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 름 김대원
     제 목 구원-'행위'냐? '은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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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행위'냐 '은총'이냐
3회 에큐메니칼 포럼-신구교 '칭의' 고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일치위원회'와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가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위해 마련한 '제3회 에큐메니컬 포럼'이 지난 14일 카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개최됐다.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교 내의 대화'를 주제로 열린 이번 에큐메니칼 포럼에서 참가자들은 구원을 바라보는 신구교의 시각의 공통분모를 조심스럽게 접근함과 동시에 99년 발표된 신구교 합동선언문을 재고찰하고 앞으로의 신구교간의 대화에 대한 가능성을 조망했다.

'칭의론, 복음의 정수로 봐야'

이번 포럼에서는 김창락 목사(기독교장로회, 전 한신대 교수)가 '칭의론/성의론 - 쐐기냐 꺾쇠냐?'를 주제로 첫 관문을 열었다. 김 목사는 칭의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평생동안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엄청난 빚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BC카드 한 장을 건네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 이것을 받으시오. 이것으로 당신이 지금까지 지고 있는 모든 빚을 다 청산할 수 있소.' 그 빚진 사람이 당신이라면 당신은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다. 그 빚진 사람이 우리들 모두라면 우리들은 모두 한데 어울려서 춤추며 노래할 것이다. 그것을 거절하거나 그 일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창락 목사는 이같은 예를 듦과 동시에 칭의론과 관련된 신구교의 입장차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일이 일어난 그 현장에서는 환호성, 박수갈채 속에서 감격의 춤판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불만, 분개, 야유의 함성을 지르면서 시비를 거는 패거리가 나타났다면, 어찌된 까닭이었겠는가? 사정은 칭의론/성의론이 개진된 원래의 현장에서보다도 후대에 이것의 의미를 평가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는 자리에서 더욱 더 복잡해진다."

김 목사는 "칭의론은 바울신학의 중심이냐 아니냐, 그리스도교 복음의 정수냐 아니냐를 두고 주석가들의 견해가 엇갈린다"며 "더 나아가서 이 사건의 당사자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느냐는 문제를 두고서도 주석가들의 견해가 엇갈리며 이 가르침의 명칭을 두고 칭의론이니 성의론이니 엇갈리는 명명 방식은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칭의론에 대한 엇갈리는 견해에도 불구하고 "칭의론은 여전히 복음의 정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칭의론은 사람에게 도덕적, 윤리적 행위를 촉구하는 가르침이 아니다"라며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의 무행동, 무책임을 부치기는 가르침으로 삼는 잘못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즉, 개신교회는 칭의론을 복음의 정수, 교회의 존망이 달려 있는 신앙 조항으로 여기며 칭의론이 본래적 의미로 올바로 해석되는 한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또 김 목사는 "칭의론을 초대교회 내에서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 사이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투쟁교설로 보는 것은 역사비평적 관점에서는 옳지만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의 갈등관계가 사라진 오늘의 현실에서는 칭의론은 불필요한 교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김 목사의 논평은 구세군사관학교 이보탁 사관이 맡았으나 특별한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또 이날 가톨릭 신학자들 중에서도 이같은 김 목사의 주장에 대한 특별한 논평은 이어지지 않았다.

'신구교, 그리스도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

두번째 발제는 임희국 목사(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가 '그리스도교 구원론에 대한 에큐메니칼 대화'라는 주제로 맡았다. 임 목사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루터교회 세계연맹의 '합동선언문을 중심으로 현재의 신구교간의 구원에 대한 입장을 재조명하는 한편, 공통분모 찾기를 시도했다 임 목사는 합동선언문에 있어서 신구교의 입장차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합동선언문의 초안은 1995년 초반에 완성됐는데 여러 나라의 루터교회가 이 문서작성에 참여했다. 이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1996년에 최종 문서의 직전단계에서 개신교회는 칭의론을 표준, 곧 교회의 모든 가르침과 실천이 언제나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안내하는 표준으로 삼았다. 칭의론은 유일 무이한 표준으로서 다른 어떠한 교리나 가르침도 칭의론과 꼭 같은 비중이 되지 못할 것이며 칭의론에는 다른 어떻나 덧붙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유일무이한 표준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이것이 로마 교황청의 거부로 말미암아 수정돼야 했다.

