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후서)

Ⅲ. 거짓 교사를 대적함 (10-13장)

사도권 논쟁 서론(1-7장)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8-9장)

거짓교사를 대적함(10-13장)

고린도후서의 내용 요약


Ⅲ. 거짓 교사를 대적함 (10-13장)
 
1.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10:1-6).
2. 교회를 세우기 위한 권세(10:7-11).
3. 거짓 사도와 참된 사도(10:12-18)
4) 그리스도의 신부를 구출하라!(11:1-4)


5) 사례를 요구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함 (11:5-9)

 가. 다른 사도들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 (5-6)

  "나는 지극히 크다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5)."


  고린도교회에 불법으로 침입한 거짓 사도들은 자신들이 인위적으로 세운 인위적인 조건들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이 참된 사도이며 바울은 거짓 사도라고 몰아붙였다. 바울은 오래 전에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인간적인 조건들을 버렸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적인 조건들로 따지면 그는 어느 사역자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바울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짓 사도들에게 미혹된 고린도교회를 구원해내기 위해서 자신의 조건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5절에서 자신이 "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지극히 큰 사도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 일부 학자들은 '지극히 큰 사도들'이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이라고 주장한다(Lowery, Robertson,Farrar). 만일 이 견해가 맞다면 바울은 지금 자신이 여러 가지 인간적인 조건들을 자랑하는 '거짓 사도들'에 비해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 된다. 2)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지극히 큰 사도들이 '예루살렘의 핵심 사도들'(야고보, 베드로, 요한 과 같은)을 말한다고 주장한다(Bruce, Hering, Harris). 이 견해가 맞다면 바울은 지금 자신이 모든 점에 있어서 예루살렘교회의 핵심 사도인 야고보, 베드로, 요한에 비해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 된다.

  "내가 비록 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6)."

  바울은 먼저 자신이 말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가 명석한 학자이긴 했지만 헬라의 수사학으로 단련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설교는 효과적인 열매를 맺긴 했지만 거짓 교사들처럼 헬라의 웅변 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적은 없었다. 실제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웅변술에 의지하지 않았다. 세련된 웅변가의 연설은 인간의 주목을 끌기에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은 인간의 지혜 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전달해야 효과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지혜와 수사법과 웅변술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교회에서 웅변술과 수사법에 근거하여 설교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수사학적인 설교는 헬라 교육에 익숙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주목을 끄는 데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의 설교에 미혹된 사람들은 바울이 평범한 스타일로 설교하는 것은 그가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자신이 웅변술이나 수사학적인 점에 있어서는 부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웅변술이나 수사학적인 점애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지식에 있어서는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자들이 가진 지식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가진 지식은 그리스도의 계시와 성령을 통해 얻게된 신적인 지식이었다. 반대자들이 가진 지식의 근원은 인간 교사였지만, 바울이 가진 지식의 근원은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담겨진 그리스도였다(골 2:3). 헬라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은 피상적이고 인간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인간의 칭찬을 구하는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성령님의 계시를 통해 얻은 지식은 영혼을 위한 영원한 것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만들기 위한 지식이었다. 거짓 사도들은 인간적인 지식을 자랑했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계시의 지식을 전했다. 바울이 신적인 지식을 소유한 사실은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가진 영원한 지식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냈다. 그는 이미 자신이 가진 신적인 지식을 고린도교회와 다른 이방인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증명했다. 문제는 거짓 사도들에게 미혹된 일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인간적인 조건에 집착하다가 바울이 가진 신적인 지식을 거부하는 데에 있었다.


 나. 사례를 요구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함 (7-9)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를 지었느냐?(7)" 

 
  고린도에 침입한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사도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교회에 사례비를 요구하지 못하고있다고 비난했다. 헬라 시대에 직업적인 철학자들과 궤변가들은 돈을 받고 자기가 가진 지식을 팔았다. 거짓 사도들은 바울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사례를 요구하지 못하고 가르치고 있다고 미혹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무료로 전한 것이 죄를 지은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바울이 자기를 낮추어서 사례비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로 자처한 것은 성도들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복음으로 이방인을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복음을 통해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었다. 이방인들은 바울의 섬김을 통해서 높아지게 되었다. 바울은 종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섬기기 원했다.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례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면 자신을 낮추고 성도들을 높이기 위해 값없이 봉사한 것이 죄를 지은 것인가? 이러한 주장은 마치 자원 봉사하는 의사들을 무자격 의사로 몰아 붙이는 것과 같이 부당한 것이었다. 

