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후서)

Ⅱ. 새 언약의 직분 (2:14-7:4)

 

사도권 논쟁 서론(1-7장)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8-9장)

거짓교사를 대적함(10-13장)

고린도후서의 내용 요약


Ⅰ. 사도권 논쟁 서론(1-7장)
 A. 왜 바울은 직접 오지 않고 편지를 썼는가? (1:1-2:13)

 B. 새 언약의 직분(2:14-7:4)

  
 C. 디도가 고린도에서 가져온 소식(7:5-16) 

  가. 위로의 하나님(7:5-7)

  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7:8-11)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8)." 


  바울은 "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했다!"고 고백하고 있다(8(상)). 바울이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편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어던 사람은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편지가 고린도 전서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Farrar).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편지를 소위 '눈물의 편지' 또는 '준엄한 편지'로 보고 있다. 이 편지는 바울이 A.D.55년경에 고린도교회에서 '가슴 아픈 방문'을 끝내고 돌아온 후에, A.D.56년 봄에 써서 디도 편에 보낸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분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펹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가 서론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엄한 책망을 함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했다. 바울은 '준엄한 편지'를 써서 보낸 후에 마음이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편지를 슨 것은 그들을 정죄하거나 고통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3). 그가 이러한 엄중한 편지를 쓴 것은 영적인 아버지로서 자녀들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었다(2:4; 6:13). 그러나 바울은 편지를 보낸 후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 편지를 받고 마음에 근심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잠시 후회를 했었다. 아마도 그는 너무 강한 어조로 편지를 쓴 것에 대해서 마음으로 후회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게된 후에는 더 이상 그 편지로 인해서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 편지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잠시 동안 근심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이 그 편지로 인해서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것을 바울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8(하)). 바울의 염려와 달리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고통과 근심은 지속되지 않았다. 아마도 바울은 그 편지를 보낸 후에 하나님께서 그 편지에 대해 올바른 반응을 보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 편지에 대한 올바른 반응을 보일 수 있게 해주셨다. 바울은 디도를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로 인해 더 이상 '준엄한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성령님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9)." 


  바울의 후회와 근심은 디도의 소식을 들은 후에 "
기쁨으로 변했다"(9(상)). 그가 기뻐하게 된 것은 그 편지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근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기뻐하게 된 것은 그들이 그 편지로 인해 잠시 근심했지만 계속해서 근심만 하지 않고 회개하고 바로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준엄한 편지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근심을, 그리고 바울에게는 후회를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편지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회개를, 그리고 바울에게는 기쁨을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 편지를 받고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즉시 회개하고 바로 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근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하고 있다(9(중)). 여기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잠시 근심하게 된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의 후회가 기쁨으로 변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근심에서 회개로 변하게 된 것은 바울의 편지가 가진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 편지를 통해 교회를 바로 세우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개입 때문에 가능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이 쓴 준엄한 편지에 대해서 더 이상 근심하지 않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때로 교회의 일을 하다가 성도들을 책망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러한 때에 사람들은 엄한 책망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 부담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경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과정에 개입하셔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신다. 그러면 책망을 한 사람과 책망을 받은 사람이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열매를 맺고 기뻐할 수 있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근심하고 낙심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즉시 회개하고 바로 서게 하심으로 "
그들이 바울이 보낸 편지로 인해서 해를 입지 않게" 역사해 주셨다(9(하)). 공동번역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분이 마음 아파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일이니, 결국 여러분이 우리로 해서 손해 본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바울은 준엄한 편지를 써서 보낸 후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 편지를 읽고 지나친 근심에 빠져서 시험에 들 것을 염려했다. 아마도 사단은 이 염려가 사실이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사단은 배후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보낸 편지를 읽고 큰 근심에 빠져서 바울과 고린도교회의 사이가 더 소원해도록 역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편지를 읽고 잠시 근심하게 하신 후에 즉시 뉘우치고 바로 서게 하심으로 그들이 그 편지로 인해 해를 입지 않게 보호해 주셨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편지를 읽고 근심한 후에 회개하게 된 것은 사단의 계략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해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인도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넘어서는 놀라운 결과를 주시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세상 근심 - 바울은 두 종류의 근심과 그 각각의 결과들을 극명하게 대조시켜 설명하면서 앞절 내용과 연결하여 계속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의 판단에 합당한 것인가를 생각하여 자기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돌이키는 데까지 나아가는 근심이다. 그리하여 혹자는 이 근심을 죄에 대한 근심이요, 하나님의 은총을 저버린 행위에 대한 근심이라고 하여 '신령한 근심'이라고 정의하였다(M. Henry). 이에 비해 '세상 근심'은 분노하고 원한을 품으며 자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애쓰는 근심이다. 이 근심의 결과는 낙담하고 좌절에 빠져 자기 파괴적인 상황으로 발전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두종류의 근심에 대한 성경의 전형적인 실례는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에서와 다윗이다(Hughes). 그 이후에도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는 없었다(히 12:16,17). 그러나 자기의 신하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윗은 자기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였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았다(시 51:1-19). 둘째는, 가룟 유다와 베드로이다.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기 전에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끝까지 타락하였던(마 26:24) 반면,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 후 통곡하며 회개하였다(마 26:75). 고린도 교인들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그들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하였으며 거짓 사도들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였다. 이렇게 바울의 사랑('준엄한 편지')에 응답한 그들은 결과적으로 '영적 사망'을 낳는 죄의 길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Martin).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11). 


