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전서)

제 3부 고린도 교회의 편지에 대한 답변들 (7-16장)


                    Ⅱ. 고린도 전서 내용 연구
 

1부 서론(1:1-9)

2부 교회 소식을 듣고 답변함(1:10-6:20)

3부: 교회의 편지에 대해 답변함(7-16장)

인사

감사

분파문제에
대해

음행문제에
대해

결혼

우상제물

성령의
은사

부활

연보

(1:1-3)

(1:4-9)

(1:10-4:21)

(5-6장)

7장

8-11장

12-14장

15장

16장

고린도전서의 내용 분해


                      1. 결혼과 독신 문제(7장)
 

  우리는 그 동안 고린도 교회에 일어났던 분파문제(1부-1-4장)와 음행 문제(2부-5-6장)에 대한 바울의 해결책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제부터 나오는 7-16장은 고린도전서의 제 3부이다. 이 부분에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질문했던 몇 가지 문제들과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들이 기록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제 3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결혼과 독신(처녀)에 대해서(7장)

2) 우상의 제물과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8-11장)

3) 성령의 은사와 교회의 질서에 관해서(12-14장)

4) 부활에 관해서(15장)

5) 성도의 연보에 관해서(16장)


  고린도 교회에서 문의했던 첫 번째 질문은 결혼 생활과 독신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고전 7장)에서 대답하고 있다. 바울은 이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에 대해 균형 잡힌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나오는 바울의 답변은 결혼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루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 부분에 나오는 바울의 답변은 당시에 고린도 교회에 일어났던 특별한 문제에 대해 답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결혼관을 찾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 부분에서 바울이 친절하고 균형 잡힌 결혼관을 진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본문에 기록된 답변은 고린도 교회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 결혼과 이혼문제 (7:8-16)

 
  바울은 앞에서(1-7) 결혼과 부부관계에 대해 일반적인 충고를 했다. 이제 그는 계속해서 결혼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 결혼 하지 않은 자와 과부들에 대한 충고(8-9)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8).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9).”


  바울은 8-9절에서 미혼자(남성)와 과부에게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서 생각해 본 것처럼 바울은 남자와 여자를 같은 원리로 대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원칙은 미혼 여성(처녀)과 상처하고 홀로 사는 홀아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은 미혼자와 과부들에게 자기처럼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바울처럼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독신의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결혼을 하라고 권고한다. 바울은 음란한 고린도에서 수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정욕이 불타는 채로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결혼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다. 독신의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수많은 고린도 시의 성적 유혹 앞에 정욕에 불타는 상태로 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단정한 몸가짐과 온전한 정신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차라리 결혼을 해서 부부 관계를 통해서 성적인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낫다(고전 7:35, 딤전 5:11 참고).  


 나. 결혼한 자에 대한 충고(10-11)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10),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11).”


  앞에서(8-9) 바울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과부들에 대해 권면을 했다. 이제 그는 (10-11)에서 이미 결혼한 사람들에게 충고를 하고 있다. 바울은 이미 결혼을 한 사람들에게는 결혼을 깨뜨리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금욕주의자들은 결혼과 성적 문제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절대로 그 결혼 관계를 깨뜨려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의 권고의 근거를 이혼을 금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찾고 있다.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매우 사소한 일(힐렐 학파의 경우에 빵을 태우는 일과 같은 사소한 일)로 남자가 여자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이혼증서를 써주고).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간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혼을 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마 5:31, 19:3-12, 막 10:2-12, 눅 16:18 참고). 바울 당시의 헬라 세계에서는 남자 뿐 아니라 여자도 이혼을 제기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 당사자들은 당국에 이혼한 것을 신고하는 것만으로 이혼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엄격히 이혼을 금하고 있다.


  그러면 이미 이혼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알면서도 이미 이혼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울은 이 문제를 괄호 안에 담아서 다루고 있다.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이 구절은 원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결혼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면, 아내는 결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든지 남편과 화합하도록 하라!”(11). 바울이 이렇게 대답한 것을 보면, 결혼을 반대하고 이혼해야 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금욕주의 견해를 가진 여성들에 의해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부분에서 특히 이혼한 아내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원리는 남녀동등의 원리에 의해서 이미 이혼한 남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결혼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다(고전 6:12). 그러므로 결혼한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아야 하며(10), 또한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11). 그러므로 이혼한 남자와 여자는 그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경우에 다시 화합할 수 있다. 그러나 이혼한 배우자가 이미 다른 남자와 여자와 결혼을 한 경우에는 이미 이전의 결혼 관계가 끊어 졌기 때문에 헤어질 수 있다(마 10:11, 롬 7:2 참고).    