  사실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있었다(롬 1:14-).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박해하던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이방인을 위한 복음을 맡겨 주셨다. 그러므로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빚을 진 심정을 가지고 살았다. 그는 복음을 거저 받았기 때문에 거져 주었다(마 10:8). 그는 복음을 전하고 대가를 받을 권한이 있었지만 성도들을 위해서 그 권한을 포기했다. 그는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댓가를 받지 않은 것을 상급으로 생각했다(고전9:16-). 그는 고린도에 18개월 동안 머물면서 아굴라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 이로 인해 그는 성도들에게 재정적인 짐을 지우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행 18:11). 그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했다(행 20:35). 이러한 점에서 바울을 아마추어로 몰아붙이는 거짓 사도들의 주장은 거짓말이 분명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바울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내가 무료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함으로 너희에게 죄를 지었느냐?"고 반문함으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8).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9)."

  사실 바울이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기는 했지만 항상 풍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때때로 재정이 부족했으며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고 있었다. 여기에서 '비용"으로 번역된 말(와소니온)은 '봉급' 또는 '식량구입비'를 의미하는 말이었다(고전 9:7). 바울은 '여러 교회들' 즉 마게도냐 교회들로부터 비정기적으로 후원을 받았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무료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교회들이 그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다른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을 "탈취한 것"이라고 불렀다. 공동 번역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나는 다른 교회들이 주는 삯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에게 봉사했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교회들의 것을 빼앗아 여러분을 도운 셈입니다."

  본문에서 그가 후원금을 받은 것을 '탈취한 것'이라고 부른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그는 사역을 하지 않는 마게도냐 교회들로부터 비용을 받아서 고린도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그는 마게도냐 교회들로부터 비용을 탈취해서 고린도교회를 돕고 있는 것과 같았다. 둘째로 그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마게도냐 교회들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것이 마치 '탈취'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8:2-). 바울이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사례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무료로 복음을 전한 바울을 비난하는 일을 그치고,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값없이 복음을 전해 준 사도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마땅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생활비가 부족할 때가 있었다. 그는 복음 전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고 천막 만드는 일을 부업으로 했기 때문에 생활이 넉넉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부족한 비용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값없이 복음을 전하겠다고 한 원칙을 준수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충분한 보상을 요구함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 고린도교회에 부담을 지웠던 거짓 교사들과는 달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이 생활비가 부족할 때에 마게도냐 교회 형제들을 통해서 그의 부족한 부분 보충해 주셨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마게도냐에서온 형제들은 실라디모데일 가능성이 크다. 바울은 아덴에서 급히 고린도로 가면서 실라와 디모데를 마게도냐 교회(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냈다. 바울은 박해로 인해 급히 데살로니가교회를 떠난 후에 그 교회를 돌아보기 위해서 그의 동역자들을 보냈다. 그후에 바울은 고린도에서 그들과 다시 합류했다(행 18:5, 고후 1:19). 아마도 이때에 마게도냐로 갔던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을 가지고 와서 바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바울을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데 앞장 섰던 교회는 빌립보 교회였다. 이 교회는 바울이 마게도냐에 있을 때, 고린도후서를 쓸 때, 그리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사람들을 보내서 여러 번 경제적으로 그를 지원했다(빌 4:15-, 4:18).

  여기에서 바울이 이러한 이야기를 한 것은 그가 고린도교회에 사례를 요구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이러한 이야기를 하기 싫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성도들의 오해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고린도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바울이 교회에 사례를 요구하지 않은 것이 그가 사도적 권위가 없기 때문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입을 열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오해를 풀고 자신을 영접하기를 원했다. 그가 사례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사도의 권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것이었으며, 또한 다른 교회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토론할 문제  

1. 교회에서 설교자들이 수사법과 웅변술을 배워서 매력적인 설교를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설교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 해보자. 오늘날 성도들은 이 두 가지 유형 중에 어떤 유형을 더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2. 교회에서 지도자들이나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없이 자신을 자랑해야 했던 때가 있으면 이야기해보자.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쑥스러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3. 현대 교회에서 자비량으로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대하고 있는 사례가 있으면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회비를 많이 받는 강좌나 집회는 높이 평가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수강료는 싸게하거나 무료로 하는 강좌나 집회를 무시하는 태도는 없는지 살펴보자.


3. 우리 주변에 생활비가 부족한 사역자들이 없는 지 살펴보고,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는 일이 왜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인지 말해보자. 나는 나를 낮추고 남을 높여 주는 스타일인가? 아니면 나를 높이고 나를 섬길 것을 요구하는 스타일인가?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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