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69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안식일에 꼬부라진 여인을 고치심 (눅 13:10-17)

묵상


  주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 모두 다 회개가 필요한 죄인들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3년 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이 땅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한 번 더 회개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 기회를 올바로 사용해서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면 그들은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지막 기회인 주님을 거부하면, 그들은 영원히 구원의 기회를 잃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 안식일에 18년된 병자를 고치심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10),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11).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12),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눅 13:10-13)."

  주님은 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활동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 유대당국의 적개심은 크게 증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후부터 주님은 공개적으로 회당에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회당'은 아마도 '베뢰아'에 있던 회당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 회당 안에는 18년이나 귀신에 들려 고통당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허리가 '굽어져서'(쇼큐토), 혼자 일어서거나 머리를 들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병은 현대 의학적 용어로 말하면 척추교착염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이 여인의 병이 귀신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8년이나 된 그녀의 병력은 병세가 더 이상 호전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를 보면 그 여인은 매우 진실한 신자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몸이 큰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회당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녀는 아픔과 고통으로 집에서 쉬어야 했지만, 그녀는 집에 누워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계속되는 고통 중에서도 계속해서 안식일에 회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행동이 주님을 만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서 안식일에 회당을 찾은 딸에게 축복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교회에 가는 일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기쁘게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오래된 고통 중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주님의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을 변치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 여인을 보시고 이러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도다!" 주님은 일반적으로 병자의 요청이 있거나, 그의 믿음을 확인하신 후에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주님은 병자의 요청이 있기도 전에 주님께서 먼저 그녀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믿음이 준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주님께서 18년 동안이나 고통 속에 살아온 그녀의 비참함에 연민을 느끼시고 그녀를 고쳐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녀의 병이 나았다고 선포하시고,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언고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즉시로 그녀의 허리가 펴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허리가 펴진 후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 한 마디로 18년이나 귀신에 사로잡혀 허리를 펴지 못한 여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날도 악한 영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십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을 그대로 돌려 보내지 않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님의 긍휼하심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회당장의 비난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눅 13:14)...."

  그러나 회당장은 주님께서 안식일에 그녀의 병을 고친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18년이나 귀신에게 사로잡혀 고통을 받아온 여인이 온전해진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보고 기쁨을 느끼기 보다 오히려 주님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어쩌면 그는 회당의 책임자로서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주님이 하는 것을 보고 열등 의식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회당장은 오랫동안 회당에서 고통 받는 그 여인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녀를 고치게 되자 기뻐하기 보다, 오히려 주님을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회당장의 부정적인 태도는 율법의 수호자의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회당장은 무리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회당장은 병이 낫기를 원하는 사람은 안식일을 제외한 6일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백성의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정말 백성들을 사랑하는 지도자였다면, 18년이나 고생하던 여인이 온전해진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 외식하는 자들아!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15)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1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눅 13:15-17)"

  주님은 이러한 회당장을 보시고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은 회당장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안식일에 자기 소나 말을 구유에서 풀어내고, 그들을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고 도전하셨습니다. 미쉬나는 짐을 싣지 않는 한 안식일에 짐승들을 끌고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여행 규례를 어기기 않는 범위 내에서 가축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쿰란 종파에서도 안식일에 가축에게 풀을 뜯어먹이기 위해서 2,000규빗(약 910m)내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들은 소나 말을 위해서 어느 정도 융통성있게 안식일 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법은 장작 사람을 위해서는 엄격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도전하셨습니다. "너희가 짐승을 먹이려고 안식일에 그들을 구유에서 풀어낸다면, 18년 동안이나 사단에게 매였던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풀어주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안식일에 짐승을 먹이기 위해서 묶은 것을 풀어주는 일이 허용된다면, 18년 동안이나 사단에게 매여 살아온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풀어 주는 것은 당연히 허락되어야 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을 구유에서 푸는 일을 허용하면서, 18년이나 사단에게 매여 살아온 여인을 낫게 하는 일을 금하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에 짐승에게 허용한 은혜만큼도 사람들에게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합당치 아니하냐?"라는 말(에데이)은 '반드시 해야한다'는 뜻을 가진 '데이'의 미완료 과거형입니다. 이 말은 그 여인의 병을 고친 것이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종교 지도자들은 본능적으로 수치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수치감에 싸여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무리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이 하신 일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함께 기뻐했습니다. 아마도 무리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위선이 폭로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똑같은 사건을 앞에 놓고도 이에 대한 태도와 반응은 크게 달랐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제정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쉬라고 하신 명령은, 선과 자비를 베푸는 일마저 중단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에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웃을 위해 선을 베풀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사람을 위해서 보내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묶고 속박하는 알처럼 보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식일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날에 우리를 창조하시고 또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날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에게 선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안식일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고 안식일을 올바로 보내는 일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그 날을 하나님의 뜻대로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님은 우리가 안식일에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우리는 고통 중에도 교회를 찾고 하나님의 백성과 교제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가?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때에 축복을 경험한 일이 있으면 말해보자.

2. 우리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사람을 보고 정죄한 적은 없는가? 우리는 안식일에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는가?

3.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그 동안 지켜온 안식일을 돌이켜보고, 어떻게 올바르게 안식일을 보낼 수 있는 지 이야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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