      

 다.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결혼에 대한 충고(12-16)
 

  예수님은 유대인 사이에서만 사역하셨기 때문에(롬 15:8), 초대 교회가 헬라 세계 선교지에서 벌어진 상황, 즉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결혼에 대한 가르침을 남기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인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성도들에게 충고하고 있다(“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12)). 그러나 이러한 그의 충고는 사사로운 판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르침을 자신이 이방 선교지에서 당한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서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의 충고는 마땅히 교회에서 받을 만한 것이었다.    


 가) 이혼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그대로 지낼 것(12-14)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12),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13).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14).”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고후 6:14-7:1). 그러므로 그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신자들끼리 결혼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이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결혼을 한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 일부가 복음을 믿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둘 다 복음을 믿지 않던 가정에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가정에는 종교 문제로 갈등하게 되는 일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때에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배우자들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일이 생겨났다. 그러면 이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바울은 일단 불신자인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지 않으면 그대로 결혼 관계를 유지하라고 말한다. 이는 이혼을 금지하는 예수님의 교훈을 좇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배우자가 종교 문제로 이혼을 요구하지 않는 한 결혼 관계를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바울이 불신자와의 이혼을 금지하는 것은 비단 이혼을 금하는 주님의 명령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울이 불신자와의 결혼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던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통해서 불신자인 배우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14).”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을 ‘거룩하게 된 자’라고 부릅니다(고전 1:2). (고전 1:30, 6:11)에 의하면 ‘거룩함’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말 안에는 성령의 인도함을 좇아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의무도 포함되어 있다. 일부 금욕주의자들은 신자들이 비신자와 함께 살면 비신자로 인해 신자들이 부정해진다고 주장하면서 이혼을 정당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그 주장과는 반대로 불신자들이 성령의 영향을 받는 신자들로 인해 거룩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한 가정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생겨나게 되면, 그 사람으로 인해 다른 가족들이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고 주님을 믿게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신자들의 안에 있는 성령이 불신자들 안에 있는 어둠의 영보다 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요일 4:4). 예수님은 이러한 일이 모범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교제를 금했던 온갖 종류의 죄인들과 함께 교제하셨다. 이는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의 부정함을 정결함으로 바꿀 수 있는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부정적인 입장에서 죄인들과의 교제를 금했지만, 예수님은 긍정적인 면에서 죄인들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하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불신자인 배우자는 오늘날의 세속화된 세계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언급된 불신자인 배우자는 이방의 신전에 가서 이방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적극적인 우상 숭배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우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충돌과 갈등을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자들은 불신자로 인해 더렵혀지지 않게 위해서 스스로 이혼을 요구해야 하는가?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바울은 오히려 신자들 안에 있는 성령이 불신자들 안에 있는 우상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신자가 불신자들을 거룩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성도들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귀신의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불신자와의 교제를 금하거나 꺼리는 일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성령이 악령들을 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적극적으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설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불신자와 결혼하는 신자들은 그 결혼이 힘들고 어렵긴 하지만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신의 자녀들도 거룩하게 할 수 있다. 당시에 많은 가정들은 한 편이 예수님을 믿고 다른 편이 우상을 섬기는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자녀들 중에는 아직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 아직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지 못한 자녀들은 아직 거룩한 상태에 놓이지 못하고 부정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상대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지 않는 한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녀들을 구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은 불신자가 이혼을 요구하지 않은 한, 신자들이 먼저 나서서 결혼 관계를 깰 필요는 없다고 충고하고 있다.             


 

 나)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15(상))-이혼이 가능함-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15(상))."