1997년 합동선언문의 최종문서작업단계에서 칭의론을 폐지될 수 없는 하나의 표준으로 삼는다고 수정했다. 이를 통해 그 내용에 있어서 크게 달라진 바가 없으나 카톨릭 교회가 칭의론을 유일무이한 표준으로 삼지 않고 이것 외에도 다른 여러개의 표준이 있다고 말하지만 칭으론이 다른 표준들과 동등한 비중을 지닌 것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며, 언제 어디서나 칭의론은 결코 폐지될 수 없는 표준으로서 다른 여러 표준들에 의해서 거부되거나 밀려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대해 독일 루터교회의 신학자 윙엥이 반박하면서 그렇다면 '교황무과오성교리'를 카톨릭 신학자들이 루터교회의 칭의론처럼 '폐지될 수 없는 하나의 표준'으로 상대화 시킬 수 있겠는지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만일 루터교회의 칭의론이 단지 여러 표준들 가운데 하나로 된다면 종교개혁자 루터가 이 교리에게 부여한 중대한 기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목사는 합동선언문 발표 이후 신구교간의 대화에서 볼 수 있는 변화에 대해서 "교회론의 비교에 집중됐던 관심이 점차로 그리스도론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임 목사는 칭의론이 성경의 증언에 근거한 메시지임을 강조하고 화석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합동선언문을 통해 카톨릭 교회와 루터교회가 합의점에 도달한 것은 독일 루터교회 신학자 자우트가 정리한 대로 양자 사이의 동의(Konsens)라고 파악된다. 양자는 성경에 증언된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행위와 이 구원에 대한 약속에 동의한 것이다. 또한 이 구원약속은 지금도 유효하고 그 약속의 성취에 관한 말씀선포를 교회에게 위탁했다.

칭의론은 성경의 증언에 근거한 메시지이며 이것이 결코 하나의 교리나 전통으로 굳어져서 화석화되고 박제화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양 교회는 언제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피조물임을 깨닫는 가운데서, 이 가르침을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봐야 할 것이다. 칭의론은 결코 교회의 소유물이나 전유물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이 교회에게 위탁하신 복음 선포이다.

오늘날 세계의 지구화 과정을 의식하면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대화와 노력은 연구실에서 학문적으로 작업하는 것 이외에 현장에서의 실천 또한 절실하다고 본다. 1989년 유럽 사회주의국가 체제의 붕괴와 함께 형성된 전 세계의 새로운 질서는 빠른 교통수단, 정보화, 세계 경제체제의 단일화로 말미암아 이른바 지구화 시대가 가속화 되었고, 이러한 가운데서 세계의 빈부격차(80:20의 경제구조), 환경오염과 생태계 위기, 외채 문제 등에 그 심각성이 더해 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온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새롭게 다가온 교회의 과제가 절실해 졌다. '오이쿠메네' 곧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모든 피조 세계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각 피조물에게 베푸신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되는 전 지구적인 생명구원이 간절해 졌다. 만일, 이러한 실천적 과제를 도외시하고 구원론과 관련된 에큐메니칼 대화가 학문적 작업에만 매달리게 된다면 이 대화는 매우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고 지루해 질 것이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를 일으켜 세운 분이 아니라 이 세상에 새 생명을 주신 분이라"는 볼룸하르트의 말을 새겨보면 '탄식하는' 모든 피조물을 살리는 생명운동이 구원론의 중요한 주제이자 과제라고 본다.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의 구원과 모든 피조물의 생명공동체를 위한 실천이 그리스도교 일치에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본다.

임 목사의 발제에 논평을 맡은 손의송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도 합동선언문이 신구교 일치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를 했다. 또한 임 목사가 강조한 칭의론에 대해서는 전적인 동의는 표하지 않았으나 그리스도 중심적'입장에는 동의한다고 발표했다. 다음은 손 신부의 주요 논평 내용.

