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전서)

제 3부 고린도 교회의 편지에 대한 답변들 (7-16장)


                    Ⅱ. 고린도 전서 내용 연구
 

1부 서론(1:1-9)

2부 교회 소식을 듣고 답변함(1:10-6:20)

3부: 교회의 편지에 대해 답변함(7-16장)

인사

감사

분파문제에
대해

음행문제에
대해

결혼

우상제물

예배에
관하여

부활

연보

(1:1-3)

(1:4-9)

(1:10-4:21)

(5-6장)

7장

8-11:1

11:2-14장

15장

16장

고린도전서의 내용 분해

 



4. 부활에 대해서(15장)

1) 초대교회의 사도신경(1-11)

2) 부활을 부인하면(12-19)

3) 그리스도의 부활과 미래(20-28)
4) 부활과 현재의 삶의 관계(29-34)(지난 시간) 

5) 옛 창조에 있는 다양한 몸(35-41)


6) 부활의 새 몸(42-49)
 

<아담의 형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 참고: 아담기독론에 대해서
 

  바울은 세상의 몸과 부활할 몸을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담 기독론은 바울의 독특한 이론이다. 바울만이 그리스도를 아담이라고 부르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아담의 타락과 비교, 또는 대조하면서 해석하고 있다. 바울이 어떻게 “아담기독론”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학자들은 오랫동안 토론해왔다. 19세기 말부터 종교사학파의 학자들은 바울이 근동에 만연해 있던 “태초의 인간” 설화를 이용해서 아담기독론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전반부에 세계 신약 신학계를 주름잡았던 불트만은 그 가설을 더 발전시켜서 바울이 영지주의의 “구원자 신화”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해서 아담기독론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불트만의 가설은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20세기 중반까지 거듭해서 주장되었으며, 이로 인해서 이 견해는 비판적인 신약 학자들 가운데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1960년대에 이르러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때에 젊은 유럽의 신학자들은 고대 근동의 여러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쓰인 고대 문서를 자세히 연구했다. 그 결과 옛 종교사학파들의 가설이 맞지 않고, 불트만이 주장했던 영지주의자들의 구원자 신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그들은 구원자 신화가 불트만과 그 제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신화들을 제 멋대로 짜 맞추어서 만든 거짓 가설임을 밝혀냈다. 어느 문헌에도 구원자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트만의 뛰어난 한 제자인 케제만은 1070년에 이 신화의 가공성을 인정하면서 스승의 이론을 폐기 처분했다. 그는 1973년에 출판한 책에서 (롬 5:12-21)을 주석하면서 아담 기독론의 기원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불트만의 또 다른 제자인 콘첼만도 (고전 15장)을 주석하면서 케제만과 같은 선언을 했다.    


  이러한 아담 기독론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제시한 사람은 바로 한국의 신학자인 김세윤 박사였다. 그는 바울 복음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아담기독론의 기원을 깊이 연구했다. 그는 이 연구를 1977년에 완성하고 1981년에 독일에서, 그리고 다음 해에는 미국에서 출판된 “바울 복음의 기원”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아담기독론의 기원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게 된 바울의 체험에 근거하고 있음을 논증했다.


  아담 기독론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고후 4:4-6, 골 1:15)으로 보고, 우리의 구원을 그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어 가는 것"(conform-롬 8:29), 또는 그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transform-고훈 3:18, 고전 15:49, 골 3:9-10)으로 설명하는 것도 바울서신에만 나오는 독특한 기독론인 동시에 구원론이다. 보통 학자들은 바울이 아담기독론을 먼저 만들고, 이로부터 형상기독론(구원론)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세윤 교수는 아담 기독론의 기원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순서를 뒤집어서 생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울이 형상 기독론을 먼저 만들고 이를 통해서 아담기독론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영광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사건(christophany)을 구약과 유대교의 하나님께서 나타나심 전승(사 6장, 겔 1장, 단 7장 등)에 비추어 해석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그리스도의 계시(갈 1:12,15-16 참고)를 통해서 그의 형상 기독론을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서 아담기독론을 만들었다고 논증했다. 김 교수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유대교에서 종말에 일어나기도 된 부활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는 마침내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때에 바울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가진 신적인 생명으로 충만하신 모습을 가지고 계셨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옛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그리스도께서 다시 회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렀으며, 우리의 구원을 그리스도께서 회복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얻는 것(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형되는 것)으로 묘사하게 되었다. 또한 바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 새 창조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옛 아담과 대조되는 새 창조의 조상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회복한 새 창조의 조상이신 그리스도와, 옛 창조의 조상인 아담을 비교, 또는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그는 그리스도를 새 창조의 아담, 즉 ‘종말의 아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문에 나오는 '영광의 몸'(43), '영적인 몸'(43), '하늘로부터 온 사람'(47), '하늘에서 온 사람의 형상'(49) 등의 단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지니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러한 표현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후 3:18, 4:4-6, 빌 3:20 참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명을 가진 혼이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다(45)."


  여기에서 바울은 (창 2:7)을 인용하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빚어진 흙덩어리였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숨(혼)을 불어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게 하셨다. 아담은 이와 같이 '흙에서 나온 존재'(47)였고, '흙적인 존재'(48)였으며, 기껏해야 '혼적인 존재'(46)였다. 후에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 자기에게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의 생기(생명)이 끊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담과는 다른 분이셨다.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온 형상과 영광, 즉 영적인 몸을 가지셨으며(44),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심으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분)이 되셨다(고후 3:18 참고).   


