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사도행전)

사도행전 제 3부: 이방인 선교(13:1-21:17)


                  제 3부 : 이방인 선교 (13:1-21:17)

  
이제 누가의 기사는 결정적인 전환점에 도달하고 있다. 이제 복음은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를 넘어서서 땅끝까지 전파될 때가 되었다. 그 동안 전도자들의 전도 사역은 예루살렘,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복음 전도자들의 시야는 땅끝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미 두 명의 집사들(빌립, 스데반)이 이 길을 준비해왔다. 스데반은 순교와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빌립은 사마리아 전도와 이방인 내시 전도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이방인 선교의 길을 열었다.

  이방인 선교는
두 가지 사건에 의해 미리 예고되었다. 첫째 사건은 이방인 선교의 주역이 될 사울의 회심이고, 둘째 사건은 이방인 고넬료의 가족이 구원받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 후에 무명의 전도자들이 안디옥에 가서 그 곳에 있는 "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아직 그들의 사역 범위가 팔레스타인수리아 본토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해외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비젼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해외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전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사울바나바였다.

  (행 13:1-21:17)에는 3차에 걸친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차 선교 여행과 제 2차 여행 사이에는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종교 회의가 소개되고 있다. 이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A. 제1차 선교여행(행 13:3-14:28)
B. 예루살렘 종교회의(행 15:1-39) 
C. 제2차 선교여행(행15:40-18:22)
D. 제3차 선교여행(행18:23-21:17)

1차 선교여행

예루살렘 종교회의

2차 선교 여행

3차 선교 여행

(행 13:3-14:28)

(행 15:1-35)

(행15:36-18:22)

(행18:23-21:17)

이방인 선교 (13:1-21:17)


2. 제 2차 선교 여행 (15:36-18:22) (사도바울의 1-2차 선교 여행 지도보기)

  사도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여정에는 다음과 같은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행 16장)을 통해서 수리아갈리기아-갈라디아-빌립보 지역에서의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이 번주에 우리는 (행 17장)에 기록된 데살로니가-베뢰아-아덴에서의 선교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될 것이다.

2-1. 수리아와 길리기아 (15:36-41)
2-2. 갈라디아 (16:1-5)
2-3. 빌립보 (16:11-40)
2-4. 데살로니가 (17:1-9)
2-5. 베뢰아 (17:10-15)
2-6. 아덴(17:16-34)
2-7. 고린도 (18:1-18(상)
2-8. 안디옥으로 귀환 (18:18(하)-23):에베소-예루살렘-안디옥(18:18-23)

수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귀환

15:36-41

16:1-5

16:11-40

17:1-9

17:10-15

17:16-34

18:1-18(상)

18:18-23

2차 선교 여행(15:36-18:22)


2-4. 데살로니가에서의 선교 여행 (17:1-9)

  가. 바울이 전한 것(1-3)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1).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2),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3)..."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중심 도시이었다. 유대인들은 유다 왕국의 멸망 후 온 세계에 흩어졌고 각곳에서 회당을 세웠는데, 데살로니가에도 그런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 유대인의 회당들은 신약 시대에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데 발판이 되었다. 유대인들의 죄악과 국가적 멸망이 세계 복음화를 위한 발판이 되었다. 인간들은 실패하였으나 하나님께는 실패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간들의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그의 선한 뜻을 이루신다.


  사도 바울은 습관적으로 어릴 때부터 안식일을 지키고 회당 예배에 참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부모들이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양육할 것을 명하셨다. 오늘날 온 가족들이 주일을 거룩히 지키고 교회의 모든 공적 집회에 힘써 참석하는 것은 올바른 습관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합당한 방식이다. 바울은 자기 습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참여하였고 그것을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  

  바울은 전도할 때 성경을 가지고 전했다. 성경은 전도와 설교의 자료집이다. 기독교는 한 책의 종교이다. 그 책은 성경책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며 하나님의 말씀 곧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 3:16). 성경은 유익한 책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모든 진리와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읽는 모든 이에게 큰 유익을 주는 책이다. 또한 성경은 편리한 책이다. 성경에 익숙한 자는 하나님의 모든 좋은 말씀을 언제든지 기억하며 확인하며 활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익숙해야 한다. 우리는 이 유익하고 편리한 책을 열심히 읽고 연구함으로써 그 모든 말씀에 익숙한 자들이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유익을 받아누려야 할 것이다.

