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266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우월감과 정죄 의식 (마 7:1)

서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근거로 해서 기독교인들은 어떤 비판도 하면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비판을 반대하고 타협과 평화를 위해서 어떤 희생이라도 지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정당한 비판이나 판단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여러 상황 속에서 정당한 비판과 판결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금하고 있는 비판은 습관적으로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정당한 비판과 판단은 인정하지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은 금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 올바른 분별력과 사랑을 모두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비판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묵상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

1. 정죄 의식을 금함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습관적으로 남을 정죄 하는 태도를 금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비판"으로 번역된 말(크리노)은 "재판, 송사, 심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남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올바른 비평(critic)이나 감상(appreciation)을 금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자의 자리에 서서 남을 정죄하고 심판(judgement)하는 일은 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어느 정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의식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특별한 열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시간이 흐르면서 외식으로 흐르고, 자기를 남보다 의롭게 생각하고 남을 멸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눅 18:9-14)에 나오는 비유를 보면 이러한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주인공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남을 멸시하는 바리새인입니다(눅 18:9). 어느 날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기 위해 올라갔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은 
경건한 생활로 백성들에게 존경 받는 바리새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였습니다. 그때에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남보다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 나는 토색(노략질),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도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도 드리나이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바라볼 자격이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가슴을 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 날 하나님은 죄인인 세리를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남보다 의롭다고 생각했고 율법을 모르는 이웃을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남의 정죄하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의 정죄와 비판을 금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간음한 여인에 대한 정죄와 분노심으로 가득찻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은 무리들은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정죄와 비판 의식은 바리새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비판과 정죄는 우리들에게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교훈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남을 비판하고, 사건의 내막을 알기도 전에 사람들을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우리는 이럴 때마다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요 8:7)"

2. 정죄는 우월감에서 나온다.

  우리는
우월감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는 일을 금해야 합니다. 남을 정죄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정죄의 배후에는 반드시 자기 우월감과 자만심 도사리고 있기 마련입니다. 정죄의 영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의롭게 생각하고 남을 멸시하고 무시합니다. 그들은 비난을 통해 남의 인격을 해칠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정당한 비평(critic) 대신 혹평하는(hypercritical) 말을 많이 합니다. 보통 사람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이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평은 올바른 감상(appreciation)에서 나오는 건전한 비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만심에 빠진 사람은 남을 무시하고 악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비난하기 위해 남을 비판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결점을 잡기 위해 접근하고, 흠을 발견하면 가차없이 공격하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남을 비난하는 일을 통해서 자신이 의롭다는 대리 만족을 느낍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바랍니다." 그러나 정죄의 영을 가진 사람은 이웃의 결점과 흠을 찾고 지적하는 일에 만족을 느낍니다. 그들은 비판을 통해서 자신이 의롭다고 느끼며, 이웃의 흠을 발견하지 못하면 낙심합니다. 또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먹고 마시는 문제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 안에는 먹고 마시는 문제와 날짜에 대한 문제로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형제들을 서로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이와 같이 정죄의 영을 가진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중요하게 만들어서 비난하고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에 바울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먹는 것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롬 14:17)." 바울은 이러한 문제는 각자 개인이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인정해 주라고 권면했습니다.

3. 여러 가지 정죄 의식들

  어떤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남을 비난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생각하고, 남이 잘될 때에 함께 기뻐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합니다. 그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파서 흠을 찾아내고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편견을 가지고 남을 판단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비평할 때에 주관적인 생각으로 형제들을 비난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비평은 참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인신 공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미리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듣기도 전에 성급하게 남을 정죄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비판과 정죄는 모두 다 예수님께서 금하신 비판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만심에 빠져서 정죄의 영을 가지고 습관적으로 형제와 이웃을 비판하는 일을 금해야 합니다.
 

     적용과
교훈

1. 예수님께서 금하신 비판은 어떤 것인지 바리새인의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자. 우리에게는 이러한 정죄 의식이 없는지 살펴보자.

2. 정죄 의식은 우월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야기 해보자.

3. 주변에서 행해지는 정죄의 사례들을 찾아보자. 우리는 정죄의 영을 갖고 있지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성령님님께 이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자.

연락처

발  행  인: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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