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빛 3권 86호(월-금요일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 |
제 목 |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 3:7-8, 눅 3:7-8(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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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마
3:7(상), 눅 3:7(상))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눅 3:7(상))..." 바리새인은 "하시딤"(경건한 자들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시딤"은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유대인 박해 정책에 항거하기 위해서 일어난 경건한 보수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에피파네스 4세는 성전을 모독하고 유대인들이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때에 마카비 일가가 일어나서 율법 준수를 위해 수리아 군대와 맞서 싸웠습니다. 이때에 하시딤은 마카비 일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따랐습니다. 이 세력은 유대인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고, 마침내 수리아 군대를 무찌르고 성전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마카비 일가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계속해서 투쟁했습니다. 그러자 하시딤들은 그들에게 실망하고, 요한 힐카누스 때에 마카비 가족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바리새인란 말은 "분리자"라는 뜻으로, 이 이름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엄격하게 분리(구별)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교도, 세리,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세속적 정치인들로부터 분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부정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나 물건을 막론하고 엄격하게 금했습니다. 그들은 제사의 정결 문제, 음식 먹는 법, 그리고 안식일 계명 등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다니엘이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의 진미를 먹지 않은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다니엘역시 하시딤에 속한 사람으로 뵤입니다. 이러한 극단적 경건 행동으로 인해 하시딤은 항상 소수 집단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헤롯왕 때에 그들을 모두 합해서 6,000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대한 존중심 때문에 백성들에게 높은 존경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전문가 중심의 중류 계급인 반면에, 사두개인은 부유한 귀족층과 제사장 계급을 대표하는 상류층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세속 세력과 적당히 타협했고, 헬라 문화를 수용하고 지지했습니다. "사두개"란 말은 "의롭다"는 뜻을 가진 "싸디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두개인이란 말은 솔로몬의 제사장이었던 "사독"(삼하 8:17)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족들을 대할 때에 이방인처럼 무례하게 대했고, 교사들과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리새인들만큼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구전을 동시에 인정했지만, 사두개인들은 기록된 율법만 경전으로 인정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함께 구전으로 전해진 토라, 즉 미쉬나(2세기 랍비 유다 하나시가 편집함)에도 같은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이러한 구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부활과 영혼의 불멸을 인정한 반면, 사두개인들은 이러한 초월적인 교리들을 부인했습니다. 이 외에도 바리새인은 인간의 자유와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지만 사두개인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눅 3:7(하)-8(상))" 세례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서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요한은 이 두 무리를 "독사의 자녀"라고 불렀습니다. 사막에 있는 뱀들은 크기도 작고 기만적인 행동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막대기처럼 늘어져 있다가 갑자기 덤벼들어서 상대방을 공격했습니다(행 28:3). 세례 요한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외식과 이기적인 행동은 이러한 뱀의 기만적인 행동처럼 사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사두개인은 지위와 명예와 재물을 통해 자기 안전을 추구했고, 바리새인은 자기 의와 외식적 종교 예식을 통해서 하나님과 백성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참된 경건을 포기했고, 바리새인들은 형식과 외식에 빠져서 진정한 율법의 정신에서 떠나있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대부분의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따르는 것을 보고, 그 무리에 동참해서 자기의 경건함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성령님을 통해서 그들의 외식을 알고 있었습니다(요 8:44, 계 12:9, 20:2).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면서 그들에게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임박한 진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임박한 진노는 복음을 거부하는(중생하지 않은) 사람들 위에 머무는 하나님의 진노였습니다(엡 2:3). 하나님은 구원의 기회를 거부하고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진노의 잔을 쏟으실 것입니다(요 3:18,36, 롬 1:18). 둘째로 임박한 진노는 최후 심판 때에 죄인들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진노를 말합니다(엡 5:6, 골 3:6, 살후 1:8-9, 계 14:10). 이러한 진노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습 1:15, 2:2, 말 3;2-3, 4:1,5). 셋째로 임박한 진노는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이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자기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임박한 진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요구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진정한 회개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나타나는 행위들을 말합니다. 말로만 회개했다고 외치면서 계속 죄 가운데 머무는 것은 참된 회개일 수 없습니다. 세례는 죄를 없애는 마술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세례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떠나 살던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 죄를 떠나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고백하는 자에게 베푸는 종교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를 떠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위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관용과, 공평, 의와 믿음, 그리고 정직함이 자엽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는 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예식도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이러한 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녀"라고 부르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 속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죄와 우상을 따른다면 이것은 진정한 회개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입으로 죄를 시인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죄와 싸워 승리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이 자신을 의지할 때에 얼마든지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는
말로만 회개를 외치는 사람은 아닙니까? 우리는 삶 속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진정한 회개의 열매가 있는지 정직하게 반성해 봅시다. |
적용과 질문 |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어떤 사람이며,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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