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사도행전)

사도행전 제 2부: 세계선교의 기초(6:8-12:24)


                  제 2부: 세계선교의 기초(6:8-12:24)

  사도행전 제 2부(6:8-12:24)에는 초대 교회가 예루살렘을 넘어서 유대와 각 지역으로 전파되고, 마침내 "
세계 선교를 시작할 기초를 완료"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세계 선교의 기초는 4가지 중요한 인물들(스데반, 빌립, 사울, 고넬료)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 곳에 기록된 중요한 6가지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스데반의 순교(6:8-8:2): 스데반의 순교로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역에 흩어짐.
2)
빌립의 전도(8:4-40):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의 장벽이 무너짐. 에디오피아 내시 전도.
3)
사울의 회심(9:1-31)-이방인의 사도가 준비됨.
4)
고넬료의 세례(10장)-최초의 이방인 회심자 고넬료의 성령 세례. 이방인도 유대인과 같은 조건으로 교회에 수용됨.
5)
안디옥 교회 설립(11장): 이방인 선교의 전초 기지. 세계 선교 완료.
6)
헤롯의 박해와 죽음(12장).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울의 회심(9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번 주에는 지난 주에 이어서 네 번째 사건인 고넬료 전도 사건(10장)에 대해 생각해보자.

스데반의 순교 빌립의 전도 사울의 회심

사도 베드로의 행전

2가지 기적 사건

고넬료의 세례

안디옥 교회 설립

헤롯의 박해와 죽음

6:8-8:2

8:4-40

9:1-31

9:32-43

10장

11장

12장

사도행전 2부: 세계 선교의 기초(6:8-12:24)


2-4. 사도 베드로의 행적 (9:32-12장)

   
누가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 사울의 회심 이야기로부터 첫 번째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고넬료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다. 이 두 사람의 회심은 이방 선교의 필수적인 기초가 되었다. 고넬료의 사건에서는 사도 베드로가 복음의 중개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베드로는 복음을 유대인의 틀에서 해방하여 이방인에게 열어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누가는 (9:32-12:25)에서 베드로의 행적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부분은 베드로의 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이 지나면 베드로는 완전히 무대에서 사라져 버린다. 누가는 이 부분(9:32-12:25)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1) 베드로가 행한 기적 이야기(9:32-43): 질병과 죽음을 극복함

 
2) 고넬료의 회심 이야기(10:1-11:18): 인종적 종교적 차별을 극복함.

 
3) 베드로의 투옥과 탈출 이야기(12:19-25): 정치 세력의 도전과 박해를 극복함.

  첫째 사건에서 성령님은 애니아를 고치고 죽은 다비다를 다시 살림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사건에서 성령님은 이방인을 구원하고 성령이 임하게 하심으로 복음이 인종적 종교적 차별을 극복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사건에서는 헤롯의 박해를 극복함으로 정치 세력의 도전을 극복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세 가지 사건에서 사도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대리자로 등장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임하신 복음 증거와 예수님의 명령을 전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셨다.
 

 1) 첫째 사건: 베드로가 행한 기적 이야기(9:32-43)-질병과 죽음을 극복함-

   이 부분에서 사도 베드로는 계속해서 순회 설교 사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는 사방으로 두루 행하면서 순회 설교 사역을 했다(32(상)). 처음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있었을 때에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8:1). 그러나 이제 교회가 평안해지게 되자(31), 사도들은 자유롭게 교회를 떠났다. 베드로의 순회 설교 사역의 목적은 복음 전파와 함께, 각지에 흩어진 성도들을 방문해서(32(하)), 그들을 가르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서쪽 해안을 따라 여행하다가 룻다에 이르게 되었다. 룻다는 욥바에서 동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때에 룻다에는 중풍병에 걸려 8년 동안이나 자리에 누워있던 애니아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33). 베드로는 애니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서 네 자리를 정돈하라!" 그때에 애니아를 그 소리를 듣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에 룻다와 샤론에 살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34-35).

  그때에 욥바에 다비다(또는 도르가)라고 부르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누가는 이 여인이 수많은 선행구제를 행한 여인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36). 특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서 입혀주는 일을 했다(39). 그러나 그녀는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시신을 씻어서 다락에 뉘어 놓았다(37). 그때에 욥바에 있던 성도들은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룻다는 욥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욥바 사람들은 베드로를 모셔오기 위해서 두 사람을 룻다에 보냈다(38). 베드로는 그 소식을 듣고 즉시 욥바로 갔다. 베드로가 욥바에 도착하게 되자 사람들은 그를 데리고 다비다가 누워있는 다락으로 안내했다. 그때에 모든 과부들이 그녀가 지은 옷가지를 보이면서 함께 울었다(39). 베드로는 그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시체를 향해서 이렇게 외쳤다. "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다비다가 눈을 떠서 베드로를 보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40). 베드로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킨 후에 밖에 있던 성도들을 불러서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보여주었다(41). 이 일은 온 욥바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 많은 욥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42). 그때에 베드로는 시몬이라고 부르는 피장의 집에 머물면서 여러 날 동안 욥바에 머물렀다(43).


