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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박민균
     제 목 세계개혁교회 국제학술대회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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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개혁교회 국제학술대회 개막



...2014 세계개혁교회 국제학술대회가 8일 경기도 양지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서 ‘21세기 세계개혁교회 선교와 중국’이란 주제로, 국내외 개혁교회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세계개혁교회대회운영위원회가 주최하고 총신대학교 주관으로 열린 제2차 국제학술대회는 9일 사당동 총신대에서 학술대회와 운영위원회 연석회의, 10일 한국개혁주의연대와 세계개혁교회운영위원회 그리고 리포500아시아 회의, 11일 각국 개혁교회 대표들의 한국 교회 방문과 설교 등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한국 총신대와 한국개혁주의연대 소속 신학자와 목회자를 비롯해, 네덜란드 리포500 회장인 헤르만 셀더하위스 박사(세계칼빈학회장)와 상원의원인 룰 카위퍼 교수(에라스무스 로테르담대학),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 피터 릴백 총장과 칼빈대 줄 메이든블릭 총장, 아시아신학대연맹 회장인 조셉 샤오 총장(필리핀 비블리컬세미너리), 하와이국제신학교 노봉린 총장 등이 참여했다.....


다음은 개회 예배 설교 '전문'이다.

<"친구 사이에"(among friends)> (출 33:1~17)

헤르만 셀더하위스 목사 (리포500 회장)


친애하는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여!

만약 이 단어들이 성경에 없었다면, 나는 이것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만약 성경이 이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것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명백히 이것을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말하라고 당신에게 조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그래서 나도 여러분께 말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께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을 격려하고자 합니다. 여기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얼굴 대 얼굴을 맞대고, 한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고, 정말로 말해진 것이고, 그래서 우리도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위시리스트도 아니고 불평하는 소리도 아니고 찬양의 노래도 아닙니다. 기도는 주고받는 대화이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친구로서 대화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 같은 순간은 확실한 의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죄, 바로 하나님을 버린 끔찍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는 금송아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볼 수 있는 신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신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었고, 심지어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조정하고자 했음을 의미합니다. 조정(Manipulate) 이것은 라틴어 단어 ‘manus’ ‘손’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에 하나님을 취했습니다. 우리는 그 자체로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를 하나님에게 적응시키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조정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에게 적응시키려 한 것입니다. 이것은 중대한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충분한 이유가 있으셨고, 이스라엘로부터 물러나셨습니다. 나는 더 이상 너와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보낸 천사가 너의 얼굴 앞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주, 거룩한 자는 더 이상 너희 가운데 있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삶에 충격을 받았고, 그들은 대개 죄 이후에 오는 후회를 하였습니다.

이 일이 일어날 때, 모세가 떠나있었습니다. 그는 금송아지 죄에 어떤 책임도 없었습니다. 모세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중보자, 연락책이었습니다. 모세에게는 이미 오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이 비춰졌습니다. 그리스도는 한 분,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완벽한 중보자이십니다.

모세는 은혜를 갈망하면서 하나님과의 접촉을 원했습니다. 그는 기도 안에서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인간존재가 의로우신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을까요? 접촉할 자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진영의 바깥이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더 이상 너희 중에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심지어 한 순간이라도 너희 앞에 있는다면, 나는 너희를 파괴할 것이다.’(33:5)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처벌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 중에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그분과 우리 사이에 연합이 없습니다.

이제, 이것에 대하여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고, 그리고 여전히 성경은 말합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와 친구로서 대화하고 계신가?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장소를 가리킬 것이다. 그 장소는 진영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모세는 장막을 세웁니다. 장막은 이스라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장막은 죄인들의 공동체 바깥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연합하고자 원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대화하고자 원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만나야하고 반드시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스스로 갈 수 없습니다. 나는 죄의 자리에 있고, 그곳에서 나는 떠나야 합니다. 나는 반드시 내 자신 밖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나의 죄된 실존에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로 가야만합니다. 그곳은 진영 바깥에 있습니다.

