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후서)

Ⅱ. 새 언약의 직분 (2:14-7:4)

 

사도권 논쟁 서론(1-7장)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8-9장)

거짓교사를 대적함(10-13장)

고린도후서의 내용 요약


Ⅱ.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8-9장)
 
 A. 마게도냐 교회의 참된 헌신 (8:1-5)

 

 B. 고린도교회에 헌금 사역을 마칠 것을 쵹구함 (8:6-9)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6)." 

  바울은 앞에서 어려움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눈물 어린 마게도냐 교회들의 자선 활동에 대해서 소개했다. 바울은 이러한 눈물 어린 마게도냐 교회들의 헌신에 용기를 얻어서 고린도교회에서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교회에 보내서 모금 사역을 주관하게 했다. 이 사역은 디도가 전에 고린도교회를 방문해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의 모금 사역은 거짓 사도들의 방해와 다른 이유들로 인해서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도를 재차 고린도교회에 보내서 보내서 이미 시작된 모금 사역을 마치도록 지시를 했다. 바울은 디도를 여기에서 바울은 '모금 사역을 완수하는 것"을 '은혜를 성취하게 하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주어진 것이었다. 이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을 향해 다시 베풀어야 한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이러한 일에 있어서 이미 모범을 보였다. 이제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마게도냐 교회들을 본받아서 어려움을 당한 예루사렘 교회를 향한 관대한 자선 사역을 완수해야 할 때가 되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마게도냐 교회들이 극한 박해 빈곤 속에서도 능력 이상으로 이 헌금 사역에 참여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박해도 받지 않고 가난에 시달리지도 않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속히 그들이 시작했다가 중단한 자선 사역을 마칠 필요가 있었다.


  "오직 너희는 믿음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7)."


  고린도 교인들은 어느 교회에 뒤지지 않는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었다. 바울은 7절에서 그들이 어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 상기시켜주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믿음에 풍성했다. 그들은 믿고 구원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적을 일으킬 수 있는 큰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고전 12:9;13:2). 또한 그들은 지식의 은사에도 풍부했다. 그들은 방언과 예언, 그리고 지혜와 지식의 은사에도 풍부했다(고전 1:5, 12:8,10). 그들은 이러한 은사들을 가지고 진리를 전하고 덕을 세우며 권면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든 간절함에 있어서도 뛰어났다. 물론 그들의 간절함은 몇몇 경우에는 잘못나가서 질서를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신앙과 사도들에 대한 그들의 간절함과 열심은 탁월했다. 또한 그들은 사랑도 풍성히 소유하고 있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다른 은사와는 달리 사랑을 나타내는 일에는 그리 탁월하지 않았다. 그들은 바울에 대해서도 많은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과의 모든 오해를 풀고 회개한 후에는 사랑의 관계를 회복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잘 극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모두 다 그들 안에서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가능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많은 은혜아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은혜에 합당하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에도 풍성해야 마땅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풍성한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다른 성도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서 자선 행위를 '은혜'(카로티)로 표현한 것은 자선 행위가 행위가 아니라 은혜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진실함증명하고자 함이로라(8)."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사람이었고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도의 권위가 있었다(고후 10:8;13:10). 그러므로 그는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선 행위에 대해서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들의 자선 행위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가 한 것은 단지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이 은혜의 행위에 참여하도록 권유할 뿐이었다.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은 마게도냐의 교회들처럼 그들도 자발적으로 형제를 돕는 일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자선은 억지로나 인색한 마음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바울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자선에 참여한다면 외식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바울은 8절 후반절에서 자신이 자선을 명령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진실함증명하고자 함이로라(8)." 여기에서 말하는 다른 이들의 간절함은 마게도냐 교회들의 모범적인 모금 행위를 의미한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심한 박해와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헌금에 참여했다. 그들은 이러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순수한 사랑과 헌심을 나타냈다. 이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도 그들이 가진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해보기를 원했다. 여기에서 증명한다고 번역된 말은 시험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마게도냐 교회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보여준 것처럼, 이제 고린도교회도 중단했던 모금 사역을 완수함으로 그들의 사랑의 진실함을 나타낼 필요가 있었다. 바울은 그들의 사랑의 진실함을 시럼해보기 위해서 그들에게 명령하지 않고 스스로 모금 행위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말로만 증명될 수 없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입으로 고백하고 또 행동으로 그것을 증명할 때에 비로소 그 진실성이 공개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야고보의 말처럼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그 진위를 증명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9)."

  
앞에서 바울은 참된 자선 행위의 기준으로 마게도냐 교회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보다 더 완전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 모델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사랑과 자선의 최고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주에서 가장 부요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가축들이 살고 있는 마굿간에 태어나셨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과 자신의 몸을 인류를 위한 속죄 제물로 주신 일은 우주 최대의 사랑과 자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빌 2:6)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세상에서도 머리 둘 곳조차 없을만큼 가난하고 희생적인 고난의 삶을 사셨다(마 8:20; 눅 9:58).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침내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심으로 그들의 죄값을 지불하셨다. 우주에서 가장 부요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낮아지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였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함을 찬양했다. "그는 가난한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하늘의 부요한 자로 만들어 주셨으며, 또한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는 천사들과 같게 하셨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큰 사랑과 은혜를 무조건적으로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다 자신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크신 은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큰 은혜를 무조건적으로 받은 그들이 그리스도께 그 은혜를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다른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본받아서 세상에 은혜와 사랑과 관대함을 나타내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이웃에게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어려움을 당한 예루살렘 형제들을 돕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에 참여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와 다른 교회들 앞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가진 믿음과 사랑이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명해보이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었다.


                                ◎  토론할 문제  

1. 우리는 선한 일을 하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중단한 일은 없는지 반성해보자! 혹시 마땅히 해야될 일을 아직 못한 것이 있으면 속히 완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배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돌이켜보고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어보자!


3.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말만 가지고 증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 공개적으로 증명하고 있는가?

4.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과 자선 행위의 최고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로 부끄럽지 않게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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