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95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하나님 나라와 율법 (눅 16:14-18)

묵상


  가장 작은 일에 믿음과 신뢰를 얻는 자는 큰 일에도 심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을 무시하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큰 일에도 신뢰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한 축복에 비하면 작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재물을 신실하게 관리하지 못하는자 는 영원한 것을 맡아도 충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지 않는 자에게는 참된 것을 맡길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한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기면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그는 두 주인의 요구가 충돌할 때에 자기가 더 사랑하는 주인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 재물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 재물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4-15)."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가르침을 따라 재물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았습니다. 구약에서 경건한 사람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욥 등)은 대체적으로 부유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바리새인들은 재물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을 축복받은 의인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는 사회적인 특권을 이용해서 재물을 모으는 일도 금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재물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난한 제자들을 거느린 시골 출신의 예수를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재물에 눈이 어두워져서 진리를 받아들일 눈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옳다고 하는 자'란 말(디카이오오)은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자'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인정받는 '칭의'가 아니라, 사람 앞에서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알고 계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려고 노력했으며,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사람들 앞에서 높임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매우 엄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헬라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이스라엘 종교를 지키는데 앞장 섰기 때문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시에 함께 존배했던 다른 종파들, 즉 사두개파, 에세네파, 또는 다른 죄인들을 멸시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정통적인 율법을 수호하고 있는 지도자로 존경받고 대접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시 139:7-18).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그들의 위선과 영적 교만을 모두 알고 계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으며, 그들은 재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침입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16)."

  주님은 "율법과 선지자"는 세례 요한의 때까지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율법은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모세 오경을, 그리고 선지자는 모세 오경을 제외한 나머지 구약 성경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님은 구약 시대가 세례 요한의 때까지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율법 시대와 복음 시대의 전환점을 세례 요한에게서 찾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시대와 예수 그리스도를 이어주는 교량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모든 선지자 중에서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례 요한 때 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들이 천국으로 침입하고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주님께서 가르치신 교훈 의 핵심적인 메시지였습니다. 구약에서 '나라'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여호와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나라라는 개념은 성경 저변에 항상 깔려있었습니다. 구약의 경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온 우주를 다스리는 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모든 불의와 궁핍이 사라진 미래의 이상적인 왕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시 146:10; 사 24:23; 34:12; 52:7). 신약 성경은 이러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임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통해서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 나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마다 그리로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다"는 말은 만인에게 복음이 개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법과 예언자들은 천국에 대해 예고 했으며, 세례 요한은 천국을 예비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직접 그 나라를 이 세상에 도래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통해서 구약에 예고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천국이 아직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천국은 이미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미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가 지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아직도 율법 시대의 사고를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율법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17).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눅 16:17-18)."

  그러면 복음의 시대에 율법의 위치는 어떻습니까? 은혜의 시대에는 율법을 버려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은혜의 시대에도 역시 율법은 계속해서 그 효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지는 것보다  천지가 없어지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획'은 히브리어에서 한 문자를 다른 문자와 구분 짓는 가장 작은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일점'은 히브리 알파벳 중에 가장 작은 '요드'를 가리키며, '일획'은 '카프'나 '달렛', 또는 '헤' 나 '헷'와 같이 한 획으로 된 알파벳을 말합니다. 주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은혜의 시대에도 구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마 5: 18). 복음은 율법을 페지하지 않고 율법을 완성하는 역할을 하며, 따라서 복음과 율법은 나누어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 역시 율법을 폐지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율법은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그 효력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의 요구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합당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는 간음하는 자이며, 불합리하게 버림받은 여인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보수적인 샴마이학파는 이혼 조건을 부정이나 율법 파기 등에 국한시켰습니다. 그러나 진보적인 힐렐학파는 어느 한 쪽에서 이혼 의사를 밝히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를 들어 힐렐은 여자가 음식 솜씨가 없는 경우에는 남편에 그녀와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아내를 합법적으로 버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마 19:6-8). 물론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아내를 내보낼 것'(신 24:1-4)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완악했기 때문에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신 규례였습니다. 하나님은 완악한 사람들을 보고 합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 이혼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가정을 꾸려 나가기 힘든 경우에 이혼증서를 주게 하여,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 결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사람의 죄성을 인해 주어진 것이지, 결코 정상적인 법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법은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율법의 효력은 은혜의 시대에도 역시 유효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왜 돈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말해보자.

2. 세례 요한이 율법과 복음의 전환점으로 제시되는 이유믐 무엇인가? 복음 시대의 가장 큰 표시는 무엇인가?

3. 은혜의 시대라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일이 왜 옳지 않는 지 설명해보자.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실례를 찾아보고 이야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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