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사도행전)

사도행전 제 4부: 로마를 향하여 (21:18-28:31)


                      사도행전(4): 로마를 향하여 (21:18-28:31)


  사도행전 제 4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 바울의 체포와 유대인 앞에서의 재판 받음 (21:18-23:35)
2. 로마 총독들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음 (24:1-26:32)
3.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27:1-28:31)

바울의 체포와
1-2차 재판(유대인 앞에서)

바울의 3-5차 재판
(총독과 아그립바 앞에서)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21:18-23:35)

(24:1-26:32)

(27:1-28:31)

로마를 향하여 (21:18-28:31)


  우리는 그 동안 제 4부 첫 번째 부분(21:18-23:35) 두 번째 부분(24:1-26:32)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이제 우리는 제 3부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다. 제 4부의 세 번째 부분(27:1-28:31)에는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가이사랴에서 로마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첫째로 바울과 그 일행은 가이사랴에서 그레데로 이송되었다(27:1-12). 로마 관리들은 바울을 포함한 죄수들을 아드라뭇데노에서 온 배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배로 호송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바다에서 극심한 풍랑을 만나서(27:13-20) 난파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에 바울은 절망으로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심시켰다(27:21-38). 그는 배에 탄 사람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권고했고, 로마 관리들이 죄수들을 죽이지 못하게 했으며, 도망치려는 죄수들을 배에 함께 머물러 있도록 권했다. 그는 배에 탄 사람들에게 그들이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들에게 음식을 먹고 기운을 내도록 권고했다(27:33-38). 후에 그 배는 멜리데란 섬에 난파되었고,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27:39-28:10). 그들은 배에서 탈출하여 섬으로 갔다(27:39-44). 그때에 바울은 해변에서 뱀에게 물렸지만 죽지 않는 기적을 체험했고(28:1-6), 바울은 그 섬에서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주었다(28:7-10). 후에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여(28:11-16), 그 곳에서 자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28:30-31).

가이사랴에서 그레데로

바다에서
만난 풍랑

바울의
세 가지 조언

멜리데 섬에 난파됨

로마에
도착함

복음을
전파함

(27:1-12)

(27:13-20)

(27:21-38)

(27:39-28:10)

(28:11-16)

(28:17-31)

마침내 로마에! (27:1-28:31)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구조적으로 일정한 유사점이 발견된다. 누가복음의 2/5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예수님의 여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눅 9:51-19:44). 그리고 사도행전의 마지막 1/3은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이르는 바울의 여정을 기술하고 있다(행 19:21-28:31).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과 그 곳에 있는 성전을 교회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 누가복음의 여행 기사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라고 부른다면, 사도행전의 후반부 여행 기사는 "예루살렘에서 로마로"라고 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사역의 목표로 삼았고,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로마를 그의 사역의 목표지로 삼았다. 또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그 외에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한 내용이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과 바울의 단호한 결심, 체포와 유대 법정, 로마 법정에서의 심문과 재판, 그리고 죽음과 부활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바울이 풍랑 속에서 여러 날 어둠 속에 처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비유되고, 바울이 풍랑의 위협을 이기고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비교할 수 있다. 누가는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뒤좆아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4. 멜리데 섬에 난파됨(27:39-28:10)

 
가. 배에서 탈출함(27:39-44)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39),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40),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41),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42),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43),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44)."

