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54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나는 선한 목자라! (요 10:11-18) 

묵상


  주님은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서 바리새인이 거짓 목자이며, 주님께서 참 목자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같은 진리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나는 양의 문이라!"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셨습니다. 주님 외에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문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절도"며 "강도"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합법적인 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성도들은 그들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고 나오면서 풍성한 꼴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적들은 양을 훔치고 죽이려고 왔지만, 주님은 양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하시려고 양을 찾아 오셨습니다.
 

* 선한 목자와 삯군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1),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12).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요 10:11-13)...."

  주님은 앞에서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다시 무리들을 향해 "나는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과거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실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후에 거짓 목자들을 폐하시고, 친히 이스라엘을 위해 선한 목자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한 목자였습니다. 거짓 목자는 자기 유익을 위해 양들을 이용하지만, 주님은 양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릴 것입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말은 "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양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목자는 기꺼이 양들을 위해 희생합니다. 사실 목자는 죽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죽으면 남아 있는 모든 양들이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짐승들과 싸웁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희생하는 일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기꺼이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를 삯군과 비교하셨습니다. 주님은 삯군은 목자가 아니며, 양도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삯군의 관심은 돈에 있지 양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리가 오면 위험을 무릎쓰고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위험에 빠지면 양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이로 인해 이리는 양들을 찢고, 양들은 무력하게 흩어졌습니다. 이리는 마음대로 양을 찢어 삼켰으며, 나머지 양들은 사방으로 훝어져 달아났습니다. 유대인의 경우 고용된 목자는 이리 한 마리가 공격하는 경우에는 양떼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리가 두 마리 이상 공격해 오면 불가피한 상황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아무리 큰 피해를 당해도 고용된 목자는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양을 사랑하지 않는 삯군들은 자기 목숨이 위험하면 양을 돌보지 않고 무조건 달아났습니다. 삯군이 도망치는 일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돈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위험을 간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돈이지 양의 생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양과 운명을 같이 하지 않습니다. 주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모두 삯군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이용해서 자기 배를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림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14)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그러나 주님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양 들을  위해서 생명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선한 목자이기 때문에 자기 양을 잘 아셨습니다. 양들 또한 목자이신 주님을 잘 알았습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특성을 모두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양 한 마리 한 마리에 대해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양들 역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 목자를 따랐습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의 특성과 행동, 그리고 생각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백성 역시 자기의 주인이신 주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 말을 따릅니다. 주님은 성도들과 자신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시고, 서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자기의 양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주님은 기꺼이 그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 다른 양들도 인도해야 함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는 또 다른 자신의 양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아직 주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장차 주님을 믿을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은 이스라엘 민족 뿐이 아니었습니다. 장차 주님의 백성 중에는 모든 민족들이 함께 포함될 것입니다. 주님은 장차 그들을 위해서 자기 제자들을 파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은 모두 한 무리가 되어서 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는 양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장차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한 교회 안에 머물 것이라고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들은 구별하지 않고 모두 다 똑같은 주님의 백성으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 목숨을 버리고 얻을 권세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17).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6-18)."

  또한 주님은 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주님은 그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셨고, 주님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목숨을 버리시는 것은 목숨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목숨을 잃음으로 죄인을 구원하실 것이며, 그 후에 다시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희생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를 위한 전주곡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포기하신 것은 주님의 목숨을 빼앗는 자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목숨을 버리신 것은 양떼를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원해서 버리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위해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었고, 버렸던 생명을 다시 얻을 권세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를 원하셨고, 주님은 자원해서 그 뜻에 따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께서 죽으신 후에 다시 그 생명을 살려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약속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주님이 원하신 일이었습니다.


* 유대인들의 반응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19),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20),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요 10:19-21)."

  항상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귀신들려 미쳤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정신병이 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하신 모든 말을 미친 사람의 말로 일축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주님의 교훈과 이적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전하고 행하는 일이 귀신 들린 자의 것이 될 수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들은어떻게 귀신들린 사람이 눈 먼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느냐? 고 반문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님을 미친 사람으로 모는 유대인의 편견을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주님을 정죄하는 일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양심의 소리를 묵살하지 않았으며고, 옳은 일을 귀신의 짓으로 돌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주님을 반대하는 자들과 인정하려는 유대인들로 인해 그들은 크게 논란을 벌였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이리가 공격할 때에 선한 목자와 삯군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러한 원리를 주님과 바리새인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2. 어떤 점에서 주님께서 성도들을 아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님을 아시는 것과 비슷한지 말해보자.  

3. 주님은 모든 민족이 주님의 백성이 될 것을 어떻게 말씀해 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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