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사도행전)

사도행전 제 4부: 로마를 향하여 (21:18-28:31)


                      사도행전(4): 로마를 향하여 (21:18-28:31)


  우리는 그 동안 3차에 걸친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인 제 4부(21:18-28:31)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사도행전 제 4부에는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감금된 후부터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에 도착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제 4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 바울의 체포와 유대인 앞에서의 재판 받음 (21:18-23:35)
2. 로마 총독들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음 (24:1-26:32)
3.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27:1-28:31)

  제 4부의 첫 번째 부분(21:18-23:35)과 두 번째 부분(24:1-26:32)에는 사도 바울이 체포되어 자신을 변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누가는 바울이 성령님의 인도 하에 담대하게 소아시아와 헬라의 대부분의 지역을 전도한 것을 기록했다. 그러나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에 상황은 갑자기 바뀌어 버렸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체포되고, 감금당하고 재판을 받았다. 누가는 바울의 3차에 걸친 선교 여행을 기록한 후에 그가 받아야 했던 5번의 재판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성전 지역의 북서쪽 모퉁이에서 유대인 무리 앞에서 받은 것이었고(22:1 이하), 두 번째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의 최고 회의 앞에서 받은 것이었다(23:1 이하). 이 두 심문은 유대인 앞에서 이루어진 재판이었다. 세 번째네 번째는 가이사랴에서 연이어 유대 총독이 된 벨릭스베스도 앞에서 받은 것이었고(24:1 이하, 25:1 이하), 다섯 번째 역시 가이사랴에서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서 받은 것이었다(26:2 이하). 누가는 이 재판 과정에 대해 무려 6장(200구절 이상)이나 할애하고 있다. 그러면 왜 그는 이 재판 과정에 대해서 그토록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가? 누가는 이 재판 과정을 통해서 복음에 대한 두 공동체(유대인, 로마인)의 반응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점차 확장되어 가는 복음에 대해 더욱 더 적대적이 되어가고 있는 반면에, 로마인들은 복음에 대해서 시종일관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다. 이 다섯 번의 재판에는 복음에 적대적인 유대인들과 우호적인 로마인들에 대한 주제가 계속 증당하고 있다. 이제 복음은 점점 더 유대인을 벗어나서 당시의 땅끝으로 여겨졌던 로마로 향하고 있었다.

  제 4부의
세 번째 부분(27:1-28:31)에는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가이사랴에서 로마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먼저 가이사랴에서 그레데로 이송되었다(27:1-12). 이 과정에서 죄수들은 아드라뭇데노에서 온 배(27:2-5)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배(27:6-12)로 호송된다. 그 후에 바울 일행이 바다에서 만난 심한 풍랑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27:13-20). 바울이 탄 배는 심한 풍랑으로 인해 모든 소망을 잃고 난파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에 바울은 세 가지 조언을 통해서 그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킨다(27:21-38). 첫째로 그는 배에 탄 사람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권유했으며(27:21-26), 둘째로 그는 죄수들을 죽이려는 로마 관리를 자제시키고, 도망치려는 죄수들을 배에 함께 머물러 있도록 권유했다(27:27-32). 또한 그는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게될 것이라고 안심시킨 후에,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도록 권유했다(27:33-38). 바울의 말대로 그들이 탄 배는 멜리데란 섬에 난파되었고, 그 배에 탄 모든 로마 관리들과 죄수들은 구원받게 되었다(27:39-28:10). 그들은 배에서 탈출하여 섬으로 갔다(27:39-44), 그때에 바울은 해변에서 뱀에게 물렸지만 죽지 않는 기적을 체험한다(28:1-6). 바울은 그 섬에 머무는 동안에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주었다(28:7-10). 그 후에 바울 일행은 마침내 로마에 도착하게 된다(28:11-16). 바울은 로마에 도착한 후에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잇었다. 바울은 그 곳에서 주어진 환경을 이용해서 자기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28:30-31).