* 적용: 베드로가 행한 두 가지 기사의 의의

  
누가가 기록한 두 가지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행한 "사도적 표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후 2:12). 또한 이러한 기적들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행한 선지자적 이적과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왕상 17:17-24, 왕하 4:32-37 참고).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1. 첫째로 두 가지 기적은 모두 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른 것이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셨다. 그때에 주님은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 역시 이러한 주님의 모범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베드로는 애니아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했다(34). 또한 예수님은 죽었던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다. 그 때에 주님은 우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에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다. 베드로 역시 주님처럼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에 다비다를 사려주었다. 그리고 이 때에 죽은 자에게 한 말도 거의 동일했다.


2. 둘째로 두 가지 기적은 모두 다 예수님의 권능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베드로는 그가 자신의 권능과 권세로 질병과 죽음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병자를 자기의 힘으로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하신다"(34)고 말했으며, 죽은 다비다에게 말하기 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40). 이것은 그가 죽은 다비다를 살리기 위해서 주님을 의지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3. 셋째로 두 가지 기적은 모두 다 복음확장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기적을 행하게 하신 것은 복음의 확장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이적을 행하게 하심으로 그가 전하는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증거해 주셨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행한 기적은 복음의 확장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애니아가 고침을 받았을 때, 룻다와 샤론(해안가의 평야)에 사는 모든 사람(많은 사람)이 이 기사를 보고 주님께 돌아왔다(35). 또한 다비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을 때에도 온 욥바 사람들이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42).
 

 2) 둘째 사건: 고넬료의 회심 (10:1-11:18): 인종적 종교적 차별을 극복함.

  사도행전 10장은 이방인 고넬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이 최초로 이방인에게 전달된 사건이었다.

 가. 고넬료가 환상을 봄 (1-8)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1-2)..."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지중해 해안을 따라 약 50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중요한 항구 도시이다. 그 도시는 로마 제국의 행정구역상 유대 지방의 주요 도시이었고 헤롯 왕과 로마 총독들의 공식적인 거주지이었다. 가이사랴라는 도시 이름도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이름을 따른 것이었다. 그 도시에 고넬료라는 로마 군인이 있었다. 그는 이탈리야 대(隊)라는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백부장은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장교로서 오늘날 중대장쯤 된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자기 혼자만 하나님을 경외하여도 경건하고 귀한 일인데, 온 집안 식구들을 권면해서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니 얼마나 더 경건하고 귀한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부모 된 우리만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고 우리의 자녀들도 잘 가르쳐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를 원하신다. 신명기 6:4-7,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에베소서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넬료는 또한 구제도 많이 하였다. 그의 경건은 진실하였다. 사람의 선행과 구제는 그가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고 있다는 증거요 그가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고린도후서 9:13, "이 직무[구제 헌금]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고린도후서 8:7, 8,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구제 헌금]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요한일서 3: 17, 18,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고넬료는 또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경건함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교훈하였다(살전 5:17). 다니엘은 국무총리라는 바쁜 삶 속에서도 하루 세 번씩 규칙적으로 기도하였다.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인정하며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잠언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과연 고넬료는 하나님의 좋은 인도를 받았다.

  "하루는 제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3-8)."

  고넬료는 시간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기도했던 것 같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즉 3시(오전 9시), 6시(정오), 9시(오후 3시)에 기도했던 것 같다. 고넬료는 어느 날 제9시 기도 시간에 기도 중에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보았다. 그 때 그는 금식 기도 중이었다. 30절(전통사본), "이맘때까지 내가 금식하며 내 집에서 제9시 기도를 하는데." 그는 기도 중 환상을 보았다. 꿈과 환상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방편이었다. 민수기 12:6,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고넬료는 환상 중에 천사를 보았고 천사는 그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는 시몬을 청하라고 하였다. 천사가 떠나자마자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말하고 욥바로 보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제와 선행을 실천하는 자들을 받으시고 그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고넬료는 바로 그런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 경건한 이방인 고넬료에게서 배울 바가 많다. 첫째로, 우리는 온 집안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자. 신앙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부모 된 자에게는 일차적으로 가족들의 신앙에 대한 책임이 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한다고 하여도 그들을 참된 신앙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우리의 수고는 헛될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자녀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물질적으로 자녀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좋은 옷 사주기, 좋은 음식 먹이기, 각종 학원에 보내기 등을) 다 해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들을 참 신앙 안으로 이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가장 귀한 것을 해준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만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우리의 온 가족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구제와 선행에 힘쓰자. 구제와 선행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다는 표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명대로 다른 성도를 사랑한다는 표이다. 우리는 말로만 형제를 사랑할 것이 아니고 우리보다 어려운 자들을 보면 구제하며 선을 행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심이다.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자.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행위이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실제적인 무신론자이다. 말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이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실천하기를 좋아하고 또 항상 기도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마다 항상 기도할 것이다. 그는 평안할 때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고난 가운데서는 회개의 기도와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하는 간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자.