이제, 이것은 내가 은혜를 부르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조건없는 은혜입니다. 비록 나의 죄 때문에 접촉이 불가능 했고, 더욱이 하나님과의 교제도 불가능했을지라도, 그 분은 그 분과 내가 함께 갈 수 있는 곳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나에게 회심을 요구합니다. 그 곳은 나에게 의로우신 하나님과 죄인인 나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곳은 나에게 나의 존재로부터 떠나 그분에게 갈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과의 친교가 있는 장막은 진영 바깥에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신약을 암시합니다. 자,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고통당하고 죽으신 곳을 알고 계시나요? 당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워진 곳을 알고 계신가요? 십자가는 -말하자면- 진영 바깥에 세워졌습니다. 갈보리는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공동체 바깥에 있었고, 그리스도께서는 심지어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연합 밖에 계셨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리스도께서 못박힌 장소로 가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예루살렘을 떠나 갈보리로 가야 합니다.

이것은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교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갈보리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가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안에 있는 방식으로는,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는, 구원은 없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 분께서 한순간이라도 우리 안에 머무신다면, 우리는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은 진영의 바깥이고 우리의 바깥입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로지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다시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의 끝에 다음의 말을 붙이는 이유입니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풍요로워 질 것인가요? 성경에서 말하길 오직 모세가 장막에 들어갔을 때, 구름기둥이 내려왔고 장막 앞에 서있다고 말합니다. 구름기둥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현현을 의미합니다. 오직 모세가 장막에 들어갔을 때만이었지만, 부활절 이후, 오순절 이후 이제 성령은 모든 이스라엘 위에 오셨습니다. 모세만이 아니라 당신과 나 또한 하나님께로 나아갔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장막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확실합니다. 우리가 채플 장소와 교회로 나아갈 때 기도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신과 내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방에서나, 책상에서나, 지하철에서나, 공원에서나, 어디든지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분과 친교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합시다.!

당신은 정말로 우리 신앙의 부요함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당신은 정말로 어떻게 당신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특권을 받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어떻게 당신이 그리스도를 당신의 중보자요, 구원자로서 알게 된 그 축복을 받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당신은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게 된 은혜의 선물을 알고 계십니까?

이것에 대하여 어떻게 서로 간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십니까? 친구, 무엇이 친구입니까? 친구는 당신이 당신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입니다. 친구는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내놓을 수 있는, 흉금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친구는 항상 당신이 그, 그녀를 원할 때 거기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항상 존재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한 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친구로서 계십니다. 그의 마음은 그와의 친교를 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열려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올 때, 오직 그가 나를 필요로 할 때만 온다면 우정입니까? 그녀가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정입니까? 하나님이 이 같이 말씀하신다면 이것은 우정입니까? : 나는 오직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너를 볼 것이다. 우정은 : 우리가 각자를 위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어떻게든지 교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친구되신 하나님에게 이야기 하십니까? 주의해서 들어주십시오.
어떤 문제가 모세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감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말했습니다. 오 주여, 당신은 나에게 이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나오라고 말하셨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이 백성을 지도하라고 말하셨습니다.

오 주여 당신은 나에게 너는 이름을 앎으로 나를 안다고 말하셨고, 너는 나의 호의를 얻을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것이 그렇다면, 그러면 나에게 당신의 길을 보여주소서, 나에게 이들을 위해 할 것을 말하여 주소서. 이들은 나의 백성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입니다.

자 당신은 이것이 들리십니까? 이것은 언약 자손의 기도의 방식입니다. 이것은 은혜 언약의 특권입니다. 이것은 세례의 특권입니다. 이것은 그의 약속에서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오 주여, 당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오 주여 당신이 약속하셨습니다. 당신은 나의 이름을 아십니다. 이제 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행하소서. 당신이 나에게 약속하신 것을 행하소서. 나는 언약에 호소하고, 나의 세례에 호소합니다. 이것이 모세가 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자신의 생각(제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했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 한 인간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알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책무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약하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이 있다. 하지만 나는 죄인이다. 그러나 이곳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 분의 종이 되게 하기 위해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아는 인간 존재이다. 심지어 하나님 그분의 아들로, 나는 여기 있습니다. 여기 나의 무거운 책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당신의 은혜로운 약속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모세를 괴롭혔지만, 그는 감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문제는 그가 천사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사, 그것은 모두 좋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보소서 주여, 당신의 백성, 나의 책무, 이 죄들, 이 도전들, 이 언약, 이 은혜, 이 약속들. 천사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친구들이여, 그는 감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사가 사람들이 받아야 될 것보다 더 나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천사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어떤 일이 들려왔습니다.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곳은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스스로 너와 함께 가야하는가? 이것은 친구의 말이었습니다. 친구가 그를 괴롭히는 것들을 느끼고, 감지했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좋은 친구가 있다면, 당신은 그의 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의 말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을, 그녀를 걱정하게 하는 것을.

