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전서)

3. 음행과 교회의 거룩성 (5-6장)


                    Ⅱ. 고린도 전서 내용 연구
 

1부 서론(1:1-9)

2부 교회 소식에 답함(1:10-6:20)

3부: 교회의 편지에 대한 답함(7-16장)

인사

감사

지혜와 분파문제에 대해

음행문제에 대해

결혼

우상제물

성령의 은사

부활

연보

(1:1-3)

(1:4-9)

(1:10-4:21)

(5-6장)

7장

8-11장

12-14장

15장

16장

고린도전서의 내용 분해


                 2. 교회의 거룩성-음행문제에 대한 답변(5-6장)

2) 불신자들의 재판정에 가서 재판을 받는 문제(2) (6:1-11)

 
 바울은 (고전 5-6장)에서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음행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먼저 (고전 5장)에서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던 음행 사건에 대해 당하게 책망했다. 그리나 (고전 6장)에 들어오면 잠시 이야기의 주제가 변하고 있다. 바울은 (고전 6:1-11)에서 잠시 음행에 관한 이야기를 접고,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났던 송사에 관한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고전 6:1-11)은 음행 사건에 대한 바울의 논평 사이에 낀 삽입구와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바울은 (고전 6:1절)이하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 고소한 일에 대해서 강하게 책망했다.
그는 장차 세상과 천사를 심판할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기 일 하나 해결하지 못해서, 세상 법정에 고소한 것은 도무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고 추궁했다. 그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일부러 강경한 어조로 말을 함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차라리 세상 법정의 힘을 빌려서 교회 문제를 해결하느니, 차라리 속임을 당하고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제 송사에 대한 바울의 이야기는 9절이하에도 계속되고 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동성애)하는 자나(9),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10).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11).”


  바울은 9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추궁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불의한 자는 누구이며, 또한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먼저 9절과 10절을 보면 바울이 말한 불의한 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바울이 말한 불의한 자들은 "음행하는 자와 우상 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와 탐색하는 자, 남색(동성애)하는 자와 도둑질 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와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와 속여서 남의 것을 빼앗는 자들"이었다.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는 불의한 자들은 어쩌다 실수로 넘어져서 이러한 죄들을 짓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바울이 말한 불의한 자들은 이러한 죄들을 지으면서도, 전혀 뉘우침이나 회개함이 없이 습관적으로 이러한 죄들을 반복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만 행할 뿐 아니라,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거부하고 사단과 정욕을 좇는 사단의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9절과 10절에서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2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말은 원래 예수님께서 하신 말이었다. 우리는 이 말에 대해서 뒤에 다시 한 번 자세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11). 11절을 보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너희 중에 몇명은 (과거에) 이와 같은 자들이었다. 너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성령으로, 그러나 너희는 씻겼고, 그러나 너희는 거룩해졌고, 그러나 너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11)." 원문을 보면 위와 같이 세 개의 동사들 앞에 "그러나"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우리 말 성경은 이 부분을 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그러나라는 말로 세 개의 동사들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잘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원문에는 그러나 라는 말이 각 동사 앞에 나오면서 그 동사들을 강조하고 있다. 고린도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앞에서 언급된 죄를 습관적으로 행하던 불의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피로 씻겨져서 정결한 자가 되었다. 그들은 이전에는 불의와 함께 살아가는 부정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의로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 또한 그들은 이전에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를 가진 불의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의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잊고 도무지 정결하고 거룩하게 된 의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들을 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 싸우다가 심지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믿지 않는 세상 법정에 고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장차 세상을 심판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위였다.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들의 신분에 맞는 행동을 하기를 원했다. 여기에 나타난 것처럼 바울은 교회 공동체에 대한 이상을 매우 높게 보고 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한 이상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는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가 세상과 같거나 세상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로 생각한다. 이러한 교회관을 가진 사람들은 죄를 범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으며, 도한 조그만 의를 행해도 스스로 만족한다. 그러나 교회에 대해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은 세상보다 나은 일을 행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이 행하는 의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교회에 대한 바울의 비젼은 매우 높았다. 그는 교회가 정결하고 거룩하며 의롭게 된 하나님의 공동체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러한 교회가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에 고소한 일에 대해서 있을 수 없는 일로 간주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교회에 대한 이상을 높게 가질 때에, 우리는 계속해서 교회를 개선시켜 나가려고 하는 노력을 할 수 있다.