   그러나 만일 불신자인 배우자가 종교 문제로 이혼을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울은 이러한 경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이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종교 문제로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그 결혼 관계를 기계적으로 유지할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예수님의 이혼금지 명령을 새로운 상황에서 새롭게 적용하고 있다. 바울은 한 편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신자가 불신자를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 바울은 이혼을 금하라는 주님의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12-14). 모든 이혼은 가능한 막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기도와 상담 등과 같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혼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바울은 이러한 점에서 적극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배우자와의 결혼도 먼저 나서서 이혼을 요구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쉽게 이혼해 버리는 오늘날의 부부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성경은 가능하면 어느 정도 불만스러운 상황이 다친다고 해도 사랑과 관용으로 그 결혼 관계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 상황이 주어지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 선과 악을 선택해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두 가지 악한 일 중에서 보다 덜 악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당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보다 덜 작은 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혼이 옳지 않다. 그러나 때로 너무 심한 고통을 겪는 배우자들은 결혼보다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서 매일 마약을 하고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매일 배우자를 구타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만드는 경우에, 그 가정에서 사는 배우자와 자녀들은 이혼한 가정보다 더 심한 고통과 아픔을 감내해야만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판사들이 그 가정이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이혼을 하는 것이 더 나은지 분명하게 판단을 해서 더 나은 쪽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가 바로 두 가지 악 중에서 보다 작은 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경우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만일 우상을 적극적으로 섬기는 사람이 끝내 복음을 믿기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믿는 배우자를 박해하고 구타하며 거부한다면, 이러한 가정은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이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에서보다 큰 악을 피하기 위해서 보다 작은 악을 선택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율법은 이혼을 허용했다. 원래 창조의 원칙에 의하면 한 번 결혼한 부부는 이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극히 타락함으로 인해 결혼 관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 할 수 없이 율법은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할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더 큰 악을 피하기 위한 차선책이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명심해야 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려고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적용할 때에 문자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원래 그 법을 주신 정신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율법의 정신을 버리고 그것을 남용했다. 그들은 이혼을 허용한 원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 법을 여인을 박해하는 데 이용했다. 그들은 이혼을 허용한 율법의 규정을 이용해서 남자가 여인이 음식을 태우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로 이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자를 보호하려고 허용한 이혼법을 오히려 약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이러한 원칙적으로 간음한 연고 외에 함부로 아내를 버리는 일은 불가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바르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을 위해 주신 율법을 사람을 억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결혼 문제 역시 이러한 원리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정 제도를 주신 것은 사람들이 외롭지 않고 서로 협력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이 이러한 가능을 감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예수님은 원칙적으로 이혼이 불가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이혼을 허락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때로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가정이 남자와 여자의 인권을 파괴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가정의 역할이 심각하게 파괴된 가정에서 배우자가 구타당하여 불구가 되거나 맞아 죽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때로 배우자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로 인해 다른 배우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거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어떤 배우자는 보험금을 노리고 배우자를 죽이기도 하고, 다른 여자와 살기 위해서 일부러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도록 함정을 파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조건 원칙만 강조하면서 이혼을 금지하면, 사람을 살리기보다 오히려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을 적용할 때에 그 법을 문자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원래 그 법을 주신 정신, 즉 사랑의 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정신보다 문자에 매달려 있었으며, 예수님은 이러한 문자주의에 대해서 심각하게 싸우셨다.


  일부 신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상황 윤리”로 몰고, 이러한 해석은 “성경적 윤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혼을 금지하는 것이 성경적인 윤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고전 7:15)에서 “바울이 왜 이혼을 허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본문처럼 “불신자들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에만” 이혼이 가능하고, 그 외에는 어떤 일로도 이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인끼리 사는 가정에서도 가정을 유지할 수 없는 심각한 파괴 현상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이 정상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이러한 일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도 인간의 악함을 인해 수없이 많은 파괴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의 이혼율이 불신자들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스도인 가정 역시 이혼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혼 문제를 다룰 때에 무조건적으로 문자주의에 머무르지 말고, 각 가정이 처한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파악하고, 그 가정이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가정에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리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적인  차원에서 충분한 교육을 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일이다.
 

              

 다) 화평의 하나님(15(하)-16)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15(하).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16)"


  이 구절의 해석에는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견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과 조화 속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불신자가 이혼을 요구할 때에 신자가 그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들을 계속해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싸우며 살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화평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그 이혼에 동의하여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이 낫다. 이런 경우에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싸움을 감수하면서 결혼관계를 유지하고 불신자를 전도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완고한 사람을 전도하는 일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견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불신자인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면 그리스도인 배우자는 이혼 금지법에 관계없이 이혼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툼보다 평화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이 경우에 그리스도인 배우자가 이혼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부름의 뜻인 평화로운 관계를 깰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배우자는 결혼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배우자는 결혼 관계를 유지함으로 언젠가 불신자 배우자를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 배우자는 다시 화평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와 같은 두 가지 견해 중에서 문맥에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전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바울은 앞에서 불신자가 이혼을 요구할 때에 이혼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분의 말씀이 이미 불신자의 요구로 이혼을 하게 된 가정에 대해 충고하고 있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종교 문제로 이혼을 요구하는 가정에서는 이혼이 분열과 다툼을 정리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만들 수 있는 최선책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본문을 바울이 할 수 없는 경우에 이혼을 허용하면서도, 이혼을 하는 경우에도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촉구하는 가르침으로 볼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 적용과 토론 >


1. 바울이 어떻게 남편과 아내에 대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설명하고 있는지 말해보자.


2. 바울은 예수님의 이혼 금지법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재적용하고 있는지 설명해보자.


3.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결혼과 이혼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이혼에 대한 민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자.    


* 이혼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민법 제 840조)

1) 남편과 아내가 합의해서 이혼하는 경우(합의 이혼). 서로가 협의가 되면 바로 이혼 가능함.

2) 재판을 통해서 이혼하는 경우(재판상 이혼). 한 편에서 이혼 사유가 발생해서 이혼을 청구했지만, 다른 한 편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 이 경우에 두 사람은 재판을 통해서 이혼 여부를 결정하게 되어 있다.


* 이혼 사유에 해당되는 조건들.

1) 배우자에게 부정한 행위가 있는 경우.

2) 배우자가 악한 뜻을 가지고 상대방을 유기할 경우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경우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경우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경우

6) 기타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을 경우.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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