   날이 새자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보였다. 사람들은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을지 의논한 후 닻을 치워버렸고 자신들을 바다에 맡기고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해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가 땅에 걸리게 되었다. 뱃머리는 움직이지 않게 딱붙어버렸고 배끝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갔다. 군인들은 죄수들이 헤엄쳐서 도망할까 염려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으나 백부장은 그들의 뜻을 막았다. 하나님은 바울을 죽음의 위험에서 지키시기 위해 백부장의 마음을 감동하셨고 그를 사용하셨다. 여기에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의 섭리의 일반적 방식이 증거된다. 백부장은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에게 물에 뛰어내려 육지로 나가도록 명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였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진리를 본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종 바울에게 많은 시험과 고난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시험과 고난에서 그를 건져주셨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실패함 없이 다 이루신다. 전도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불러 일꾼을 삼으셨고 그에게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소원을 주셨다. 이제 그에게 주신 그 소원을 하나님께서는 다 이루시려고 그를 고난 중에도 죽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셋째로,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의 종 바울을 구원하시는 방식은 여러 가지 자연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첫째, 배에 탄 사람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사공들이 필요하였다. 둘째, 열 나흘 동안 먹지 못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음식을 먹는 일이 필요하였다. 셋째, 바울이 죽임을 당할 뻔한 위기를 모면한 것은 백부장을 통해서이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바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통해 이루어지며 현실의 일들은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시는 그의 섭리의 표현이다. 그런데 그는 그의 작정하신 바를 이루실 때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고 주로 자연적 수단들과 방법들을 통해 이루시는 것이다. 기독교는 기적을 믿으나 기적주의는 아니다.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 방식은 기적이 아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자연적 수단들과 방법들을 사용하여 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적주의적 생각을 버리고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적 수단들을 다 사용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의무들에 성실해야 한다.



 
나. 해변에서의 모닥불(28:1-6)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1).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2)."

  멜리데 섬은 오늘날 말타(Malta)라고 부르는 섬이다. 이 섬은 이탈리아 남단에 있는 시실리아 섬 남쪽의 작은 섬이다. 멜리데 섬의 토인들 혹은 원주민들은 바울 일행에게 특별한 동정과 친절을 베풀었다. 비가 오고 날이 찬 때이었으므로 그들은 불을 피웠고 바울 일행을 영접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그들의 친절은 인간다운 모습이었다. 문명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명이 인간성을 메마르게 하고 이기적이게 하고 폐쇄적이고 개인주의적이게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젼만 많이 보는 아이들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컴퓨터에 중독된 사람들도 부도덕하고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인격이 되기 쉽다. 아직도 도시보다 시골 인심이 더 좋을 것이다. 현대사회에는 탐심과 경쟁심 속에서 남을 속이고 범죄하는 일들이 많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 인간다운 삶은 물질적 부요에보다 오히려 자족하며 사는 삶에 있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3).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4),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5)." 


  우리 말에 한 뭇이라는 말은 한 짐보다는 작고 한 줌보다는 큰 단위를 뜻한다. 바울이 독사에 물린 것을 보고 토인들은 그가 살인자이므로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토인들 속에 있는 도덕의식을 증거한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에서 나온 도덕성이다. 그들은 악한 자는 공의의 형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이것은 모든 인간 속에 있는 도덕의식이다. 사람 속에는 악을 행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의식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본성 속에 심어주신 양심이 소리이다. 바울은 독사에 물렸으나 조금도 상함이 없었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하신 약속의 문자적 성취이었다. 마가복음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것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도시대의 현상이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세우신 종들이라는 표이었다(고후 12:12). 기적은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성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표이었다. 히브리서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6)."

  바울이 조금도 상함이 없는 것을 본 토인들은 그를 신이라고 말했다. 토인들 속에는 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있고 신은 전능하다는 의식이 있었다. 즉 그들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종교가 없는 민족은 없다고 한다. 모든 사람의 본성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意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한 증거이기도 하다. 멜리데 섬의 토인들의 도덕성과 종교성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주시는 일반적 은혜이다. 그 은혜 때문에 세상이 극도로 악하게 치닫지는 않는다. 마지막 때에는 세상이 극악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멸망 당할 마지막 세상의 중심 도시를 사치와 음란으로 더러워진 바벨론이라고 불렀다(계 17-18장). 그러나 세상이 아직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하나님의 구원의 문이 열려 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도덕성과 종교성이 전도의 발판이 되고 구원의 접촉점이 된다.


