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사도행전)

사도행전 제 3부: 이방인 선교(13:1-21:17)


                    제 3부 : 이방인 선교 (13:1-21:17)

  
이제 누가의 기사는 결정적인 전환점에 도달하고 있다. 이제 복음은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를 넘어서서 땅끝까지 전파될 때가 되었다. 그 동안 전도자들의 전도 사역은 예루살렘,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복음 전도자들의 시야는 땅끝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미 두 명의 집사들(빌립, 스데반)이 이 길을 준비해왔다. 스데반은 순교와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빌립은 사마리아 전도와 이방인 내시 전도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이방인 선교의 길을 열었다.

  이방인 선교는
두 가지 사건에 의해 미리 예고되었다. 첫째 사건은 이방인 선교의 주역이 될 사울의 회심이고, 둘째 사건은 이방인 고넬료의 가족이 구원받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 후에 무명의 전도자들이 안디옥에 가서 그 곳에 있는 "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아직 그들의 사역 범위가 팔레스타인수리아 본토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해외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비젼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해외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전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사울바나바였다.

  (행 13:1-21:17)에는 3차에 걸친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차 선교 여행과 제 2차 여행 사이에는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종교 회의가 소개되고 있다. 이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A. 제1차 선교여행(행 13:3-14:28)
B. 예루살렘 종교회의(행 15:1-39) 
C. 제2차 선교여행(행15:40-18:22)
D. 제3차 선교여행(행18:23-21:17)

1차 선교여행

예루살렘 종교회의

2차 선교 여행

3차 선교 여행

(행 13:3-14:28)

(행 15:1-35)

(행15:36-18:22)

(행18:23-21:17)

이방인 선교 (13:1-21:17)


3. 제 3차 선교 여행 (18:23-21:17) (사도바울의 3차 선교 여행 지도보기)

  우리는 그 동안 사도 바울의 1-2차 선교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선교 여행인 3차 선교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사도 바울의 제 3차 선교 여행의 여정에는 다음과 같은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이 제부터 이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하나씩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3-1. 에베소에서(18:23-19:41)
3-2. 북부와 남부 헬라에서(20:1-6)
3-3. 드로아에서(20:7-12)
3-4. 밀레도까지의 항해(20:13-16)
3-5.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연설(20:17-38)
3-6. 귀환: 예루살렘으로(21:1-17)

아볼로와 에베소

에베소를 향하여

북부/남부 헬라에서

드로아

밀레도를 향하여

에베소에서의 설교

귀환:예루살렘으로

18:23-28

19:1-41

20:1-6

20:7-12

20:13-16

20:17-38

21:1-17

3차 선교 여행(18:23-21:17)

3-5.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바울의 연설(20:17-38)

 
가.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사역 (17-38)

  
가) 바울의 메시지 (17-21)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17),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18),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19),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20),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21)."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모이게 하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이 에베소에서 어떻게 전도의 일을 했는지에 대해 증거하며 교훈을 주려고 한다.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이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주를 섬겼다고 증거한다. 그는 에베소에서도 많은 고난을 받았다. 악한 자들은 바울과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방하였고 데메드리오는 온 성을 소동시키기도 하였다. 유대인들도 간교하게 그를 낙심시키는 시험을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고난 속에서도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주를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의 사역은 모든 전도자들에게 본이 된다.

  
바울은 또한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전하고 가르쳤다고 증거한다. 그것은 그가 전하고 가르친 내용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물론 사람이 믿어야 할 내용과 행해야 할 내용을 포함할 것이다. 그것은 실상 모든 성경에 관계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바울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들을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든지 전하며 가르쳤다고 증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아야 할 시간과 장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또 그 말씀들을 거리낌 없이 즉 담대하게 전하고 가르쳤다고 증거한다.

  
 특히 그가 전한 내용의 핵심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은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는 회개와 믿음을 전한 것이었다. 회개와 믿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실상 하나이다. 사람은 회개해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참으로 믿은 자는 죄를 떠나야 한다. 참 믿음은 죄를 회개함을 전제하며 그것을 동반한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오늘날도 교회가 힘써 전해야 할 중심 내용이다.


