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후서)

Ⅱ. 새 언약의 직분 (2:14-7:4)

 

사도권 논쟁서론(1-7장)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8-9장)

거짓교사를 대적함(10-13장)

고린도후서의 내용 요약


Ⅰ. 왜 바울은 직접 오지 않고 편지를 썼는가? (1:1-2:13) 

Ⅱ. 새 언약의 직분(2:14-7:4)

 1. 고린도교회 내의 반대자들에 대한 답변(2:14-3:6) 

 2. 모세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3:7-18)

 
가. 옛 언약의 직분과 새 언약의 직분 (3:7-12) (지난 시간)

 나. 모세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 (3:13-18)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13)." 


  모세는 자신의 얼굴에 빛나는 영광의 광채를 가리기 위해서 얼굴에 수건을 썼다. 모세가 왜 얼굴에 수건을 썼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모세의 얼굴에 있던 광채가 사라졌을 때에 백성들이 모세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져서 그의 권위를 무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Harris). 2)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고해서 모세의 얼굴에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Hughes). 3) 모세의 얼굴에 강렬한 빛이 나서 백성들이 직접 쳐다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스라엘 배겅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4) 모세는 자기 얼굴에 나타난 영광이 일시적인 것임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채를 신성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얼굴에 수건을 덮었다. 바울의 해석을 고려할 때에 우리는 세 번째와 네 번째 견해가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1차적으로 바울은 모세가 자기 얼굴에 있는 광채로 인해 당황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얼굴에 수건을 쓴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이 광채를 장차 없어질 것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세는 자기 얼굴에 있는 광채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곧 사라져버릴 일시적인 것임을 인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채를 신성시하지 않도록 얼굴에 수건을 덮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바울은 모세처럼 할 필요가 없었다. 바울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그가 전하는 복음의 영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자기 얼굴에 나타난 광채에 대해서 형제들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도록 배려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이 곧 사라질 영광에 주목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바울이 가진 그리스도와 복음은 숨길 필요가 없엇다. 이 복음은 영원하며 생명을 주는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전파할 필요가 있었다. 복은 영원하고 영광스럽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14).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15).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16)."

 모세의 얼굴에 있던 광채는 곧 사라질 일시적인 율법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율법은 그리스도로 인해 맺어질 새 언약이 오면 폐지될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찬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 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일시적인 율법의 영광조차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그들의 완고함과 거역이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 대하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에 있는 광채를 주목하지 못한 일은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모세는 얼굴에 수건을 써야만 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히 순종했더라면 그들은 모세의 얼굴에 있는 영광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광채를 마주 볼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그들 사이에는 완충 역할을 하는 수건이 놓이게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고함으로 인해서 그들이 율법의 진리를 올바로 보거나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수건으로 인해 모세의 얼굴에 있는 광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듯이, 그들의 완악함은 율법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순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나오는 '수건'(칼륌마)은 유대인의 영적 무지, 오해, 불신앙, 편견 등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이 글을 쓰는 때까지 계속해서 완고함으로 인해 구약의 약속들을 깨닫지 못했다. 

  바울은 이러한 수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율법의 정신과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수건을 벗고 얼굴을 보는 것처럼 율법의 본질을 마주 대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나면 율법을 이해할 수 없다. 바울은 오늘날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바울은 율법을 '구약'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는 율법을 '모세의 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다는 말은 유대인들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계시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돌아가면 이 수건이 벗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는 수건을 썼지만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그 수건을 벗었다(출 34:34).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질 수 있다. 편견과 완고함에 의해 닫혀 졌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계시는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즉시 열려질 수 있다. 여기에서 돌아간다는 말은 완고함과 거역함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우리의 죄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우리를 막았던 방해의 막이 제거되고,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뜻을 아는 계시의 영이 주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의 영을 받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은혜로 예비하신 구원과 영생의 길을 발견하고 그 안에 거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돌아오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인도해 주신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17).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18)."

  모세의 얼굴에서 수건을 벗겨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로부터 수건을 벗겨주실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로 인해 우리를 살려주시는 영이 되셨다(고전 15:45). 바울은 여기에서 '율법'과 '영'을 대조하고 있다. 율법, 즉 옛 언약은 사람들을 구속하고 정죄했다. 옛 언약은 율법을 준수할 의무를 부여하지만 그것을 준수할 힘을 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의 사람들은 구속과 정죄의 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주의 영, 즉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새 언약은 의와 자유를 제공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든 죄를 씻어 정결케 하신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기고 그 법을 자원하며 준수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주신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며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주의 영으로 인해 마음의 수건이 벗겨지고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난 곳에는 새 언약으로 말미암는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의 지배 아래 사는 사람은 '종의 자녀'라고 부르지만, 새 언약의 지배 아래 사는 사람은 '자유자의 자녀'라고 불리어진다(갈 4:24-31). 성령에 의해 새 언약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죄와 구속의 율법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는데 이 자유는 확신(4절)과 담대함(12절)을 주는 자유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러한 자유의 영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이 쓴 추천서에 의존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서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본다고 말하고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갈 때에 수건을 벗었다. 이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수건을 벗은 채 하나님의 영광을 대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제사장들의 중보 역할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주님의 영광을 본다고 말한다. 새 언약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들은 수건으로 덮인 마음으로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과는 달리 수건을 벗은 얼굴로 밝히 복음 속에 비춰지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수 있다. 여기에서 '거울'로 번역된 말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본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또 '거울처럼 반사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수건에 가려져서 옛 언약의 영광을 밝히 볼 수 없었던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볼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거울로 반사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광을 반영할 수 있다. 이는 그들 안에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한 후에 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할 수 있다.

  바울은 우리가 모두 다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의 성도들은 주님의 영광을 대면하며 서서히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성도들의 존재가 신격화되는 것으로 이해되면 안된다. 또한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광이 성도들의 얼굴에서 빛으로 나타난다고 볼 필요가 없다. 본문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른다고 하는 말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계속해서 교제함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고, 점점 더  그리스도의 영광을 향해 전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주의 재림 때가 되면 성도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완전한 영광의 형체를 얻게 될 것이다(빌 3:21). 이렇게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주님의 영, 즉 성령님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구원받고, 성화되며 마침내 완전한 영화에 이르게 된다(롬 8:29,30). 이와 같이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은 율법의 중보자인 모세의 영광보다 탁월하고 우수하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율법과 모세로 돌아가지 말고 복음과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가야 한다.  

                                ◎  토론할 문제  

1. 우리 마음에는 복음이 밝히 깨닫고 믿어지는가? 아니면 아직도 복음이 장막에 가려진 것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가?

2. 왜 복음 안에 참된 자유가 있는지 설명해보자. 우리는 복음안에서 이러한 자유를 체험하고 또 누리고 있는가?

3.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또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는지 말해보자.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형상을 닮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보자.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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