바울의 체포와
1-2차 재판(유대인 앞에서)

바울의 3-5차 재판
(총독과 아그립아 앞에서)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21:18-23:35)

(24:1-26:32)

(27:1-28:31)

로마를 향하여 (21:18-28:31)


4-1. 바울의 체포와 자기 변호(21:18-23:35)

  제 4부의 첫 번째 부분(21:18-23:35)에는 사도 바울이 체포된 후에 그가 유대인들 앞에 서서 자신을 변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야고보를 만났다. 그때에 야고보는 분노한 유대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바울에게 서원을 드릴 것을 제안했고, 바울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21:18-26).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성전에 있다가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고 체포되고 말았다(21:27-36). 유대인들은 바울을 공격했으며(21:27-32),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온 로마인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21:33-36). 후에 바울은 무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변호한다(21:37-22:22).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를 원했지만 바울은 로마법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22:23-29). 그 후에 바울은 다시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게 되었다. 그는 그 곳에서 대제사장 아니니아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했다(23:1-11). 그 후에 유대인들 중에 일부 과격론자들이 바울을 해치기 위해 결사대를 조직했다. 그러나 그 음모가 사전에 노출되면서, 바울은 로마인에 의해 그 음모에서 벗어나게 된다(23:12-35). 

바울의 서원

바울의 체포

바울의 변호

바울의 구원

의회에 선 바울

(21:18-26)

(21:27-36)

(21:37-22:22)

(22:23-29)

(22:30-23:11)

로마를 향하여 (21:18-28:31)


1. 바울의 서원 (21:18-26) - 바울이 야고보의 제의를 받아들여 서원을 행함 -

  가. 선교보고(18-19)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18).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19).."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들은 그들을 기쁨으로 영접하였다. 그 이튿날 바울은 일행들과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갔다.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서(갈 1:19)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 곳에는 다른 장로들도 있었다.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문안하였다. 또 그들에게 자신의 전도사역에 대해 낱낱이 보고하였다. 그것은 물론 의무사항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 사역자들이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서로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특히 야고보에게 문안한 것은 좋은 본이 된다. 교회는 주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서로 교제하고 서로 문안해야 할 것이다. 바울과 야고보는 같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교회의 일꾼들이었다. 성도의 교제는 항상 즐겁고 복된 일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이다.

  또한 바울은 그들에게 보고할 때 자신의 전도사역을 하나님께서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시고 이루신 일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전도자들의 사역은 순전히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한 명도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사신 구주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구원해내신다. 바울의 전도 보고를 들은 야고보와 장로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의 최선의 봉사라 할지라도 그 봉사의 결과로 인한 영광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행한 모든 선한 일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아무런 선한 일을 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야고보의 제안(20-25)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20).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21).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22).."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바울에게 한가지 근심된 사실을 말했다. 그것은 믿는 유대인들의 문제이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은 수만명에 달하였다. 그들은 다 율법에 열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에 대해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지식은 매우 제한적이고 또 빈번히 잘못되기 일쑤이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인들 세계에서 유대인들을 가르치기를,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치 말고 유대인들의 전통적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규모'라는 헬라어(에도스)는 '관습'을 가리킨다. 그것은 잘못된 지식과 정보이었다. 그들은 이 잘못된 정보 때문에 바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들 것이 분명하였다. 유대인들의 저항은 예견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23),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24).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25)..."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한 방책을 생각해내었다. 그것은 바울로 하여금 결례를 행하게 함으로써 그가 율법과 유대인들의 전통적 관습을 지키는 자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책이었다. 이 결례의 규례는 구약 민수기 6장에 나오는 나실인 규례를 가리키는 것 같다. 거기에 보면, 자신을 거룩하게 성별한 나실인은 그 성별 기간이 끝날 때 번제와 속죄제와 화목제와 소제 등 규정된 제사를 드리고 자기의 머리털을 밀어야 했다. 사도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의 규례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이방인들에게는 단지 네 가지만 조심하도록 예루살렘 총회가 결의한 바가 있었다. 그 네 가지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섞여 있는 초대교회의 과도기적 방침이라고 이해된다. 25절에서 "피할 것을 결의하고"라는 구절은 전통사본에는 "피할 것 외에는 그런 것을 지키지 않도록 결의하고"라고 되어 있다. '그런 것'이란 할례나 전통적 관습 등을 가리킬 것이다.


