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3권 529호(월-금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 |
제목 |
삭개오를 영접하신 예수님 (눅 19:1-7) |
묵상 |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리고를 지나가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 곳에서
구걸하던 소경 바디매오가 고침받은 사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리고에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며 부자인 삭개오였습니다. 여리고는 요단 동편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간선도로변에 있었기 때문에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삭개오라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들을
관리하는 세리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많은 재물을 가진 부자였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영생의 길을 물었던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삭개오 역시 그 청년과 같이 재물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명예와 존경을 받았으나, 삭개오는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세리들은
부당한 세금을 부과하여 로마에 주고, 일부를 자신들이 착복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세리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증오와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지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신과 같은 세리들을 영접하고 교제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주님의 제자들 중에도
자기와 같은 세리(마태)가 있다는 소식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으며, 또한
당시에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삭개오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할 수 없이 주님이
가실 곳으로 미리 달려가서 그 곳에 있던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주님을 보고 싶은 열망이 강렬했기 때문에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그가 주님을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보고 싶어하는 열망이
크지 않았다면 그는 어린 아이와 같은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으로 인해 뽕나무에 오르는
행동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태도는 하나님 나라를
어린 아이처럼 받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주님께서 자기에게 주목하지 않아도 한 번 보는 것으로도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는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싶은 열망을
가득했지만, 감히 주님께서 자기를 만나 주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의 일행은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주님은 뽕나무에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그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주님은 이미 그의 이름과 그의 마음에 있는 강렬한 열망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친한 친구에게 말씀하시듯이 친근하게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놀랍게도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집에 머문다고 하신 것은 숙박하겠다는 말 뿐 아니라, 삭개오를 친구로 인정하고 그와 교제를 허용한다는 표시였습니다. 삭개오는 이 말을 듣고 자기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삭개오는 급히 뽕나무에서 내려와서 즐거워하면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존경했던 주님을 만나보았고, 그분과 대화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분이 지금 자기 집에 머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너무 기뻐서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서 반갑게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광경을 본 사람들은 수군거리면서 "저자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비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존경받는 랍비나 종교 지도자가 세리의 집에 머무는 일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일을 부정한 일로 생각했으며, 따라서 주님께서 세리의 집에 머무시겠다고하는 것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전부터 주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종교 지도자들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주님께서 세리를 영접하는 것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세리장 삭개오는 일반 사람들에게 많은 멸시와 증오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죄인들과 식사하는 것은, 그들을 용납하고 교제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께서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머무는 것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을 위해서 주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함께 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병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에게는 주님이 필요했습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주님에게 있어서 죄인과 세리들은 구원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심정으로 죄인들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한 영혼을 찾게되면 하늘에서는 기쁨의 잔치가 열렸습니다. 만일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면, 이러한 무지한 비난과 불평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적용을 |
1. 삭개오와 재물로 인해 주님을 좆지 못한 부자 청년의 특성을 비교해서 설명해보자. 2. 삭개오가 주님을 보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간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3. 주님께서 삭개오와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주님은 자신을 만나기를 열망하는 자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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