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후서)

Ⅱ. 새 언약의 직분 (2:14-7:4)

 

사도권 논쟁서론(1-7장)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8-9장)

거짓교사를 대적함(10-13장)

고린도후서의 내용 요약


Ⅰ. 왜 바울은 직접 오지 않고 편지를 썼는가? (1:1-2:13) 

Ⅱ. 새 언약의 직분(2:14-7:4)
 1. 고린도교회 내의 반대자들에 대한 답변(2:14-3:6) 
 2. 모세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3:7-18)
 3.  이 세상 신과 하나님의 계시 (4:1-6)(지난 시간)
 4.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 (4:7-16)

 
5. 죽음과 부활 (5;1-10)
 6. 화목하게 하는 직책 (5:11-6:10)

 
7. 자녀들을 향한 영적 아버지의 호소 (6:11-7:4)
  가. 화해를 요구하는 바울(6:11-13)

★ (고후 6:14-7:1)의 진정성에 대하여

  
(고후 6:14-7:1)의 진정성 문제는 오랫동안 학계의 논쟁의 문제가 되어왔다. 그 이유는 본문을 읽어 보면 (고후 6:13)의 내용("우리 마음을 넓혔으니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과 (고후 7:2)("그리하여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는 반면, 그 사이에 있는 (고후 6:14-7:1)의 내용은 전후 문맥과 전혀 다른 내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1) 어떤 사람들은 (고후 6:14-7:1)이 처음부터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또 2) 어떤 사람은 이 글이 바울이 쓴 것이긴 하지만 원래 이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이 부분에 삽입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기로 하자!


A. (고후 6:14-7:1)은 바울의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후에 누군가에 의해 고린도후서에 삽입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근거로 해서 (고후 6:14-7:1)이 바울이 쓴 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1) (고후 6:14-7:1)안에 성경에서 단 한 번만 나오는 용어들이 유난히 많다.
 2) (고후 6:14-7:1)은 불신자들과의 교제를 금하는 배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울의 정신과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배타적인 내용은 오히려 바리새인적인 편협한 내용에 가깝다.
 3) (고후 7:1)에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이란 말이 나오는 데 바울의 경우에는 "육"과 "영"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같은 의미로 함께 사용하는 나오는 것은 바울의 글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충분히 반박을 받을 수 있다.

 1) 바울은 학문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휘력이 풍부해서 얼마든지 한 번만 사용하는 단어를 자주 쓸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고린도후서에도 단 한 번만 사용된 단어가 50여개나 있다.

 2) 이 부분을 바리새적 배타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으며, 오히려 고립과 혼합주의의 양윽단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바울의 노력이 담긴 글로 볼 수도 있다.

 3) 바울이 육과 영을 대립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며, 따라서 본문에서 육과 영이 함께 쓰였다고 해서 무조건 이 글이 바울이 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본문이 바울의 글이 아니라는 결정적으로 단정할 이유는 없다.


B. (고후 6:14-7:1)은 원래 다른 곳에 있는 바울의 글이었는데, 후에 어떤 이유로 해서 고린도후서에 삽입되게 되었다는 견해에 대해서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본문이 원래 다른 곳에 있는 바울의 글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인해서 이 부분에 삽입이 되었다고 주장을 한다. 모팻은 이 부분이 (고전 5:9)에서 언급하고 있는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잃어 버린 "이전의 편지"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전 5:9)을 보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모팻은 불신자들과의 교제를 금하는 본문의 내용이 (고전 5:9)에서 언급된 바울의 말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의한 것이며, 이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근거는 없다. 더우기 본문이 다른 곳에 있던 글이었다면 어떻게 해서 이곳에 삽입이 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데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사도 시대에 유행했던 문서의 형태는 파피루스 두루마리 유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문서에서는 갑자기 중간에 다른 글을 삽입하는 일이 일어나기가 매우 어렵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이 2세기 이전에 낱장들로 된 파피루스 사본을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을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그리고 그들이 다른 문서가 이 부분에 삽입되었다고 주장하는 2세기에는 이미 바울의 서신은 교회에서 확고하게 인정되어 정착될만한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후에 다른 문서로 인해 변경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C. 고린도에 보낸 편지를 재편집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그
동안 여러 학자들이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편지를 논리적이고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서 그 내용을 재편집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들은 매우 독창적인 생각을 가지고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편지의 내용을 분해해서 논리적으로 다시 편집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를 추천할 만한 것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바울이 쓴 편지는 즉흥적이고 감정이 담긴 편지이지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쓴 논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의 편지에서 본문처럼 한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그 주제를 벗어나서 다른 말을 하다가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오는 사례들이 다른곳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바울은 고후 2:14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주제에 대해서 언급한 후에 고후 7:5에서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오고 있다).


D.
(고후 6:14-7:1)은 원래부터 바울이 의도적으로 여기에 기록한 글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러나 이 단락이 바울의 글이며 원래 이 부분에 기록된 글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매우 많다(잔, 플러머, 리츠만, 아로, 필슨 등). 그들은 이 단락이 이 부분에 기록된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불신 세력과 어리석은 타협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매우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지 말라고 요청했다(고후 6:1). 그리고나서 그는 자신이 그들 가운데에서 사도로서 행한 일과 복음을 위해 겪었던 수많은 고난들에 대해서 언급했다(고후 6:3-10).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미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용납하고 있으므로 그들도 자신을 향해 마음을 열도록 요청했다(고후 6:11-13). 그리고 나서 그는 (고후 6:14-7:1)에서 다시 한 번 불신 세력과 멍에를 지고 함께 행하는 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이며 그들의 신앙고백과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경고를 했다. 이러한 바울의 경고는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이 말은 책망이라기 보다는 사랑에 의한 것이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잘못을 하거나 속여서 갈취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불신 세력과의 동조하는 일을 중단하고 마음을 열고 바울을 용납할 필요가 있었다(고후 7:2-4).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불신 세력과의 타협을 금하고 있는 (고후 6:14-7:1)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앞 뒤의 문맥과 어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이 다른 곳에서 삽입된 글로 보는 것보다, 바울이 목회자로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불신 세력과의 타협을 금하는 애정이 담긴 목회적 권고로 볼 수 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좋은 말을 할 때도 있지만 때로 엄한 말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경고해야 될 때도 있는 것이다. 특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거짓 교사들에 의해 미혹을 받고 분별력을 상실한 경우에는 더욱 더 목회적인 권면과 책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단락이 다른 곳에서 삽입된 것이었다면, 사본 중에 이 단락이 생략된 것들이 몇 개라도 발견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필사본도 이 부분이 생력된 채 기록된 것은 없으며, 또한 역본이나 다른 문헌의 인용상의 증거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한 다른 증거가 발견되기 전에는 원래부터 이 단락이 바울이 쓴 것으로 원래부터 이 부분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  토론할 문제  

1.
(고후 6:14-7:1)의 글이 원래 이 부분에 없었는데 후에 삽입되었다고 주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6:13과 7:2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 읽어보라!).

2.
(고후 6:14-7:1)이 바울이 쓴 글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와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설명해보자.

3. (고후 6:14-7:1)
이 바울이 (고전 5:9)에서 언급한 "잃어 버린 편지"였다는 주장과 그 반대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4.
(고후 6:14-7:1)이 바울의 글로서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자기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