 나. 베드로가 환상을 봄 (9-22)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 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9-16)."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하게 보이나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고넬료에게서 보냄을 받은 자들이 욥바 성에 가까이 갔을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다. 옛날 유대 땅의 집들의 지붕은 들보 위에 나무 가지들을 놓고 그 위에 갈대 매트를 놓고 그 위에 두꺼운 흙을 발라서 만들었는데 집 안의 추가적 공간으로서 여름에는 잠을 자는 곳으로도 쓰였고 거실이나 창고로도 쓰였다고 한다. 베드로는 그 곳을 기도 장소로 사용했다. 그는 제6시 즉 정오에 기도하기 위해 그 곳에 올라갔다. 그는 시시때때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 같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배가 매우 고팠을 때 하나님께서는 먹는 음식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환경과 상황을 적절히 사용하신다. '비몽사몽 간에'라는 말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가리킨다. 17절과 19절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본 것을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환상 중에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환상을 볼 때 하늘이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사도행전 7:56에 보면,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베드로는 그 환상에서 네 귀를 맨 큰 보자기 같은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는 그 그릇 안에 각종 짐승과 기는 것과 새들이 있는 것을 보았고 또한 '베드로야 일어나 그것들을 잡아 먹으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그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는 경건한 삶을 살았다. 그는 레위기 11장이나 신명기 14장에 규정된 대로 언제든지 정결한 생물만 먹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다. 그 규정은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 뜻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이방인들과 구별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법(儀式法)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 완성되었고 따라서 신약 아래서는 폐지되었다. 도덕법은 영속적이지만, 의식법은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2:16, 17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깨끗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속되다고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중 모든 택한 자들을 깨끗케 하셨다.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간에 모든 택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그들의 모든 죄들의 깨끗케 함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속되다 해서는 안된다. 여기에 전도 대상자들에 대한 우리의 바른 태도가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외적 조건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 대해 긍휼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이미 깨끗케 하신 자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리워 간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 편에서 전도 대상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상대방이 복음을 받든지 안 받든지 간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19-22)."

  하나님의 시간표는 정확하다. 베드로가 속으로 환상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바로 그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은 그가 우거한 집에 도착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섭리하시는 모든 일들을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일어나 내려가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천사의 음성(3-6절)은 하나님의 음성 곧 성령의 음성이었다. 성령은 단순히 어떤 기운이나 힘이 아니고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그는 모든 성도 속에 거하시며 그들을 친히 인도하신다.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전통사본에는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라는 말 대신에 단순히 '사람들이 너를 찾으니'라고 되어 있다.

  그 사람들은 고넬료에 대해 몇 가지로 증거하였다. 첫째로, 그들은 고넬료를 의인이라고 증거하였다. 세상에 완전한 의인은 없지만, 고넬료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그리고 양심의 법에 따라서 살려고 애쓴 자임이 틀림 없다. 그의 구제와 선행은 그의 의를 증거하였다. 둘째로, 그들은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증거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악을 떠날 수 있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악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그들은 고넬료가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자라고 증거하였다. 신앙은 말보다 그의 인품을 통해 증거된다. 성도의 인품은 주위 사람들에 의해 잘 증거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마태복음 5:16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3:7에서 장로의 자격 요건의 하나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자. 이것은 특히 전도 대상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사람의 외적인 조건, 사회적 신분, 물질적 여건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버리며 선행과 구제에 힘쓰는 자가 되자.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자. 셋째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자가 되자. 참된 신앙은 그의 말보다 그의 인품을 통해 증거될 것이다. 우리의 인품이 선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자가 될 것이다.

 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영접함 (23-33)

  본문은 고넬료가 어떻게 베드로를 영접했고 그를 통해 주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는지를 증거한다.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쌔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구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23-33)."

