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48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소경과 이웃, 그리고 바리새인의 대화 (요 9:8-17) 

묵상


  어느 날 주님은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고난이 죄로 인해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그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부모의 죄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자신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일할 기회를 주신 때에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곧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며, 그때에는 일하기 원해도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즉시 소경을 통해 나타내시려던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침을 뱉고 진흙을 이겨서 소경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 소경은 주님의 보내심을 받고 연못에 가서 눈을 씻고 밝은 눈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 주변 사람들의 반응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8)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9),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10).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11).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요 9:8-12)."

  요한이 소경을 고친 사건에서 가장 먼저 기록하고 있는 것은 소경의 이웃과 친지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고침을 받은 후에 집으로 갔습니다.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 청년을 보았던 사람들은 그 청년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소경이 눈을 떠서 돌아 다니는 것을 보고 "정말 이 사람이 그 청년인가?"하고 생각했습니다. 무리들 중에 일부 사람들은 그 청년이 그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청년은 그와 비슷한 사람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때에 그 청년은 그들에게 "내가 바로 그 소경이었던 사람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 청년의 말을 들은 무리들은 흥분하여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자기가 낫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예수라 하는 사람이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르고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해서, 씻었더니 눈이 온전해 진 일을 설명했습니다. 청년은 주님을 가리켜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로 보아 그는 아직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에게 있어서 주님은 특이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 청년의 말을 들은 무리들은 그러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그 사람이 어디있는 지는 나도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청년은 고침을 받은 후에 주님과 헤어졌기 때문에 주님에 누구이며, 또 어디에 계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 바리새인의 반응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13).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14).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15),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16),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 대(요 9:13-17)...."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이적도 주님의 대적들에게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이적은 주님의 대적자들에게 적대감정만 더 강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와서 진리의 빛을 비추셨지만, 대적들은 그 빛을 피하고 어둠에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은 그 청년을 데리고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에게 갔습니다. 그들은 눈이 낫게 된 청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했기에, 그를 데리고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갔습니다. 헨드릭슨은 당시에 예루살렘에 2개의 "소규모 산헤드린(또는 회당법정)이 있었으며, 소경을 데리고 간 곳이 바로 이러한 소규모 산헤드린이었다고 말합니다. 대화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곳에서의 판결이 막중하긴 하지만, 공식적인 재판이 아닌 소규모 심문으로 보입니다. 특히 소경을 고친 일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칼빈은 주님께서 고의로 안식일에 이 일을 행하심으로 유대 보수주의자들에게 자극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청년을 불러서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예수라 하는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발라 주었고, 그것을 씻고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바리새인의 견해는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첫째 무리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아, 그는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규례를 어기는 사람이 의인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무리들은 주님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그들은 "죄인이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고 생각하고, 소경을 고친 주님이 선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주장으로 인해 바리새인들은 분열이 되어,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논쟁을 결론짓지 못하고 소경이었던 청년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평상시에 이러한 종교 문제를 그 청년과 같은 사람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청년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의견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 때에 그 청년은 "그 분은 선지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청년은 처음에는 주님을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11). 그러나 이제 그는 주님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주님과 교제할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주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임이 틀림없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청년은 산헤드린 회원들 앞에서 과감하게 주님이 선지자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청년의 주님에 대한 이해는 점차적으로 깊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보면 알겠지만 결국 그 청년은 주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분명한 증언을 듣고도 끝까지 주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가 아니며, 죄인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가리켜 무식한 죄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16,18,24,29,41).
 

적용을
위한 질문

1. 온전해진 청년을 본 이웃들과 친지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 사람들 중에 어디에 속하는가?

2. 청년은 바리새인들 앞에서 주님에 대해 무어라고 증언했는가?

3. 바리새인들은 청년의 증언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왜 그들은 청년의 증거를 듣고도 주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는가?

연락처

발행인 :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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