모세는 감히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이 당신의 마음에 짐인지, 심지어 당신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조차도 아는 자, 그것이 서로 서로간의 친구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희와 함께 가야 하느냐? 예 주님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 없이 움직이는 것보다 여기 이 사막에서 죽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요청했던 바로 그것을 나는 행할 것이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친구 모세가 그 약속에 호소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친구처럼 하나님과 대화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식도 이렇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과 친구처럼 이야기하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를 불충분한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좋은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기도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불완전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심지어 여러분이 항상 어떻게 말할지 모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기도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아니, 나는 가지 않겠다’를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고 바꾸신 방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절대 ‘예’를 ‘아니오’로 바꾸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도 때문에 때때로 ‘아니오’를 ‘예’로 바꾸십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과 대화하지만, 나에게 말하지 않으시기도 합니다. 나는 말하는데, 응답이 없을까요? 하나님은 때때로 침묵하십니다. 우리는 시편에서 이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의 말을 듣고 계십니까? 하나님 듣고 계시지 않습니까?

때때로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아마도 목적은 우리의 신앙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아마도 내가 기도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당신은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은 말하고 말합니다. 그들은 끝없이 말합니다. 심지어 당신이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도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꽉 차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기도에서 너무 많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할 기회가 없습니다. 나는 계속하여 말하고, 말합니다. 나는 언어의 홍수같이 기도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더욱 짧게 기도해야 합니다. 더 적은 단어로, 또 개방된 더 많은 침묵으로.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말하시는 자리입니다.

또는 아마도 당신은 매우 크게 소리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소음이 있습니다. 만약에 친구들이 당신에게 와서 대화한다면, 어떻게 대화합니까? 거리에서 대화하자. 쇼핑하며 대화하자. 파티장소에서 대화하자. 아닙니다.

당신은 오로지 둘 만이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조용한 장소를 정합니다. 조용한 장소, 당신이 들을 수 있는 장소, 은밀한 분위기가 있는 장소 말입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기도하십니까? 우리는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열린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장막으로 가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했던 것처럼, 사람들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당신은 장막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조용히 대화하기 위한 이 같은 시간과 장소가 있습니까?

또한 당신은 하나님께서 때때로 ‘아니다’고 말하고, ‘예’로 바꾸지 않으실 때도 그 분을 신뢰하십니까? 어느 곳에서 성경의 하나님과 같은 분을 찾으십니까? 어디서 당신은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내가 어떻게 말할지도 모르는 것까지 아시는 하나님을 찾으십니까?

당신의 마음을 그에게 쏟아놓으십시오. 그리고 그가 당신의 언어들을 듣지 않더라도, 그는 당신의 마음을 들으십니다. 그는 때때로 당신이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하기 너무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친구처럼 내가 기도를 잘하지 못함을 아십니다. 그는 때때로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을 아십니다. 그는 시편 139편에서 말하는 것을 아십니다. “심지어 나에게 말하기 전에라도, 당신은 내가 말할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기도에서 내가 열리게 도와주십니다. 그분께서 나의 말을 듣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십니다.

다시한번 말합니다. 만약에 성경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 단어들이 여기 성경에 없었다면, 나는 나 스스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당신에게 조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고, 이 말들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와 친구처럼 대화하십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기도하세요, 그렇게 살아가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행하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진영 바깥에 있기 때문이고, 나의 구원자, 나의 중보자 예수님 때문이고, 나의 친구 예수님 때문입니다.
아멘.


박민균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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