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427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형제를 중심으로 용서해야 하는 이유 (마 18:28-34)

도입

  베드로는 예수님께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하여 실수가 많기 때문에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형제를 무한한 사랑으로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주셨습니다. 한 신하가 왕에게 일만 달란트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졌습니다. 계산할 날이 되게 되자, 왕은 그 신하에게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빚을 갚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하는 그 많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하는 왕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시면 꼭 빚을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왕은 그 신하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을 알고, 그를 불씽히 여겨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이 비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묵상


1. 무한한 죄와 조건 없는 용서


  왕이 신하의 막대한 빚을 탕감해 준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 이야기는
우리의 죄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일만 달란트처럼 많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하나님 앞에서 10가지 죄를 짓는 경우에, 우리는 1년에 3,650번의 죄를 짓습니다. 우리가 8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평생 292,000번의 죄를 짓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전과 29만 2000범이라는 흉악범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 때에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전과 10범이 넘는 사람을 만나면 위협을 느끼고 도망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전과 292,000범입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남을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 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는 수 없이 많습니다.

  둘째로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 많은 죄를 무한한 자비로 덮어 주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값을 지불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죄는 너무 커서 무한한 하나님의 자비로만 덮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죄 값을 지불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은 구태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너무 커서 아무도 자신의 죄 값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친히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 비유에 나오는 왕도 아무 조건 없이 막대한 신하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덮을 수 있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자비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만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용서받고 용서하지 않는 종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마 18:29-31)..."

  이제 이 비유는 제 2막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제 2막에서 왕의 신하는 1막과 정 반대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는 이제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신하는 막대한 빚을 탕감 받고 크게 기뻐하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때에 그 신하는 집으로 돌아가다가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 신하에게 100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이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므로 100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가 100일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나 이 돈은 그 신하가 왕에게 탕감 받은 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신하는 막대한 빚을 탕감받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아마도 그 신하는 지금까지 그 기쁨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에 신하가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빚을 탕감 받은 것처럼 친구의 빚도 탕감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혀 금방 큰 돈을 탕감받은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무자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는 길에서 친구의 멱살을 잡고 당장에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당장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친구는 그의 발 앞에 엎드려서 조금만 참아주면 꼭 빚을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돈은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시간만 주면 그 친구는 그 돈을 갚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하는 친구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제로 친구를 감옥으로 끌고가서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친구가 모든 빚을 갚기 전에는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큰 자비에 비해 우리가 이웃에게 얼마나 무자비한 지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만 달란트와 같이 어마어마한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모두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엄청난 죄를 용서 받은 사람처럼 살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로 엄청난 죄를 용서받은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조그만 죄를 지은 친구조차 용서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대할 수가 있느냐?"고 따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내가 손해 입은대로 돌려받기 전에는 절대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무자비한 태도는 하나님께 엄청난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 전혀 합당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렇게 무자비한 삶을 살아가고 있있습니다.

3.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1-35)."

  이제 이야기는 제 3막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제 3막에서는 2막의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신하의 무자비한 행동은 왕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왕은 그 신하가 한 일을 듣고 크게 노했습니다. 왕은 그 이야기를 듣고 즉시 군사를 보내서 그 신하를 잡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보낸 군사들이 즉시 가서 그 신하를 왕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러자 그 왕은 그 신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왕은 그 신하를 불쌍히 여기고 그가 진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은 그 종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종은 빚 진 친구를 용서하지 않고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왕은 그가 행한대로 그 신하도 감옥에 가두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은 그 종이 그가 진 모든 빚을 다 갚기 전에는 그 곳에서 나오지 못할 곳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결론을 지으셨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로 용서받은 성도들이 다른 형제들을 용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용서 받은 후에 중심으로 다른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로 용서받은 사람들이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범죄한 형제를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연약해서 일평생 실수하고 또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와 허물은 유한한 자비로는 덮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범죄한 형제를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로 덮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막대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용서를 받은 우리들도 형제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가 죄를 범한 후에 용서를 구하면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해서 우리 힘으로 범죄한 형제를 무한히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용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움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하기 어려운 형제를 만날 때에, 성령님께 그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 형제를 용서할 수 있는 넓고 자비로운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하나님께 용서받은 후에 이웃의 죄와 실수에 대해 무자비하게 대한 일은 없는 지 돌이켜보자.

2. 용서 받은 후에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 나게 되는 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해보자.

3.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고, 무자비한 자에게는 무자비한 심판이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 지 설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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