 다. 바울이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임(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26)."


  바울은 그들의 방책에 동의하고 그것을 준행하였다. 바울은그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했다. 그리고 그는 야고보의 제안을 따라서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해 제사 드릴 때까지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했다. 결론적으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 우리는 교회의 일체성(一體性) 혹은 하나됨을 힘써 지키자. 우리는 교회의 거룩과 화평을 둘다 함께 지켜야 한다. 교회는 교리적, 윤리적 오류가 없는 순결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또 서로 분열과 다툼이 없는 일치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행한 선한 일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심으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성과 연약을 가진 부족한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선한 일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는 믿는 다른 형제를 향해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가져야 하고 모든 일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말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의 지식의 제한성을 인정하고 또 우리의 완고한 마음이나 편협한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관용하려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저 믿는 유대인들처럼 편협하고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 영혼들의 구원 등의 큰 일과 목표를 생각하면서 현재 우리가 처한 환경여건에 적응하려 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그러하였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2. 바울이 유대인에게 공격을 당하고 체포됨(21:27-36)
 
  
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공격당함(21:27-32)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27),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28),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29).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30)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은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를 보았고 그의 말을 들었으나 그가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핍박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와 성전에서 바울을 보았고 그를 잡아 죽이려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였다. 사람의 말은 영향력이 있다. 진실하고 좋은 말은 좋은 영향을 끼치지만, 거짓되고 악한 말은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그 유대인들의 말은 바울에 대해 잘못된 생각에서 나왔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율법이나 예루살렘 성전을 훼방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바울을 그렇게 잘못 생각했고 또 바울이 헬라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울에 대해 잘못 생각하였다. 그들의 잘못된 생각에서 거짓되고 악한 비난과 선동의 말이 나왔다. 그들의 선동의 말은 온 성을 소동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비난과 선동에 대해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어떤 말에 대해서든지 과연 그것이 그러한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바른 판단을 내리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선동하는 말에든지 생각 없이, 바른 판단 없이 따라다녀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31),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32)."


 
무리들은 바울을 잡았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종들은 주의 일을 할 때 고난과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예수님도 핍박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그러할 것이며 주의 귀한 종 바울도 핍박을 받았으니 우리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이 되야 올 것이다. 천부장이 소동의 소식을 듣고 급히 군사들을 거느리고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유대인들은 천부장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쳤다. 하나님의 종 바울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피할 길을 주셨다. 그것은 천부장을 보내심으로 얻게 된 길이었다. 고린도전서 10:13은 말씀하기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다.


 
 나)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체포됨(21:33-36)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33),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34).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35),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36)."

  
 하나님의 귀한 종 바울은 두 쇠사슬에 결박을 당하였다. 천부장은 그 소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하였으나 무리들의 소동과 부르짖음으로 실상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혼란과 무질서가 가득하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이성적 발언과 판단은 불가능하였다. 바울은 무리들에게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군사들에게 들려 갔다. 주의 종 바울은 이런 고난을 당해야 했다. 무리들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그를 따라갔다. 이것이 세상이다. 이것이 어두움이 지배하는 세상 현실이다. 예수께서 정죄를 받으실 때도 그러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는 사람의 선과 악의 행위들을 다 보시고 헤아리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그의 공의로우신 심판은 지금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의 정하신 때에 나타날 것이고 또 세상의 마지막 날에 충만히, 완전하게 드러날 것이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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