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고린도전서)

제 2부 고린도교회에서 온 소식에 대한 답변 (1:10-6:20)


                    Ⅱ. 고린도 전서 내용 연구


1부 서론(1:1-9)

2부 교회 소식에 답함(1:10-6:20)

3부: 교회의 편지에 대한 답함(7-16장)

인사

감사

지혜와 분파문제에 대해

음행문제에 대해

결혼

우상제물

성령의 은사

부활

연보

(1:1-3)

(1:4-9)

(1:10-4:21)

(5-6장)

7장

8-11장

12-14장

15장

16장

고린도전서의 내용 분해

                               
          2. 교회의 거룩함-음행 문제에 대한 답변(5-6장)

 
1) 음행과 교회(2) (5:1-13)

 
다. 오해를 바로잡음(9-13)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9),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10).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11).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12)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13)." 


  바울은 (고전 5:1-8)에서 고린도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음행 문제에 대해서 엄히 꾸짖었다. 이제부터 나오는 내용은 이전의 내용과는 약간 다른 내용이다. (고전 5:9-13)에서 바울은 자신의 이전에 고린도 교회에 보냈던 편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서론에서 이미 생각해 본 것처럼 고린도인들은 성적으로 방탕하기로 유명했다. 당시에 “고린도인처럼 산다”는 말은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할 정도였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예수를 믿은 후에도 이러한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계속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헬라식 이원론에 빠져서 영혼 구원만 중요하고, 육신적인 삶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전에 고린도 교회에 보냈던 편지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음행하는 자와 교제하거나 함께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해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울이 모든 음행자와 교제를 금하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만일 모든 음행자들과 교제를 끊으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 살아야 했기 때문에 바울의 지시를 따르는 일에 대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이전에 쓴 편지에서 문제 삼은 것은 불신자가 아니라, 교회 내의 신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불신자들 가운데는 온갖 부정한 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교제하지 않으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부도덕에 대해서 교회가 판단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기를 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부도덕에 대해서는 교회가 엄격히 대처하기를 원했다. 11절을 보면 바울은 몇 가지 당시에 고린도에 만연했던 죄의 목록들을 열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에 고린도에 살던 사람들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음행과 탐람, 우상숭배와 후욕(욕을 잘함), 그리고 술취함과 토색(강탈, 사기)을 자행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일을 습관으로 행하는 자들과 함께 먹거나  사귀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바울은 불신자들의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되, 교회 내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격히 죄를 치리하기를 원했다.


<생각해 볼 문제1>

  교회는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가? 교회 내에는 오래 전부터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운동들이 있어 왔다. 이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운동은 수도원 운동이었다. 수도원 운동의 지지자들은 부정한 세상에서 벗어나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를 통해서 부정과 오염을 막고, 순결과 거룩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운동들은 고대 시대에는 좋은 전통을 지켰지만, 중세 시대에 와서 크게 타락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세상에서 크게 타락하게 되면, 교회 안에는 교회와 세상을 엄격히 구분하기 위해서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이러한 고행과 수도원적인 운동들이 많이 일어났다. 수도원 운동의 경우에 교회가 세상을 떠나서 따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는데, 고대 교회는 주로 사막으로 나갔고, 중세 교회는 주로 산으로 들어갔다. 또한 신교도들도 신앙을 억압하는 영국을 떠나서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주해서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여전히 17-18세기의 전통을 그대로 지켰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을 바람직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물질주의로 흐르고, 성도들의 윤리가 타락을 해서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태에서 교회가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끼리만 모이고, 그리스도인끼리만 거래를 하고, 그리스도인끼리만 모인 학교를 따로 세우는 일이 바람직한 일인가? 이러한 일은 비성경적인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믿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을 떠나서 사막이나 산으로 피하면 안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마땅히 교회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서 피해 달아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범죄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권면하는 동시에 그들이 더 이상 죄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죄악에 빠진 사람을 용납해야 하는가? 바울은 그들을 교회 밖으로 내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요즘에는 한국 교회뿐 아니라 온 세계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치리를 엄격히 적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위에 나온 온갖 죄악들을 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과 인내 속에서 그들을 권면하는 동시에, 그들이 끝까지 죄에서 떠나지 않는 경우에는 엄격한 치리를 통해서 교회를 부정한 행위로부터 멀리해야 한다.        


