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260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염려는 무가치하고 해롭다 (마 6:27-29)

서론

  사탄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호공급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생활에 대한 염려에 빠져서 하나님 나라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활의 염려에 빠진 사람들에게 "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네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하보다 귀한 생명과 몸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생명과 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음식과 옷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공중을 나는 새를 예로 들어 이 사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는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고 창고를 짓고 곡식을 저장할 줄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새들이 살 둥지와 먹을 양식을 날마다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날짐승들을 먹여 주신다면, 자기 아들의 피를 주고 산 천국 백성들을 먹여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보호와 공급을 신뢰할 때에 우리는 생활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묵상


1.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생명을 한 치라도 더할 수 있느냐?(27)"

  우리가 의식주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염려가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생명을 한 규빗이나 더할 수 있느냐?" 우리 말 성경에 "한 자"로 번역된 말(페퀸 에나)은 원래 "한 규빗"이라는 말입니다. 한 규빗은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로, 일반적으로 45cm정도의 길이에 해당합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개역 성경의 번역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할 때에 "너희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1cm라도 자라게 할 수 있느냐 ?"라고 말하지, "너희가 염려함으로 키를 45cm나 자라게 할 수 있느냐 ?"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은 다소 어색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27절의 원래 의미는 무엇일까요? 개역 성경에 ""라고 번역된 말(헬리키안)은 원래 ""(신장)라는 뜻과 "생애"(사는 기간) 뜻을 가진 말입니다. 개역 성경은 이 말을 '키'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본문에서 이 말을 "키'로 번역하면 내용이 다소 어색해집니다. 그러면 이 말을 "생애"(삶의 길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말을 생애(삶의 길이)로 번역하면 27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염려함으로 너희 생명한 규빗이라도 더할 수 있느냐?" 본문을 이렇게 번역하면 어색했던 내용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우리가 목숨을 위해서 염려한다 해서 우리의 생명을 한 규빗도 연장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본문에서 "헬리키안"을 ""보다 "생애"(삶의 길이)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으로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같은 병실에서 똑같은 의사가 똑같은 수술을 해도 어떤 사람은 살아나고, 어떤 사람은 죽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기로 결정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의술로도 살려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 서서 한 시간 생명을 연잔해 주면 1억씩 준다고 해도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염려함으로 우리의 생명을 한 치도 연장할 수 없습니다. 과학과 의술이 발전한 현대에도 우리의 생명은 여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에 관한 한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숨을 위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는 한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며,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놓고 강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염려에서 벗어나서 평안히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염려가 우리의 생명을 연정하는 데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쓸데없이 염려를 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요?

2. 염려는 무가치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해친다.

  염려는
생명연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몸과 정신을 해칩니다. 잠언서 기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느니라(잠 12:25)." 우리가 염려하는 일들은 우리의 권한 밖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종종 지나간 일로 인해 염려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도 염려합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염려도 대부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미래에 대해 염려하는 것 중에 50% 이상이 우리의 권한 밖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정신병 환자들"은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남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즉시 행동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자들은 행동은 하지 않고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또 평상시에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고독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은 인간 관계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고독한 사람은 혼자 망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염려와 근심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몸과 정신만 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염려하고 근심하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기도간구로 너희 구할 것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생각지키시리라(빌 4:6-7)." 빌립보 성도들은 감옥에 갇힌 바울로 인해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바울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염려를 그치고 감사함으로 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즉시 우리 마음을 평강으로 채워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보호와 공급하심을 믿고, 염려에서 벗어나서 평안과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용과
교훈

1. (마 6:27)의 개역성경의 번역과 올바른 번역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2. 목숨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 왜 무가치한 지 이야기 해보자. 우리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이유를 설명해보자.

3. 염려와 근심으로 인해 몸과 정신을 해친 일이 있으면 이야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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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인: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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