  바울은 성경을 가지고 전도하되 세 안식일에 강론하였다. '강론하다'는 원어(디아레고마이)는 '변론하다'는 뜻이다. 복음 진리를 전하려면 때때로 변론이 필요하다. 바울은 세 안식일에 계속 강론하였다. 그는 한번의 전도로 부족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세 번 연속하여 복음 진리를 확실하게 전하려 하였다. 우리는 전도할 때 하나님이 힘 주시는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익숙하여 성경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증거해야 한다.


  바울은 전도할 때 성경의 한 부분이나 한 주제를 풀어 설명하면서 증거하였다. 특히 바울이 전한 복음의 요점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거하였다. 그것은 짐승 제물의 죽음, 피흘림, 불에 태움과 이사야서와 시편의 구절들에 근거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이사야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시편 16: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그런 후, 바울은 그가 전하는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다. 예수께서는 과연 의로우신 자이었으나 십자가에 참혹히 달려 피흘려 죽으셨고 삼일만에 다시 사셨다. 그는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분이심이 확실하였다.



  나. 데살로니가인의 반응 (4-9)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4),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5),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6),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7),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8),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9)."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복음이 전파될 때 항상 두 부류가 나뉘인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두 부류가 나뉘인다. 복음을 듣는 사람들 전부가 믿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믿고 순종하며 어떤 이들은 믿지 않고 순종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이 두 부류가 나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모든 사람이 다 믿었으면 좋겠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믿는 부류에 속해야 한다.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는 큰 결실을 거두었다. 바울의 전도는 효력이 있었다. 바울의 말을 믿은 자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다. 본문은 '경건한 헬라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권함을 받았다'는 원어는 '믿었다'는 뜻이다. '귀부인들'은 사회적 신분과 재산이 있는 자들의 부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 바울의 전하는 복음을 믿었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믿음은 순종을 동반한다. 믿은 자들은 바울과 실라를 추종하였다.


   그러나 대적자들이 있었다. 전통사본에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 성의 건달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였다. 그들은 오히려 바울과 실라를 비난하기를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말이 맞기는 하다. 바울의 전도 여정에는 빈번히 다툼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누가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들인가? 분쟁들 중에는, 해서는 안될 죄악된 분쟁이 있고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분쟁이 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말씀대로, 믿는 이들 간에 서로 물고 뜯는 분쟁은 분명히 죄악된 분쟁이다(갈 5:15, 20).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가 전파될 때 일어나는 분쟁, 즉 그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이들을 향해 일으키는 분쟁은 믿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원치 않으나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분쟁이다. 그러므로 모든 분쟁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진리 운동에서 파생되는 분쟁은 믿는 자의 입장에서 원치는 않으나 불가피한 분쟁이다. 타협적 태도에는 분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말하며 진리대로 행하고자 할 때는 항상 분쟁이 있을 것이다. 진리를 전하는 자들은 때때로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라고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세상에 검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마 10:34).

   결론적으로,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성경에 익숙한 자들이 되자. 성경은 유익한 책이며 편리한 책이다. 성경에 익숙한 자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살 수 있을 것이므로 복되다. 둘째로, 우리는 전도할 때 성경의 뜻을 풀어 설명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성경은 우리의 전도 교본이다. 성경은 영혼을 구원하는 효력 있는 도구이다. 셋째로, 우리는 불가피한 분쟁을 두려워하지 말자. 진리 운동에는 때때로 분쟁이 있다. 사탄은 교회가 진리 가운데 든든히 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싫어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하려 할 때 사탄의 방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위한 과정에 일어나는 분쟁은 결국에는 유익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해 일어나는 분쟁을 두려워하지 말자.


2-5. 베뢰아에서의 선교 여행 (17:10-15)


 가. 바울의 회당 선교(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10)."

  데살로니가에서 핍박을 받았던 바울과 실라는 밤에 형제들에 의해 베뢰아라는 도시로 보내졌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바울과 실라는 그 밤에 도피하는 긴 여행을 해야 했다. 당시의 밤의 여행은 불편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도자의 길이었다. 그들은 베뢰아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다. 유대인의 회당은 전도하기 위한 첫발판과 같았지만,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실상 인간적으로는 들어가기 싫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도하기 위해 직분을 받았고 보냄을 받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전 9:16-17).


