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74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 (눅 13:31-35)    

묵상


  주님은 마지막 해의 겨울에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곳에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믿지 않고 분노하여 주님을 체포하려 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요단 동편, 즉 베레아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 곳은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곳이었으며, 처음 제자들을 얻으신 곳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곳에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쳤고, 주님께서 메이시아임을 증거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곳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에 많은 무리들은 세례 요한의 증거가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례 요한의 말을 기억하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은 짧은 기간 동안에 베레아 지방에서 많은 영적 열매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뿌려놓은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서 풍성한 열매가 되었습니다.
 

*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다!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눅 13:31)."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와왔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찾아와서 "헤롯이 주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에게 "헤롯의 영역을 떠나라고" 권고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주님을 찾아와서 이러한 소식을 전해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견해는 모두 가능성이 있으며, 어느 것이 옳은 지는 단정짓기가 어렵습니다.

 1) 첫째 견해 - 바리새인들 중 주님에 대해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7:36; 11:37), 헤롯의 음모를 알고 주님을 염려해서 피신을 권고했을 것이다. 헤롯은 자기가 살해한 세례 요한을 예수께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위기감을 느끼고 주님을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헤롯은 이러한 뜻을 자기 신복들에게 알렸고, 그 소식을 들은 일부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찾아와서 그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2) 둘째 견해 - 헤롯 안디바가 고의로 암살 정보를 주님께 흘렸을 것이다. 헤롯 안디바는 세례 요한을 죽인 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마 14:1-12). 그러므로 그는 예수를 죽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관할하던 베레아 지방의 안정을 원했고, 예수로 인해 소요가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일부러 암살 정보를 흘려서 주님이 스스로 그 지역을 떠나기를 원했을 것이다.

 3) 셋째 견해 - 바리새인들이 악의를 가지고 주님을 쫓아내려 했을 것이다. 주님의 인기를 시기하던 바리새인들은 헤롯과 합세하여 주님을 쫓아내기 위해서 일부러 암살 정보를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라!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32).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눅 13:32-33)."

  그때에 주님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헤롯을 가리켜 "여우"라고 부르셨습니다. 여우는 팔레스틴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짐승으로 간교하고  교활한 짐승입니다. 그러므로 랍비 문헌에서 여우는 간교함의 대명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헤롯을 여우로 부르신 것은 헤롯의 교활함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여우는 사자에 비해 힘이 없는 짐승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헤롯을 여우라고 부른 것은 그가 힘이 없는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했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헤롯의 협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주님은 헤롯의 협박이 자신의 사역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제 삼일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견해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견해가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1) 첫째 견해 - 이것은 문자적으로 3일을 의미한다. 주님은 오늘과 내일 계속해서 일을 하실 것이며, 제 3일에 헤롯의 관할 지역을 떠나실 것이다(Bleek, Meyer).

 2) 둘째 견해 - 제 1-2일과 제 3일은 격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제 1-2일은 짧은 기간을 가리키며, 제 3일은 결정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주님은 자신이 잠깐 동안(1-2일) 사역을 하시다가, 결정적인 때가 되면 죽음으로 그 사역을 완성하실 것이다.

 3) 셋째 견해 - 오늘은 '현재'를, 내일은 예루살렘에 이를 때까지의 기간을, 그리고 제 삼 일은 예루살렘에서 죽으심으로 사역을 완성할 때까지의 기간을 뜻한다(Bengel, Farrar). 주님은 베레아에서 사역을 하시고 후에 예루살렘에 가셔서 그 곳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실 것이다.

  본문에 언급된 '완전해 진다'는 말(텔레이우마이)은 '완성한다'는 뜻을 가진 '텔레이오오'의 현재 수동태 직설법입니다. 혹자는 여기에서 수동태가 사용된 것은 주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완전해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세 번째 견해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1) 헤롯의 관할 지역인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완료하는 일(Bleek, Bruce).
 2)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을 완료함(Manson).
 3) 예루살렘에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지상 사역을 완수함(Farrar, Marshall, Gilmour).
  또 주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주님은 자신의 구원 사역이 완성될 때까지 아무도 자기의 길을 방해할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오늘과 내일과 제 삼 일'은 예루살렘에서의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주님께서 감당해야 할 사역의 기간을 의미하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보입니다. '해야한다'(must)는 뜻을 가진 헬라어(데이)는 주님의 사역이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 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헤롯이 당장에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주님께서 수난을 당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은 자신이 헤롯의 영토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헤롯이 자신을 암살하려고 해도,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담대하게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구원 사역을 완수하실 것이라고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34).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3:34-35)."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탄식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죽임을 당하게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며 애통해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백성들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선지자들을 죽이고 박해한 도시였습니다(삼상 30:6; 왕상 12:18; 18:4,13; 19:10; 21:10-15; 느 9:26). 마태복음에서는 이 탄식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과 관련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마 23:13-36). 예루살렘 멸망의 책임은 사실 거짓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었습니다. 어쩌면 주님은 이러한 탄식을 한 번 이상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먼저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에 대해 탄식하셨으며, 그 후에 다시 자신을 거부하는 예루살렘을 행해 탄식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새끼들을 둥지 속에 모으려고 하는 어미 새로 묘사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암탉과 새끼의 관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나타내는 은유로 종종 사용되곤 했습니다(신 32:11-12; 시 36:7; 사 31:5).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으셨습니다. '몇 번이냐'(포사키스)라는 말은 '얼마나 자주'라는 뜻으로, 이 말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여러 번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내 이러한 주님의 노력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13절; 11:15).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주님을 거부하고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23:18,21,23).

  그러므로 주님은 결국 "예루살렘이 황폐하여 버린바 될 것"이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지막으로 주어진 주님의 은총을 거부함으로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끝내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들을 결국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 118:26)을 인용한 것으로, 그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설명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세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해 보입니다.
 1)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의미한다(Danker, Erasmus).
 2)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는 때를 가리킨다(plummer).
 3) 주님의 재림을 의미한다(Godet, Farrar, Marshall).
 

적용을
위한 질문

1. 주님은 헤롯의 암살 음모 소식을 듣고도 두려워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자신의 사역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알고 계셨다. 우리도 우리의 길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믿고 있는가?

2. 주님은 헤롯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사역을 진행하셨다. 우리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두려워하고 있는가?

3. 주님은 범죄한 죄인을 회개케 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고 계신가? 우리는 죄인들을 얼마나 용서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얼마나 애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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