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 3권 163호 (매주 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4, 눅 6:21(하), 25(하))

서론

  우리는 지금 산상설교의 맨 처음에 나오는 8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8복 중에서 두 번째 복인 "애통하는 자의 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영적인 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윗을 통해서 참된 애통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참된 애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묵상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1(하))...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 6:25(하))."

2. 우리는 무엇 때문에 애통해야 하는가?

 
1) 죄와 애통(진정한 회개)

 가. 다윗

 나. 사도 바울


  우리는 지금 성경에 나오는 참된 애통을 한 사례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회개와 애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약 성경에도 참된 애통을 한 사례들이 종종 등당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참된 애통을 한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롬 7장)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의 유명한 탄식 소리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을 행하기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만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크게 탄식했습니다. 바울 안에 있는 양심은 선을 행하는 것이 옳고 악을 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은 행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을 행하기에 바빴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심한 갈등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모순된 모습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여기에 나오는 "곤고한 자"는 "수고와 곤란을 많이 겪은 사람", 또는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 강력한 죄의 세력이 있어서 원하지 않는 악만 행하는 것을 보고 비참함에 빠져서 탄식을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바울의 비통한 모습이 참된 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속에 깊이 뿌리박힌 죄성을 발견한 사람은 이러한 애통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 베드로

  
사도 베드로 역시 영적인 애통을 경험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 다 주님을 버려도 자신만은 예수님떠나지 않겠다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에, 여자 아이 앞에서 3번이나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3번 부인했을 때에 새벽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순간 닭이 울기 전에 자신이 예수님을 3번 부인할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충격에 빠져서 즉시 밖으로 나가 크게 통곡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아시고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예고했습니다. "사단이 너를 밀 까부르듯이 하려고 너를 요청했다"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너무 피곤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결국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밖에 나가서 크게 통곡을 했습니다. 이러한 통곡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영적인 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나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도 자주 예수님따르겠다장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만 어려움이 오거나 손해를 보면, 예수님을 모르는 체 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을 합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종종 자만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지 못하고 영적인 잠을 자다가 사단의 공격 앞에 무참하게 무너져 버립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항상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의 세력을 가볍게 여기고 대비하지 못하면 강한 죄의 세력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발견한 사람은 베드로처럼 죄에 대해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강한 죄의 세력을 인해 애통해 보지 않은 사람은 영적인 대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만에 빠져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현대인들은 에 대해 애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쾌락과 행복에 대해 듣기 좋아하고, 죄나 애통에 대한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이해와 죄를 이기기 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애통의 기도가 없으면 무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해 애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2) 교회를 위해 애통해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자신의 죄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도 애통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교회는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항상 교회를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언제든지 교회가 빈틈을 보이면 교회에 침투하여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가 외부의 적(환난이나 박해)에 의해서 넘어진 적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외부의 환난이나 핍박이 있을 때마다 더 성장해 왔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가 무너진 것은 주로 내부의 적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사용된 "애통한다", 또는 "근심한다"는 말이 고린도 전후서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복음을 전한 고린도교회 안에 수많은 죄와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1) 아들이 어머니(계모)를 간음한 사건, 2) 시기와 분쟁, 다툼, 3)  방탕함, 우상 숭배, 영적인 무질서가 난무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개척자인 바울을 따르는 사람과, 후임자인 아볼로를 따르는 사람들, 베드로를 좆는 사람들, 그리고 그리스도만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서 분쟁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해 크게 근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에 편지를 써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바로 잡고 근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도 영적인 근심애통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들 중에는 바울의 사도성부인하며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가면 그들을 용서치 않겠다"고 경고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에 있는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 애통하며 깨어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악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애통하며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3) 사회와 민족의 죄를 위해서도 애통해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나라를 위해서도 애통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건한 사람들은 자신만 위해서 울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죄악을 보고 애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성에서 죄악으로 인해 고통받는 을 위해 기도했고,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을 거부하는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셨습니다. (겔 9장-10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신성전에서 떠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신이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떠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의 침략 앞에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은 정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그 성전에서 떠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난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인의 발에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모독을 받았습니다.

  (겔 9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기 전에 하신 일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을 심판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기계를 가진 여섯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먹 그릇을 찼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너는 먼저 가서 이 성에서 행하는 가증한 일로 인해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표시를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이는 기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이마에 표시가 없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노인, 여자, 아이를 모두 죽이되, 이마에 표시가 있는 사람은 죽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성전 앞에 있는 노인부터 차례대로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성전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또한 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노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심판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죄를 보고 울며 애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마의인의 표시를 하시고 그들을 심판에서 면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라에서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보고 애통하는 사람을 기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죄악을 보고 애통하는 사람을 의인으로 간주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라의 죄악을 보고 애통하지 않는 사람을 그 죄악의 공범으로 간주하십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라의 죄를 보고 애통해야 합니다. 죄를 보고 애통하는 사람은 의인으로 간주되어 심판에서 면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점점 더 죄에 대한 눈물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안에 있는 죄성과 교회, 그리고 가정나라불의를 보고, 성령 안에서 깨어 애통하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적용과
교훈

1. 왜 죄를 인해 애통해야 하는지 바울과 베드로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2. 왜 교회와 민족의 죄를 인해 애통해야 하는가? 성경의 예를 들어보자.

3. 오늘날 나 자신과, 교회, 민족의 죄를 위해 애통하여 기도해야 할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고 이 문제를 위해 매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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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인: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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