  
나) 그가 장차 받을 고난들(22-27)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22).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23),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4).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25).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26),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27)."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심령에서 나온 굳은 결심 때문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강권하심 속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을 당할 것이라는 각 성에서 받은 성령의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문제로 여기지 않고 기쁨으로 그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 그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즉 그는 죽을 각오로 복음사역에 임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다(눅 9:23-24). 그것은 모든 시대의 전도자들에게 본이 된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요지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현한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의 중심 주제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키는 말이요 죄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것이요 회개와 순종과 의는 하나님의 통치를 겸손히 받아들인 것이다. 죄를 회개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심령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 바울은 또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예언적 발언을 한다. 아마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로마로 압송될 것이며 이제는 로마와 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서바나 전도에 힘쓸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 순교를 당할 것이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의 얼굴을 세상에서 다시 보지는 못할 것이다.

  
 바울은 또 자신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깨끗하다고 증거한다. 그 이유는 그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뜻을 거리낌 없이 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사람이 믿어야 할 바와 행해야 할 바를 포함한다. 즉 그것은 모든 교리와 윤리를 포함한다. 피는 사람의 죄책과 그 결과인 멸망을 가리킨다.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자나 불순종하는 자는 그들의 죄와 멸망에 대해 그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바울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도자의 임무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겔 3:18-19).

  
 본문은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전도 사역의 면모를 증거한다. 그는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주님을 섬겼다. 그는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전하며 가르쳤다. 그는 전도자의 사명 완수를 위해 죽을 각오로 사역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전함으로써 전도자의 임무를 다했다. 본문의 내용은 후시대의 모든 전도자들과 직분자들에게 교훈이 되며 모범이 된다. 첫째로, 우리는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주님을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전하며 가르치자. 셋째로, 우리는 사명과 직분 완수를 위해 죽을 각오로 일하자.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전함으로 전도자와 성도의 책임을 다하자.


  
다) 장로들에 대한 그의 경고(28-35)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28)."

   
바울은 밀레도에 모인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장로의 직무를 잘 감당하도록 권면하였다. 본문이 증거하는 대로, 장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감독자로 세움을 입은 자이다. 끝부분을 전통사본대로 다시 번역하면, "그가 자기 피로 사신 주 하나님의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교회는 주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은 계산할 수 없이 크다. 주께서는 지극히 큰 값을 지불하여 우리를 사셨다. 여기에 성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셨는지가 나타난다. 여기에 또한 하나님께서 여기시는 성도들의 가치가 있다. 교회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구원하신 교회이며 하나님께서 설립하시고 소유하시고 다스리시는 교회이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들인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운데서 그들을 먹이고 돌보게 하기 위해 성령께서 세우신 자들이다. 장로들은 양들을 돌보는 감독자와 목자이다. 목자는 양을 먹이고 양을 돌본다. 양들을 먹이는 것은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교훈하는 일이며 양들을 돌보는 것은 교인들을 심방하여 권면하거나 위로하거나 책망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장로'라 함은 장로교회의 목사와 장로를 다 포함하는 말이다. 장로교회 헌법에 보면, 장로는 두 반이 있으니 강도(설교)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하고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한다고 말했다.

  
 장로들은 양들을 돌보는 직무를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온 양떼를 위해 조심해야 한다. 장로들은 바른 말씀의 지식과 믿음, 그리고 바른 인격과 삶을 간직해야 한다. 그들은 양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 양들을 잘 돌아볼 수 있다. 자신들이 범죄하거나 연약에 떨어지면 양들을 바르게 가르치거나 권면하고 인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권면하기를,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였다(벧전 5:3).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29),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30)."


  
 원문에는 29절 초두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장로들이 조심해야 할 이유를 말한다. 그 이유는 흉악한 이리가 교회에 들어올 것이며 또 어그러진 혹은 사악한 말을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든지 내부에서 일어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교훈에서 떠나는 것이 이단이며 교회의 장로들은 그런 이단을 조심해야 한다. 이단들은 양들을 아끼지 않고 타락시키며 바른 교훈에서 떠나게 한다. 마귀는 이런 방식으로 교회를 어지럽히고 부패시킨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단번에 주신 복음에서 떠나는 것은 저주받을 큰 악이라고 말했다. 갈라디아서 1:8-9,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의 교훈이 중요하다. 교회에서는 성경적 설교가 중요하다. 우리는 사도들로부터 전달되어 오는 역사적 기독교, 성경적 기독교를 바르게 파악하고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바른 말씀 즉 역사적 기독교를 바르게 알고 분별해야 하고 그것을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 로마서 16:17-18,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디모데후서 1:13-14,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역사적 기독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그리고 칼빈, 핫지, 벌코프, 박형룡 등의 신학책들에 증거되어 있는 개혁신학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2).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33),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34),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35)."


