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사도행전)

사도행전 제 2부: 세계선교의 기초(6:8-12:24)


                  제 2부: 세계선교의 기초(6:8-12:24)

  우리는 제 1부(1:1-6:7)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교회가 설립되고, 교회가 사단의 공격을 극복하고 예루살렘에 크게 확장된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제부터 우리는 사도행전 제 2부(6:8-12:24)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 제 2부에는 사단의 반격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초대 교회가 예루살렘을 넘어서 유대와 각 지역으로 전파되고, 마침내 세계 선교를 시작할 기초를 완료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세계 선교의 기초는 4가지 중요한 인물들(스데반, 빌립, 사울, 고넬료)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 곳에 기록된 중요한 6가지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스데반의 순교(6:8-8:2): 스데반의 순교로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역에 흩어짐.
 2) 빌립의 전도(8:4-40):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의 장벽이 무너짐. 에디오피아 내시 전도.
 3) 사울의 회심(9:1-31)-이방인의 사도가 준비됨.
 4) 고넬료의 세례(10:1-11)-최초의 이방인 회심자 고넬료의 성령 세례. 이방인도 유대인과     같은 조건으로 교회에 수용됨.
 5) 안디옥 교회 설립(11장): 이방인 선교의 전초 기지. 세계 선교 완료.
 6) 헤롯의 박해와 죽음(12장).

 이제부터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6가지 사건들에 대해서 하나씩 생각해볼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 빌립의 전도 사울의 회심 고넬료의 세례 안디옥 교회의 설립 헤롯의 박해와 죽음

6:8-8:2

8:4-40

9장

10장

11장

12장

사도행전 2부: 세계 선교의 기초(6:8-12:24)


1. 스데반의 순교 (6:8-7:60)

 1-1. 스데반이 고소를 당함(6:8-15)

  누가는 앞에서 스데반이 "믿음과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했다(6:3,5). 누가는 다시 6:8절에서 그를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6:8). 그의 '은혜'는 인자함(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표현되었고, '권능'은 그가 백성 중에 행한 큰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나타났다(8). 처음에는 사도들을 통해 나타났던 이적과 기사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데반의 가르침은 격렬한 반항을 유발시켰다. 누가는 이때에 "리버디노 와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 그리고 아시아의 회당에서 온 몆 사람들이 스데반과 더불어 변론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외국에서 노예로 살다가 온 유대인들로서, 이제 예루살렘에서 자유인으로 살게된 사람들로 보인다. 아마도 길리기아에서 온 사람들 중에는 다소 사람 사울도 끼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스데반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변론에서 스데반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9-10). 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대적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친히 각 환경에 적합한 말씀을 친히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러한 주님의 약속을 스데반에게 신실하게 이행하셨다.

  공개적인 토론이 좌절되게 돠자 그들은 공개적으로 스데반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어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들었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만들었다(11). 그리고 그들은 백성들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질 해서 스데반을 체포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12). 스데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스데반이 "거룩한 곳"(성전)과 율법을 반대하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13). 유대인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성전과 율법을 대적하는 말을 한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였다. 대적들은 스데반이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가 준 규례를 고치겠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여기에서 성전을 헐라는 말은 예수께서 성전을 헐면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신 말씀을 말하며(요 2:20-21), 율법을 고치겠다는 말은 예수께서 유대인이 율법을 잘못 해석한 것을 바로 잡으신 일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님은 결코 성전과 율법을 거스려 말한 적이 없었다. 주님께서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짓겠다고 하신 것은 자기의 몸이 참 성전임을 언급하신 것이며(마 12:6), 유대인의 율법 해석을 바로 잡으신 것은 율법의 근본 정신을 다시 회복하기 하기 위한 조치였다(마 5;17). 주님은 이 땅의 성전은 참 성전인 자신을 상징하는 모형에 불과하며, 율법이 자신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바로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주님의 발언은 당연히 신성모독적인 것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누가는 그때에 산헤드린 공회에 앉은 사람들이 스데반의 얼굴을 보았으며, 그 얼굴이 마치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성령께서 그와 함께 계셨으며, 그가 말한 것이 진리였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2. 스데반의 변론(7:1-53)

  대제사장은 스데반에게 그들이 고소하는 내용이 사실이냐? 고 물었다(1). 이제 스데반은 그들이 고소한 죄목(성전과 율법에 대한 모독)에 대해 변명을 해야만 했다.

  가. 성전(2-50)

  그는 먼저 성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성전에 대해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4가지 시대로 나누어 설명했다.
1) 아브라함(2-8)
2) 요셉(9-16)
3) 모세(17-43)
4) 다윗과 솔로몬(44-50).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성전에만 계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한 장소에 제한되지 않고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가실 수 있는 순례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브라함이 이방인의 땅인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고(2), 요셉이 이방인 땅인 애굽에서 종노릇할 때에도 그와 함께 계셨다고 말했다(9).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나 성전과 같은 제한된 곳에만 계시는 분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모세가 이방인의 땅, 즉 미디안 광야에 있을 때에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셨다(30,33). 원래 그 곳은 이스라엘이나 성전이 있는 곳처럼 거룩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곳에 나타나셨기 때문에 성경은 그 곳을 가리켜서 거룩한 곳이라고 불렀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도록 지시하셨으며,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을 짓도록 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건축물에 제한된 분이 아니셨다. 그 한 가지 예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계속해서 거역했을 때에 그 성전을 버리실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스데반은 성막이나 성전을 건설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의 유일한 거처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 제한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곳은 어디든지 가실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게신 곳은 어디든지 거룩한 곳이 될 수 있다(48).

