생활에 나쁜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그들의 생각을 교정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이며, 그가 전한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였다. 그러므로 바울에 대한 도전은 그의 인격과 사도권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그가 세운 고린도교회에 대한 적대행위였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서 과감한 표현을 자제하고 다소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여기에서 '어느 정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대적자에 대한 바울의 태도가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은 대적자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가능한 그들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정리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너희 무리'로 번역된 헬라어 '판타스휘마스'는 문자적으로 '너희 모든 무리'라는 뜻이다(all of you, NIV). 이 말을 보면 바울을 대적했던 자가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6).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7).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8)." 


  바울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비난했다는 바울의 말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이 대적자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많은 사람'이 그를 비난했다는 말은 아직 소수의 사람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도 고린도교회 사람들 중에 중징계를 주장하는 그룹이 있었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반대자에 대한 중징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Harris). 바울은 이에 대해서 완화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적대자가 이전에 벌을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벌'(에피티미아)이 법적인 '처벌'을 말하는지, 아니면 잘못된 행위에 대한 책망이나 비난을 의미하는 지 결정하기 어렵다. '에피티미아'와 어원을 같이하는 '에피티만'은 신약에서 30번 사용되었는데, 이 중에서 오직 한 군데에서만(유 1:9) "징계"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비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Barrett). 도한 소수의 교인들만이 중징계를 주장했을 가능성이 높은 점에서 보면(7절), 후자의 뜻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바울은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대적자의 죄를 용서하고 그를 위로하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5절에서 대적자가 끼친 근심에 대해서 말할 때에 '어느 정도'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함으로 그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이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고린도교인들에게 대적자를 용서하고 위로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바울이 적대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그를 용서하고 그의 명예를 존중해 주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여기에 나오는 용서(카리사스다이)는 `선물을 준다', '은혜를 베푼다'는 뜻을 가진 말로, 무조건 적인 '용서'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게서 우리는 무조건 용서해 주신 것처럼, 고린도교회도 회개한 죄인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관용과 자비를 나타내야 한다. 바울이 대적자를 용서하라고 한 것은 그의 영혼이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 대적자는 고린도교회의 많은 성도들로부터 책망을 받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반성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린도교회가 그를 용서하지 않고 중징계를 내린다면, 그는 좌절하여 영영 교회에서 멀어져보릴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가 자신과 교회에 해를 끼쳤지만,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여 다시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하라고 가르쳤다(눅 17:3). 그리고 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대적자에게 사람을 나타낼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바울은 회개한 적대자가 지나친 징계로 인해서 좌절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9).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10),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11)." 

  바울은 자신이 '눈물의 편지(3-4)를 쓴 이유가 '그들의 증거, 즉 그들이 모든 일에 바울에게 순종하는지 알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증거'로 번역된 말(도키메)은 '시험이나 시련을 거쳐서 증명되는 것이나 증거'를 의미한다. 바울은 편지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의 말에 순종하는 지 시험해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울은 범죄한 자의 죄를 용서하라는 자신의 말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따라주기를 원했다.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가 무슨 일든지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형제를 용서하라고 권면하고 순종할 것을 원했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강압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결정하여 형제를 용서해 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이 대적자를 용서하면 자신도 그를 용서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범죄한 자를 용서하고, 자신도 그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미 그 형제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바울 이미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적대자를 용서했음을 밝히면서,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그들을 기꺼이 용서해 주기를 간접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 형제를 용서하는 순간, 바울도 그 용서에 동참할 것이며, 또한 그 용서는 그리스도께서 증인으로 보시는 가운데 용서한 것이기 때문에, 그 용서는 완전하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바울은 왜 이렇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적대자에 대한 용서를 강조하고 있는가? 바울은 11절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바울이 이렇게 범죄한 형제릐 용서를 강조한 이유는 바로 "사단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범죄하고 회개한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사단에게 속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단은 성도들을 정죄하여 낙심과 좌절에 빠지게 한다. 만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사단은 계속해서 그 형제가 용서받지 못했다고 정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단은 효과적으로 회개한 형제를 죄의 종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사단은 성도들이 형제들의 마음에 복수심을 불러일으켜서 그들이 회개한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만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마음에 복수심을 갖고 범죄자를 용서하지 못하면 그들은 사단에게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단은 회개한 형제와 용서하지 못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 사이를 이간질시켜서 그들로 하나되지 못하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범죄자와 교인들이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분열하게 되는 것은 사단의 전략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사단의 "궤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진심으로 회개한 형제를 용서하고 화목함으로 사단의 간교한 꾀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바울은 사단이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고린도교회 안에서 어떤 사악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는 사도의 권위로 이러한 사단의 간교한 계획을 저지시키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바울의 영적인 안목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지도자가 영적인 안목을 갖고 있으면 교회가 사단의 덫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교회지도자가 영적인 안목이 없으면 교회들은 사단의 덫에 걸려 온갖 부정적인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12),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13)."

  바울은 가슴 아픈 고린도 방문 이후에 에베소로 돌아가서 '눈물의 편지'를 써서 디도를 통해 그 편지를 고린도교회에 보냈다. 이때에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기로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일 일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 그들은 마게도냐에서 만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13). 바울이 드로아를 방문한 것은 이러한 사전 약속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가 주동이 되어 발생한 은장색들의 소동으로 인해서 약속보다 일찍 드로아에 온 것으로 보인다(행 19:23-41).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바울의 드로아 방문 목적은 디도와의 만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가슴 아픈 고린도 방문 후에 심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고 디도를 통해서 '눈물의 편지'를 보낸 후에 내심 그 결과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물론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한 불안으로 끝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떠났다. 그러나 복음 전하는 일을 최우선적 과제로 여겼던 바울의 사도적 소명은 대단한 것이었다.
드로아에서 바울은 원하던 복음 전파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마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날 것을 기대하고 처음 며칠 동안 복음을 증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약속된 날짜가 되어도 디도가 도착하지 않게 되자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더 이상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디도를 만나기 위해서 마게도냐로 떠나갔다.

  그러면 드로아에서 이토록 바울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로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한 후에 일이 여의치 않음을 깨닫고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크게 염려하게 되었을 것이다. 바울의 지난 번 고린도교회 방문은 그에게 슬픔만 안겨 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두 번째 고린도교회 방문을 취소하고 디도편에 '눈물의 편지'를 서서 보냈다. 그러나 디도가 예정대로 돌아오지 않게 되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일로 연려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직접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지 않고 편지를 써서 보낸 일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거나 도리어 더욱 악화된다면 피차간에 심각한 불행한 일이 될것이다. 둘째로 바울은 디도가 정상적으로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고 혹시 디도의 신변에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염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디도는 눈물의 편지를 전하는 일 외에도 당시에 기근으로 고생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모금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성도들의 헌금을 가지고 아다가 강도들에게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아마도 바울은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서 더 이상 드로아에 머무르지 못하고 다음으로 디도를 만나기로 예정된 마게도냐로 갔을 것이다.

                                ◎  토론할 문제  

1. 범죄자가 교회의 지도자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에 악 영향을 미친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고 왜 우리가 신속하게 교회의 범죄를 바로 잡아야 하는지 말해보자.

2. 회개한 형제를 온전하게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왜 사단을 이롭게 하는 지 이야기 해보자. 그리고 내가 용서받지 못하거나 용서하지 않은 일이 있으면 속이 해결하도록 기도하자!

3. 동역자나 교회에 대한 염려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드로아를 떠난 바울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해보자. 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은 한 적은 없는가?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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