   
사탄의 역사로 교회가 부패되고 변질되기 쉬우므로, 바울은 에베소에 있을 때 그들에게 밤낮 쉬지 않고 부지런히 가르치고 권면했고 눈물로 진지하고 간절하게 각 사람을 훈계하였다. 이제 그는 장로들에게 자신의 사역을 기억하면서 조심하라고 말한다. 바울은 모범적인 사역자이었다. 오늘날 복음 사역자들도 바울을 본받아 부지런하고 간절하게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훈계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바울은 그들과 교회를 하나님과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하나님은 가장 좋은 교사요 권면자요 책망자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에게 의탁하는 것은 가장 좋은 방책이다. 또 바울은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만드실 때부터 오늘날까지 말씀으로 일하시는 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성경의 요지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죄사하심과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증거하는 말씀임을 나타낸다.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든든히 세우며 우리로 거룩케 하심을 입은 자들의 회, 즉 현재 참된 교회와 미래에 영광스런 천국에 들게 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충성되어야 하고 또 성경의 교훈에도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강론하고 배우고 묵상해야 한다.

  
 바울의 모범적 사역은 그가 물질적 탐심을 가지고 일하지 않은 점에서도 드러난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일함으로써 자신의 필요와 자기 동행자들이 필요를 충당하였다. 그는 결코 게으르지 않았고 교인들에게 물질적 부담을 주지 않았다. 바울은 그렇게 본을 보임으로써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도 몸이 약해 일을 못해서 물질적으로 궁핍한 자들을 돕는 자들이 되게 하려 하였다. 주 예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적 탐심을 버리고 성실히 일함으로써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 작별(20:36-38)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36),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37),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38)."

   
바울은 모든 권면을 마친 후 무릎을 꿇고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들은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에게는 피차 뜨겁고 진실한 사랑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본문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장로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장로들은 우선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바른 지식과 믿음, 바른 인격과 삶을 가짐으로써 그리고 바울처럼 물질적 탐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손으로 일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자가 됨으로써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장로들은 주께서 피로 사신 양들을 먹이고 지키고 돌보아야 하며, 또 그러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잘못된 사상과 교훈으로 교회를 부패시키는 이단들을 분별하고 막아야 한다.

   
둘째로, 교회를 끝까지 지키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다. 그 방법은 우선 하나님께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요, 또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회가 성경적 설교와 권면을 사모하고 그 교훈 안에 거하면 부패하지 않고 탈선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 성경책을 주셨다.


 
다. 목회 사역의 이상들
  
  
가) 사도 바울의 모범: 목자

  나) 거짓 교사들이 일어남: 이리들

  다) 성도의 가치: 양



 
3-6. 예루살렘으로(21:1-17)

  
가. 밀레도에서 두로로(21:1-6)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1),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2),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3).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4).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5),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6)."

 
 바울 일행은 밀레도에서 떠나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를 지나 두로에 도착했다. 그들은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아 7일을 머물렀다. 바울은 그들과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은 다 한 가족이다. 두로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받을 핍박과 고난을 예감하면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이미 굳은 결심을 한 터이었다.

 
 바울 일행은 두로에서 여러 날을 지난 후 그곳의 제자들과 작별하였다. 두로의 제자들은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과 함께 바울 일행을 성문 밖까지 전송하였고 그들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곳의 제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바울을 전송한 것은 그들이 가족적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을 잘 나타낸다. 온 가족이 다 한 마음과 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는 가족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그들이 다 함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드린 것은 그들의 기도가 간절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기도에 잘 응답하신다. 바울은 그 기도를 통해 두로의 제자들의 평안과 신앙적 성장과 열매 맺기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며 의탁했을 것이고, 두로의 제자들은 바울 일행의 예루살렘 방문과 그곳에서의 안전과 계속되는 그의 전도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며 의탁했을 것이다. 성도의 교제는 권면과 기도의 교제이다.