  베드로는 하나님의 지시에 즉시 그리고 즐거이 순종했다. 그는 이튿날 저희와 함께 욥바를 향해 떠났다. '두어 형제'라는 헬라어 원어(티네스)는 '몇 명'이라는 뜻이다. 뒤에 11:12에 보면, 욥바에서 베드로와 함께 간 자들은 여섯 명이었다. 그 여섯 명의 욥바 형제들이 베드로와 동행한 것은 베드로를 존경해서이기도 했겠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후에 이방인 고넬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 사건에 대해 증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사랴까지 가는 약 50킬로미터의 길은 10명의 무리가 하루에 이동하기에는 멀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튿날에나 가이사랴에 들어갔다. 그런데 고넬료는 베드로를 기다리며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놓고 있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던'(2절)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다 초청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 받는 일을 크게 여겼다. 또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가지게 해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 말씀 받는 일을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의 표현이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이 무엇이겠는가? 세상에 많은 일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맞을 때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절하다'는 헬라어 원어(프로스퀴네오)는 영어 성경의 번역대로 '경배하다'는 뜻이 있다. 그것은 고넬료의 겸손한 인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하나님의 말씀 전달자에 대해 어떤 존경을 가졌는지를 나타낸다. 베드로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지나친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가진 존경심과 사모함을 잘 나타낸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은 말씀 증거자에 대한 존경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2, 13에서 교훈하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했고, 또 디모데전서 5:17에서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절을 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절하는 고넬료를 일으키며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람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은 신적 숭배와 같았다. 인간은 인간이며 신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으로 족하다. 인간은 인간 이상으로 높임을 받아서는 안된다. 베드로는 자신을 부당하게 높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바른 것이었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접촉하고 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바는 아니었다. 율법은 단지 유대인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금하였다(신 7:3, 4). 그것은 그들이 이방인의 종교에 영향을 받을 것을 방지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후대 유대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율법을 해석하여 이방인들과 전혀 접촉하지 않는 것을 전통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위법'이라는 말은 이런 전통과 관습을 어기는 일이라는 뜻이다.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에 따르면,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환상에서 '아무것도 속되다거나 깨끗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그 초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 후에 무슨 일로 자기를 불렀느냐고 초청의 이유를 물었다. 그가 거기에 온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바로 그 일을 위해 온 것이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고 실상 그의 관심 밖에 있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환상과 지시에 대해 그대로 말했다. 이렇게 최초의 이방인 구원은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셨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 환상과 지시로 인간의 제한된 생각을 극복케 하셨던 것이다. 전통사본에는 '이맘때까지'라는 구절 다음에 '내가 금식하며'라는 구절이 있다. 고넬료는 기도하며 금식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금식은 특별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는 행동이다. 금식은 육신의 즐거움을 중단하고 육신의 생명의 쇠약함을 각오하는 행동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7:21의 전통사본에서 "그러나 이런 류의 것은 기도와 금식으로가 아니고서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시므로 금식기도의 효험을 증거하셨다. 성도가 지극히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기도는 금식 기도이다. 그것은 효력 있는 기도이다. 또 32절 끝에 전통사본에는 "그가 와서 네게 말하리라"는 구절이 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지시에 대해 곧 순종했다. 그는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었다. 그는 베드로에게 "이제 우리는 주께서[전통사본--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참으로 경건하였다. 그는 단순히 인간 베드로 앞에 있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것이 참된 경건이다. 경건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사는 태도이다. 고넬료는 이런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모든 진리를 듣기를 원하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주신 경건을 본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로마서 9:18은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고 말했다. 본문에 나타난 고넬료의 경건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은혜로 주신 경건은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초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한 것이다.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무엇인가? 그들을 초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겨우 우리 자신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형제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친척들과 친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자.

  둘째로,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은혜로 주신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 전달자를 귀히 여기는 태도이었다. 이것은 모든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은혜이다. 성도들은 설교자들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 설교자를 높이는 것이 아니고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것이다. 설교자의 권위의 손상은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의 손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은 그 말씀을 전하는 자에 대한 존경으로 나타날 것이다.

  셋째로, 고넬료는 하나님의 은혜로 금식 기도를 하였다. 금식은 특별히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육신의 즐거움을 중단하고 생명의 쇠약을 각오하는 것이다. 우리 앞에 비상하게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우리도 금식함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넷째로, 고넬료는 베드로 앞에서도 인간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고백하였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였다. 우리도 이 세상 사는 동안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만 살지 말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자. 이것이 참된 경건이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도 사람만 의식하지 말고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자.

 라. 베드로가 복음을 전함 (34-48)

  본문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전한 내용과 그 결과에 대해 증거한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34-48)."