<생각해 볼 문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문제들을 가지고 세상 법정에 가지고 나가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일이 거룩한 교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그리스도인 판사에 의하면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문제가 법정 소송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그는 성도들끼리 소송이 붙으면 도무지 화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본문 말씀을 근거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고소하지 않을 줄로 믿고,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나쁜 짓을 한다. 그들은 본문을 악용해서 남을 사기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우리 교회에 일어나는 경우에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3)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6:12-20)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음행 문제를 다루다가 (6:1-11)에서 잠시 곁길로 나가서, 고린도 교회의 송사 문제를 다루었다. 이제 바울은 송사 문제에 대한 언급을 마치고나서, (6:12)부터 다시 5장에서 계속해 온 고린도 교회의 음행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가. 모든 일이 가하나 모든 일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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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12)."

 

  바울은 (6:12)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음란한 행동을 하게 된 근본 원인을 다루고 있다. 그는 고린도 교회 안에 있던 자유주의자들의 주장했던 구호를 이야기 한 후에, 그 구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12절에 나온 한글 번역은 원문에 있는 부호가 잘 나타나 않아서 다시 한 번 언급될 필요가 있다. 12절을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이 내게 허락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내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내게 허락된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을 것이다(12)." 고린도 교회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것이 내게 허락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모든 것이 내게 가능하다!", 또는 "모든 것이 내게 합법적이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 자유주의자들의 외쳤던 구호였다. 바울은 일단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 실제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크리스챤의 자유에 대해서 매우 강조한 바 있다. 오늘날 교회가 잘못하면 율법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일단 교회가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면, 성도들의 삶은 비신자들보다 더 속박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안에서 성령이 주시는 자유를 알고 또한 그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이러한 점을 갈라디아서에서 크게 강조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자유주의자들은 갈라디아 교회와는 사정이 달랐다. 그들은 공로를 중요시하는 율법주의자들과는 반대로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방종과 방탕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한 편으로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다른 현 편으로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두 가지 언급을 하고 있다. 첫째로 바울은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방종으로 흘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그 자유를 방종을 위한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 성도들은 마땅히 자신의 자유를 자신과 타인의 유익을 위해서 사랑으로 사용해야 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유를 방종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갈 5:13). 다음 구절을 참고해보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도다.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그리스도인이 극단적으로 자유를 주장하면서 방탕에 몸을 맡기면 죄의 노예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자유를 교회에 유익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자유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사랑으로 사용할 때에 성도들은 방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다음의 구절을 참고해 보자.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 그러므로 지식에는 사랑을 통한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이 자신과 교회에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를 방종의 도구로 삼지말고,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사랑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바울은 두 번째로 "내가 어떤 것에도 지배당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바울이 말한 두 번째 말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고린도 교회 자유주의자들은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지나치면 죄를 합법화하여 성도들을 죄의 노예가 되게 만들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고린도 교회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은 성 도착증에 걸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몸으로 무슨 일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부친의 아내, 즉 계모와 동거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니아가서 이 일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자유인이 아니라 죄와 성욕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그를 향하여 "그러나 나는 욕망과 죄의 지배를 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진정한 자유는 죄에 속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 안에서 모든 죄와 욕망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나. 몸은 함부로 더렵혀도 되는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13-14).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13).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14)."


