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46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존재한 예수(요 8:54-59)

묵상


  유대인들은 주님을 "사마리아 사람", 또는 "귀신 들린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주님은 이 말을 듣고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고 변호하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을 공경하셨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주님을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의 영광을 구하셨으며, 주님을 거부하는 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선지자도 죽었는데, 어떻게 예수가 사람을 죽지 않게 하겠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네가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고 비난했으며,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너는 누구냐?"고 도전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을 미친 사람의 말로 여기고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내 영광을 돌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54).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요 8:54-55)."

  주님은 잠시 이야기의 주제를 자신의 영광으로 돌리셨습니다. 주님은 일체의 자기 예찬이나 영광을 돌리는 일을 배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님을 영화롭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을 사마리아인이나 귀신 들린 자로 간주하고 무시했지만, 하나님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을 거부하는 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분이 자기의 영광으로 구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불렀지만, 예수님은 그 분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과 하나님의 관계는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크게 달랐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주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며,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계셨습니다(요 4:18). 그러므로 주님은 "내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아셨으며, 또한 항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에 이러한 주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으며, 주님을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 아브라함은 주님의 때를 보고 기뻐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주님은 다시 이야기의 주제를 아브라함에게로 돌리셨습니다. 주님은 또 다시 유대인들이 놀랄만한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이 주님의 때를 보기를 원하고 즐거워했으며, 마침내 주님의 때를 보고 기뻐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선언은 주님의 신성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는 미친 소리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을 "유대인의 조상"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이 유대인의 조상이라는 점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추종자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전혀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믿고 이를 고대하며 기뻐했지만, 유대인들은 주님을 직접 보는 축복을 누리면서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님을 멸시하고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전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때를 볼 것을 즐거워했으며, 마침내 그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주님의 때를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주님의 재림의 때를 바라보고 기뻐했다"고 주장합니다(빌 1:10, 2:16). 그러나 본문에서 언급된 "주님의 때"는 재림 뿐 아니라, 주님의 구속 사건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장차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너를 인해 열방이 복을 받을 것이라(창 12:3)"고 선언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창 15장)에서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열방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를 믿었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했을 때에 아브라함의 아들을 통해서 대적의 문을 얻고,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창 22:17-18). 이러한 여러 가지 약속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단을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하실 것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으며,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게 된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을 무시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라, 거짓 신자들의 자손이었습니다.
 

* 주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존재해 오셨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57)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58),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59)."

  유대인들은 주님의 신성을 알지 못했기에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 이때에 주님은 30을 갓 넘긴 청년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젊은 때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좀 늙어 보였다고 해도 50대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직 장로의 나이도 되지 못한 예수가 수천년 전의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유대인들이 반응은 놀라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신성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 주님께서 수천년 전의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는 주님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주님은 그들에게 더 놀라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모든 믿음의 조상들보다 더 먼저 존재해 오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시작이 있지만, 주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해 오셨습니다. 주님은 영원 전부터 존재해온 하나님이셨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존재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주님의 선언을 듣고 미친 소리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허황된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또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성모독 죄를 점한 자를 처형하는 방법대로 주님을 돌려 쳐서 죽이려 했습니다(레 24:16). 유대인들이 합법적으로 사람을 처형하려면 정식 재판을 열고, 사법 당국과 로마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분노한 무리들은 이러한 과정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심히 분노하여 그 자리에서 주님을 즉결 처분하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성전 건축이 진행 중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주변에서 쉽게 돌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을 분노한 폭도들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무리들의 눈을 가리어 주님이 피신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은 무리들을 피해서 성전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에 대해서 진실을 말했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믿지않고 주님께서 신성모독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유대인들을 떠나서 또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주님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었는가? 왜 주님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는가?

2. 아브라함은 어떻게 주님의 때를 볼 것을 고대하며 그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었는지 말해보자.

3. 주님은 어떻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존재해 오셨는가? 이 사실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가?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말을 믿고 있는가?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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