  
나. 두로에서 예루살렘까지 (21:7-1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7),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8).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9).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10),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11)..."

   
바울 일행은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그곳의 형제들과 교제하였고 이튿날 가이사랴에 이르러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유하였다.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와 봉사의 일을 위해 선택하여 세웠던 일곱 명 중 한 사람이었다(행 6장). 그 일곱 명의 직무는 집사의 직무라고 생각된다. 빌립은 또 하나님의 은혜로 사마리아에 최초로 복음을 전했고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전도자이었다(행 8장). 그에게는 네 딸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 처녀들로서 예언하는 자들이었다.

  
 빌립의 네 딸들이 예언하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은 남녀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특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의 직분에 일반적으로 남자를 세워 그의 일을 행하셨고 신약 시대에도 사도와 목사와 장로와 집사의 직분에 남자를 세우시고 또 여자들이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교훈하셨지만(고전 14:34-38; 딤전 2:11-14), 비상할 때에는 예외적으로 여자들에게도 예언이나 기타 은사를 주셨다. 구약시대에 미리암과 드보라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사도 시대에는 사도들 외에도 예언의 은사를 받은 평신도들이 있었다. 선지자 아가보도 그 중의 하나이었다. 그는 유대로부터 가이사랴로 내려와 바울에 대해 예언하였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증거하였었다(행 20:23). 그것은 다른 곳의 어떤 제자들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그가 당할 고난에 대해 이미 예언하였음을 보여준다. 선지자 아가보도 비슷한 예언을 하였다. 그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과 발을 잡아매고 성령으로 예언하기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 띠 주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12),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13),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14)."

  
 바울과 함께했던 자들은 빌립과 가이사랴 성도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눈물로 권하였다. 그들의 권함은 진지하였고 간곡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올라가려는 바울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회의(주후 49년경) 이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했던 것 같고 예루살렘을 사모하였던 것 같다. 그는 2차 전도여행(51년경)에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전도하였다. 3차 전도여행(54년경)에서는 소아시아 지역과 특히 에베소에서 전도하였고 그 후 그는 마게도냐와 아가야(헬라) 지방을 거쳐 밀레도를 경유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였던 것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한 것은, 예루살렘을 사모한 이유 외에도, 또한 아시아와 마게도냐에서 더 이상 그가 전도할 곳이 없었고 예루살렘 방문 후 로마와 서바나까지 가기를 소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도행전 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로마서 15:23-26,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로마와 서바나는 당시에 땅끝이었다. 그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려는 그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

  바울이 권함을 받지 않자 그의 동료들과 그곳의 성도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면서 권하기를 그쳤다. 바울이 동료들과 성도들의 권면을 거절하며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굳게 결심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 그런 각오를 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러하였다. 사람의 결심은 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 사람이 어떤 결심을 하든지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하신 바를 다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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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적으로,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성도들의 교제를 귀히 여기며 힘쓰자. 특히 온 가족들이 함께 주를 섬기면서 서로 교제하자. 바울은 가는 곳마다 성도의 교제를 힘썼다. 그들의 교제는 교훈과 격려가 있는 교제이었고 무릎을 꿇고 기도함이 있는 교제이었고 눈물로 권면함이 있는 교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거룩한 교제를 기뻐하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이 되자. 두로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은 권면하였다. 빌립의 네 딸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었다. 아가보는 성령으로 예언하는 자이었다. 오늘날은 사도 시대처럼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체험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동일한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의 심령 속에 거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이다.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믿고 체험하자.

 
 셋째로, 우리는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며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자. 바울은 예루살렘 방문 후 로마와 서바나까지 가서 전도하기를 원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심이 있었고 하나님이 주신 직분에 충성하려고 하였다. 그는 전도자로서의 그의 일을 위해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셨다. 주의 사도들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갔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며 하나님의 일들과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에 충성하자.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15),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16).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17)..."


 
 바울은 가이사랴에 여러 날 머문 후(10절), 짐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가이사랴의 몇 제자들도 그와 함께 갔고 특히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도 함께 하였는데, 바울의 전도단 일행이 그의 집에 유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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