  바울은 13절에서 고린도 교회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또 다른 구호를 언급하고 있다. 13절을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음식은 배를 위해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도 저것도 둘 다 폐하실 것이다. 그러나 몸은 음란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있고, 주는 몸을 위해 있느니라!(13)." 여기에서 앞부분에 나오는 말, 즉 "음식은 배를 위해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도 저것도 둘 다 폐하실 것이다.!"라는 말은 고린도 교회 자유주의자들이 외쳤던 두 번째 구호였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말, 즉 "그러나 몸은 음란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있고, 주는 몸을 위해 있느니라!"는 말은 그 구호에 대한 바울의 견해이다. 고린도 교회의 자유주의자들은 헬라주의의 이원론적인 사고에 입각해서, 인간의 육신은 영혼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으며, 육신은 죽으면 무로 돌아가 버리는 헛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신들은 몸으로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으며, 어떤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육신과 음식은 헛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폐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인데, 그들은 이미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육신으로 어떤 일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고, 몸으로 부정한 성적 행위를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는 음식을 먹는 문제에는 바로 적용될 수 있다. (고전 8:8)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고전 8:8)" 또 바울은 (고전 10:25-26)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고전 10:25-26)" 이와 같이 바울은 음식을 먹는 문제에 있어서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했다. 그러나 바울은 음식을 먹는 문제와 부정한 성행위를 하는 문제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 저것을 먹을 수는 있지만, 부정한 성행위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사람의 배는 단순한 물질이지만, 몸은 영혼을 가진 인간 자체였다. 바울은 우리의 몸이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것이 아니라, 장차 영적인 몸으로 부활되어 영생을 누릴 영광스러운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고전 15:42 이하). 우리 몸은 음행으로 더럽힐 무가치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 몸이 음란을 행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몸은 주님을 위해 살기 위해 주어진 것이며, 또한 주님은 우리의 몸을 구원하기 위해서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우리의 몸은 고린도 교회의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은 장차 주님의 재림 때에 영광의 형체로 변하여, 영생에 들어갈 존귀한 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몸을 부정한 성관계로 함부로 더럽혀서는 안된다. 이러한 입장은 14절에 잘 나타나 있다.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4).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다시 살려 주셨다. 그때에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고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하나님은 주님을 살려주신 것처럼 장차 권능으로 우리의 몸도 다시 살려주실 것이다. 그때에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몸처럼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영혼 구원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죽은 후에는 사라져 버리는 헛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바울의 주장은 고린도 교회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고린도교회의 자쥬주의자들은 우리의 몸은 영혼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죽으면 사라지는 허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몸이 영혼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장차 영광스러운 몸이 되어 영생에 들어갈 영광스러운 존재라고 말했다.

  헬라인들은 몸을 눈에 보이는 육신, 즉 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진정한 우리의 모습은 영인데, 그 영이 부정한 육신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인간이 육신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영이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정욕과 죄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의 영이 육신으로부터 빠져 나올 때에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을 둘로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몸을 인간으로 부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영혼을 인간으로 부르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혼을 인간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인간은 몸과 영혼, 또는 몸과 혼과 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인간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 몸과 혼과 영은 무엇이 다른가? 바울은 이러한 용어는 상황에 따라서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 이러한 용어들은 어떻게 다르게 사용되었는가? 첫째는 몸을 인간으로 보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 몸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자신 스스로 살 수 없으며 하나님께 의존해서 존재할 수 있는 인간, 즉 하나님 없이는 피조 세계에 갇혀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이 말하는 몸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존재였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몸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존재로 살 때에 "육신"이라고 불렀고, 성령을 좇아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존재를 "영"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혼은 무엇인가? 그는 혼을 살아 있는 존재를 가리켜 말할 때에 혼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바울에게 있어서 몸과 영과 혼은 모두 인간을 가리키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이 말들은 상황에 따라서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몸, 영, 또는 혼으로 불렀다. 몸은 인간을 말하며,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뜻대로 살면 육신이 된다. 이런 점에서 육신은 도덕적으로 악한 상태에 속한다. 육신은 사단과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상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육신의 상태에 있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육신으로 살던 우리들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셨다. 또한 바울은 우리가 부활할 때에 우리의 몸이 영적인 몸을 입게될 것이라고 말한다(고전 15:42). 우리의 부활은 주님의 재림 때에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성령을 통해서 영적인 부활에 참여했다. 성령은 부활의 첫 열매이며, 또한 영생의 보증금이다. 우리는 이미 영적인 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완전한 상태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미"(Already)와 "아직"(Yet)의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때까지 정욕을 좆아 육신의 열매를 맺지 말고, 성령을 좇아 영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와 같이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자유주의자들이 가졌던 헬라의 이원론적 인간론을 교정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자유주의자들은 몸은 구원과 관계없기 때문에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게 살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을 위해 돌아가셨으며, 따라서 우리의 몸을 가지고 죄의 종노릇 하는 데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성령을 좇아 살아야 된다고 말했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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