 다. 그 섬에서 병을 고침(28:7-10)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7),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8),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9),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10)."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그 섬에 특별한 은혜도 주셨다. 그 섬의 제일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는 바울 일행을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였다. 그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보블리오의 대접를 갚을 수 있게 하셨다. 그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을 앓게 되었을 때, 바울은 들어가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함으로 그 병을 고쳐주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또 그 섬의 다른 병자들도 와서 고침을 받았다. 그것은 그들의 친절에 대해 내리신 하나님의 보상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병고침만 받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바울은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한 자에게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거스리심을 보이신다(시 18:25-26).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을 갚아주신다(마 6:3-4).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갈 6:7).

  바울이 받은 위로들도 많았다. 바울을 통해 병고침을 받은 그들은 그가 그 섬을 떠날 때 그들의 쓸 것을 배에 올림으로써 바울 일행을 대접하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멜리데 섬의 토인들을 통해 바울이 받은 위로는 컸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그들에게 병고침을 주신 것도 바울에게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병고침이 있었던 것은 바울의 능력 때문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때문이었다. 바울 일행이 그곳을 떠날 때 원주민들이 배에 실어준 물품들도 바울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5. 로마에 도착함(28:11-16)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11).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12),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13),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14).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15).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16)."

  바울 일행은 그 섬에 석달을 머물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그들이 그 섬을 떠날 때 탄 배의 소속과 이름, 그리고 그들이 로마에 도착하기까지 경유한 항구들과 도시들을 언급한다. 그들이 탄 배는 알렉산드리아 소속의 배이었고 그 배의 이름은 디오스구로이었다. 수라구사[시라큐스]는 시실리아섬의 동쪽의 항구이다.
레기온은 시실리아섬 건너편에 있는 이탈리아 반도의 최남단 항구이었다. 바울은 보디올에서 형제들, 즉 예수 믿는 성도들을 만났고 그들의 청함을 받아 7일을 함께 유하였고 로마의 형제들도 바울의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광장 혹은 시장]와 삼관[세 채의 여관들]이라는 곳까지 맞으러 왔다. 바울을 맞으러 나온 이들은 주의 진실한 제자들이었음에 틀림 없다. 요한삼서에 보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사도 요한을 영접하지 않았고 그를 부당하게 비난하였고 그것도 부족하여 주의 종들을 대접하려는 자들을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쫓기까지 하였다(9, 10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하셨고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마 10:40, 42). 바울은 그를 맞으러 압비오 광장과 삼관까지 온 형제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바울에게 많은 힘과 위로를 주셨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향해 그리고 특히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향해 친절과 인간애를 가지자. 멜리데 섬의 토인들에게도 그런 인간애가 있었다. 남을 배려하고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은 인간다운 모습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것이 사실상 구원의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든 악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현실에 만족하면서 친절과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자. 또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어떤 현실에서도 낙심하지 말자. 바울은 많은 고생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선한 손길 속에 살았고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고 체험하였다. 바울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섭리하신다. 우리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행하면 그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위로와 힘을 풍성히 주시며 체험케 하실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도착했고 바울 곁에 있었다. 전통사본에는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라는 말 다음에 "백부장은 죄수들을 시위대장에게 넘겼으나"라는 구절이 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따로 있게 허락되었다. 바울이 따로 있는 그 곳은 23절의 '그의 우거하는 집'과 30절의 '자기 셋집' 즉 그가 2년 동안 유했던 집과 아마 동일한 곳일 것이다.


6.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복음(28:17-31)

 
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말함(28:17-23)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17),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18),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19)."

   바울은 사흘 후에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였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부당하게 유대민족을 대항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선입견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이나 조상의 규모와 관습에 대해 잘못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또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고 로마인은 그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므로 그가 마지 못해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이요 그의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는 사도행전의 앞장들에서 이방인들이 바울의 무죄함을 증거한 바를 읽었다. 사도행전 23:29에 보면,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벨릭스 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대인들이]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라고 말했고, 사도행전 25:25에 보면, 로마 총독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에 대해 증거하기를,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라고 했고, 사도행전 26:31에 보면, 아그립바 왕은 총독과 함께 증언하기를,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고 하였다. 바울은 정죄받을 죄가 없었으나 정죄를 당했고 부득이 로마 황제의 판결에 호소하게 된 것이었다.