 나. 베뢰아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과 그 결과 (11-12)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11),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12).."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었다. '신사적'이라는 헬라어(유게네-스)는 '가문이 있는 집안 출신의, 고상한'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태도에서 나타났다. '간절한 마음으로'라는 원어는 '모든 준비된 마음으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라는 뜻이다. 즉 그들은 편견이나 선입견, 좁은 마음, 닫힌 마음, 부정적인 마음,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 열린 마음, 모든 준비된 마음,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사람의 본성은 사악하고 비뚤어져 있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서는 마음이 비뚤어지고 부정적이기 쉽다.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을 '사곡한 종류'라고 표현하였다(신 32:5). 사도 바울은 세상을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라고 표현하였다(빌 2: 12-15).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이렇게 비뚤어지고 부정적인 마음이 변하여 고상한 마음,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 즐거움으로 말씀을 받을 만한 마음이 될 것이다.

   베뢰아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상고한다'는 말은 '확인하고 검토하고 연구한다'는 뜻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며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책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쓴 목적을 말하기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요 20:30-31).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다(딤후 3:15). 사람이 성경책을 자세히 읽고 연구한다면 그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며 구원에 이를 것이다. 그것이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이다.


   하나님께서는 베뢰아에서의 바울의 전도 사역에 많은 열매를 주셨다.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믿었고 헬라의 귀부인들과 남자들도 적지 않았다. 바울이 그곳에서 특히 많은 결실을 얻은 것은 베뢰아 사람들이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성품이 고상하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소박하고 단순한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때 말씀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며 또 날마다 성경을 연구함으로 들은 내용을 확인할 때 더 잘 믿을 수 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 말씀을 통해 생긴다(롬 10:17).



 다. 유대인의 박해와 아덴으로의 피신 (13-15)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13),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14).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15)."


   하나님의 일이 힘 있게 이루어질 때 사탄의 방해도 계속 되었다. 하나님의 종들의 열심도 컸지만, 악한 자들의 열심도 대단하였다. 교회 사역은 영적 전쟁과도 같다. 데살로니가에서 온 유대인들은 베뢰아에서 무리를 충동하여 소동을 일으켰다. 믿는 형제들은 바울을 즉시 내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했다. 베뢰아에서 많은 결신자들을 얻었다고 기뻐한 것은 잠깐이었고 바울은 또 다시 피신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교훈하였었다(마 10:23).

   베뢰아에서 아덴까지는 바닷길로 400 내지 500킬로미터 가야 했다. 바닷길은 항상 풍랑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여행이었다. 바울의 전도 여정은 많은 고난을 경험한 과정이었다. 그는 고린도후서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고 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고상한 마음을 받아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자.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좁은 마음, 완고한 마음, 부정적이고 비뚤어진 마음을 다 버리고 소박하고 단순한 마음, 열린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자. 둘째로, 우리는 성경책을 날마다 읽고 연구하자.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복되다. 그는 믿음에 굳게 서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은 고난을 각오하자. 바울의 전도 여정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견디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핍박과 매, 여행의 위험, 계속되는 도피, 경제적 부족 등의 연속이었다. 주를 따르며 주를 섬기는 길은 좁은 길이며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영생의 길이며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선한 길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주님만 바라보며 감당할 능력을 주께 구하며 고난을 각오하자.



2-6. 아덴에서의 선교 여행 (17:16-34)

 
가. 아덴에서 바울이 보고 느낀 것(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16).."


  사도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면서 아덴 성을 둘러보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노하였다. 그것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선한 분노이다. 우상숭배자들을 보고도 우리의 마음에 분노가 없다면 우리는 그 영혼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전도는 세상의 우상숭배적 환경이나 죄악된 환경에서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에 헛된 것들을 숭배하고 헛된 것들에 가치를 두고 살 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필요하고 인생의 정로(正路)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일이 필요하다. 전도자 바울의 마음 속에는 이런 사랑, 이런 분노, 이런 열심이 있었다.



  나. 아덴에서 바울이 행한 것(17-21)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17),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18).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19)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20),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21)."