  스데반은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은 이사야서를 인용해서 증명했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 상이다." 어떻게 이 모든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이 지은 작은 건축물에 제한될 수가 있겠는가?(49-50). 이러한 생각은 편협되고 그릇된 생각임에 틀림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맺으신 언약에 따라 어디든지 그 백성이 있는 곳에 가실 수 있으며,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전에 제한된 분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성전을 헐면 다시 짓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결코 성전을 모독한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인간이 만든 성전보다 자신의 몸으로 완성될 참 성전에 대해 언급하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참 성전이신 모함하고 예수님을 죽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 성전이신 주님을 3일만에 다시 살리셔서 그 분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나. 율법(51-53)

  이제 스데반의 발언은 율법에 대한 주제로 전환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정말로 율법을 무시한 것은 자주님이 아니라 공회에 앉아서 자신을 심문하는 유대인의 관원들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모세가 전해준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렸다. 그리고 그들은 조상 대대로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여버렸다(52(상)). 스데반은 공회에 앉아서 자기를 심문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장로들 역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해서 항상 성령을 거스리며 조상들처럼 의인을 박해했다"고 고소했다(51). 그들은 그 조상 보다 더 악한 짓을 했다. 그들은 모세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죽인 장본인이었던 것이다(52). 그들은 천사가 전해준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 이러한 스데반의 발언은 자신의 죄에 대한 변호라기 보다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주장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유대인들을 죄를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3.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음(54-60)

  이러한 스데반의 발언은 유대인의 관원들을 극도로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스데반의 변명을 듣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은 마음이 찔려서 분노의 이를 갈았다(54). 그때에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에 그는 성부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성자 예수께서 그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55). 그는 이 광경을 보고 공회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아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 그러면 왜 주님은 보좌에 앉지 않으시고 서 계셨는가? 주님은 서서 스데반을 변호하셨고, 한 편으로 순교할 스데반을 환영하력 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외치는 말을 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귀를 막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 스데반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성밖에 내던지고 돌로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데반을 칠 때에 율법의 규례를 따랐다. 율법의 관례는 죄인을 돌로 칠 때에 증인들이 먼저 돌을 들어서 치고, 그 후에 백성들이 죄인을 돌로 치도록 되어 있었다. 이 경우에 만일 죄인이 무죄가 입증되면 먼저 돌을 들어 친 증인들이 그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었다. 유대인의 관원들은 증인으로 먼저 돌을 들어서 스데반을 쳤다. 그리고 그때에 증인들은 자기 옷을 벗어서 사울의 발 앞에 놓았다(57-58).

  사울은 이 광경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가 증인들의 옷을 맡았다는 것은 그가 스데반 순교에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는 이후에도 스데반을 죽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22:20). 스데반은 분노한 유대 관원들이 던진 돌에 맞아 쓰러졌다. 그때에 그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크게 부르짖었다. 이러한 그의 기도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드린 기도와 일치했다. 그는 지금 성령 안에서 주님의 뒤를 좆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순교의 제물이 되어 자신을 환영하시는 주님께 돌아갔다(59-60). 스데반의 순교 사건은 많은 부분에서 주님의 처형 사건을 뒤따르고 있다. 거짓 증인에 의해 부고하게 고소를 당한 점과, 죄목이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는 점과, 그리고 그가 죽을 때에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박해자들의 사죄를 구한 점은 주님의 임종 사건과 너무도 흡사하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 안에서 주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 거할 때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뒤를 좆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스데반과 함께 계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스데반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이 좆아야 할 모범이 된다. 우리도 성령 안에서 행할 때에 주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거룩한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1-4. 결론

  이렇게 해서 스데반은 초대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누가의 주된 관심은 그의 죽음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누가는 스데반이 가르친 교훈과 죽음을 통해서 그가 기독교 선교의 기초돌을 놓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과 율법의 완성자임을 선포했다. 하나님은 건물이나 전통에 묶여있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건물과 전통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면 언제든지 그것을 폐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유대인이 주님을 배반했을 때에 하나님은 유대인과 성전을 포기하셨다. 성전과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건물과 전통에 얽매여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자신의 교회와 함께 하신다. 주님은 약속대로 사도들이 복음을 들고 가는 곳마다 그들과 함께 동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물이나 전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스데반의 가르침은 초대 교회에 대한 본격적인 박해를 야기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초대 교회에서 첫 번째 순교의 제물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러한 스데반의 죽음은 교회의 가르침을 보충했으며, 사울을 깊이 감동시켰고, 그 결과 일어난 박해로 인해 제자들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스데반의 순교 사건은 선교 촉진을 위해서 주님께서 준비하신 사건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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