  바울은 하나님께서 바울의 준엄한 편지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잠시 근심하게 하신 것이 어떤 좋으 열매들을 맺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통해 맺게 한 7가지 가치 있는 열매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1)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은 그들로 하여금 간절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전에는 바울의 사도권 문제에 대해서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반응했지만, 준엄한 편지를 받은 후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심각성을 의식하고 그것들을 바로잡으려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되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 그들을 변명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 동안 자신들의 무관심과 잘못에 대해서 냉담하고 안일하게 반응했지만, 이 편지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변명하고 해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은 그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로 이 말은 그들이 바울의 편지를 읽고 그 동안 거짓말로 바울을 공격하여 그의 명예를 실추시켰던 대적자들에 대해 의분을 느끼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로 이 말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 동안 대적자들에게 동조하거나 그들의 행위를 방임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자신에게 분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4)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은 그들로 하여금 두렵게 만들었다. 이 말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로 이 말은 그들이 바울이 사도권을 가지고 그들에게 와서 그들을 징계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둘째로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도인 바울을 어겨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5)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은 그들을 사모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회개한 후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바울과 다시 만내서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사모했다. 6)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은 그들을 열심 있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 동안 바울과 대적자 사이에서 무관심과 방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의 편지를 읽은 후에 열심을 품고 대적자를 물리치고 바울을 좇아 복음 사역에 헌신하려는 열심을 품게 되었다. 7)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은 그들로 하여금 대적자을 처벌하게 만들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 동안 방관으로 일관했던 거짓 교사를 책망하고 그들을 징계함으로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게 되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 일에 대해서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타냈다'고 번역된 말(쉬네스테사테)을 '입중하였다'고 해석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Barrett). 이러한 점에서 공동번역은 이 부분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게 되었다'고 번역하고 있다.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고린도를 향한 '가슴아픈 방문'이었다. 그 방문이 바울에게 가슴 아픈 방문이 되었던 것은 대적자들이 바울을 공격할 때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태도와 관련이 있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대적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이러한 일은 바울에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때에 자신들이 보였던 행동에 대해서 회개를 하고 모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서신을 쓰는 이 시점에서는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문제들이 모두 해결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토론할 문제
 

1. 부모가 자녀를 징계한 후에 마음이 아픈 것과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준엄한 편지를 쓴 후에 후회했던 것을 비교해서 설명해보자. 성도들의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서 강하게 책망한 후에 마음이 아팠거나 후회했던 경험이 있으면 이야기해보자.


2. 세상이 주는 근심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근심이 어떤 차이가 있고,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 지 설명해보자.


3. 치리하는 지도자와 치리를 받는 성도들 사이에 문제가 생겨서 크게 고통을 받은 적은 없는가? 성도들의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치리할 때에 많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보자.

4.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근심을 하게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아는대로 설명해보자.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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