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 3권   217호(매주 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이웃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마 5:44)

서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형제마음으로 미워하지 말고, 이웃잘못하면 바른 길인도하고,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네 이웃사랑하고 네 원수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형제로 인정하고 다른 민족원수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형제 이스라엘 민족사랑해야 되지만, 원수이방인미워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신 것은 그들을 통해서 이방인도 함께 하나님께 나아와서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의 가르침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묵상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4)."

1. 원수를 사랑하라!

  바리새인들은
"형제를 사랑하되 원수는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성경 사본을 보면 (마 5:44)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을 행하며, 너희에게 악행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본문이 원본의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원수를 갚지 말라!"고 명한 레위기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바리새인은 사적인 보복을 허용했지만, 예수님은 "악을 행하는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을 돌려대고,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려고 하면 겉옷도 주며, 5리를 가게 하는 자와 10리동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말씀하셨고, 미워하는 자에게 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핍박하고 저주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 구약의 가르침과 일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앞에서 생각해본 것처럼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사법부에서 죄인을 처벌하는 것까지 금지한 것은 아닙니다. 이 가르침은 개인이 사적으로 보복하는 것을 금하기 위한 것이지, 사법부가 공의를 시행하는 것을 금하기 위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친히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징계하셨고, 범죄한 가인도 처벌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범죄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재판관들에게 "공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을 사법부의 재판까지 금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은 개인적인 보복을 금하고, 대적을 적극적으로 사랑할 것을 권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에게는 원수도 이웃이 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형제이스라엘 백성사랑해야 되지만, 원수인 이방인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사람사랑하되,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복음을 믿고 구원받을 대상으로 보셨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어느 날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 이 질문은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처럼 "이스라엘 백성만 이웃으로 간주해야 되는 지, 아니면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까지 이웃으로 간주해야 되는 지"에 대해서 질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 율법교사에게 한 가지 비유(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거의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레위인과 제사장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돕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잠시 후에 한 사마리아인이 그곳을 자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유대인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유대인을 긍휼히 여기고 위험을 무릎쓰고 그를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길을 떠나면서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그 유대인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만일 그를 돌보기 위해서 돈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율법교사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이 중에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그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했습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부정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율법교사는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하는 대신,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너도 가서 이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모르는 사마리아인을 부정하게 취급하고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에 빠져서 다른 민족들을 부정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던 사람들은 레위인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도를 만나서 죽게된 형제를 보고 도와주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부정하게 취급받던 사마리아인은 위험을 무릎쓰고 최선을 다해서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비유는 사마리아인도 돕고 사랑해야 될 이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저주하는 원수까지도도 사랑해야 될 이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원수를 갚지말라는 레위기의 가르침과 일치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3.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덯게 원수를 사랑해야 할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
너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악담을 하고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악담하거나 저주하는 말을 들으면, 악담과 저주하는 말로 되받아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해서도 축복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너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남에게 해를 당하면 그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그들을 선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너희에게 악을 행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박해를 받으면 그를 저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에게 악을 행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천국 백성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리새인의 가르침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명령만 하지 않고 친히 사랑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떠나갔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모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들도 원수를 사랑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획하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이러한 예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악인에 대해 똑같이 보복하고, 이웃을 사람을 속이고 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 중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원수를 미워하라!"는 바리새인의 가르침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천국 백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러나 우리는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쉽게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로는 예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러한 외식적인 종교를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 성령님은 능히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명예, 지식, 재물, 승진 등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기도보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하는 기도를 더 좋아하십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신적인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원수에게 노하는 것은 악에게 지는 것과 같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할 때에 우리는 세상에서 원수를 사랑하면서 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적용과
교훈

1. 원수에 대한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른지 말해보자.

2.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기독교인이 미워할 원수는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보자.

3. 예수님께서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라고 했는지 세 가지 예를 들어보자. 왜 우리가 끊임없이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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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인: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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