   바울은 유대인 회당의 경건한 사람들에게 말했을 뿐 아니라 시장과 광장에서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그리고 심지어 당시의 에피큐러스와 스토익 철학자들과도 변론하였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아덴 사람들은 종교와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그러한 관심에서 나왔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라고 말했다. 아덴 사람들은 종교적, 철학적 토론을 좋아하였고 그것을 위해 시간을 쓸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종교와 철학의 문제들은 때때로 비현실적이고 사치스런 일처럼 취급되지만, 실상 그것들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다. 인간은 광대한 우주, 깊은 신비에 싸여 있는 우주 속에서 살고 있다. 우주와 인간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과 바른 방법은 무엇인가? 선(善)이란 무엇이며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겪는 수많은 고난들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음 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옛날부터 종교와 철학의 주제들이었다. 돈을 벌고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시대보다는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여유를 가진 시대와 사회가 확실히 낫기는 낫다. 바울은 그런 아덴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진리를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다. 아덴에서 바울이 말한 것(22-27)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22).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23).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24),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25)." 


  아덴 사람들은 종교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지만,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을 만들어 그 신을 섬기려 하였다. 철학은 인간 지혜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최선의 지혜로 참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필요성은 어느 정도 느끼지만, 그가 누구이시며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명하시고 요구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바울은 그것을 접촉점으로 삼아 그들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말했다. 이방종교들과 철학들이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들을 기독교는 명백하게 대답한다. 사람은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질 때 모든 종교적, 철학적 질문에 대한 바르고 완전한 대답을 가진다.


  바울이 전한 내용은 무엇보다 우선 참 하나님의 탁월하심에 대한 것이었다. 참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창조주이시므로 피조세계에 제한되지 않으신다. 예를 들어 그는 사람이 손으로 지은 집에 계시지 않으며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시다. 그는 스스로 완전하시고 충만하셔서 조금도 부족이 없으시다. 그는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를 피조물 중의 하나처럼 생각하고 섬기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알지 못하는 신 개념과 그를 섬기는 방식은 잘못이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26),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27).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28),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29)."


   바울은 또한 그 하나님이 우리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에 거하게 하셨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셨고 거주의 경계를 한하심으로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와 거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어느 정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멀리 떠나 계시지 않다. 모든 인간은 실상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존재한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분수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이거나 사치스런 무엇이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생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다.

  바울은 또한 그 하나님이 우리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에 거하게 하셨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셨고 거주의 경계를 한하심으로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와 거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어느 정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멀리 떠나 계시지 않다. 모든 인간은 실상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존재한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분수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이거나 사치스런 무엇이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생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다.


 라. 아덴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도전 (30-31)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30),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31)."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옛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셨으나 이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명하시기를 회개하라고 하셨다고 말한다. 회개는 복음의 중심 내용이다. 회개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무지와 불경건,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며 살았던 모든 죄악과 부도덕을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며 하나님을 안 후부터는 의롭고 선하게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참된 회개는 생명의 길이다. 사람이 참으로 회개치 않으면 자신의 죄 때문에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회개하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모든 사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한다. 회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이다.


  바울은 또한 마지막 심판의 날이 있음을 증거한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사실이다. 인간 사회는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도덕적 주재자이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모든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물으실 것이며 그들의 행위에 대해 공의의 보응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날을 작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세우셨다. 또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가 되게 하셨다.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시며 마지막 심판자이심을 증거하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것은 또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마. 아덴 사람들의 반응(32-34)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32),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33),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34)."


   아덴에서의 바울의 전도의 결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본문의 증거대로 단지 몇 사람이 그의 말을 믿었다. 전도의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어떤 때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올 것이나, 어떤 때는 적은 사람들만 주께로 돌아올 것이다. 전도를 받고 믿는 자들이 많든지 적든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우리는 그 수를 귀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 한 명을 귀히 여겨야 한다. 주께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다(마 16:26).


  결론적으로, 우리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전도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더 깨닫는다. 우상숭배적이고 부도덕한 환경일수록 구원의 필요성은 더 크다. 우리는 구원의 복음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담대히 전하자. 우리는 악한 환경이나 악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자. 우리가 담대히 전도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진리의 내용을 바르게 알아야 하며 또 성령의 능력을 힘 입어야 한다. 그 일을 위해 우리는 열심히 성경을 배우고 연구해야 하며 힘써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전도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말씀이 열매를 맺느냐 맺지 않느냐, 또 얼마나 많이 열매를 맺느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염려할 문제가 아니다. 전도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자.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은 그가 정하신 때에 우리나 혹은 다른 이들의 전도를 통해 다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올 것이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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