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60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눅 10:29-37) 

묵상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는 율법에 대한 전문가로 주님을 고소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물론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율법사로 하여금 대답하게 만드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사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너는 어떻게 읽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에 그 율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님은 율법사의 대답이 옳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율법사에게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율법사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지는 않았습니다.
 

*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눅 10:29)"

  율법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있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율법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에게 그가 알고 있는 바를 가서 행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율법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모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학자인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죄가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의인으로 보이기 위해서 주님께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율법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만 사랑해야 될 이웃이라고 대답해 주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이방인을 사랑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면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변론을 통해서 사랑하지 못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30).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31),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32),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33),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34),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눅 10:30-35)...."

  예수님은 율법사가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다른 질문을 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또 다른 비유를 해주셨습니다. 율법사는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웃이 누구인지" 대답하지 않고, "참된 이웃이 되는 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적절한 비유를 통해서 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외식과 편견에 사로잡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웃 사랑의 계명을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만 적용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은 사랑해야 될 이웃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한 가지 비유를 통해서 그들의 이러한 편협된 태도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게서 해주신 비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강도들은 그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만들고, 모든 돈을 갈취한 뒤에 죽어가는 사람을 내버리고 떠나갔습니다. 마침 그 때에 한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 곳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모르는 체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한 사마리아인이 여행 중에 그 곳을 지나갔습니다. 그 사마리아인은 죽게 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가진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입은 사람의 상처에 붓고 응급조치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상당한 사람을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주막 주인에게 주면서 그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주막 주인에게 만일 치료비가 더 들면 자신이 돌아 오는 길에 갚아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사와 같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가르쳤지만, 사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고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사와 예식과 율법은 강조했지만, 더 중요한 율법의 정신인 사랑은 소홀히 여겼으며,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께 나온 율법사의 현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선민이라고생각했고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은 저주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웃 사랑의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노예가 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에게 영생에 이를 수 있는 참된 사랑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민족적 편견과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울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개취급을 받았고, 교제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마리아인은 그러한 것을 개의치 않고 긍휼한 마음으로 어려움을 당한 유대인을 최선을 다해서 도와 주었습니다. 그는 장사하는 데 써야될 소중한 기름과 포도주와 시간을 그를 살리기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또한 그는 부상 당한 유대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필요한 모든 경비까지 부담했습니다. 이러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은 참된 이웃 사랑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랑을 친히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필요한 것을 담당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모든 구원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유대종교인들은 죄와 사단과 사망의 노예가 된 사람을 구원할 수 없는 무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갚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과 교회를 통해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형식화된 유대 종교는 사망과 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 율법사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예수님 안에 영생의 길이 있음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영생은 형식적인 종교가 아닌 참된 사랑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36)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6-37)."

  예수님은 다시 율법사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 율법사는 당시의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만 이웃으로 간주했고,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은 저주받은 사람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로는 이웃을 구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양심상 제사장과 레위인이 옳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할 수 없이 "자비를 베푼 사람"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만 형제로 인정하고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을 멸시한 자신의 태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율법사는 인종과 편견을 뛰어 넘어서 무조건적으로 긍휼한 마음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하지는 않고,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돌려서 대답했습니다. 그는 외식과 형식주의가 몸에 배어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그와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율법사는 이미 자신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 율법사가 진실했다면 그때에 자신의 사랑 없음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도움을 요청했을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누구든지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자기에게 의가 없음을 깨닫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율법사도 유대 종교의 무력함과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겸손히 주님께 은혜를 구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를 붙들어 주시고 그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그를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가 없음을 알았지만, 주님께 은혜를 구하지 않고 텅 빈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율법사가 주님에게 "네 이웃이 누구냐?"고 질문한 이유는 무엇인가?

2.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타난 참된 이웃 사랑은 어떤 것인지 자세하게 이야기 해보자. 우리는 이러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3. 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하는지 말해보자. 참된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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