-독일 루터교회 신학자 자우터의 견해에 의거해서 합동선언문은 "양교회가 하나의 신앙공동체로 향하는 중대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즉 이선언문이 주제로 택한 칭의와 관련해서 비록 두 교회가 교리 상 완전한 일치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를 정죄하던 과거에서 벗어나서 서로의 견해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서로의 입장을 배척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나 자신도 이런 평가에 동의하면서 합동선언문이 교회 일치 대화에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합동선언문에 나타난 것과 비슷한 형태의 합의는 이미 40여년 전 한 신학자에 의해서 이룩됐다. 1957년 카톨릭 신학자 한스 퀑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칼 바르트의 의화론과 트리엔트 공의회에 나타난 카톨릭 교회의 의화론을 비교하면서 비록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교회의 분열을 야기할 만큼 큰 것은 아님을 밝혀냈던 것이다. '의화론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볼 때 바르트이 가르침과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이 질문의 범위에 하해서 바르트가 옛 교회에서 분리되어야 할 진정한 이유는 없다. " 신학자 개인의 차원에서 이룩된 합의가 40년이 지나서 교회의 차원에서 성취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교리에 있어서 완전한 일치에 이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합동선언문에서처럼 두 교회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되 서로 배척하지 않는 정도로 가까워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일치의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일치의 단계를 다양성 안의 일치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발제자는 칭의론을 유일무이한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윙엘의 주장을 비판한 사우터의 입장을 받아들여 '그리스도교의 모든 가르침들이 칭의론 안으로 축소'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칭의론이 단지 하나의 교리나 전통으로만 굳어지지 않도록 좀 더 근원적으로 성경의 핵심의 원리인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로 눈을 돌릴 것을 촉구했다.

이런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은 칼 바르트에게서도 발견된다. 앞서 언급한 한스 큉의 주장에 따르면 칼 바르트는 칭의를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것을 절대화하여 교회 존립의 근거로 삼지는 않았다. 바르트는 칭의의 문제를 하나의 고립된 주제로 다루는 위험에서 벗어나 다시 신학 전반의 맥락 속에 자리잡게 하면서 칭의를 그리스도론의 일부에 이해하도록 가르쳤다.

역시 이런 '그리스도 중심적'입장에는 동의한다.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에 중심을 두는 신학을 전개할 때 양 교회는 자신의 교리를 절대화 하지 않고 서로 열린 자세로 함께 하나님이 구원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세상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에큐메니칼 공동 신학 연구의 초창기에 주로 교회론의 비교에 집중됐던 관심이 점차로 그리스도론에 중점을 둔 교회론으로 이동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에큐메니칼 대화도 좀더 그리스도 중심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사료된다.

가톨릭의 '행위'강조..'하나님 나라' 규명돼야

이날 3명의 발제자 중 가톨릭 신학자는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교 내의 대화: 실천'이라는 주제를 맡은 조규만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가 유일했다. 앞선 기독교의 두 발제와 달리 조규만 신부는 구원에 있어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조 신부는 '은총'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은 조규만 신부의 발제 주요내용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구원을 위해서 성사의 은총을 강조했다.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사의 은총'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이며 각 성사에 고유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성사를받는 사람들을 성자와 일치시킴으로써 치유하고 변화시키신다. 성사생활을 효과는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께서 신자들을 외아들이신 구세주와 근본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1129항)

특히 세례성사가 강조됐다. "주께서 친히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복음을 전하고 모든 민족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신다. 세례는 복음을 전해듣고 이 성사를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구원에 필수적이다. 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어가기 위한 확살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세례성사에 매어 놓으셨지만 하나님 자신이 성사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1257항)

그러나 이러한 세례는 철저하게 신앙을 전제로 한다. "세례는 신앙을 전제로 하는 성사이다. 그러나 신앙을 위해서는 믿는 이들이 공동체가 필요하다"(가톨릭교회교리서,1253항). 따라서 교회는 세례 받는 이들에게 예식을 통해서 신앙을 질문한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신앙을 청합니다" 결국 교회는 구원을 위해 세례성사의 은총과 신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신앙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도래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신앙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손수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도록 그 여백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내세우는 마7:21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마태 복음사가는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토라와 비교하면서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율법 준수 이상으로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교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켰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보다도 더 완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마치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완전해야 한다. 마5:20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새로운 율법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한편, 마7:21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 도래하는 것이지만 그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 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의 실행으로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점은 이미 주님의 기도 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마6:10 단지 '주님, 주님' 부르는 것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실 '주님'이라는 호칭은 초대 교회의 신앙고백을 담은 그리스도론적 칭호였다.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아라'하고 욕할 수 없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하고 고백할 수 없다"(고전12:3)

여기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않고서 말로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참된 신앙일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이뤄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상기할 수 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내 행동으로 내 믿음을 보여줄테니 당신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시오(약2:14).

결국 예수님에 의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만사가 헛된 일이다. 의로운 사람들이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구원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내의 대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타종교간의 대화를 위해서도 매우 효과적인 공동 주체일 수 있다. 구원은 여러가지 개념을 표현될 수 있지만 가장 적절한 개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선교 사명의 핵심으로 내세운 '하나님 나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지향하는 구원의 의미를 충분히 담고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김대원 기자 dwkim@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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