  유대인들 중 높은 자들을 청한 바울의 처신은 지혜롭고 정당하였다. 복음전도자에게는 행동의 정당함과 인격의 신임성이 중요하다. 전도자가 거짓되다면 어떻게 진리를 선포할 수 있으며 그가 악을 행하거나 사리사욕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라 할 수 있겠는가? 주의 종들에게는 그가 거짓되다거나 불법을 행한다는 말보다 더 심각한 비난은 없다. 그러므로 비록 마귀의 방해와 인간의 무지와 불신앙 그리고 미움, 이기심, 열등감 등의 연약성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지라도, 복음사역자가 자신의 결백과 신임성을 변호하는 일은 필요하고 지혜롭고 정당한 일이라고 본다.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20)."


   바울은 이렇게 그곳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하면서 자신이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결박을 당하게 된 원인이 되는 그 '이스라엘의 소망'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 한 증거이기도 한 죽은 자의 부활을 가리는 것 같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유대인의 공회 앞에서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라고 말했다(행 23:6). 또 그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이제도 여기 서서 신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 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라고 말했다(행 26:6-7). 죽은 자의 부활은 메시야의 오심으로 확증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자이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고(마 11:3),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라고 말했다(요 4:25).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주시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 때문에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21).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22).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23)."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은 유대로부터 바울에 대해 어떤 편지나 또 비난의 말을 들은 적이 없으므로 그의 말을 들어보겠다고 하였다. 또 그들은 그러나 이 파, 즉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 파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안다고 말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초대의 신자들과 교회들은 이방인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또한 유대인 사회에서도 반대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로마에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유대인들은 날짜를 정하여 바울이 우거하는 집에 많이 모여왔다. 바울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말씀을 강론하고 증거하고 권하였다. 권한다는 말은 설득한다는 뜻이다. 그가 전한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중요한 주제이며 복음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강조한다. 그것은 죄인이 하나님 없이 사는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앞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침내 영광스런 천국으로 완성될 것이다. 다니엘은 로마 시대에 하나님께서 한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예언을 기록하였다. 다니엘 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예수께서는 처음 복음을 전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4:17).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심령에서부터 시작된다. 바울은 이 복음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 곧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증거하고 권하였다.


 
나. 바울이 이방인에게로 향함(28:24-29)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24),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25).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26).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27),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28). 29(없음)"

  복음이 증거될 때에는 믿는 자도 있으나 믿지 않는 자도 있다. 복음이 증거될 때는 항상 그런 현상이 있었다. 복음은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특히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유대인들이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을 예언하셨다. 그 예언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적절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의 가르침을 들었으나 그를 알지 못했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바울이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을 때도 다수의 유대인들은 그가 전한 구원의 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대적하였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영적 어두움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보내졌음을 알아야 한다. 이방인들은 그 복음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헬라어 전통사본에 보면, 29절에는 "저가 이 말을 마칠 때에 유대인들이 서로 큰 쟁론을 하며 물러가더라"라는 말이 있다. 구원은 전도자에게나 죄인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구주이시다. 물론 죄인 자신이 회개하고 믿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회개치 않고 믿지 않을 것이다. 참된 회개와 믿음과 순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다. 바울이 그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을 환영함(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30),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31)."


