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30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사랑 없는 제자를 책망하시는 예수님 (눅 9:54-56)

도입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1년 가까이 머물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가 다가오게 되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초막절이 가까웠을 때에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형제들을 먼저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자신은 그 곳에 조금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은밀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지나 유대로 가는 지름길을 이용하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자신이 가려고 하는 마을로 제자들을 보내서 거처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 일행은 사마리아의 한 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대로 가려고 하는 예수님 일행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묵상


1. 사랑이 없는 제안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마라아인을 개처럼 취급하고 멀리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제안은 예수님에 대한 의로운 분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에는 사마리아인을 개처럼 취급하던 민족적인 감정도 섞여있었을 것입니다. 옛날에 엘리야 선지자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도 자신을 조롱하던 사람들에게 하늘의 징계가 내리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을 심판하기를 원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러한 심판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지 보여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예수님의 뜻과 달랐습니다.

  이 때는 엘리야의 때와 여러 가지 점에서 달랐습니다. 지금은 약속된 메시아께서 오신
은혜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은혜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시지 않고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마라아인의 마을을 불로 태워버리자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제안은 무자비하고 잔인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이러한 제안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예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야고보와 요한처럼 성급하고 무자비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이 멸시받을 때에 의로운 분노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자비하고 성급한 보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절제가 없는 사람은 지휘관이 없는 군대나 키가 없는 배처럼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항상 깨어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책망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너희가 성령의 법을 알지 못하는도다)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눅 9:55-56)."

  그러면 예수님은 이러한 야고보와 요한의 제안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듣고 가던 길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향해서 "너희가 성령의 법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성령의 법을 알지 못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말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헬라어 사본에는 이 말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문맥을 보면 이 말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뜻을 분명하게 해줍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신을 거부한 사마리아인의 마을을 불로 태워 버리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마리아인들이 이를 보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을까요?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해서 더 이상 예수님을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본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원한을 품게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할 때에 큰 어려움을 겪게되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용납하는 배워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실 하나님 나라는 심판과 보복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 나라는 성령님을 통해 건설되고 확장될 용서와 사랑의 나라였습니다.

3. 신앙의 이름으로 일어난 박해들

 교회사를 읽어보면 여러 가지 무자비한 보복 사건들이 일어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례적으로 종교 전쟁이 일어났고, 또 교회가 자신과 교리가 다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보복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특히 중세 교회 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에 태워 죽이거나 참수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이러한 박해가 예수님을 위한 열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무자비한 보복은 복음의 정신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는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십자군 전쟁도 예수님을 위한 열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지금까지 이슬람 지역은 복음의 문이 닫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야고보와 요한처럼 성급하고 무자비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온유와 사랑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이웃에게 무자비하게 보복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성령님의 열매는 보복과 저주가 아니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선함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갈 5:22-23)."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9).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교훈을 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마라아인들을 무자비하게 징계하려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우레의 아들로 불릴만큼 성급하고 무분별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랑의 사도로 변했습니다. 후에 요한은 사마리아 땅을 축복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그 곳을 방문했습니다(행 8:25). 그리고 그 때에 요한은 큰 방해 없이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천국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사마리아 마을을 불로 태워버리자는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이 왜 부당한 지 설명해 보자.

2.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야고보와 요한의 제안이 성령님의 방법과 어떻게 다른지 말해보자.

3. 교회사에서 예수님에 대한 열정으로 행해진 그릇된 보복의 사례들을 찾아보자. 오늘날 이러한 일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보자.

연락처

발행인 :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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