  베드로의 깨달음은 옳다. 하나님은 과연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신다. 그는 사람의 얼굴 생김새나 키, 학력이나 사회적 신분, 재산 정도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그는 사람의 인품을 보신다. 그는 우상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들을 받으신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백부장 고넬료는 바로 그런 자들 중의 한 사람이며 또 고넬료의 집에 모인 친척들과 친구들은 바로 그런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도 베드로를 통해 구원의 복음을 들려 주셨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소식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고 만유의 주이시다. 그는 신적인 인물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평이 오고 그 화평과 더불어 마음의 평안도 찾아올 것이다. 이 화평의 복음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왔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이어 갈릴리에서 공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온 유대에 널리 전파되었다. 그 소식은 당시에 그 주위에 산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었다.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었다. 그는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웠다. 그는 신화적 인물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확인할 수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역사적 인물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바로 '메시아'라는 말이다. 그는 메시아이셨다. 그는 갈릴리와 유대 땅을 두루 다니셨고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고 죽은 자들을 살려주셨다. 이것은 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 일들이었다.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인간 예수께는 하나님의 본질이 함께 계셨다.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이 한 인격 안에 결합되셨다. 그는 참 사람이신 동시에 참 하나님이셨다. 그의 행하신 병고침과 기적들은 다 하나님의 능력의 일들이었다. 그는 그 일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행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하신 일들에 대한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그대로 진실하게 증거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거짓 증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사건이며 사실인 것을 증거하는 증인들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그의 행하신 일들에 근거하는데, 그 일들은 그것들을 본 제자들의 증언에 의해 후대에 전달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증거가 거짓되지 않고 진실한 것임을 믿으며 그 증거를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한 사건은 그의 부활이었다. 부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가장 확실한 마지막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는 자신의 다시 사심을 제자들에게 여러 날 보여주셨다. 사도행전 1:3에서 누가는 부활하신 주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증거한 바가 있다. 주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음식을 먹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그의 부활이 단지 영적인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의 부활은 육체적 부활이었다. 물론 그의 부활이 단순히 죽은 몸의 회생은 아니었다. 부활하신 그의 몸은 변화된 몸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영적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상하신 그 몸이 부활하셨고 그가 묻히셨던 무덤을 빈 무덤을 만드시는 방식으로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만백성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 복음의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바로 하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이시다. 사람들을 심판하실 자는 하나님뿐이시다. 예수께서 사람들의 심판자가 되신다는 말은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5:22에서 그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이시다.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 여기에 구원의 절대 필요성이 있다. 장차 온 세상의 심판자이실 그가 구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를 영접하고 믿으며 그 앞에 복종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보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한 바와 같이, 그를 믿는 자들이 그 이름을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바대로, 죄 문제가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죄사함의 문제는 또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다. 인간의 죄사함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다른 길은 없다. 다른 방법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다른 이름은 없다. 다른 구원의 길은 없다.

  하나님의 구원은 즉각적이었다. 베드로의 설교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임하였다. 성령께서는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 그것은 구원의 표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이 듣고 받고 믿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내려오신다. 그래서 후에 베드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라고 증거했다(행 11:17). 또 바울도 갈라디아서 3장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은혜와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는 것은 그때까지도 생각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래서 베드로와 함께온 할례 받은 유대인 신자들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행하셨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셨다. 그것은 요엘 선지자로 하신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였다. 요엘 2:28에 보면, 그는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라고 하셨다. 만민 속에 이방인들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 신자들이 성령을 받은 증거는 그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볼 수 있는 외적인 표시이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대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처음 내려오셨을 때도 제자들은 방언을 말했었다. 초기 교회의 방언은 신자들이 성령을 받은 증거이었다. 그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표요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셨다는 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고 받으셨다는 표로서 내려오신 것이다. 성령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이요 인치심이다.

  다시 번역하면, ". . . 누가 능히 이들이 물로 세례 받지 못하도록 금하리요 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하니라." 성령을 받은 것은 성령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으니 물 세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말했다. 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본문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자. 첫째로, 기독교의 확실성을 기억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그것들을 본 제자들에 의해 증거되었다. 그들은 진실한 증인들이었다. 기독교는 증인들의 증거에 의해 확립된 진리이다. 2천년의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들의 진실한 증언들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진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들의 증거들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자.

  둘째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전한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믿고 전할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심판자이시다. 그가 다시 오실 때 온 세상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다같이 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또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는다는 것이다. 죄 문제가 인류의 근본적 문제이다. 죄 사함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다른 길은 없다. 다른 방법은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다.

          (참고: 행 11장 부분은 김효성 목사(합정동교회)의 자료를 인용했음)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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