  "그러나 영적인 자가 아니라 혼적인 자가 처음이며(왔으며), 그 후에 영적인 자다(왔다)(46).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적인(흙으로 빚어진) 자다.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왔다(47). 흙으로 빚어진 자가 이러했듯이 흙으로 빚어진 자들이 그와 같고, 또 하늘적 존재가 이러하듯이 하늘의 존재들이 그와 같다(48)."


  바울은 혼적인 존재인 아담이 첫 창조의 조상으로 먼저 존재했으며, 그 후에 영적인 존재이신 그리스도께서 새 창조의 조상으로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46). 또한 그는 첫 사람인 아담은 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흙으로 빚어진 존재였지만, 두 번째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47).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첫 흙으로 빚어진 아담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그들 역시 아담처럼 흙적인 존재로서 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신 존재이기 때문에, 그 분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는 사람들은 그 분과 같은 하늘적인 존재의 형상과 영광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흙적인 사람의 형상을 입었듯이 또한 하늘적 사람의 형상을 입으리라(49)."


  바울은 우리가 첫 아담을 따라서 흙적인 사람의 형상을 입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늘적 사람의 형상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49).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지금 모두 다 흙적인 아담의 형상을 입고 있다. 우리는 아담처럼 흙으로 빚어진 흙적인 존재이며 죄와 죽음이라는 숙명의 짐을 진 연약하고 욕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차 종말의(마지막) 아담의 영적인 몸을 입고, 하늘적 사람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 바울은 한 편으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고후 4:4, 골 1:13)이라고 불렀고, 또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도록(conformed) 예정하셨다고 말한다(롬 8:29). 또한 그는 우리가 지금 주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간다‘(transformed-고후 3:18)고 말하고 있으며, 하늘로부터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비천한 몸을 자신의 영광의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빌 3:”20-21). 이러한 묘사들은 모두 다 우리의 구원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우리의 구원을 종말의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다는 말이나 그와 같은 형상이 된다는 말은 도두 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본질, 즉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구원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는 흙으로 빚어진 첫 아담의 형상을 입고 있기 때문에, 피조물이 갖는 유한성에 갇혀 있고, 죄와 죽음의 세력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장차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여 하나님처럼 충만(플레로마)하고 신적인 생명(영생)으로 충만한 상태가 될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롬 8:30).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일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성되게 될 것이다(고전 15:49-53, 빌 3:20-21). 그러나 이러한 일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고후 3:18, 골 3:10).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바울의 구원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바울은 구원을 칭의와 화해, 입양의 범주(그림)로만 설명하지 않고, 이와 같이 '변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음', '하나님의 영광을 얻음', 그리고 '새 창조'나 '새 피조물'의 범주(그림)으로도 설명하고 있다(고후 5:17). 바울이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다양한 범주(그림언어)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실재(신성)에 참여하여 그 신적인 생명(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는 것(칭의)이나,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회복되는 것(화해)이나, 그 분의 자녀가 되어 상속자가 되는 것(입양)은 모두 다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입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되어 하나님의 신적인 생명(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저인 생명(영생)을 얻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상실한 첫 아담의 숙명을 극복한 "새로운 피조물"이다.


  지금까지 신학자들은 바울의 구원론을 주로 칭의, 화해, 입양, 새 창조의 범주로만 설명하고,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의 범주를 무시해왔다. 특히 바울 신학에 크게 의종하고 있는 루터 신학과 개혁 신학이 이 범주를 적절하게 사용해오지 못한 경향이 있다. 우리가 앞에서 생각해 본 것처럼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변화의 과정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는 현재 진행형 구원은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n-고전 11:1, 빌 2:5-11)과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전히 그 분의 형상을 입을 것이지만,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서(또는 모방하여) 자기 부인과 사랑의 길을 걸음으로(제자도를 실천함으로) 그의 형상으로 서서히 변화되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성화"라고 부르는 구원의 과정이다.


  칭의론의 법정적인 측면(무죄 선언)뿐 아니라, 관계론적 측면(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고 의지하는 삶을 사는 것)이 제대로 강조되면, 구원론에 있어서 칭의뿐 아니라 성화도 강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구원론에 있어서 법정적인 면만 강조하거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점을 무시하는 일부 신학 전통은 성화에 대한 요구를 약화시키는 약점이 있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수도 많고 열정도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높다. 그러나 도덕적 수준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들에 비해서 숫자나 열정만큼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교회에서 구원론을 가르칠 때에 칭의의 법정적인 측면만 강조하고, 변화와 성화에 대한 훈련을 강조하기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교회의 도덕적 수준 저하가 꼭 성화에 대한 강조가 약하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러한 한국교회의 치우친 교리 교육이 어느 정도 한국교회 성도들의 질적인 수준을 낮추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토론할 문제들  

1. 본문에서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의 비교점과 대조점을 나열하는 표를 만들어보자.


2. 위의 표를 가지고 구원받기 전의 나의 모습과 구원받은 후의 나의 모습과 비교해보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야하는 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 다음 주 계속 - 

알림) 교재에 대한 문의나 제안 사항이 있으시면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