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 3권   211호(매주 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거짓 맹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마 5:34-36)

서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이름헛되게 부르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이 법정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위증하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그것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언어 생활에서 믿을 수 있는 신실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축소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원에서 위증만 하지 않으면 맹세에 대한 율법을 모두 지킨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맹세 중에도 지키지 않아도 될 맹세가 있다고 가르쳐서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묵상


1. 어떠한 맹세도 금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맹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마 5:34- 36)." 바리새인들은 하늘, 땅, 예루살렘, 그리고 머리를 가리켜서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가리켜서도 맹세하지 말라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맹세도 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퀘이커 교도들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이 구절이 어떠한 형태의 맹세도 금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법정에서도 맹세를 하면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도 맹세를 한 경우가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에게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지시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아브라함은 그 종에게 그 지시를 모두 행할 것을 "맹세"하도록 요구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심문하던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마 26:63)." 이때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맹세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롬 9:1, 고후 1:23).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히 6:16)에서 다음과 같 맹세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를 하나니, 맹세는 저희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맹세를 정당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맹세를 제한하고 있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허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맹세를 금하고, 심지어 재판에서 하는 선서마저 거부하는 퀘이커 교도들의 가르침은 바람직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해주신 가르침의 참 의미


  그러면 맹세를 금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 맹세 저주 하나님의 이름 함부로 사용하는 것 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어 표현을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이 욕이나 저주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욕이나 저주에 사용하는 일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가리켜서 맹세하는 일 금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꼭 지키지 않아도 될 맹세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금으로 한 맹세는 지켜야 되지만, 성전을 가리켜서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 그들은 제단 위에 있는 제물로 한 맹세는 지켜야 하지만, 제단을 가리켜서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자기 입으로 한 멩세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해서 자기 입으로 한 맹세를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키지도 못할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과 제단, 예루살렘과 하늘, 그리고 심지어 자신을 가리켜서도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러한 모든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또한 이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예수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맹세하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법원에서 위증만 하지 않으면 맹세에 대한 모든 율법을 지킨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법원에서의 위증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의 모든 말에서 거짓으로 맹세 하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야기하거나 토론할 때에 맹세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필요에 따라서 과장된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옳은 것고 말하고, 아닌 것 아니라!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에서 지나는 것악으로 좆아 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화가 과장되거나 축소되지 않고, 단순하고 진실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맹세는 꼭 필요한 때에만 하되, 일상적인 대화에서 맹세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러한 맹세는 사실을 과장, 또는 축소하기 위해 사용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자신을 과정하거나 위장하려는 위선에서 나오기 쉽습니다.

3. 있는 그대로 진실만 말하라(37-).

  그러면 맹세를 금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는 먕세를 금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거짓말을 금하고 정직한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진실하게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익을 얻기 위해서 자주 말을 과장하거나 축소합니다. 또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때로 여러 가지 이유로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싸움이 났을 때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골라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맞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맞는 것처럼 들릴 때가 맍습니다. 이러한 일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실을 왜곡해서 말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진실이 아닌데도 무조건 우기면 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언어는 언제든지 정직하고 단순해야 합니다. 바리새인은 법정에서 하는 위증은 죄로 간주했지만, 일상 생활에서 하는 작은 거짓말이나 과장, 또는 축소하는 말은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버원에서 뿐 아니라 평상시에 하는 모든 언어가 다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모든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고, 또 축소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할 때에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과장하고 축소하는 일을 금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또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둘째로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선한 말을 해야합니다. 맹세를 금하라는 말에는 적극적으로 선하고 유익한 말을 하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한 말을 하려고 힘쓸 때에 우리는 거짓말로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혀를 적극적으로 선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혀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 3:15)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우리는 이와 같이 항상 불신자들에게 하나님과 복음에 대해서 말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입으로 이웃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선지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로 어떻게 도와줄 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는도다." 우리는 이 선지자와 같이 학자의 혀를 받아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를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할 수 있는 지혜와 말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말을 사용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혀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선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으로 사랑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의 방언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구리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고전 13:1)." 사랑의 말은 친절하고 자랑하지 않으며 또 무례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사랑의 말은 남을 함부로 비방하지 않고 허물을 덮어줍니다. 잠언서 기자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허물덮어 주는 자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친한 친구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이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함부로 남을 비방하거나 저주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우리가 말로 실수 하지 않도록 말을 적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언서 기자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8:2)."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 입선한 도구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말이 온전케 되는 것은 우리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내 입파숫군을 세워 주셔서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지켜 주옵소서!(시 19:14)" 또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나의 입술모든 말나의 마음묵상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러한 기도는 오늘날 우리들이 온전한 언어 생활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용과
교훈

1. 예수님께서 모든 맹세를 금했다는 퀘이커 교도의 주장이 왜 잘못되었는가?

2. 왜 거짓말, 과장 또는 축소하는 말이 위증죄만큼 잘못된 일인가?

3. 성도들이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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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인: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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