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64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눅 12:13-21)

묵상


  주님은 앞에서 여러 가지 거룩한 문제(눅 12:1-12)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이미 마태복음에서 생각해 본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그대로 넘어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영적인 가르침을 베풀고 있을 때에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주님께 나아와서 유산 분배에 관해서 중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유산 분쟁을 중재하는 재판관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의 모든 생각이 물질에 사로잡힌 것을 보시고, 그를 위해서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비유에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빠져 쾌락을 좆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 내 형을 명하여 나와 유업을 나누게 하소서!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13),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14),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 12:13-15)..."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유대인의 경우에 상속에 대한 규례는 율법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었습니다(민 27:1-11; 신 21:15-). 그러므로 만일 이러한 법규에 따라서 상속이  분배되지 않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랍비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찾아온 사람은 주님을 권위 있는 랍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존경을 받는 주님의 말씀이라면 완고한 자기 형이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는 그 사람이 어떻게 유산에서 정당한 몫을 못받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율법에 따라 유산의 정당한 몫을 분배 받지 못했으며, 이를 권위 있는 선생인 주님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그때에 주님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주님은 "나는 재판을 하거나 재산을 나누는 일을 담당하는 자로 세움을 받지 않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또한 주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권위나 능력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의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법적인 문제는 사법기관이 할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유산을 나누는 일보다 더 중요한 영혼 구원의 일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해 할 시간을 이러한 법적인 문제에 허비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을 지도 모릅니다. 또한 주님은 그 사람이 물질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그가 탐욕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그의 소유가 그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 주님께서 물질에 대한 그의 태도를 교정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탐심'이라고 번역된 말(플레오녀시아)은 '더 많다'는 뜻을 가진 '플레온'과, '소유한다'는 뜻을 가진 '혀시아'가 합쳐진 말입니다. 이 말은 '만족할 줄 모르고 더 갖기를 원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그 사람에게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은 우리에게 매우 요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물질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허락되지 않은 것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일하고, 그 대가로 번 재산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불법과 죄를 통해서 재물을 얻게 되고, 이를 통해 그는 멸망의 길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사람이 물질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에게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유가 많으면 여러 가지 유익한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우리를 영생에 들어가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으로 번역된 말(조에)은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많은 재물은 올바로 사용되면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상이 되면 우리의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우리는 많은 소유를 얻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면 안됩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 때에만 유익할 수 있습니다. 만일 물질 자체가 목적이 되면 오히려 그 물질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 어리 석은 부자의 비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16),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17),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8).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눅 12:16-19)..."

  주님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능력있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지런히 일을 해서 밭에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이 일에 전심전력했으며, 좋은 결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질의 노예로 보일 정도로 물질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소출의 처치를 놓고 궁리하다가 창고를 더 크게 확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서 '곡간'이라고 번역된 말(아포데커)은 신약의 여러 곳에서 '창고'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24절; 3:17; 마 3:12; 6:26; 13:30). 이 말은 때로 여러가지 물품을 취급하는 '대형 상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볼 때에 그는 대농(大農)이었으며, 또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의 역할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에게 있어서 물질은 삶의 목적이며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는 물질만이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풍성한 소출을 얻고도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그는 많은 소출을 얻고도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어주는 일에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재물을 벌고 그것을 가지고 쾌락을 누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자의 모습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빠진 현대인들과 비슷합니다. 물론 수고하여 번 재물로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의 문제는 물질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영원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인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 어리 석은 자여!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0),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하나님은 그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여기에서 '어리석은 자'라고 번역된 말(아프론)은 '정신없는 자', '무분별한 자'라는 뜻입니다. 현대인은 이러한 사람을 유능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주님은 그를 정신없는 사람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물질주의적 개인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 역시 유물론에 근거해 있으며, 자본주의 역시 물질을 확보하는 일을 자상의 과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질이냐 영혼이냐?, 세속주의냐 하나님 중심주의냐? 하는 선택의 문제는 항상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어 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물질주의자들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부자는 물질을 쌓아놓고 '여러 해'를 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밤'에 그의 영혼을 도로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시면 모든 재물을 놓고 즉시 하나남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어제든지 부르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사람에게 맡긴 것을 다시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놓고 돌아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으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주님은 자기를 위해서 많은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부자와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자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일에는 매우 인색합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세상에서는 부자가 되어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재산을 벌고 그것을 누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서는 부요하게 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빈털털이로 서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보다는 하나님께 투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는 풍요롭지는 않게 보이지만, 사실은 하늘에 수많은 보물이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또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그것을 맡은 청지기의 자세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부요한 사람들입니다(벧전 4:10).
 

적용을
위한 질문

1. 주님께서 유산 분배를 요구하는 사람의 청을 거절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2. 세상에서 유능한 성공자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물든 현대인을 비교해 보자.

3. 우리는 자신에 대해 부요하고 하나님께는 가난한 사람인가? 아니면 세상에 대해서는 가난하고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인가? 솔직하게 반성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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