   그 2년은 아마 재판받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자기 셋집에 유하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복음을 전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방법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전하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를 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요 그가 보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의 중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복음은 예수님을 주님과 구주로 믿는 것이다. 사도행전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복음을 담대히 전했다. 그것은 분명히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확신이었다.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다(딤후 2:9). 그 2년 동안 바울은 그 곳에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썼을 것이다. 바울의 전도 활동을 금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복음은 그 후에 계속 오늘까지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다. 그것은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그러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바울의 처신을 본받자. 그는 자신의 결백과 신임성을 위하여 자신을 변호하였다. 비록 그것이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완전히 다 없앨 수는 없을지라도, 그러한 변호는 필요하고 정당한 일이며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오늘날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사도행전은 전도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었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의 역사로 그리고 바울 같은 전도자들의 헌신으로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오늘날도 바울의 뒤를 이어 그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어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할 자는 누구인가? 바울은 죄수의 신분과 쇠사슬에 매인 몸으로 복음을 담대하게 전했다. 우리는 자유의 몸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하는가? 오늘날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칠 자가 누구인가? 셋째로,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의 손에 달려 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은 구주이시다. 사람이 복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사람은 무지하고 영적으로 심히 어두워져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그를 믿고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을 위해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것밖에 없다.


7. 결론: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가. 누구에 대한 행전인가?

  "사도행전"이란 명칭은 독자에게 12사도들의 경력에 대한 포괄적 기사를 제공해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행전은 사실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제공해 준다.

 1) 베드로의 사역의 일부에 대한 개요: (15:7)에 언급된 경우를 제외하면 베드로의 활동에 대한 기사는 (12:18)에서 끝난다.
 2)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죽음에 관한 짧은 문장(12:2).
 3) 본래 12사도의 일원이 아니었던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 관한 정보
 4) 요한의 활동에 관한 일부내용. 그러나 요한의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3:1-4:31 ).
 5) 바울에 대한 상세한 기술

  본 저작에 대한 보다 정확한 명칭은 다음과 같아야 할 것이다. "성령의 능력과 사도들의 증거를 통하여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역사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전"


 
나. 사도행전에 나타난 설교들

  사도행전의 약 1/3 가량은 다음과 같은 연설과 설교로 되어있다.

 1) 베드로의 설교(2:14-39, 3:11-26, 4:8-12, 5:29-32, 10:34-43).
 2) 스데반의 설교(7:2-53).
 3) 바울의 설교(안디옥-13:16-41, 아덴-17:22-31, 밀레도-20:17-35, 예루살렘-22:3-21, 벨릭스 앞에서-24:10-21, 아그립바 앞에서-26:1-23, 로마-28:17-20, 25-29).


  이들 선포의 기본적 내용은 다음과 같이 비슷하다.

 1)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시다. 그의 오심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2)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셨던 놀라운 사역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역을 입증해 주셨다.
 3)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오셨을 때에 그들은 그를 죽였다. 비록 그들이 무지해서 이같이 행했지만, 그들의 행동은 고난을 예언했던 성경 말씀을 성취시켰다(2:23, 13:29).
 4)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심으로 그의 사명을 승인해 주셨다.  5) 이제 예수님께서는 비록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그는 자신에 대해 증거하게 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다.
 6) 모든 사람들로 회개케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


  바울은 청중에 맞추어 설교를 전하였다. 안디옥 회당에서(13:26-41) 그는 반복하여 구약을 인용하였다. 그 이유는 청중이 구약을 알고 또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청중 가운데 구약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아덴에서는 헬라 시인들의 글을 인용하였다(17:22-31). 그러나 메시지가 베드로에 의해 선포되었든지 바울에 의해 선포되었든지 호소력은 같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임한 것이다. 그의 성육신 이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그의 오심을 가리켰다. 십자가의 역설은 그것이 역사상 가장 큰 범죄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의 뜻한 바 핵심이 되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십자가는 사도들의 메시지를 권위있게 해준다. 왜냐하면 십자가 사건은 인간에게 최대의 선물이며, 또 최대의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기때문이다.

      

 
다. 결론 및 요약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사도행전은 그가 성령을 통하여 계속해서 일하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것은 초대 교회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 사도행전은 기도교가 유대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부터 이방 나라의 수도인 로마에까지 광대한 지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준다. (행 2:)에 기술된 오순절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고대 근동의 동서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들로부터 왔다. 대략 사도행전의 1/3이 설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설교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고, 그의 생애와 십자가, 그리고 부활과 승천이 지니는 함축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전체적인 핵심으로 강조되고 있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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