 

 2) 불신자들의 재판정에 가서 재판받는 문제에 대하여 (6:1-11)
 

   고린도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끼리 문제가 일어나서 그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에 고소하여 불신자들 앞에서 서로 분쟁하는 일이 일어났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세상 법정에 의지하지 말고,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충고하고 있다(1-6).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1)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2)"


  이 부분의 번역은 조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1절에서 “구태여”로 번역된 말은 “감히”로 번역되는 것이 옳다. 이러한 점에서 1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좋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어떻게 감히 불의한 자들 앞에 고발을 하고, 성도 앞에서 해결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1)” 바울은 여기에서 “감히”라는 말을 써서 그리스도인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고발한 행위에 대해서 강하게 추궁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불의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의미하고, “너희”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한다. 고린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을,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의 손을 빌려서 해결하려고 했다. 이러한 일은 자신들의 신분을 완전히 망각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추궁하고 있다(2(상)).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심판하도록 되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말은 (단 7장)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를 주고 한 말이다. 단 7장을 보면 종말에 인자(메시야)가 세상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기에 나오는 인자가 바로 자신임을 밝히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마지막 때에 세상을 심판할 것이며, 그때에 성도들에게도 그 권한을 부여해서 그들과 함께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음 두 구절을 읽어보면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서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 22:29-30)“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교훈을 근거로 해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신분을 완전히 망각해 버리고, 반대로 성도들의 일을 세상 법정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뒤집는 어리석은 일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리석은 일을 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일허게 추궁하고 있다.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너희가 처한 지극히 작은 일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 문제를 불신자들에게 맡겼느냐?”(2(하)).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3)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5)"


  바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말하고 있다(3(상)). 마지막 날에 성도들은 세상을 심판할 뿐 아니라 천사들도 심판하게 될 것이다. 천사들 중에는 선한 천사들도 있지만, 악한 천사들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악한 천사들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성도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이러한 악한 천사들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성도들이 종말에 하나님의 자녀로 천사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신학에서도 이러한 사상이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을 천사장으로 표현하거나,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성도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의 자녀요 상속자로, 하나님의 통치권과 심판권도 상속하게 된다. 장차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모든 부요함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천사들은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보좌, 또는 그 옆에 놓인 의자에 앉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유대 신학적 표현들은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천사들보다 더 탁월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이 이렇다면 성도들은 마땅히 세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가 있어야 한다(3).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에게 일어난 작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것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세상과 천사들을 심판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처사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세상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성도들이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불신자들을 심판자로 세운 일"은 옳지 못하다고 추궁했다(4). 4절은 좀 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너희가 일상생활에 관계된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아무 존경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세워서 그 일을 맡기느냐?(4)” 여기에서 바울은 우회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강하게 표현했다. 그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강하게 말은 한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스스로 수치를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5절에서 바울은 분명히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지혜가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지혜 자랑을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성도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너희 중에 형제간의 일을 심판할 만큼 지혜가 있는 자가 하나도 없느냐?”고 추궁했다(5).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자랑을 하는 사람치고 실속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늘날 우리들도 자기 교회와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자신의 교회가 잘 하는 일들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하고, 자기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랑하기보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바르게 해야 한다.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6)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7)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8)."


  바울은 계속해서 교회 성도들에게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하고, 그것도 믿는 신자가 아니라 믿지도 않는 불신자들 앞에서 송사하느냐?”고 책망했다(6). 교회의 성도들이 자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 밖의 불신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런 일을 행하는 교회는 세상보다 못한 교회임이 분명하다. 또한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7)” 이 부분의 번역은 좀 더 원문에 가깝게 변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실 너희들이 서로에게 더불어 송사한다는 것 자체가 완전한 패배를 의미한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말지 않으며, 왜 차라리 사기를 당하고, 강탈을 당하고 말지 않느냐?(7)“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 다투다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불신자를 끌어 들인 일은 그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사랑과 정의를 압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도들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의와 사랑을 포기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은 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를 포기하는 일이며,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일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어느 한쪽이 재판에서 승리해도, 결국에는 둘 다 패배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왼 뺨을 치면 오른 뺨을 돌려 대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주님의 교훈을 전혀 따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의 교훈과 정반대로 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8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8).” 8절도 원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너희가 바로 불의를 행하고 속인다. 그것도 형제들에게!(8)” 고린도 성도들은 작은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불신자들의 손을 빌려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바울은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자녀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다른 사람도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를 불신자의 손을 빌려서 정죄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강하게 추궁하고 있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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