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47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날 때부터 소경된 청년을 고치심(요 9:1-7) 

묵상


  (요 9장)에는 주님께서 행하신 한 가지 이적과 이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한 청년의 눈을 고쳐 주셨습니다. 시각 장애자에게 광명을 주신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출 4:11, 시 146:8), 또한 메시아의 일이었습니다(사 29:18, 35:5, 42:7). 요한은 이러한 이적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눈을 뜨게 된 청년의 성격과, 그 청년이 바리새인들과 한 대화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각 장애자를 고친 일이 안식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 이적은 자연스럽게 안식일 논쟁을 야기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은 청년의 증언이 예수를 증거하는 것을 보고, 그 증언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한 증거를 듣고도 주님을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청년을 찾아가서 그를 신앙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청년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유대인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1).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1-3)"

  어느 날 주님은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요한은 이 때가 언제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이 일어난 때를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호스킨스는 이 때가 8장에 언급된 장막절의 마지막 날이었다고 말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은 (요 8:59)에 언급된 사건 이 일어난 후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가 (요 8:59)에 언급된 때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난 때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요한은 시간에 대한 언급 없이 주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관 복음에는 주님께서 시각 장애자를 고치신 일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을 고치신 일은 본문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소경을 볼 때에 그가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로 보아 이 소경은 그 고장에서 잘 알려져 있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제자들은 그 소경을 볼 때에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모든 인간의 불행은 죄로 인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R. Ammi는 이러한 원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죄가 아니면 사망이 없고, 죄가 아니면 고난이 없다." 물론 제자들도 이러한 당시의 상식적인 원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과연 누구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경이 태어나기도 전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가 소경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부모의 죄로 인해 아무 죄도 없는 자녀를 고통에 몰아 넣으시는 분일까요? 제자들은 이러한 일에 대해 혼란을 느꼈으며,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주님께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주님의 생각은 당시의 사상이나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주님은 그가 소경이 된 것이 본인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가 소경이 된 것은 그 사람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나타내기시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청년이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방편으로 보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누가 고통을 당하면 그가 죄를 지어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로 인간의 죄를 징계하고 바로잡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인간의 고난이 그들의 죄 때문에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인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욥이 당한 고난이나, 요셉에 당한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허락하신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변에서 고난당하는 사람을 볼 때에 무조건 그들이 죄를 지어서 그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정죄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욥을 비난하는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면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눈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 때가 낮이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4).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4-5)."

  주님은 "지금은 낮이며 따라서 우리는(주님과 제자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낮이라"는 말은 지금은 주님께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된 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주님께서 인류 구원의 일을 완수하시도록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그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제자들은 지금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고 인류 구원을 위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주님은 이 때가 지나면 곧 밤이 올 것이며, 그 때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에게 허락된 때에 최선을 다해서 잃은 영혼을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세상에는 진리의 빛이 비추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는 어둠의 세력들이 세상을 위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은 곧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제자들은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해야만 했습니다.
 

* 보냄을 받은 소경이 밝은 눈으로 돌아옴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6),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6-7)."

  주님은 허락된 시간에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소경된 청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땅에 침을 뱉은 후에 그 침으로 진흙을 이겨서 그 청년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청년의 눈에 진흙을 바르고 씻으라고 하셨을까요? 어떤 사람은 고대 사회에는 사람의 침에 약효가 있다고 믿었다고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침에 약효가 있어서 침을 뱉어 그의 눈에 발랐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왜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각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한 교부는 소경의 눈에 바른 진흙이 (창 2:7)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교부는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도 진흙으로 소경의 눈에 빛을 창조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그 청년에게 눈을 씻으라고 한 곳은 "실로암 연못"이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연못"은 사람이 들어가서 몸을 닦고 헤엄 칠 정도의 규모를 가진 곳이었습니다. "실로암"은 신약 성경에서 이 곳에서만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요한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인 독자들을 위해서 "실로암"의 의미("보냄을 받았다")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명칭의 원래 의미는 '수로를 거쳐서 이 연못으로 물을 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연못이 이러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매우 오래 전부터였습니다(느 3:15, 사 8:6 참조). 요한은 여기에서 "보냄을 받았다"는 실로암의 뜻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으셨고, 세상에 오셔서 인류 구원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소경을 실로암 연못으로 보내셨으며, 보내심을 받은 소경은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과 소경은 모두 다 보냄을 받았으며, 보내신 분의 일을 수행했습니다. 실로암 연못은 영적으로 파송과 순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들입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해야 합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고난이 오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고난받는 자를 정죄하면 안되는가?

2.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세상의 빛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3. 요한이 "보냄을 받았다"는 실로암의 이름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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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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